오늘의 세균(지의크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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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병원에서 제일 위험한 세균,
ESKAPE
오늘의 세균
“어떤 세균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할까?”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세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세균의 학명 속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을 찾아 설명한 『세균과 사람』을 비롯해 최근까지 항생제 개발의 역사를 정리한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계단, 2023), 세균학의 결정적 연구를 담은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계단, 2024),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에 관한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지상의책, 2024) 등 활발하게 전공 분야에서 대중 글쓰기를 해온 고관수 교수가 이번에는 오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세균들에 관한 책을 펴냈다. 오늘 병원에서 가장 위험한 세균, 바로 ESKAPE다.
어떤 세균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위험할까? 인류가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네덜란드의 포목상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이후 불과 300년 남짓하지만, 역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많은 세균에 시달려 왔다. 그 가운데 특히 인류에 공포를 선사한 세균을 꼽으라고 하면, 14세기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앗아가 버린 페스트균(Yersinia pestis)도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를 몰락의 길로 이끈 장티푸스균(Salmonella enterica)도 들 수 있다. 18세기 이래 수차례 팬데믹을 일으킨 콜레라균(Vibrio cholerae)도 빠질 수 없으며, 전쟁 때마다 출현하여 수많은 병사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발진티푸스의 원인균인 리케차 프로바제키(Rickettsia prowazekii)라는 세균도 무섭다. 또한 매독균(Treponema pallidum)은 어떠한가? 과거 문둥병 혹은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Mycobacterium leprae)도 악명이 높았다. 모두 다 무서운 세균들이다. 그런데 정작 요즘 병원에서 의사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세균은 따로 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세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SKAPE
오늘의 세균
“어떤 세균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할까?”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세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세균의 학명 속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을 찾아 설명한 『세균과 사람』을 비롯해 최근까지 항생제 개발의 역사를 정리한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계단, 2023), 세균학의 결정적 연구를 담은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계단, 2024),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에 관한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지상의책, 2024) 등 활발하게 전공 분야에서 대중 글쓰기를 해온 고관수 교수가 이번에는 오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세균들에 관한 책을 펴냈다. 오늘 병원에서 가장 위험한 세균, 바로 ESKAPE다.
어떤 세균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위험할까? 인류가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네덜란드의 포목상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이후 불과 300년 남짓하지만, 역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많은 세균에 시달려 왔다. 그 가운데 특히 인류에 공포를 선사한 세균을 꼽으라고 하면, 14세기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앗아가 버린 페스트균(Yersinia pestis)도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를 몰락의 길로 이끈 장티푸스균(Salmonella enterica)도 들 수 있다. 18세기 이래 수차례 팬데믹을 일으킨 콜레라균(Vibrio cholerae)도 빠질 수 없으며, 전쟁 때마다 출현하여 수많은 병사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발진티푸스의 원인균인 리케차 프로바제키(Rickettsia prowazekii)라는 세균도 무섭다. 또한 매독균(Treponema pallidum)은 어떠한가? 과거 문둥병 혹은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Mycobacterium leprae)도 악명이 높았다. 모두 다 무서운 세균들이다. 그런데 정작 요즘 병원에서 의사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세균은 따로 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세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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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ESKAPE란 무엇인가? 2008년 4월 15일 발간된 미국 감염학회지에 루이스 스톡스 클리블랜드 보훈의료센터의 루이스 라이스 교수는 편집자 해설이란 형식으로 3쪽짜리 논문을 발표한다. 해당 호에 실린 여러 중요한 세균들, 특히 항생제 내성 세균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러 논문을 종합한 해설에 해당하는 글로, 여기서 그는 이후 거의 고유명사가 된 용어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이 'ESKAPE'다. ESKAPE는 병원에서 점점 큰 위협이 되어가는 여섯 가지 세균 학명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바로 다음의 세균들이다.
장구균(Enterococcus faeci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baumannii)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엔테로박터(Enterobacter sp.)
라이스 교수는 병원 내에서 감염을 많이 일으키고, 항생제 내성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 많은 사망자를 내는 세균을 이렇게 지목하면서 이에 정부를 비롯한 각계의 관심과 대책, 지원을 촉구했다. 이렇게 목록을 정한 것은 라이스 교수의 단독 결정은 아니었다. 미국감염학회 소속 여러 연구자와 의사 들이 대책팀을 만들고 오랫동안 논의한 결과였다.
라이스 교수는 논문에서 "ESKAPE 세균은 병원 감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병리 기전, 전염 양상 및 항생제 내성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감염을 일으키는 빈도와 감염을 일으켰을 때의 심각성, 그리고 항생제 내성과 관련한 치료의 어려움 등을 근거로 목록을 정했다는 뜻이다.
사실 어떤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환자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때 감염시킨 그 세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몇 종의 세균만을 추리면서 ESKAPE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게 된 데에는 나름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그에 따르는 정부와 연구 기금 등의 지원 문제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보다 극적인 데 쏠리기 마련인데, 에이즈나 에볼라와 같은 질병에 갖는 공포심에 비하면 일반적인 세균 감염과 이들 세균의 항생제 내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기관의 지원도 적었고, 큰 제약회사에서도 항생제 개발을 줄이거나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용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해당 세균의 위험성에 대한 넓은 홍보과 관심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오늘의 세균, ESKAPE 즉, 치료 대상으로 집중해야 할 세균의 지정과 이들에 대한 명명, ESKAPE란 명칭을 통해서 감염 관리에 더욱 신경 쓰고 투자하면서,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독려하고, 나아가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용어였고, 세균의 종류였던 셈이다. 이후 이 세균들은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임상 의사, 감염 관리 관계자, 보건 정책 담당자, 항생제 개발 제약회사 등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 감염 질환과 관련하여 이 세균들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세균 감염의 문제를 다소 단순화한 문제점이 없지 않고, 특정 세균이 왜 이 목록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녁이 정해지면서 각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지침도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이후 ESKAPE는 진짜 용어가 되었고, 논문은 물론 연구과제 공고에서마저 널리 쓰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바로 '오늘의 세균'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오늘의 세균', ESKAPE에 대해 하나씩 살펴본다.
ESKAPE라는 세균 종들은 얼마나 많이 분리되는 세균일까? 국가별로 지역별로 병원별로 모두 다를 것이고, 어떤 데서 분리된 걸 보는지에 따라서 결과는 다를 것이다. 병원에 내원하거나 입원한 이들에게서 많이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세균이라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세균은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세균이다. 의사든 환자든 연구자든 다를 바 없다. 그래도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분리되는 세균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더 많이 분리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게 진짜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이라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는 일단 접어두고,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도록 하자(역시 내 앞에 가까이 있는 세균일수록 더 중요하니까).
과거 우리나라 전국 주요 병원의 미생물검사실의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모아 분석하여 발표하던 KONSAR(Korean Surveillance of Antimicrobial Resistance) 네트워크가 있었다. 병원의 미생물검사실과 미생물검사를 대행해주는 회사의 데이터를 단순하게 합했기 때문에 병원마다 데이터 수준 등이 일관되지 않는 등 한계점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추이는 알 수 있었다. 그 데이터가 마지막으로 발표된 것은 2014년으로 2011년의 결과였다. 이 데이터를 보면 2011년 병원에서 가장 많이 분리된 세균은 대장균이었다(22.7%). 두 번째는 황색포도상구균(16.6%), 세 번째는 CoNS(11.9%), 네 번째는 폐렴간균(10.0%), 다섯 번째는 녹농균(9.1%)이었다. 장구균은 E. faecalis와 E. faecium을 나눠서 계산해서 그렇지(각각 여섯 번째, 여덟 번째), 묶어서 계산했으면 13.7퍼센트로 세 번째로 많이 분리되는 세균이었다. 아시네토박터는 일곱 번째였고, 엔테로박터는 아홉 번째였다. 이처럼 ESKAPE의 세균이 고스란히 순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흔하게 나오는 세균들, ESKAPE 최근에는 Kor-GLASS라는 시스템이 있다. 전 세계 항생제 내성 현황을 모니터링하여 신속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해 국제적으로 표준화한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가 GLASS(Global Antimicrobial Surveillance System)인데, 우리나라도 참여하여 Kor-GLASS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세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관심이 있는, 병원에서 분리되는 세균 종의 순위와 비율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 시스템에서 수집하는 세균이 모두 12종인데, 여기에 엔테로박터를 제외한 나머지 세균 종은 모두 들어간다는 것만큼은 의미를 둘 만하다.
한 기관만 살펴보면 어떨까? 삼성서울병원의 2023년 데이터를 보면, 역시 가장 많이 분리된 세균은 대장균이다. 전체로 보면 15퍼센트가량, 혈류 감염의 경우로 보면 19퍼센트 정도가 대장균이다. 그다음으로는(전체적으로 봤을 때), 황색포도상구균, 장구균, 폐렴간균, 녹농균 등의 순이다(이것들은 순서는 좀 다를지라도 혈류 감염에서도 가장 많이 분리되는 세균들이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열 번째 정도로 많이 분리되는 세균 종이지만, 혈류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 종의 순위로는 일곱, 여덟 번째이고, 엔테로박터도 혈류 감염의 경우 꽤 빈도가 높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의 ESKAPE는 병원에서 아주 흔하게 나오는 세균들을 모아 놓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세균의 중요도는 어떨까?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보건 관련 기관이라고 하면 세계보건기구(WHO)일 거다. WHO에서는 2017년 국제기구, 보건당국, 제약회사, 의사, 연구자 들이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병원균 리스트의 순위를 매겨서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2024년 다시 이 리스트를 갱신해서 발표했다. 치명률, 발생률, 의료 부담, 내성의 경향, 전파력, 병원과 지역사회 사이 전파 차단 가능성, 치료 가능성, 항생제 개발 정도를 기준으로 중요한 세균을 선정했다.
2024년의 리스트는 2017년의 리스트와 비교해서 전체적인 세균의 종류에서는 변화가 크지 않지만, 순위는 조금 바뀌었다. 그 사이 치료제, 즉 항생제의 개발 정도라든가 전 세계적인 감염 발생률 등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2017년 1위였던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3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카바페넴 내성 폐렴간균은 5위에서 1위로, 즉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세균으로 등극했다. ESKAPE 세균 중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 즉 VRE가 9위,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이 10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즉 MRSA가 14위로 순위가 매겨졌다. 눈에 띄는 것은 왜 ESKAPE에 들었는지 눈총을 받기도 했던 엔테로박터가 2017년 9위, 2024년에는 12위라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세균이라는 얘기다.
바로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오늘의 세균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세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혔는지 대신, 바로 지금 우리 앞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세균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항생제 발견 이후 한때는 감염질환에 대해 정복을 선언할 만큼 세균 감염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졌었다. 실제로 항생제로 수많은 목숨을 살려냈다. 우리의 현재는 적지 않은 부분 항생제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우리가 기대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게 아주 길게 잡아도 고작 수백만 년 정도인 데 반해 세균은 수십억 년을 지구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세균 감염 정복은 일종의 만용이었을지도 모른다. 항생제로 인해 인간을 감염시키고 목숨을 위협하는 세균의 종류가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오늘의 세균'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세균을 설명하는 종합판이 아니라 앞으로의 이해와 논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장구균(Enterococcus faeci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baumannii)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엔테로박터(Enterobacter sp.)
라이스 교수는 병원 내에서 감염을 많이 일으키고, 항생제 내성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 많은 사망자를 내는 세균을 이렇게 지목하면서 이에 정부를 비롯한 각계의 관심과 대책, 지원을 촉구했다. 이렇게 목록을 정한 것은 라이스 교수의 단독 결정은 아니었다. 미국감염학회 소속 여러 연구자와 의사 들이 대책팀을 만들고 오랫동안 논의한 결과였다.
라이스 교수는 논문에서 "ESKAPE 세균은 병원 감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병리 기전, 전염 양상 및 항생제 내성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감염을 일으키는 빈도와 감염을 일으켰을 때의 심각성, 그리고 항생제 내성과 관련한 치료의 어려움 등을 근거로 목록을 정했다는 뜻이다.
사실 어떤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환자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때 감염시킨 그 세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몇 종의 세균만을 추리면서 ESKAPE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게 된 데에는 나름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그에 따르는 정부와 연구 기금 등의 지원 문제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보다 극적인 데 쏠리기 마련인데, 에이즈나 에볼라와 같은 질병에 갖는 공포심에 비하면 일반적인 세균 감염과 이들 세균의 항생제 내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기관의 지원도 적었고, 큰 제약회사에서도 항생제 개발을 줄이거나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용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해당 세균의 위험성에 대한 넓은 홍보과 관심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오늘의 세균, ESKAPE 즉, 치료 대상으로 집중해야 할 세균의 지정과 이들에 대한 명명, ESKAPE란 명칭을 통해서 감염 관리에 더욱 신경 쓰고 투자하면서,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독려하고, 나아가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용어였고, 세균의 종류였던 셈이다. 이후 이 세균들은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임상 의사, 감염 관리 관계자, 보건 정책 담당자, 항생제 개발 제약회사 등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 감염 질환과 관련하여 이 세균들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세균 감염의 문제를 다소 단순화한 문제점이 없지 않고, 특정 세균이 왜 이 목록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녁이 정해지면서 각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지침도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이후 ESKAPE는 진짜 용어가 되었고, 논문은 물론 연구과제 공고에서마저 널리 쓰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바로 '오늘의 세균'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오늘의 세균', ESKAPE에 대해 하나씩 살펴본다.
ESKAPE라는 세균 종들은 얼마나 많이 분리되는 세균일까? 국가별로 지역별로 병원별로 모두 다를 것이고, 어떤 데서 분리된 걸 보는지에 따라서 결과는 다를 것이다. 병원에 내원하거나 입원한 이들에게서 많이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세균이라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세균은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세균이다. 의사든 환자든 연구자든 다를 바 없다. 그래도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분리되는 세균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더 많이 분리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게 진짜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이라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는 일단 접어두고,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도록 하자(역시 내 앞에 가까이 있는 세균일수록 더 중요하니까).
과거 우리나라 전국 주요 병원의 미생물검사실의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모아 분석하여 발표하던 KONSAR(Korean Surveillance of Antimicrobial Resistance) 네트워크가 있었다. 병원의 미생물검사실과 미생물검사를 대행해주는 회사의 데이터를 단순하게 합했기 때문에 병원마다 데이터 수준 등이 일관되지 않는 등 한계점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추이는 알 수 있었다. 그 데이터가 마지막으로 발표된 것은 2014년으로 2011년의 결과였다. 이 데이터를 보면 2011년 병원에서 가장 많이 분리된 세균은 대장균이었다(22.7%). 두 번째는 황색포도상구균(16.6%), 세 번째는 CoNS(11.9%), 네 번째는 폐렴간균(10.0%), 다섯 번째는 녹농균(9.1%)이었다. 장구균은 E. faecalis와 E. faecium을 나눠서 계산해서 그렇지(각각 여섯 번째, 여덟 번째), 묶어서 계산했으면 13.7퍼센트로 세 번째로 많이 분리되는 세균이었다. 아시네토박터는 일곱 번째였고, 엔테로박터는 아홉 번째였다. 이처럼 ESKAPE의 세균이 고스란히 순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흔하게 나오는 세균들, ESKAPE 최근에는 Kor-GLASS라는 시스템이 있다. 전 세계 항생제 내성 현황을 모니터링하여 신속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해 국제적으로 표준화한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가 GLASS(Global Antimicrobial Surveillance System)인데, 우리나라도 참여하여 Kor-GLASS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세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관심이 있는, 병원에서 분리되는 세균 종의 순위와 비율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 시스템에서 수집하는 세균이 모두 12종인데, 여기에 엔테로박터를 제외한 나머지 세균 종은 모두 들어간다는 것만큼은 의미를 둘 만하다.
한 기관만 살펴보면 어떨까? 삼성서울병원의 2023년 데이터를 보면, 역시 가장 많이 분리된 세균은 대장균이다. 전체로 보면 15퍼센트가량, 혈류 감염의 경우로 보면 19퍼센트 정도가 대장균이다. 그다음으로는(전체적으로 봤을 때), 황색포도상구균, 장구균, 폐렴간균, 녹농균 등의 순이다(이것들은 순서는 좀 다를지라도 혈류 감염에서도 가장 많이 분리되는 세균들이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열 번째 정도로 많이 분리되는 세균 종이지만, 혈류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 종의 순위로는 일곱, 여덟 번째이고, 엔테로박터도 혈류 감염의 경우 꽤 빈도가 높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의 ESKAPE는 병원에서 아주 흔하게 나오는 세균들을 모아 놓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세균의 중요도는 어떨까?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보건 관련 기관이라고 하면 세계보건기구(WHO)일 거다. WHO에서는 2017년 국제기구, 보건당국, 제약회사, 의사, 연구자 들이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병원균 리스트의 순위를 매겨서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2024년 다시 이 리스트를 갱신해서 발표했다. 치명률, 발생률, 의료 부담, 내성의 경향, 전파력, 병원과 지역사회 사이 전파 차단 가능성, 치료 가능성, 항생제 개발 정도를 기준으로 중요한 세균을 선정했다.
2024년의 리스트는 2017년의 리스트와 비교해서 전체적인 세균의 종류에서는 변화가 크지 않지만, 순위는 조금 바뀌었다. 그 사이 치료제, 즉 항생제의 개발 정도라든가 전 세계적인 감염 발생률 등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2017년 1위였던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3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카바페넴 내성 폐렴간균은 5위에서 1위로, 즉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세균으로 등극했다. ESKAPE 세균 중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 즉 VRE가 9위, 카바페넴 내성 녹농균이 10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즉 MRSA가 14위로 순위가 매겨졌다. 눈에 띄는 것은 왜 ESKAPE에 들었는지 눈총을 받기도 했던 엔테로박터가 2017년 9위, 2024년에는 12위라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세균이라는 얘기다.
바로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오늘의 세균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세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혔는지 대신, 바로 지금 우리 앞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세균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항생제 발견 이후 한때는 감염질환에 대해 정복을 선언할 만큼 세균 감염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졌었다. 실제로 항생제로 수많은 목숨을 살려냈다. 우리의 현재는 적지 않은 부분 항생제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우리가 기대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게 아주 길게 잡아도 고작 수백만 년 정도인 데 반해 세균은 수십억 년을 지구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세균 감염 정복은 일종의 만용이었을지도 모른다. 항생제로 인해 인간을 감염시키고 목숨을 위협하는 세균의 종류가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오늘의 세균'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세균을 설명하는 종합판이 아니라 앞으로의 이해와 논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목차
목차
들어가는 글: 오늘의 세균
1장 병독성은 낮지만 그래도 위험한 세균
_장구균(Enterococcus faecium)
병원을 위험한 곳으로 만들다
전 세계 사람 감염 VRE는 한 가족
〈나의 연구〉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2장 가장 많은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
_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항생제를 탄생시키고, 마이클 잭슨을 감염시킨 세균
병원 밖으로 나온 세균
〈나의 연구〉 나이가 들수록 MRSA를 보유하고 있는 비율이 증가한다
3장 끈적끈적하고, 끈질긴
_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끈적끈적한 세균
항생제 내성의 새로운 국면을 열다
평범함과 탁월함 사이, 대장균(Escherichia coli)
〈나의 연구〉 항생제가 없어도 항생제 내성 세균은 잘 살아간다
4장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가장 필요한 세균
_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baumannii)
일본에서 날아온 뉴스와 이라크 전쟁으로 알려진 세균
무섭지 않지만 무서운……
〈나의 연구〉 항생제 의존성 세균
5장 너무 흔해 관심이 시들하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한 세균
_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안구 적출에, 사망까지 이르게 하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나의 연구〉 지속성 세균(Persister)
6장 의아하지만 인정은 해야 하는 세균
_엔테로박터(Enterobacter sp.)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발견된 세균
신생아의 건강을 노린다
〈나의 연구〉 우리나라의 엔테로박터
나가는 글
감사의 말
미주
1장 병독성은 낮지만 그래도 위험한 세균
_장구균(Enterococcus faecium)
병원을 위험한 곳으로 만들다
전 세계 사람 감염 VRE는 한 가족
〈나의 연구〉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2장 가장 많은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
_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항생제를 탄생시키고, 마이클 잭슨을 감염시킨 세균
병원 밖으로 나온 세균
〈나의 연구〉 나이가 들수록 MRSA를 보유하고 있는 비율이 증가한다
3장 끈적끈적하고, 끈질긴
_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끈적끈적한 세균
항생제 내성의 새로운 국면을 열다
평범함과 탁월함 사이, 대장균(Escherichia coli)
〈나의 연구〉 항생제가 없어도 항생제 내성 세균은 잘 살아간다
4장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가장 필요한 세균
_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baumannii)
일본에서 날아온 뉴스와 이라크 전쟁으로 알려진 세균
무섭지 않지만 무서운……
〈나의 연구〉 항생제 의존성 세균
5장 너무 흔해 관심이 시들하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한 세균
_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안구 적출에, 사망까지 이르게 하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나의 연구〉 지속성 세균(Persister)
6장 의아하지만 인정은 해야 하는 세균
_엔테로박터(Enterobacter sp.)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발견된 세균
신생아의 건강을 노린다
〈나의 연구〉 우리나라의 엔테로박터
나가는 글
감사의 말
미주
저자
저자
고관수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APFID) 연구실장을 거쳐 2007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읽은 책에 관한 감상을 글로 쓰는 것도 좋아한다. 성균관대 최우수 교수(SKKU-Fellow)로 선정된 바 있으며, 현재까지 약 300편의 미생물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는 물론 전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접근의 대중 교양서를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세균과 사람』,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 등이 있다.
다양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읽은 책에 관한 감상을 글로 쓰는 것도 좋아한다. 성균관대 최우수 교수(SKKU-Fellow)로 선정된 바 있으며, 현재까지 약 300편의 미생물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는 물론 전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접근의 대중 교양서를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세균과 사람』,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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