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양손
윤중식 화가의 6·25전쟁 피란길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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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잔혹함과 피란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는 28장의 스케치
『할아버지의 양손』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은 전쟁과 피란길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네 살배기 아이가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끔찍함과 피란민들이 겪었던 아픔들을 당시 아버지가 그렸던 28장의 스케치를 보여주며 얘기합니다.
이 글을 쓴 윤대경 선생님의 선친은 ‘석양의 화가’로 불린 윤중식 화백입니다.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피란길에 올라 본인과 다른 피란민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을 28장의 생생한 스케치로 남겼습니다.
곳곳에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추운 데다가 먹을 것조차 없어 죽 한 그릇을 놓고 애걸하는 사람들, 잠자리가 없어 좁은 헛간에서 칼잠을 자는 사람들, 종잡을 수 없이 떨어지는 포탄에 허둥대다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 심지어는 피란 인파 속에서 소달구지에 치여 다치고 죽는 아이······. 이 28장의 스케치는 마치 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가슴을 울리는지요. 마치 지옥의 방을 둘러보는 것 같습니다. 휴전 70주년을 맞아 펴내는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피란의 고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양손』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은 전쟁과 피란길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네 살배기 아이가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끔찍함과 피란민들이 겪었던 아픔들을 당시 아버지가 그렸던 28장의 스케치를 보여주며 얘기합니다.
이 글을 쓴 윤대경 선생님의 선친은 ‘석양의 화가’로 불린 윤중식 화백입니다.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피란길에 올라 본인과 다른 피란민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고통을 28장의 생생한 스케치로 남겼습니다.
곳곳에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추운 데다가 먹을 것조차 없어 죽 한 그릇을 놓고 애걸하는 사람들, 잠자리가 없어 좁은 헛간에서 칼잠을 자는 사람들, 종잡을 수 없이 떨어지는 포탄에 허둥대다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 심지어는 피란 인파 속에서 소달구지에 치여 다치고 죽는 아이······. 이 28장의 스케치는 마치 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가슴을 울리는지요. 마치 지옥의 방을 둘러보는 것 같습니다. 휴전 70주년을 맞아 펴내는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피란의 고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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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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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의 작은 손
『할아버지의 양손』은 이 책의 저자인 윤대경 선생님이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유망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윤 선생님 가족은 평양, 개성, 서울, 부산으로 내려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공습을 피해 도망치다 황망 중에 어머니, 누나와 헤어져야 했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야 했던 젖먹이 동생, 부산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던 기억 등. 윤 선생님은 네 살의 나이로 온갖 비극을 다 겪은 것입니다. 그땐 아직 어려서 후일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모진 세월을 견딘 이 '네 살배기' 코흘리개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소망은 단 하나,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제1장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에서는 윤대경 선생님의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이 피란을 떠나면서 다른 피란민들과 함께 겪어야 했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묘사합니다. 어린 나이였던 윤 선생님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백 킬로미터의 길을 걸어 피란을 갔습니다. 특히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갔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고 말합니다. 또 잠잘 곳을 찾지 못해 헛간이나 외양간에서 수십 명이 모로 누워 칼잠을 잤고, 한겨울 몰아치는 한파 속에서도 모닥불조차 쬐기 어려웠던 안타까운 광경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다가옵니다.
제2장 기도! 죽음! 이별!
한겨울에 피란을 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의 길입니다. 옷, 신, 모자, 내복 어느 것 하나 변변한 게 없습니다. 세끼 먹거리도 해결 못 하는 판에 의복 타령은 사치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급박하게 피란을 떠나는 바람에 옥양목으로 지은 홑겹의 옷 몇 벌과 주먹밥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피란 도중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주저앉아야 했고, 북풍의 겨울바람에 체온을 유지하지 못해 길가에 쓰러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폭격기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폭격기가 한바탕 훑고 지나가면, 곡소리가 천지에 진동합니다. 폭격기는 곧 생사를 가르는 악마였던 셈이지요. 하지만 가족의 죽음에도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피란민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시체를 인근 공터의 나무나 바위 옆에 묻고는, 이곳을 기억하며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제3장 이산! 포로! 만남!
전쟁은 윤대경 선생님의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윤 선생님의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이 가족을 이끌고 해주에서 개성으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폭격기가 나타나 피란민 대열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비백산한 나머지 어머니와 누나는 길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고, 그것이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선생님과 아버지는 남한으로 내려가다 북한군에게 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다가 간신히 풀려났지만, 젖먹이였던 막냇동생은 끝내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부산까지 간신히 내려왔으나, 부산은 이미 수십만 명이 들썩거리는 피란민들의 집합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가족 상봉도 이뤄졌다고 해요.
제4장 자유! 생존! 죽 한 그릇!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들의 삶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짐꾼 노릇을 하거나, 구두를 닦으며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당시 피란민들은 산등성이 빈터에 판자를 얼기설기 올려 움막을 만들었습니다. 이 움막들과 판자촌은 피란민촌이라고 불렸습니다. 윤중식 화백 역시 흙벽돌로 올린 움막 한 채를 간신히 얻었고, 유일하게 남은 윤대경 선생님은 종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신문을 팔거나 잘 차려입은 사람에게 동냥을 하며 초콜릿이나 사탕을 얻어먹었습니다. 윤 선생님 역시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한 일도 많다고 합니다.
휴전 직후, 서울로 다시 올라온 윤중식 화백은 서울 성북동의 '소나무가 있는 집'에 정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 나섰지만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윤 화백은 혈육의 이런 그리움을 모든 그림에 담았습니다. 늘 고향인 평양의 정미소에 날아들던 비둘기들과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대동강의 노을을 그렸습니다.
윤대경 선생님 역시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피란길에 부인, 큰딸과 생이별을 하고 가슴에 품었던 막내딸을 먹이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웠을지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아파합니다.
6·25 전쟁은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에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고,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의 스케치는 이 전쟁을 잊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할아버지의 양손'은 가장 슬픈 우리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며 증언입니다. 네 살배기였던 윤대경 선생님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초등학생 손자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한 손은 전쟁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평화이고, 또 한 손은 암울한 세상을 떨치고 미래를 활짝 펴가는 희망입니다.
『할아버지의 양손』은 이 책의 저자인 윤대경 선생님이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유망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윤 선생님 가족은 평양, 개성, 서울, 부산으로 내려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공습을 피해 도망치다 황망 중에 어머니, 누나와 헤어져야 했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야 했던 젖먹이 동생, 부산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던 기억 등. 윤 선생님은 네 살의 나이로 온갖 비극을 다 겪은 것입니다. 그땐 아직 어려서 후일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모진 세월을 견딘 이 '네 살배기' 코흘리개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소망은 단 하나,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제1장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에서는 윤대경 선생님의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이 피란을 떠나면서 다른 피란민들과 함께 겪어야 했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묘사합니다. 어린 나이였던 윤 선생님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백 킬로미터의 길을 걸어 피란을 갔습니다. 특히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갔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고 말합니다. 또 잠잘 곳을 찾지 못해 헛간이나 외양간에서 수십 명이 모로 누워 칼잠을 잤고, 한겨울 몰아치는 한파 속에서도 모닥불조차 쬐기 어려웠던 안타까운 광경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다가옵니다.
제2장 기도! 죽음! 이별!
한겨울에 피란을 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의 길입니다. 옷, 신, 모자, 내복 어느 것 하나 변변한 게 없습니다. 세끼 먹거리도 해결 못 하는 판에 의복 타령은 사치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급박하게 피란을 떠나는 바람에 옥양목으로 지은 홑겹의 옷 몇 벌과 주먹밥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피란 도중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주저앉아야 했고, 북풍의 겨울바람에 체온을 유지하지 못해 길가에 쓰러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폭격기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폭격기가 한바탕 훑고 지나가면, 곡소리가 천지에 진동합니다. 폭격기는 곧 생사를 가르는 악마였던 셈이지요. 하지만 가족의 죽음에도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피란민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시체를 인근 공터의 나무나 바위 옆에 묻고는, 이곳을 기억하며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제3장 이산! 포로! 만남!
전쟁은 윤대경 선생님의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윤 선생님의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이 가족을 이끌고 해주에서 개성으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폭격기가 나타나 피란민 대열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비백산한 나머지 어머니와 누나는 길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고, 그것이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선생님과 아버지는 남한으로 내려가다 북한군에게 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다가 간신히 풀려났지만, 젖먹이였던 막냇동생은 끝내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부산까지 간신히 내려왔으나, 부산은 이미 수십만 명이 들썩거리는 피란민들의 집합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가족 상봉도 이뤄졌다고 해요.
제4장 자유! 생존! 죽 한 그릇!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들의 삶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짐꾼 노릇을 하거나, 구두를 닦으며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당시 피란민들은 산등성이 빈터에 판자를 얼기설기 올려 움막을 만들었습니다. 이 움막들과 판자촌은 피란민촌이라고 불렸습니다. 윤중식 화백 역시 흙벽돌로 올린 움막 한 채를 간신히 얻었고, 유일하게 남은 윤대경 선생님은 종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신문을 팔거나 잘 차려입은 사람에게 동냥을 하며 초콜릿이나 사탕을 얻어먹었습니다. 윤 선생님 역시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한 일도 많다고 합니다.
휴전 직후, 서울로 다시 올라온 윤중식 화백은 서울 성북동의 '소나무가 있는 집'에 정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 나섰지만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윤 화백은 혈육의 이런 그리움을 모든 그림에 담았습니다. 늘 고향인 평양의 정미소에 날아들던 비둘기들과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대동강의 노을을 그렸습니다.
윤대경 선생님 역시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피란길에 부인, 큰딸과 생이별을 하고 가슴에 품었던 막내딸을 먹이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웠을지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아파합니다.
6·25 전쟁은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에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고, 아버지인 윤중식 화백의 스케치는 이 전쟁을 잊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할아버지의 양손'은 가장 슬픈 우리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며 증언입니다. 네 살배기였던 윤대경 선생님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초등학생 손자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한 손은 전쟁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평화이고, 또 한 손은 암울한 세상을 떨치고 미래를 활짝 펴가는 희망입니다.
목차
목차
6.25 전쟁 피란길 스케치를 열며 / 4
1장 네 살배기의 작은 손 / 12
2장 가족! 가족! 가족! / 30
3장 기도! 죽음! 이별! / 48
4장 이산! 포로! 만남! / 70
5장 자유! 생존! 죽 한 그릇! / 90
윤중식 화백의 일생과 작품 / 110
1장 네 살배기의 작은 손 / 12
2장 가족! 가족! 가족! / 30
3장 기도! 죽음! 이별! / 48
4장 이산! 포로! 만남! / 70
5장 자유! 생존! 죽 한 그릇! / 90
윤중식 화백의 일생과 작품 / 110
저자
저자
윤대경
1947년 평양에서 출생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가 어머니, 누나와는 생이별을 하고 누이동생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아버지 윤대경 화백과 둘이 남았고, 부산 피란생활을 거쳐 서울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28장의 피란 스케치는 일생 동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에 대한 공포로 남아 있습니다. 이 땅에 오직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휴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아버지의 유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글을 썼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어린이들은 비극이 없는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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