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10살 때 처음 참가한 국제 음악 캠프에서 중등부 선배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이후, 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란 이름이 따라다니는 아들 오주영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내기까지 아버지 오종재가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건 30여 년간의 집념 어린 교육 스토리를 담아놓은 책이다. 음악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진로와 관련해서 아주 유용한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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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에겐 아버지 오종재가 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10살 때 처음 참가한 국제 음악 캠프에서 중등부 선배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이후, 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란 이름이 따라다니는 아들 오주영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내기까지 아버지 오종재가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건 30여 년간의 집념 어린 교육 스토리를 담아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늦게 얻은 귀한 외아들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취미 삼아 행복하게 즐기기만을 바랐던 아버지가 바이올린 교수들이 입을 모아 "주영이는 세계적인 연주가로 키워야 한다"고 조기 유학을 강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아이의 장래냐 자신의 삶이냐!"의 갈림길에서 오십 가까운 중년에 과감하게 잘되던 자신의 사업을 모두 접고 미국 유학 이민을 떠나 22년간 낯선 땅에서 오직 아들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 과정들과 아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의 음악적 성장 과정이 과감 없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아들의 연주회를 기획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며 좌충우돌하는 아들바보 아빠의 인생을 건 지독한 음악 교육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통해서 한 아버지의 뜨거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이 험난하면서도 높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더 높은 예술의 경지로 한 계단씩 올라간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또 다른 감동을 받을 것이다. 특히, 이 책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진로와 관련해서 아주 유용한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모차르트에게 아버지 요한 모차르트가 있다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에겐 아버지 오종재가 있다!
음악 관련 자료 중에 KBS 2TV에서 신년 특집으로 방송한 <세계가 놀란 한국 음악 영재들>이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국의 음악 전공자가 무려 17만 명이라고 소개하면서 세계 클래식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거나 입상하는 한국인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뛰어난 어린 영재를 일찍 발굴하여 철저한 교육과 혹독한 연습을 시키는 한국식 음악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게 만일 그의 아버지 요한 모차르트가 없었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반짝이는 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도 그렇다. 그에게 아버지 오종재가 없었다면 그도 결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아버지 오종재가 외아들 오주영의 음악 교육을 위해 한국에서의 자기 삶을 모두 포기하고 낯선 미국 땅으로 이민 가서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결단코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주영은 누구인가?
KBS FM, KBS 1TV <클래식 오디세이> 등에 소개된 바 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태어난 후에도 작은 바이올린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면서 아버지가 레슨하는 아이들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태어난 지 만 4년 3개월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이미 학원 아이들이 레슨 때 연습했던 곡들을 머릿속에 완벽하게 입력하고 있어서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91년 9살(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 사는 고모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바이올린 교수들을 만나서 바이올린 유학을 처음으로 권유받는다. 1992년 10살(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참가한 국제 음악 캠프에서 우승하면서 전국적으로 오주영이란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93년 11살(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 산호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후 유명 바이올린 교수들이 바이올린 유학을 강하게 권유해서, 1994년 12살 초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1996년, 14살 때 뉴욕의 국제 콩쿠르 'YCA'에서 최연소자로 우승하면서 이때부터 프로 연주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 러시아,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 호주, 남미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450회 이상 연주회를 열어왔다.
그동안 LA필하모닉, 프라하방송교향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 라이프치히컴머필 등 세계 유수의 50여 개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연주회 장소도 뉴욕의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워싱턴의 존F.케네디센터, 로스앤젤레스의 월트디즈니콘서트홀 등 미국의 대표적 연주회장은 물론이고, 유명 연주가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런던 위그모어홀을 포함하여, 일본의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기오이홀, 프라하의 드보르자크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그랜드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회장에서 공연해왔다. 또한 국내에서는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 모두 15개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예술의전당, KBS홀, 세종문화관 등 서울의 대형 홀에서 무려 열두 차례나 공연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오주영의 경력의 대부분이 불과 20대 중반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창 공부할 나이의 학생이라는 입장을 감안해보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경력이다. 하지만 나이 어린 11살에 미국 산호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데뷔했고, 14살부터 프로 연주자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비록 학생의 신분이라 해도 이만한 경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젊은 연주자들이 이 정도로 폭넓은 경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2010년 뉴욕필하모닉 종신단원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은 동시에 솔리스트로서의 꿈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뉴욕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을 키운 아버지 오종재의 집념 교육 스토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10살 때 처음 참가한 국제 음악 캠프에서 중등부 선배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이후, 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란 이름이 따라다니는 아들 오주영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내기까지 아버지 오종재가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건 30여 년간의 집념 어린 교육 스토리를 담아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늦게 얻은 귀한 외아들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취미 삼아 행복하게 즐기기만을 바랐던 아버지가 바이올린 교수들이 입을 모아 "주영이는 세계적인 연주가로 키워야 한다"고 조기 유학을 강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아이의 장래냐 자신의 삶이냐!"의 갈림길에서 오십 가까운 중년에 과감하게 잘되던 자신의 사업을 모두 접고 미국 유학 이민을 떠나 22년간 낯선 땅에서 오직 아들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 과정들과 아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의 음악적 성장 과정이 과감 없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아들의 연주회를 기획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며 좌충우돌하는 아들바보 아빠의 인생을 건 지독한 음악 교육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통해서 한 아버지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뜨거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이 험난하면서도 높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더 높은 예술의 경지로 한 계단씩 올라간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감동을 받을 것이다. 특히, 이 책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진로와 관련해서 아주 유용한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좌충우돌, 안타깝고 그리고 아찔한 순간들
필자는 아들을 교육시키면서 좌충우돌하며 안타깝고 아찔한 순간들을 수없이 경험한다.
에피소드1. 아들 대신 매일매일 숙제해주기.
필자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학교 공부도 잘해보고 싶다는 아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네가 여기 바이올린 하러 왔지, 공부하러 왔니? 공부는 보통 정도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너는 오직 바이올린만 연습해라!"라고 다그치며 아내와 함께 아이의 숙제를 매일 대신해준다. 이렇게 해도 중학교 때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결국 고등학교 때는 참고 있던 아들이 "아빠, 바이올린이고 학교 공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폭발하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일주일에 2시간 개인지도를 받게 함으로써 학교 공부 문제를 해결한다.
에피소드2. 아들의 여자 친구는 무조건 막아라!
아들의 바이올린 연주 후에 여학생들이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필자는 일찍 여자를 알게 되면 연습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아이들한테서 온 편지를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결국 아들도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한번은 일본 여자아이에게 끊임없이 계속해서 편지가 오자 참다못한 필자는 직접 그 아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때마침 전화를 받은 그 아이의 엄마에게 다시는 자기 아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에피소드3. 매니지먼트 대표와 도로시 딜레이 교수의 갑작스런 죽음.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 후 뉴욕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A아티스트매니지먼트 대표와 학생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개런티로 3년간 계약을 체결했다. 1~2년 후에는 더 많은 연주회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10개월쯤 지났을 때 매니지먼트 대표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필자의 기대는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국제 콩쿠르에 나가고 싶어하는 제자(오주영)를 "너는 내가 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리던 클래식 음악 스타 제조기 도로시 딜레이 지도 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딜레이 교수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세상에 내보내려고 한 마지막 제자일 수 있었던 아들 주영이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딜레이 교수는 주영이에겐 최고로 기대할 수 있는 버팀목이고,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레이 교수 죽음 이후 아들 주영이는 1년간 학교를 휴학한다.
에피소드4. 공항에서 출국 정지를 당하다.
한국에서 공연을 잘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 출국장에서 아들이 출국 정지를 당한다. 국내 체류 기간 초과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불과 열흘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병역 미필자의 영주권자 국내 체류 기간 계산법이 너무나 복잡해서 방학 기간이라 날짜 계산에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공부 중이었으므로 출국이 안 되면 무척 곤란했다. 도리가 없어서 아들만 한국에 두고 돌아와 서류를 준비해서 한국으로 보내 무사히 다시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에피소드5. 연주회 시간을 지켜라!
도쿄에서 오사카 연주를 위해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기 위해 개찰구로 가는데 그날따라 약간 늦어져서 출발 시간이 촉박했다. 뛰다시피 해서 개찰구까지 와서 열차표를 집어넣었는데 열차표가 빠져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없고 아무리 살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역무원이 있는 곳에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니, 담당자가 와서 기계를 열고 열차표를 빼내주었다. 시계를 보니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100미터 달리기하듯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타자마자 바로 열차가 움직여서 그날 저녁 연주회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에피소드6. 악기와 관련된 이야기들.
줄리아드학교에서 빌려준 뷔욤과 관련해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타코마심포니와의 협연 후 부주의하게 고가의 바이올린 뷔욤을 집 앞 도로에 두고 집으로 오는 바람에 그길로 다시 한밤중에 도로를 레이싱해서 돌아가 무사히 뷔욤을 찾았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아들이 대학원을 휴학하고 독일 쾰른 음대에서 유학할 때 학교에서 빌려준 뷔욤 악기를 아무 말도 없이 반납하지 않고 휴학하는 바람에 학교로부터 수배조치를 내린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던 일이다. 그리고 애틀랜타 공연 전 리허설 때 어깨받침이 부러졌는데 어깨받침 없이는 연주를 못 하는 아들 때문에 공연이 취소될까 봐 맘을 졸였는데 운 좋게도 운전해준 의사가 같은 어깨받침을 가지고 다녀서 무사히 연주회를 마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오종재 식 연주회 기획법
뉴저지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멀리 떨어진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꼭 연주회를 열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하나 낸다. 그 지역에서 연주회를 개최하는데 필요한 심부름해줄 수 있는 영어권 한국인을 소개받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를 통해 필요한 일만 해놓으면 나머지는 홍보만 하면 해결될 것 같았다. 때마침 도와줄 한인 청년을 찾게 되어 샌프란시스코부터 일을 시작했다. 우선 공연장에 가서 공연 날짜에 맞춰 신청하도록 했고, 그 뒤부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메일로 공연장 측과 주고받으면 되었다. 사실 미국 공연장 신청은 엄청나게 힘들고 까다로운 점이 많지만 이 모든 것을 다해서 연주회 날짜가 결정되었다. 홍보를 위해서 한인 신문사에 연락해서 후원을 얻어내어 전면광고를 열 차례 내도록 요구했다. 이 정도면 한인 사회에 잘 알려질 것이었다. 그리고 포스터를 부착하고, 전단지는 공연장에 미리 갖다 두어 미국분들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공연 준비를 완벽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필자는 끊임없이 아들 오주영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면서 관계를 유지하여 5년이 걸리든 6년이 걸리든 참고 기다려서 연주회를 하나씩 만들어내고 있다.
음악도 비즈니스다
청중이 오지 않는 연주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연주자는 맥 빠지고, 그나마 참석한 팬들마저 힘이 빠진다. 하지만 유명세가 없으면 결코 청중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뜨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필자는 꼭 뜨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실력'은 기본이고, 거기에 둘째는 '재력', 셋째는 '강력한 배경'을 갖춰야 한다고 말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위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음악계의 현실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국제 콩쿠르를 주름잡고 있지만 거기서 우승했다고 세계적인 연주가로 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누가 비즈니스를 더 잘하느냐'에 달렸다.
따라서 기획사는 좋은 연주자를 만나야 하고, 연주자는 좋은 기획사를 만나야 한다고 필자는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를 하고 있다. 기획사들은 연주자들과 함께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생하는 관계이지만, 서로 잘 만나야 한다고 말이다.
목차
목차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감동, 천재 소년 오주영의 탁월한 예술 영감! 005
내가 아는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 008
책머리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뉴욕필하모닉 종신단원이 되기까지 012
1악장 바이올린과 함께 자란 어린 시절
엄마 배 속에서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듣다 023
변칙적인 레슨을 시도하다 026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로 하는 바이올린 교육 030
첫 미국 여행에서 만난 바이올린 교수들 033
생전 처음 참가한 국제 음악 캠프 콩쿠르에서 우승하다 037
예기치 않았던 또 다른 행운의 만남 043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타다 046
생애 첫 독주회를 가지다 050
첫 미국 데뷔를 2,700석 대형 무대에서 하다 053
한국인의 날 산호세심포니오케스트라 오주영 초청 연주회 058
"너는 어디서 왔니?" 062
줄리아드학교 강효 교수와의 운명적 만남 066
줄리아드학교로 조기 유학을 떠나다 070
2악장 청소년기 오주영의 음악적 성장
너는 오직 바이올린만 연습해라 081
열네 살, 최연소로 YCA에서 우승하다 085
꿈에 그리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KBS교향악단과의 첫 협연 097
고향 진주에서 열린 금의환향 콘서트 101
거장 주빈 메타를 만나다 104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대여받다 108
베를린에서의 오주영 독주회 110
"아빠, 바이올린이고 학교 공부고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114
'아시안의 꿈', 일본 초청 연주회 118
인상 깊었던 로스앤젤레스 데뷔 연주회 121
사춘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고비 123
YCA와의 갈등 129
2000년, KBS교향악단과의 협연 및 LA필하모닉과의 협연 133
도로시 딜레이 교수와의 만남 138
3악장 줄리아드학교에서 보낸 시절
오주영, 줄리아드학교 음대생이 되다 147
악조건 속에서 CD를 녹음하다 150
기숙사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 155
연주회는 계속된다 158
부산시향 협연에서 있었던 일 161
프랑스 연주회 때의 에피소드 164
조수미와의 콘서트 167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 169
첫 한국 투어 독주회 172
딜레이 교수의 죽음으로 크게 좌절하다 175
휴학과 함께 연주회에 매진하다 178
복학, 그리고 강효 교수와 9년 만에 이별하다 183
줄리아드학교 콩쿠르에서 예기치 못했던 결과를 얻다 186
콜로라도심포니와의 협연을 통해 본 연주회 기획 방법 189
줄리아드학교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다 192
자카르 브론 교수를 만나다 195
4악장 독일에서의 공부와 연주 활동
주영이는 독일에서, 우리 부부는 덴버에서 203
독일에서도 연주회는 계속되다 208
NFMC 주최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 출전하다 217
드디어, 런던 위그모어홀에 서다 219
서울시향 그리고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다시 추진하다 224
아찔했던 순간들 227
미국에서 만들고 싶었던 두 개의 연주회 232
오주영 후원 협약식과 한국예술비평가협회 글로벌 아티스트 대상 수상 236
부산에서 만난 백재진 교수 240
음악도 비즈니스다 242
끊임없이 대두되는 악기 문제 246
5악장 뉴욕필하모닉과 맺은 인연
대학원에서 만난 운명의 교수, 글랜 딕터로 257
뉴욕필하모닉 오디션에 합격하다 261
1년 6개월의 테스트 기간을 통과해야 정식 단원이 된다 265
쉽지 않은 짝 찾기 271
다시, 카네기홀에 서다! 283
저자
저자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취미로 하던 바이올린이 너무나 좋아서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어, 결국 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하고 잠깐 대학에서 강사로 있다가 고향 진주에서 음악학원을 열었다.
늦게 얻은 귀한 외아들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그 길이 험난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전공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취미 삼아 행복하게 즐기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가족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미국인 바이올린 교수들과 한국의 바이올린 교수들이 아들 주영이를 세계적인 연주가로 키워야 한다며 아들의 조기 유학을 강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필자는 불혹을 훨씬 넘긴 오십 가까운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사업인 음악학원이 자리를 잡고 잘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장래냐 자신의 삶이냐! 그 갈림길에서 필자는 아이와 엄마만 외국으로 보내는 '기러기 아빠'의 삶이 아닌 외아들의 교육을 위해 온 가족이 이민 가는 길을 선택한다. 즉, 한국에서의 자기 삶을 모두 포기하고 외아들 주영이를 위해 낯선 미국 땅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한다.
이 책은 그러한 선택을 한 아버지 오종재가 지난 30여 년간 외아들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본 것들을 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표현해놓은 기록이다. 즉, 아들의 연주회를 기획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며 좌충우돌하는 아들바보 아빠의 인생을 건 지독한 음악 교육이 고스란히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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