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랑 1
손성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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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누군가를 사랑했거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당신에게
손성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 번째 사랑』은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과 함께 남녀의 사랑의 공통된 이미지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유장하고도 농밀하게, 무엇보다 감각적이고 깊이 있게 풀어내었다. 『두 번째 사랑』을 단순히 시대소설이나 애정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소설 속에는 고통의 바다와 같은 현실을 온몸 다 바쳐 관통하며 건너온 인물들에 대한 깨달음이 살 내음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랑』에서 나오는 혼란스럽고 은밀했던 사랑은 우리나라의 사회와 똑 닮은 모습을 그린다. 큰 역사적인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로 버무리는 작가의 절묘한 화술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쓴 만큼 방대한 조사와 철저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전한다.
1980년대 말 학생회 간부였던 박민수는 같은 학번인 오수연을 만나게 되며 사랑이란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깊어만 가는 사랑에 빠져있던 민수는 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수연과 잠시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난 수연은 민수에게 새로운 조직을 권유하는데….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당신에게
손성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 번째 사랑』은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과 함께 남녀의 사랑의 공통된 이미지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유장하고도 농밀하게, 무엇보다 감각적이고 깊이 있게 풀어내었다. 『두 번째 사랑』을 단순히 시대소설이나 애정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소설 속에는 고통의 바다와 같은 현실을 온몸 다 바쳐 관통하며 건너온 인물들에 대한 깨달음이 살 내음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랑』에서 나오는 혼란스럽고 은밀했던 사랑은 우리나라의 사회와 똑 닮은 모습을 그린다. 큰 역사적인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로 버무리는 작가의 절묘한 화술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쓴 만큼 방대한 조사와 철저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전한다.
1980년대 말 학생회 간부였던 박민수는 같은 학번인 오수연을 만나게 되며 사랑이란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깊어만 가는 사랑에 빠져있던 민수는 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수연과 잠시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난 수연은 민수에게 새로운 조직을 권유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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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경험하지 않은 세계로의 생생한 여행과 그로 인한 삶의 확장
청춘을 불살라 치열하게 살아온 유장한 시대에 대한 이해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농밀하게 드러나는 남녀의 애정선을 따라가는 재미, 시대와 불화하는 남녀의 사랑을 통한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구도소설을 표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의 사랑이 전개되는 바탕인 삶과 그 삶을 넘어 서 있는 그 무엇에 대한 타들어가는 갈증과 고통, 번뇌와 깨달음을 처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경계 지을 수 없는 경계에 서서 묵묵히 5천 매의 원고지, 108만 개의 빈칸을 피땀과 눈물로 아로새겨낸 작가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한국 문단에 주어진 2017년 최고의 선물이다.
사랑에 대한 남자의 솔직한 내면과 감각을 보여주는 소설
여느 사랑이 그렇듯 순식간에 불타오르기도 하며 그런 사랑은 활활 타올라서 재만 남기도 한다. 『두 번째 사랑』은 남녀의 사랑에 대한 과감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각적으로 끌고 간다.
첫사랑에 대한 풋풋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튀어나온 녹슨 못과 같은 상처로 인해 점점 썩어간다. 이러한 부분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생긴 듯 파국으로 치닫는 전개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1988년에서 2008년에 이르는 사실적 시대 배경
소설의 중요한 흐름을 구성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흐름과 매우 동일하게 흘러간다. 픽션이지만 픽션 같지 않은 사실성의 구축이 매우 구체적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활용함으로써 생겨났다.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이야기로 인해 캐릭터에게 생명력이 생겼으며 재미를 배가시켰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는 사랑,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의 위태로운 줄타기
수연과 지영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민수는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내에 대한 실망 혹은 아픔으로 격발된 민수의 연민은 두 번째 사랑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민수의 도덕적인 외면은 연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지만 욕망의 내면은 언제나 지영을 찾게 만든다. 그 사이에서 끝모를 줄타기 하는 모습에서 무척 비겁하면서도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민수의 연약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양가감정으로 치닫는 갈등을 신파극이 아닌 현대식 이야기로
『두 번째 사랑』은 수연과 지영의 갈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연과 지영의 짧은 일면식을 통해 모든 문제점은 민수에게로 모이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이 소설만의 색다른 요소일 것이라 생각된다. 흔히 치정문제를 이야기하게 되면 여자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들도 있는데 『두 번째 사랑』은 외모나 분위기는 다르지만 깨어있는 여성이라는 수연과 지영을 앞세움으로써 고루한 신파극이 아닌 현대식 감성에 맞는,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책 속으로 추가]
사랑이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절 분단된 조국의 불우한 운명 운운하며 사랑과 연애를 어떤 퇴폐성으로 간주하는 유아적 단상(斷想)을 가지고, 또는 '진보주의자는 그래도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의 그런 앙상한 테제만을 가지고 현실과 욕망의 불길 속에서 너울대며 춤추는 우리의 사랑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사랑에 대한 학습의 부재, 커리큘럼의 부재, 나아가 사랑에 대한 의식화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대의 정치 사상적 문제,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에 대한 견해 차이와 이에 대한 집단적 논의 과정의 반의반만이라도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탐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유용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결론과 '사랑의 의식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하여튼 우리는 혁명사는 읽었지만 사랑에 대해서 별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36p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네가 어느 순간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내 팔을 조금 더 당기더니, 그대로 살며시 뒤꿈치를 들고 입술을 가져왔습니다. 그네의 입술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렇게 눈을 감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붉은 입술이 장난처럼 또는 운명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일까요? 나는 저절로 입 속이 벌어졌습니다만.
그네도 나도 술이 있어 그런 용기를 내었다고 할까요? 술이라는 참으로 귀중한 정신의 음료가 있어 욕구는 좀 솔직하게 표현되고 책임은 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78p
아아, 그러나 나는 '결사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약하게 흔들렸던 그때의 청년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20대란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지는 얼음판 위의 발걸음과도 같은 시간이에요. 돌이켜보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날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손에 쥐지 못하고 빠져나간 모래와 같은 시절입니다.
무엇이든지 온몸으로 부딪쳐서 한번 붙어볼 만한 나이이기도 하지만 망망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보석 같은 젊음이 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준비해야 할 연대(年代)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20대는 인생에 있어 봄날처럼 환하게 피고 쓰러져간 꽃의 연대와 같은 아련한 청춘이기도 하잖아요.
-165p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끝내주는데… 대찬성이야."
하태식을 대장으로 하는 우리 전대협 결사대에게 구체적인 투쟁 계획이 전달되었는데 이름하여 '임수경 지원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통일의 꽃' 임수경 동지의 정당성과 무사 귀환을 외칠 것입니다.
기왕 구속을 각오한 정리 투쟁에서 그 투쟁의 상황과 내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을 하겠지만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대제목이 부쳐질 그 결사 투쟁이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가까이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하겠지만 멀리서나마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함께 한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었어요.
-172p
역내 약속한 장소로 한 사람씩 결사대원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작은 가방을 하나씩 등에 메었습니다.
"여기 오늘 관악산 등반가는 분들이죠?"
"예. 어디까지 가실 건가요?"
"예. 저는 연주암까지 갈 겁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번 산행 대장입니다."
말은 그렇게 나누었지만 우리는 그날 관악산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관악산'과 '연주암'은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서로 초면은 아니었지만 '관악산' 등반과 '연주암'이라는 단어를 마지막 인식 암호로 설정해놓았습니다.
"저 친구는 연주암까지 가는 건 아니고. 밑에서 우리 상황을 지켜봐 줄 거야. 베이스캠프하고 계속 연락을 해주는 친구야. 그래야 곧바로 학교에 대자보라도 붙일 수 있지."
전대협 투쟁국에서 나온 한 친구는 우리 결사대의 상황을 지켜보아 주는 연락망의 역할을 맡은 이였습니다. 그는 가방을 메지 않았고 신문 한 부를 손에 말아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177p
그때쯤 나는 '매미'의 생애로 서술된 중의적 표현을 눈치챘다고 할까요?
그건 양질전화의 변이를 위해 땅속이나 어둠 속에서 길고 지루하게 기다리며 성장해야 하는 오랜 준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결정적 시기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올 정도의 힘과 집중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야 하며 그 이후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위해 용맹한 외침을 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혁명이란 것이요.
그 여름 내내 귓전에 울렸던 매미 울음소리는 인내의 세월을 견디고 어떤 결정적 시기에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과 사랑의 고고성(呱呱聲)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190p
그렇게 자고 일어나 아침이면 우리는 모두 주르륵 앉아서 아침 점호를 받을 것입니다. 별다른 보고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인간의 머릿수가 몇 개인지만 확인받으면 그뿐입니다. 그러면 바삐 지나가는 교도관들이 재빠르게 지난밤 우리의 삶과 죽음을 살펴줄 것입니다.
사방에 잡물(雜物)이 별로 없어 작은 소리도 울리듯 잘 들려오는 그곳의 복도는 길고 아련한 울림통과 같았습니다. 덜커덩하는 소리가 먼 복도에서부터 울려오며 부산스런 소리가 들리면 구수한 밥 냄새가 먼저 코에 닿습니다. 그때쯤 '배식'하는 소지의 즐거운 알림이 들려오면 벽 밑에 있는 조그마한 식구(食口)통을 열고 그 앞에 마른 수건을 한 장 깔아놓습니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이 있다는 것은 끼니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루의 징역을 접어주는 표시와 같은 것입니다.
-208p
"결국 산개전(散開戰)이란, 각자 맡은 참호 속에 있더라도 중앙과 연결선이 있어야지. 운동도 삶도 개인이 혼자서 계속 밀고 갈 수는 없어. 조직이 있어야 해. 그런 게 없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지. 우리는 냉담해지고 쓰러질 거야. 그래서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그네의 이런 말도 기억이 납니다.
애정을 가진 의식화 대상. 우리는 이 존재에 대한 애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삶의 고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결정이란 그걸 맞이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일까요, 아니면 운명적 인연이 만들어 놓은 강요된 선택일까요?
-258p
"NL의 대중노선과 통일전선 노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NL의 사회 지향도 PDR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르주아지 혁명이 아닙니다. 바로 인민민주주의 혁명이오."
마른 몸매에 안경 뒤의 눈빛이 빛나는 그는 '하오, 있소' 라는 독특한 어체를 썼습니다. 강한 억양이 없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하는 말본새, 하지만 다소 고루한 말투에 딱딱한 한자어를 자주 썼습니다. 그는 레디컬했고 논리 정연했으며 음의 고저가 없는 평탄한 말투에 단어만 딱딱 끊어서 말하는 투였습니다.
"남한 혁명의 모든 운동은 비합(非合)에 뿌리를 두고 반합(半合)에 둥지를 틀며 합법(合法)에 가지를 뻗어야 한다, 이겁니다. 뿌리 없는 가지가 있겠습니까?
만약 합법적 영역에만 활동의 모든 것을 둔다면 그 사람은 활동가일 수는 있겠지만 운동가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운동이란 정당한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어떤 희생도 스스로 각오하는 겁니다. 합법적 영역의 시민운동이나 의회주의 같은 수정주의 운동 이런 걸로만 한국 사회 운동의 전망을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학출들이 이런 성향이 많아요. 학출 특유의 쁘띠성이 만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소."
-262p
"어머! 비 온다."
"뛰자. 하나, 둘, 셋! 뛰어!"
여름날 예고 없는 소나기 내리는 그 밤, 우산이 없어서 소나기를 맞으며 우리는 동네 생맥주 가게까지 뛰었습니다. 길거리의 빗물이 튀어 종아리를 적시고 내 슬리퍼를 적시고 그네의 샌들을 적셨습니다. 어느새 비에 젖은 그네의 셔츠에서 붉은 속살이 배어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키득대면서 넘치는 생맥주 거품에 입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연인들은 심각한 얘기 잘 안 한대… 세상에 민족, 운동, 통일 이런 걸 얘기하면서 연애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나."
어느 때 그네가 말한 그 말처럼 우리는 반제애국전선이나 조직 활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네에 새로 생긴 만두가게에서 김치만두가 좋은지 고기만두가 좋은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식은 밥을 구수한 누룽지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고 어설픈 홍콩영화나 9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에 대해 비평했습니다.
맞아요. 정치적 문제, 사상적 문제 이런 건 모두 삶의 문제로 녹아나야 하는 겁니다. 어떤 사상적 공감을 먼저 내세우면서 '동지적 연인' 뭐 이런 걸 되뇌는 커플은 사랑이 가진 아삭아삭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모르는 것이랍니다.
-285p
이별 없는 만남이 없듯 상실 없는 사랑이 또 얼마나 있을까요? 계속해서 채워가고 만족하는 것이 사랑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치하고 평면적인 망상으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일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잃어버릴 개연성(蓋然性)의 확대이며 언젠가는 '사랑' 그것마저 상실하고 절절맬 그 난감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32p
그 시절, 내 기억의 날씨는 명료한 맑음보다 애써 감추려 했던 관성과 무언가를 잊으려 했던 아픔으로 희뿌연 연무(煙霧)에 싸인 흐린 날로 남아 있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 아직 채색하지 않은 회색빛의 웅장한 아파트 숲이 올라가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습니다.
반제애국전선에서 비밀 MT를 갔던 능곡 '평화의 집'보다 더 먼 곳에 사람들이 살기 위해 회색빛의 아파트 숲을 만들고 있었어요. 신도시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산'이라고 불렀습니다.
-333p
청춘을 불살라 치열하게 살아온 유장한 시대에 대한 이해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농밀하게 드러나는 남녀의 애정선을 따라가는 재미, 시대와 불화하는 남녀의 사랑을 통한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구도소설을 표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의 사랑이 전개되는 바탕인 삶과 그 삶을 넘어 서 있는 그 무엇에 대한 타들어가는 갈증과 고통, 번뇌와 깨달음을 처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경계 지을 수 없는 경계에 서서 묵묵히 5천 매의 원고지, 108만 개의 빈칸을 피땀과 눈물로 아로새겨낸 작가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한국 문단에 주어진 2017년 최고의 선물이다.
사랑에 대한 남자의 솔직한 내면과 감각을 보여주는 소설
여느 사랑이 그렇듯 순식간에 불타오르기도 하며 그런 사랑은 활활 타올라서 재만 남기도 한다. 『두 번째 사랑』은 남녀의 사랑에 대한 과감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각적으로 끌고 간다.
첫사랑에 대한 풋풋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튀어나온 녹슨 못과 같은 상처로 인해 점점 썩어간다. 이러한 부분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생긴 듯 파국으로 치닫는 전개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1988년에서 2008년에 이르는 사실적 시대 배경
소설의 중요한 흐름을 구성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흐름과 매우 동일하게 흘러간다. 픽션이지만 픽션 같지 않은 사실성의 구축이 매우 구체적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활용함으로써 생겨났다.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이야기로 인해 캐릭터에게 생명력이 생겼으며 재미를 배가시켰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는 사랑,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의 위태로운 줄타기
수연과 지영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민수는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내에 대한 실망 혹은 아픔으로 격발된 민수의 연민은 두 번째 사랑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민수의 도덕적인 외면은 연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지만 욕망의 내면은 언제나 지영을 찾게 만든다. 그 사이에서 끝모를 줄타기 하는 모습에서 무척 비겁하면서도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민수의 연약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양가감정으로 치닫는 갈등을 신파극이 아닌 현대식 이야기로
『두 번째 사랑』은 수연과 지영의 갈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연과 지영의 짧은 일면식을 통해 모든 문제점은 민수에게로 모이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이 소설만의 색다른 요소일 것이라 생각된다. 흔히 치정문제를 이야기하게 되면 여자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들도 있는데 『두 번째 사랑』은 외모나 분위기는 다르지만 깨어있는 여성이라는 수연과 지영을 앞세움으로써 고루한 신파극이 아닌 현대식 감성에 맞는,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책 속으로 추가]
사랑이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절 분단된 조국의 불우한 운명 운운하며 사랑과 연애를 어떤 퇴폐성으로 간주하는 유아적 단상(斷想)을 가지고, 또는 '진보주의자는 그래도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의 그런 앙상한 테제만을 가지고 현실과 욕망의 불길 속에서 너울대며 춤추는 우리의 사랑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요?
사랑에 대한 학습의 부재, 커리큘럼의 부재, 나아가 사랑에 대한 의식화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대의 정치 사상적 문제,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에 대한 견해 차이와 이에 대한 집단적 논의 과정의 반의반만이라도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탐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유용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결론과 '사랑의 의식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하여튼 우리는 혁명사는 읽었지만 사랑에 대해서 별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36p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네가 어느 순간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내 팔을 조금 더 당기더니, 그대로 살며시 뒤꿈치를 들고 입술을 가져왔습니다. 그네의 입술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렇게 눈을 감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붉은 입술이 장난처럼 또는 운명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일까요? 나는 저절로 입 속이 벌어졌습니다만.
그네도 나도 술이 있어 그런 용기를 내었다고 할까요? 술이라는 참으로 귀중한 정신의 음료가 있어 욕구는 좀 솔직하게 표현되고 책임은 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78p
아아, 그러나 나는 '결사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약하게 흔들렸던 그때의 청년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20대란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지는 얼음판 위의 발걸음과도 같은 시간이에요. 돌이켜보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날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손에 쥐지 못하고 빠져나간 모래와 같은 시절입니다.
무엇이든지 온몸으로 부딪쳐서 한번 붙어볼 만한 나이이기도 하지만 망망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보석 같은 젊음이 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준비해야 할 연대(年代)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20대는 인생에 있어 봄날처럼 환하게 피고 쓰러져간 꽃의 연대와 같은 아련한 청춘이기도 하잖아요.
-165p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끝내주는데… 대찬성이야."
하태식을 대장으로 하는 우리 전대협 결사대에게 구체적인 투쟁 계획이 전달되었는데 이름하여 '임수경 지원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통일의 꽃' 임수경 동지의 정당성과 무사 귀환을 외칠 것입니다.
기왕 구속을 각오한 정리 투쟁에서 그 투쟁의 상황과 내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을 하겠지만 '임수경 지원 투쟁'이라고 대제목이 부쳐질 그 결사 투쟁이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가까이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하겠지만 멀리서나마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함께 한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었어요.
-172p
역내 약속한 장소로 한 사람씩 결사대원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작은 가방을 하나씩 등에 메었습니다.
"여기 오늘 관악산 등반가는 분들이죠?"
"예. 어디까지 가실 건가요?"
"예. 저는 연주암까지 갈 겁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번 산행 대장입니다."
말은 그렇게 나누었지만 우리는 그날 관악산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관악산'과 '연주암'은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서로 초면은 아니었지만 '관악산' 등반과 '연주암'이라는 단어를 마지막 인식 암호로 설정해놓았습니다.
"저 친구는 연주암까지 가는 건 아니고. 밑에서 우리 상황을 지켜봐 줄 거야. 베이스캠프하고 계속 연락을 해주는 친구야. 그래야 곧바로 학교에 대자보라도 붙일 수 있지."
전대협 투쟁국에서 나온 한 친구는 우리 결사대의 상황을 지켜보아 주는 연락망의 역할을 맡은 이였습니다. 그는 가방을 메지 않았고 신문 한 부를 손에 말아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177p
그때쯤 나는 '매미'의 생애로 서술된 중의적 표현을 눈치챘다고 할까요?
그건 양질전화의 변이를 위해 땅속이나 어둠 속에서 길고 지루하게 기다리며 성장해야 하는 오랜 준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결정적 시기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올 정도의 힘과 집중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야 하며 그 이후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위해 용맹한 외침을 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혁명이란 것이요.
그 여름 내내 귓전에 울렸던 매미 울음소리는 인내의 세월을 견디고 어떤 결정적 시기에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과 사랑의 고고성(呱呱聲)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190p
그렇게 자고 일어나 아침이면 우리는 모두 주르륵 앉아서 아침 점호를 받을 것입니다. 별다른 보고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인간의 머릿수가 몇 개인지만 확인받으면 그뿐입니다. 그러면 바삐 지나가는 교도관들이 재빠르게 지난밤 우리의 삶과 죽음을 살펴줄 것입니다.
사방에 잡물(雜物)이 별로 없어 작은 소리도 울리듯 잘 들려오는 그곳의 복도는 길고 아련한 울림통과 같았습니다. 덜커덩하는 소리가 먼 복도에서부터 울려오며 부산스런 소리가 들리면 구수한 밥 냄새가 먼저 코에 닿습니다. 그때쯤 '배식'하는 소지의 즐거운 알림이 들려오면 벽 밑에 있는 조그마한 식구(食口)통을 열고 그 앞에 마른 수건을 한 장 깔아놓습니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이 있다는 것은 끼니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루의 징역을 접어주는 표시와 같은 것입니다.
-208p
"결국 산개전(散開戰)이란, 각자 맡은 참호 속에 있더라도 중앙과 연결선이 있어야지. 운동도 삶도 개인이 혼자서 계속 밀고 갈 수는 없어. 조직이 있어야 해. 그런 게 없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지. 우리는 냉담해지고 쓰러질 거야. 그래서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그네의 이런 말도 기억이 납니다.
애정을 가진 의식화 대상. 우리는 이 존재에 대한 애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삶의 고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결정이란 그걸 맞이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일까요, 아니면 운명적 인연이 만들어 놓은 강요된 선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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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의 대중노선과 통일전선 노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NL의 사회 지향도 PDR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르주아지 혁명이 아닙니다. 바로 인민민주주의 혁명이오."
마른 몸매에 안경 뒤의 눈빛이 빛나는 그는 '하오, 있소' 라는 독특한 어체를 썼습니다. 강한 억양이 없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하는 말본새, 하지만 다소 고루한 말투에 딱딱한 한자어를 자주 썼습니다. 그는 레디컬했고 논리 정연했으며 음의 고저가 없는 평탄한 말투에 단어만 딱딱 끊어서 말하는 투였습니다.
"남한 혁명의 모든 운동은 비합(非合)에 뿌리를 두고 반합(半合)에 둥지를 틀며 합법(合法)에 가지를 뻗어야 한다, 이겁니다. 뿌리 없는 가지가 있겠습니까?
만약 합법적 영역에만 활동의 모든 것을 둔다면 그 사람은 활동가일 수는 있겠지만 운동가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운동이란 정당한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어떤 희생도 스스로 각오하는 겁니다. 합법적 영역의 시민운동이나 의회주의 같은 수정주의 운동 이런 걸로만 한국 사회 운동의 전망을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학출들이 이런 성향이 많아요. 학출 특유의 쁘띠성이 만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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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비 온다."
"뛰자. 하나, 둘, 셋! 뛰어!"
여름날 예고 없는 소나기 내리는 그 밤, 우산이 없어서 소나기를 맞으며 우리는 동네 생맥주 가게까지 뛰었습니다. 길거리의 빗물이 튀어 종아리를 적시고 내 슬리퍼를 적시고 그네의 샌들을 적셨습니다. 어느새 비에 젖은 그네의 셔츠에서 붉은 속살이 배어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키득대면서 넘치는 생맥주 거품에 입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연인들은 심각한 얘기 잘 안 한대… 세상에 민족, 운동, 통일 이런 걸 얘기하면서 연애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나."
어느 때 그네가 말한 그 말처럼 우리는 반제애국전선이나 조직 활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네에 새로 생긴 만두가게에서 김치만두가 좋은지 고기만두가 좋은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식은 밥을 구수한 누룽지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고 어설픈 홍콩영화나 9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에 대해 비평했습니다.
맞아요. 정치적 문제, 사상적 문제 이런 건 모두 삶의 문제로 녹아나야 하는 겁니다. 어떤 사상적 공감을 먼저 내세우면서 '동지적 연인' 뭐 이런 걸 되뇌는 커플은 사랑이 가진 아삭아삭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모르는 것이랍니다.
-285p
이별 없는 만남이 없듯 상실 없는 사랑이 또 얼마나 있을까요? 계속해서 채워가고 만족하는 것이 사랑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치하고 평면적인 망상으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일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잃어버릴 개연성(蓋然性)의 확대이며 언젠가는 '사랑' 그것마저 상실하고 절절맬 그 난감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32p
그 시절, 내 기억의 날씨는 명료한 맑음보다 애써 감추려 했던 관성과 무언가를 잊으려 했던 아픔으로 희뿌연 연무(煙霧)에 싸인 흐린 날로 남아 있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 아직 채색하지 않은 회색빛의 웅장한 아파트 숲이 올라가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습니다.
반제애국전선에서 비밀 MT를 갔던 능곡 '평화의 집'보다 더 먼 곳에 사람들이 살기 위해 회색빛의 아파트 숲을 만들고 있었어요. 신도시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산'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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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프롤로그
제1부
1988년의 어느 가을밤
월곡동의 골목길
우리 푸른 젊은 날
명일동의 새벽 별
그녀를 위하여
제2부
철창에 찢긴 하늘
세 번의 권유
미아동 옥탑방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전위(前衛)는 사생활(私生活)이 없다
제1부
1988년의 어느 가을밤
월곡동의 골목길
우리 푸른 젊은 날
명일동의 새벽 별
그녀를 위하여
제2부
철창에 찢긴 하늘
세 번의 권유
미아동 옥탑방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전위(前衛)는 사생활(私生活)이 없다
저자
저자
손성조
저자 손성조는 1966년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석사를 마쳤다. 여러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지금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일하고 있다.
첫 소설 '두 번째 사랑'을 2년 동안 구상하고 5년 동안 집필했는데 어느덧 원고지 5천 매가 넘는 장편소설이 되었다. 늦깎이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전할 이야기가 많다.
첫 소설 '두 번째 사랑'을 2년 동안 구상하고 5년 동안 집필했는데 어느덧 원고지 5천 매가 넘는 장편소설이 되었다. 늦깎이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전할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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