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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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은 2004년 출간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의 개정판이다.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그 땅에서 그 사람들이 엮어온 역사를 비롯해 새로 취재해 보탠 내용으로는 1년 가까이 중국국민당 잔당을 취재해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내기까지의 과정, 인도네시아 산악 게릴라 사령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무자끼르가 이끄는 아쩨는 어떻게 평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동티모르 독립투쟁 영웅에서 대통령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총리까지, 샤나나가 13년간 동티모르 정치판을 주무르는 동안 동티모르는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우상에 기댄 아웅산수찌 열광현상’을 대신 8888민주항쟁을 이끈 전설적인 학생운동 지도자 민꼬나잉이 2004년 감옥살이 15년 만에 풀려나 어떻게 버마 시민들의 민주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는지, 버마 사회가 그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세계게릴라전사에 ‘판쉴의 사자‘로 남은 마수드 암살과 곧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15년 동안 저자가 새로 밝혀낸 마수드 암살재판의 배후, 마수드 이후를 꿈꾸는 세력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 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기록이다.
▶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한겨레신문사)의 개정판입니다.
▶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한겨레신문사)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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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소외당한 현장, 그곳이
기자가 지켜야 할 중립이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전쟁은 날마다 더 악질로 변해왔다.
전쟁은 유행처럼 번졌고 기자들은 거짓말을 훈장처럼 달았다.
그러나 전쟁을 말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멈출 맘이 없었다.
이제, 전쟁은 사람들 사이에 덧없는 말질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여, 나를 비롯해 전쟁터를 취재하는 모든 기자를 향해서
하여, 당신을 비롯해 전쟁뉴스를 읽는 모든 독자를 향해서
이제 가라앉을 때가 되었다는 뜻을 담아 이 개정판을 올린다.
세월이 흐른 만큼 2016년 판은 틀을 바꾸고 새 글을 보탰다.
이 개정판에서는 무엇보다 얼마나 정직했는지를 점검하면서
현 시점에서 읽기 쉽도록 자료를 덧붙이고 문장을 다듬었다.
모든 이들께 고마운 마음을 올린다. _'들어가는 글' 중에서
버마,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예맨…
국내 첫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누빈 전선의 28년,
그리고 전쟁취재 기자로서의 삶
정문태는 국제분쟁 전문기자다. 그이는 지난 28년 동안 네팔, 스리랑카, 르완다,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카슈미르, 코소보, 캄보디아를 비롯한 40여 전쟁과 분쟁을 취재해왔다. 그이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전선을 뛴 전쟁기자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정문태는 '국내 처음'이다. 그이는 외신기자 역사가 짧은 한국 언론에서 30년 가까이 국제뉴스 현장을 달려왔다. 아마드 샤 마수드(아프가니스탄), 샤나나 구스마오(동티모르), 보먀(버마) 같은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아웅산수찌(버마), 아메드 야신(팔레스타인) 같은 민주독립 투쟁가, 추안 릭파이(타이 전 총리), 탁신 친나왓(타이 현 총리), 마하티르(말레이시아 전 총리), 압두라만 와히드(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레제프 메이다니(알바니아 현 대통령), 불하누딘 랍바니(아프가니스탄 전 대통령) 등을 인터뷰한 그이는, 국제언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최고위급 정치인을 인터뷰한 기자로도 손꼽힌다.
푸른숲이 펴낸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은 2004년 출간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의 개정판이다.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그 땅에서 그 사람들이 엮어온 역사를 비롯해 새로 취재해 보탠 내용으로는
1년 가까이 중국국민당 잔당을 취재해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내기까지의 과정, 인도네시아 산악 게릴라 사령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무자끼르가 이끄는 아쩨는 어떻게 평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동티모르 독립투쟁 영웅에서 대통령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총리까지, 샤나나가 13년간 동티모르 정치판을 주무르는 동안 동티모르는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우상에 기댄 아웅산수찌 열광현상'을 대신 8888민주항쟁을 이끈 전설적인 학생운동 지도자 민꼬나잉이 2004년 감옥살이 15년 만에 풀려나 어떻게 버마 시민들의 민주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는지, 버마 사회가 그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세계게릴라전사에 '판쉴의 사자'로 남은 마수드 암살과 곧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15년 동안 저자가 새로 밝혀낸 마수드 암살재판의 배후, 마수드 이후를 꿈꾸는 세력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 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기록이다.
내용소개 1
그를 따라 버마민주학생전선, 타밀타이거를 만났다. 매솟, 살윈강, 자프나는 여전히 생생하고 긴박하다. 동시에 부끄럽다. 그가 죽도록 싫어하는 '취재보다 무용담, 보도보다 후일담'에 빠져 있었다.
역사적 현장에 서서 전선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강대국의 논리에 가려진 진실과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전선기자 정문태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나의 다큐멘터리 세 가지 정신인 '인간정신', '시대정신', '기자정신'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_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전 한국프로듀서연합회장
'프로페셔널 기자' 정문태를 만나며 시작된 장해랑 교수의 다큐멘터리 세 가지 정신을 카테고리 삼아 《전선기자 정문태》를 소개한다.
기자정신_ "진짜 전선을 취재한 기자라면 말문이 막혀야 정상이다"
저자는 "전선을 취재하는 기자란 역사를 기록하고 군대를 감시하고 전쟁실상을 전하는 직업인"이자 "시민사회로부터 전쟁본질을 캐고 군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이라고 밝힌다. "취재원의 목숨과 맞닿는 곳"인 만큼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신중하고 자기검열도 엄격해진다. 내 "글 한 줄, 내 기사 한 쪽이 취재원의 적에게 어떤 정보를 줄지" 생각한다면 특종이라고 마구 터뜨릴 수도 없다. "뜻있는 기자들이 환상을 두려워하며 말을 아끼는" 이유다.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란 시민사회로부터 전쟁본질을 캐고 군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이다. 따라서 전선에 오른 기자가 복종할 대상은 오직 시민뿐이다. 기자라면 전선에 오르는 순간부터 자신이 속한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정파는 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을 돈 들여 파견한 언론사마저 배반하고 시민 편에 서야 옳다는 뜻이다.
1장 '종군기자라고?_ 전선기자의 고민' 중에서, 24p
무엇보다 취재원 목숨과 맞닿는 전선취재에서는 자가검열을 안 할 수 없다. 자가검열은 전선기자의 기본양식이자 원칙 같은 것이다. 내 기사가 전황이나 취재원 생명에 끼칠 영향을 걷어내고 취재원의 적을 이롭게 할 대목을 지워버리는 일들을 일컫는다. 내 글 한 줄이 취재원의 적에게 타격점을 제공할 수도 있고, 내 기사 한 쪽이 취재원의 적에게 선전도구로 둔갑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2장 '배반의 계절_ 마너플로우 최후의 날' 중에서, 119p
아시아 기자는 무슬림 취재원과 차 마시고 노는 일은 그럴싸한데 뉴스는 늘 미국이나 유럽 기자한테 한 수 접히곤 했다. 실제로 국제뉴스 현장을 뛰다 보면 한국 언론이고 아시아 언론이기 때문에 밀려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잖다. 해서 나는 한동안 양놈 기자보다 몇 갑절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현장을 뛴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일이 틀어질 때마다 취재원이 한국 언론을 무시한 탓이라고 주절거리며. 그런 강박감에서 벗어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록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기자도 '뛰는 만큼 통한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흘린 시간이었다.
3장 '카불, 1993년_ 신이 버린 전쟁' 중에서, 134p
인간정신_ "내게 그 아이들도 쓰나미 10주년 행사용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28년간 전선취재를 하면서 방탄조끼를 한 번도 걸친 적이 없다. 어떤 전선이든 어떤 현장이든 셔츠 한 장이 전부다. 간이 크거나 겁이 없어서가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데다 무엇보다 부끄럼 타는 성격 탓이다. 혼자 살겠다고 방탄조끼에 헬멧을 걸친 철갑인형 꼴로 겁에 질린 전선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268p)
기자로 갔고 취재가 목적이지만 취재원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글 곳곳에 보인다. 새벽 1시에 매서운 눈바람에 휘둘린 알바니아 난민들을 국경에서 직접 받아 이동시키고(283p), 쓰나미 폐허 속에서 만난 두 아이를 10년 후 수소문해 찾아가는 일(488p)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선의 죽음은 학생군에게도 내게도 체념을 가르쳤다. 나는 늘어나는 죽음들 앞에서 감정을 잃어갔다. 더 바르게 말하자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스스로 버렸다. 감정 따위로 나를 짓누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게 오로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전선을 오르내리며 부딪쳤던 그 많은 죽음 앞에 일일이 고개 숙이지 못했다. 가슴 아린 사연도 많았고 눈물 나는 장면도 많았지만 그 죽음들은 그저 나를 앞질러 간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을 뿐이다. 대신 나는 국경 혁명에서 사라져간 이들 모두를 "존경하는 전사"로 불렀다. 스스로 가늠한 정치적 의지에 따라 스스로 고른 자리에서 사라져가는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역사라 믿었던 까닭이다.
2장 '살윈강의 용_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신화' 중에서, 95p
40여 개 넘는 전쟁터를 취재하는 동안 온갖 파괴를 보면서, 수십만 웃도는 주검 더미를 지나다니면서 절망 따위엔 면역이 되었다고 믿었던 나는 아쩨에서 허물어졌다. 속울음을 억누르며 부둣가로 달려갔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온 천지에 주검이 뒹굴었다. 너무 미안했다. 며칠이라도 더 일찍 이 땅에 오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1989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쩨 전역을 군사작전지역으로 선포한 뒤 처음으로 아쩨를 취재했던 외신기자로서, 2003년 계엄군사작전을 취재했던 유일한 외신기자로서 내가 느껴온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7장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 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중에서, 479p
자하라띠와 바우까는 민사뚜 록응아의 400명 아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100여 명, 그 가운데 둘이었다. 나도 세상도 그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도 국제사회도 그저 1년쯤 반짝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그이들한테 기껏 돈 몇 푼 던지는 걸로 모든 걸 때웠다. 이제 그 쓰나미 10주년이 다가온다고 난리들이다. 아쩨엔 온갖 행사를 알리는 간판이 나붙었고 외신기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
는 밤길은 어둡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나한테 던지는 질문으로 끝없이 시달렸다.
"내게 희망을 보여주었던 그 아이들한테 나는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내게 그 아이들도 쓰나미 10주년 행사용이 아니었을까?"
7장 '영웅을 위한 변명_ 동티모르 독립 13년' 중에서, 488~489p
시대정신_ "소외당한 현장, 그곳이 기자가 지켜야 할 중립이다."
"기자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런 말을 믿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중립'이란 말은 백인, 기독교, 자본주의, 서양중심주의로 무장한 나라 안팎 주류언론사가 떠받드는 신줏단지일 뿐이다. 중립을 앞세워 덩치를 키워온 국제공룡언론사는 제 입맛에 안 맞으면 어김없이 '중립성' 논란을 일으켜 몰매를 퍼부어댔다."
"죽기 살기로 남예멘에 들어갔던 건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예멘전쟁보도는 모조리 북예멘 중심으로만 쏟아졌다. 남예멘발 보도가 절실했던 때다. 저자가 소외당한 뉴스현장인 남예멘을 택한 까닭이다. 사정이 반대였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북예멘을 택했을 것이다."(242p)
저자는 그게 기자의 중립이고, 그곳이 기자가 서야 할 자리라 말한다.
소수민족해방군이나 학생군한테 총을 내리라고 난리 치기 전에 대규모 화력과 정규군을 동원해 시민을 학살해온 그 랑군 군인 독재자들을 다그쳤어야 옳다. 본디부터 군인 독재자들이 총을 거두면 국경은 자동으로 무장해제하는 구조를 지녀왔다. 국경은 결코 전
쟁을 원한 적이 없었다. 전쟁으로 군인 독재자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국경이 잘 알기 때문이다. 국경이 총을 든 건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가장 기쁜 마음으로 총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군사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온 이들이고, 가장 먼저 총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진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다. 바로 국경 사람들이다.
2장 '살윈강의 용_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신화' 중에서, 102~103p
2016년 오늘도 그 카슈미르 산악에는 인디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미국의 야심 찬 전쟁놀음에 볼모로 잡힌 고단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땅에는 아직도 포탄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인디아한테 점령당한 통제선 남쪽 카슈미르 사람들이 무력통치에 짓밟혀 온갖 박해를 받아왔다면, 파키스탄에 이용당해온 북쪽 카슈미르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은 채 전쟁에 시달려왔다. 그 세월이 벌써 69년이다.
국제사회는 카슈미르의 비명에 귀를 막았고, 카슈미르의 권리에 눈을 감았다. 돈줄이 흐르는 전쟁에는 모두가 빛나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그렇지 못한 평화에는 더러운 변명만 늘어놓았을 뿐.
4장 '접선_카슈미르, 분단의 비극' 중에서, 265p
'외국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아쩨를 취재해왔던 한국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정문태 기자가 본디 일정을 앞당겨 월요일 수마뜨라 메단으로 떠났다. 그이가 정부군한테 압력을 받아 아쩨를 떠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자까르따포스트〉, 2003년 6월 24일, 베르니 무수따파
자까르따로 돌아온 나는 꼴난 외국 기자 하나가 아쩨를 떠난 사실을 대문짝만하게 올린 현지 신문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 기사에서 동료들 마음을 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데 어울리며 내가 왜 아쩨를 떠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던 그이들은 외국 기자를 내세워서라도 정부군의 언론통제 사실을 독자한테 알리려고 했다. 아직은 언론이 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 있는 기자들이 있음으로!
4장 '사라져가는 저 별들, 저 별들_ 아쩨계엄군사작전, 자유아쩨운동을 박멸하라' 중에서, 328~329p
'왜 타밀 여성들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가?'
이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여성타이거의 전투력도 타이거 여성도 결코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껏 여성타이거 연구랍시고 내놓은 결과물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비틀어 여성타이거를 남성 지배체제의 강압에 따른 하부구조로 얕잡아 보거나, 적당히 동정심을 덧붙여 노예적 전쟁도구로 몰아붙이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그 연구자들 눈에는 여성타이거가 남성의 부속물이었고 못된 테러리스트였다. 전투력의 고갱이는 전투의지다. 그 전투의지의 원천이 참전동기란 것쯤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도 모르는 이가 없다.
6장 '타밀타이거_ 꽃다운 목숨을 바친 소녀들' 중에서, 431p
내용소개 2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취재해 새로 써서 보탠 내용을 아체, 동티모르, 버마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05 비밀전쟁
한국전쟁, 제2 전선 있었다_ 국민당 잔당, 버림받은 역사
저자는 "사료로 찾아낸 한국전쟁 제2전선의 존재 사실을 확인해줄 증언자"를 찾아 타이 북부 도미 매살롱과 타이를 오가며 1년 가까이 취재에 매달린 끝에 국민당 잔당 제8군 제709연대장으로 윈난 공격작전에 참전했던 슈쯔정 장군을 통해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낸다.
저자와 인터뷰에서 슈쯔정 장군은 "1951년 4월 몽삿에 온 CIA 요원 둘이 리미 장군한테 '윈난 쪽 인민해방군 공격해 전선을 분산시켜 한국전쟁 도와야 한다'고 했어. 내가 직접 들었어. 우리는 그 CIA 요원들과 함께 윈난으로 쳐들어갔지." "인민해방군한테 밀려 다 실패했지만 내가 CIA 지원받으며 윈난 공격한 것만도 1951년 4월과 7월 두 번이야. 그러다 1952년 8월 리미 장군이 직접 군사를 끌고 윈난 공격한 게 실패하면서 결국 한국전쟁 제2전선도 막 내린 셈이지. 내가 아는 것 말고도 뒤져보면 더 많은 한국전쟁 제2전선이 나올 거야"라고 증언한다.(399p) "50년 넘도록 비밀문서로만 나돌던 CIA의 오퍼레이션 페이퍼도, CIA의 국민당 잔당 지원도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나는 1년 가까이 이 취재에 매달리면서 무엇보다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그러나 그 제2전선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효과를 거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국민당 잔당이 윈난 전략요충지 장악과 민중봉기에 실패함으로써 인민해방군 전력분산과 견제를 노렸던 CIA의 한국전쟁 제2전선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말하자면 트루먼이 꿈꾼 한국전쟁 제2전선은 인민해방군
이 압록강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미국 정보기관과 군부의 부실한 예측이 낳은 또 다른 낭만적 오판이었던 셈이다. 결국 CIA가 버마-윈난 국경에 펼친 제2전선은 한국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친 채, 오히려 국민당 잔당 덩치만 키워 지역 안보문제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고 한편으로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동남아시아 마약보급선을 폭발적으로 키운 패악질이 되고 말았다. _400p
07 내릴 수 없는 깃발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 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2002년 1월 자유아쩨운동 사령관 압둘라 시아피이가 정부군과 교전 끝에 사망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아 4,000여 게릴라를 이"끈 자유아쩨운동 전 사령관은 무자끼르 마납은 휴전을 거쳐 2006년 12월 "주지사 선거 때 독립후보로 나선 자유아쩨운동 출신 이르완디 유숩을 지원하며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497p) 지금은 아쩨 자치주 의회 제1당인 아쩨당 대표에 아쩨 자치주 부지사인 그를 "사람들은 아쩨 실권자라 여긴다."
저자는 "오늘 아쩨 현실에서 무자끼르 팔자를 가늠하긴 힘들다. 아쩨 현대사가 낳은 영웅인지, 장애물인지 아직은 또렷치 않다. 이건 독립을 꿈꾸었던 자유아쩨운동이 자치라는 반쪽짜리 혁명에 성공하고부터 부딪친 역사의 고민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다만 저자가 무자끼르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아쩨의 운명이 무자끼르 손에 들린 것만큼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지금 아쩨에 또렷한 건 오직 하나다. "아쩨를 사로잡은 두려움이다. 아쩨엔 두려움이 몸에 밴 사람들이 살고 있다. 29년 전쟁에 쓰나미에 아직 게릴라 습성을 못 버린 풋내기 정부와 마주친 아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속내를 감춘다. 정치가 독주할 조건을 갖췄고 무자끼르가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쩨 사람들은 무자끼르를 좋다 싫다 보다는 무서워하는 분위기다. 아직은 아쩨 평화를 말하기 힘든 까닭이다."(505p)
무자끼르가 "투쟁은 아쩨에서 한다. 무장투쟁은 망명정부와 상관없다"며 아쩨 산악 게릴라들 상황을 살피지 않고 망명정부 입장만 앞세운 그 휴전에 대놓고 불만을 터트렸던 탓이다. 그때부터 76세대들 사이에는 "우리가 무자끼르 같은 아이들을 데려와서 키웠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건 세상 어디서든 기득권을 놓기 싫은 기성세대가 툭하면 입에 올리는 질 낮은 표현이다. _504p
9년 만에 다시 찾은 아쩨는 분쟁과 휴전을 거쳐 자치로 정치적 해법을 찾은 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아시아 현대사의 소중한 실험실이었다. 우리가 아쩨를 조심스레 지켜보고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_506p
영웅을 위한 변명_ 동티모르 독립 13년
2006년 2월, 독립 4년 만에 방위병들의 무장탈영으로 난장판이 된 동티모르. 저자는 "인터뷰에서 알카티리 총리 입을 통해 '나라 안팎 세력'과 '쿠데타'라는 핵심어 둘을 잡아냈다. 그건 말할 나위도 없이 '샤나나-오스트레일리아-미국' 라인이었다." 알카티리 총리가 왜 샤나나 대통령한테 혐의를 두었을까? "샤나나는 대통령 역할을 다하지 않은 데다 스스로 정치혼란의 한가운데 섰"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사회통합의 상징 같은 인물이자 대통령이 오히려 말썽을 일으키며 알카티리 합법정부를 수렁에 빠트리는 선봉장 노릇을 했다."(520p)
"시민 50%가 실업자고 시민 5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이 신생공화국의 사회적 불만이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300년 넘도록 포르투갈, 일본, 인도네시아한테 식민지배당해온 빈털터리 동티모르를 알카티리 정부가 독립 4년 만에 풍요로운 땅으로 바꿔놓는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주제도 아래 시민이 새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탈영병이든 대통령이든 누구도 극단적 행위로 합법정부를 뒤집을 권리가 없었다."(523p)
"돌이켜보면 샤나나는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전부터 대통령중심제를 요구하며 내각제를 원한 알카티리와 충돌했던 주인공이다. (…) 결국 알카티리 뜻대로 내각책임제가 되면서 대통령은 상징뿐인 허수아비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렇게 샤나나는 총리 알카티리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정치혼란의 진원지 노릇을 해"온 게 사실이었다.(528p)
그렇게 둘 사이의 갈등은 샤나나 대통령에게 안부편지를 받는 탈영한 반란군 우두머리의 "반란, 체포, 탈옥, 그리고 투항명령"(532p)으로 이어지면서 1년 만에 알카티리 축출로 끝이 났고, 2008년 "2월 11일 아침, 오르타 대통령과 샤나나 총리 연쇄 암살기도 뉴스가 터졌다.
"대답보다 의문이 더 많았던 두 암살기도 사건은 1년도 더 지난 2009년 7월 13일 관련자 28명을 딜리 법정에 세웠"지만 결국 "두 암살기도 사건은 누가, 왜 대통령과 총리를 쏘았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다."
저자는 동티모르 13년 정치극 앞에서 "가능성을 붙들어 매고 버텨야 하는 숙명을 지닌" 저널리스트로서 "물증이 없으면 물음표를 붙여서라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내게 동티모르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테러리스트의 눈물_ 버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자는 2004년 10월 버마뿐 아니라 세상에 달군 '승복혁명'을 비보도를 전제로 취재했던 사실들을 이제야 털어놓는다. "승복 혁명은 그동안 세상에 알려졌던 승려시위로만 볼 수 없다. 애초 승복혁명은 랑군과 국경이 손잡고 꼼꼼하게 판을 짠 공동작품이었다.""국경이 재정과 장비 지원뿐 아니라 선전대 노릇까지 해왔다는 뜻이다." "국경 조직을 통해 미국 국무부가 승복혁명에 적잖은 뒷돈을 댔던 사실도 드러났다."(556p)
승복혁명을 무력진압한 군사정부는 총선을 통해 2011년 3월 테인세인을 대통령으로 준군사정부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사회와 경제가 거덜 난 난파선이었다. 이른바 중국 포위전략에 구멍 난 버마가 필요했던 미국도 움직였다.
그사이 국경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2011년 말쯤부터 정부와 주고받은 밀담 사연. "2012년 초로 접어들면서 북부 까친독립군을 빼고는 모든 소수민족해방 세력이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동안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던 버마학생민주전선 쪽에서도 밀담소문이 흘러나왔다.
2012년 2월 9일,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정부 평화협상단과 매솟에서 만남
2012년 5월,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vs 대통령실 장관 아웅민, 밀담
2012년 11월 7일, 88세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치앙마이로 이동
2012년 11월 11일 밤 9시, 88새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첫 번째 만남
8888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두 주인공은 반독재?민주화라는 한 목표 아래 싸웠지만 1930년대 학생운동 때부터 대물림해온 쿳다웅(싸우는 공작) 깃발을 놓고 경쟁의식을 지녀왔다. 이건 버마학생민주전선이 태어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국경에 뿌리를 둔 버마학생민주전선은 8888민주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줏대였고 조직이름에서 보듯 '학생'을 내걸었지만 실제는 노동자, 농민, 교사, 예술가를 비롯해 여러 소수민족 젊은이까지 끌어안은 대중조직이었다. 랑군에 뿌리를 둔 88세대학생그룹은 말 그대로 8888민주항쟁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핵심지도부가 만든 조직으로 강한 성골의식을 지녀왔다. 그러니 '학생'을 내건 두 진영 사이에 적자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_568p
2012년 11월 12일 새벽, 88세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돌아감
2012년 12월 18일 오전 7시, 버마학생민주전선 중앙위원 대표단 9명, 매솟 도착
2012년 12월 18일 밤 11시, 미얀마평화센터 도착
2012년 12월 19일 오전 10시, 88세대학생그룹 사무실 방문
버마학생민주전선과 두 번째 만남
2012년 12월 21일,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 버마연방학생회 의장 민꼬나잉
공동 기자회견 실시
버마학생민주전선과 88세대학생그룹의 회담은 버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88세대학생그룹 사무실엔 50명 웃도는 현지 기자가 들이닥쳤고 다음 날부터 버마학생민주전선을 1면 톱에 올린 신문들이 줄줄이 가판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테인세인 정부의 변화를 허튼짓이라 의심해왔던 학생군 대표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_577p
2012년 12월 24일 새벽 5시, 탄케, 학생군 대표단, 네이삐도로 이동
2012년 12월 24일 오후 1시,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 먀예 교육장관 등과 공식 회담
"대통령 집무실 별관, 정부 쪽에서는 휴전회담을 이끌어온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에 마예 교육장관을 비롯해 장관 넷과 차관 일곱 명이 나섰다. 예상 보다 훨씬 높은 수위로 학생군 대표단을 맞았다. 정부가 학생군과 휴전협정에 그만큼 공을 들인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인사치레쯤으로 끝나리라 여겼던 회감도 다섯 시간이나 이어졌다. (…) 회담장 안은 서로 협력을 다짐하고 웃음이 넘쳤지만 결국 악수가 다일 수밖에 없었다." _579~580p
2012년 12월 25일, 탄케, 학생군 대표단, 24년 만에 귀향
2013년 1월 6일. 대표단은 현실점검여행을 끝내고 국경전선으로 되돌아왔다.
20일 동안 학생군 대표단과 함께한 저자는 탄케가 랑군에서 했던 마지막 말을 기록한다. "쿳다웅 깃발을 접어서 비굴하게 랑군으로 되돌아오지는 않겠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자으로서 현실점검여행엔 가장 먼저 랑군으로 달려왔지만 진짜 귀향의 날이 오면 모든 동지를 무사히 랑군으로 돌려보낸 뒤 맨 마지막으로 쿳다웅을 펄럭이며 되돌아오겠다." (587p)
"현실점검행 뒤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정부는 줄기차게 머리를 맞댔고 결국 2013년 8월 휴전협정을 맺고 8월 5일 미얀마평화센터에서 이웅민 장관이 이끄는 정부대표단과 탄케가 이끄는 학생군 대표단이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민꼬나잉을 비롯한 버마 안팎 참관인단과 100여 명 기자가 그 주 단위 휴전 협정 서명을 지켜보았다. 10일에는 연방단위 휴전협정까지 서명하면서 학생군과 정부군은 전면휴전을 선언했"지만 탄케는 "휴전은 전쟁의 일부"임을 되새긴다.(588p)
저자는 탄케와 더불어 민꼬나잉에 각별히 주목한다.
"분열과 배신을 되풀이해온 버마 현대사에서 모두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민꼬나잉이다. 군인 아니면 아웅산수찌뿐인 메마른 시민사회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국경에서도 사람들이 민꼬나잉을 불러온 까닭이다." "청춘을 감옥에 바친 민꼬나잉은 민주화 운동 동력이 시민 품에서 나와야 버마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온 스승이다. 민꼬나잉은 비폭력 평화가 최후, 최고 투쟁방법임을 몸 던져 보여준 진정한 혁명가다." "내가 믿는 이도, 내가 따르는 이도 오직 한 사람 민꼬나잉은뿐이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탄케 입에서 나온 말이다."(595p)
절망할 건 없다. 24년 전 맨손으로 국경 민주혁명전선에 올랐던 수많은 '탄케'가 자신들을 쫓아냈던 바로 그 군인들 앞에서 오늘 당당히 정치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싸우는 이들의 몫이었고, 역사는 그 싸우는 이들 편이었다는 사실을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증명했다. 탄케를 비롯한 아홉 명이 단 20일 동안 버마를 휘젓고 다니면서 오롯이 보여주었다. _587p
기자가 지켜야 할 중립이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전쟁은 날마다 더 악질로 변해왔다.
전쟁은 유행처럼 번졌고 기자들은 거짓말을 훈장처럼 달았다.
그러나 전쟁을 말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멈출 맘이 없었다.
이제, 전쟁은 사람들 사이에 덧없는 말질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여, 나를 비롯해 전쟁터를 취재하는 모든 기자를 향해서
하여, 당신을 비롯해 전쟁뉴스를 읽는 모든 독자를 향해서
이제 가라앉을 때가 되었다는 뜻을 담아 이 개정판을 올린다.
세월이 흐른 만큼 2016년 판은 틀을 바꾸고 새 글을 보탰다.
이 개정판에서는 무엇보다 얼마나 정직했는지를 점검하면서
현 시점에서 읽기 쉽도록 자료를 덧붙이고 문장을 다듬었다.
모든 이들께 고마운 마음을 올린다. _'들어가는 글' 중에서
버마,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예맨…
국내 첫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누빈 전선의 28년,
그리고 전쟁취재 기자로서의 삶
정문태는 국제분쟁 전문기자다. 그이는 지난 28년 동안 네팔, 스리랑카, 르완다,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카슈미르, 코소보, 캄보디아를 비롯한 40여 전쟁과 분쟁을 취재해왔다. 그이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전선을 뛴 전쟁기자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정문태는 '국내 처음'이다. 그이는 외신기자 역사가 짧은 한국 언론에서 30년 가까이 국제뉴스 현장을 달려왔다. 아마드 샤 마수드(아프가니스탄), 샤나나 구스마오(동티모르), 보먀(버마) 같은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아웅산수찌(버마), 아메드 야신(팔레스타인) 같은 민주독립 투쟁가, 추안 릭파이(타이 전 총리), 탁신 친나왓(타이 현 총리), 마하티르(말레이시아 전 총리), 압두라만 와히드(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레제프 메이다니(알바니아 현 대통령), 불하누딘 랍바니(아프가니스탄 전 대통령) 등을 인터뷰한 그이는, 국제언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최고위급 정치인을 인터뷰한 기자로도 손꼽힌다.
푸른숲이 펴낸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은 2004년 출간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의 개정판이다.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그 땅에서 그 사람들이 엮어온 역사를 비롯해 새로 취재해 보탠 내용으로는
1년 가까이 중국국민당 잔당을 취재해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내기까지의 과정, 인도네시아 산악 게릴라 사령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무자끼르가 이끄는 아쩨는 어떻게 평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동티모르 독립투쟁 영웅에서 대통령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총리까지, 샤나나가 13년간 동티모르 정치판을 주무르는 동안 동티모르는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우상에 기댄 아웅산수찌 열광현상'을 대신 8888민주항쟁을 이끈 전설적인 학생운동 지도자 민꼬나잉이 2004년 감옥살이 15년 만에 풀려나 어떻게 버마 시민들의 민주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는지, 버마 사회가 그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세계게릴라전사에 '판쉴의 사자'로 남은 마수드 암살과 곧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15년 동안 저자가 새로 밝혀낸 마수드 암살재판의 배후, 마수드 이후를 꿈꾸는 세력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 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기록이다.
내용소개 1
그를 따라 버마민주학생전선, 타밀타이거를 만났다. 매솟, 살윈강, 자프나는 여전히 생생하고 긴박하다. 동시에 부끄럽다. 그가 죽도록 싫어하는 '취재보다 무용담, 보도보다 후일담'에 빠져 있었다.
역사적 현장에 서서 전선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강대국의 논리에 가려진 진실과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전선기자 정문태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나의 다큐멘터리 세 가지 정신인 '인간정신', '시대정신', '기자정신'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_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전 한국프로듀서연합회장
'프로페셔널 기자' 정문태를 만나며 시작된 장해랑 교수의 다큐멘터리 세 가지 정신을 카테고리 삼아 《전선기자 정문태》를 소개한다.
기자정신_ "진짜 전선을 취재한 기자라면 말문이 막혀야 정상이다"
저자는 "전선을 취재하는 기자란 역사를 기록하고 군대를 감시하고 전쟁실상을 전하는 직업인"이자 "시민사회로부터 전쟁본질을 캐고 군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이라고 밝힌다. "취재원의 목숨과 맞닿는 곳"인 만큼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신중하고 자기검열도 엄격해진다. 내 "글 한 줄, 내 기사 한 쪽이 취재원의 적에게 어떤 정보를 줄지" 생각한다면 특종이라고 마구 터뜨릴 수도 없다. "뜻있는 기자들이 환상을 두려워하며 말을 아끼는" 이유다.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란 시민사회로부터 전쟁본질을 캐고 군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들이다. 따라서 전선에 오른 기자가 복종할 대상은 오직 시민뿐이다. 기자라면 전선에 오르는 순간부터 자신이 속한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정파는 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을 돈 들여 파견한 언론사마저 배반하고 시민 편에 서야 옳다는 뜻이다.
1장 '종군기자라고?_ 전선기자의 고민' 중에서, 24p
무엇보다 취재원 목숨과 맞닿는 전선취재에서는 자가검열을 안 할 수 없다. 자가검열은 전선기자의 기본양식이자 원칙 같은 것이다. 내 기사가 전황이나 취재원 생명에 끼칠 영향을 걷어내고 취재원의 적을 이롭게 할 대목을 지워버리는 일들을 일컫는다. 내 글 한 줄이 취재원의 적에게 타격점을 제공할 수도 있고, 내 기사 한 쪽이 취재원의 적에게 선전도구로 둔갑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2장 '배반의 계절_ 마너플로우 최후의 날' 중에서, 119p
아시아 기자는 무슬림 취재원과 차 마시고 노는 일은 그럴싸한데 뉴스는 늘 미국이나 유럽 기자한테 한 수 접히곤 했다. 실제로 국제뉴스 현장을 뛰다 보면 한국 언론이고 아시아 언론이기 때문에 밀려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잖다. 해서 나는 한동안 양놈 기자보다 몇 갑절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현장을 뛴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일이 틀어질 때마다 취재원이 한국 언론을 무시한 탓이라고 주절거리며. 그런 강박감에서 벗어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록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기자도 '뛰는 만큼 통한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흘린 시간이었다.
3장 '카불, 1993년_ 신이 버린 전쟁' 중에서, 134p
인간정신_ "내게 그 아이들도 쓰나미 10주년 행사용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28년간 전선취재를 하면서 방탄조끼를 한 번도 걸친 적이 없다. 어떤 전선이든 어떤 현장이든 셔츠 한 장이 전부다. 간이 크거나 겁이 없어서가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데다 무엇보다 부끄럼 타는 성격 탓이다. 혼자 살겠다고 방탄조끼에 헬멧을 걸친 철갑인형 꼴로 겁에 질린 전선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268p)
기자로 갔고 취재가 목적이지만 취재원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글 곳곳에 보인다. 새벽 1시에 매서운 눈바람에 휘둘린 알바니아 난민들을 국경에서 직접 받아 이동시키고(283p), 쓰나미 폐허 속에서 만난 두 아이를 10년 후 수소문해 찾아가는 일(488p)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선의 죽음은 학생군에게도 내게도 체념을 가르쳤다. 나는 늘어나는 죽음들 앞에서 감정을 잃어갔다. 더 바르게 말하자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스스로 버렸다. 감정 따위로 나를 짓누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게 오로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전선을 오르내리며 부딪쳤던 그 많은 죽음 앞에 일일이 고개 숙이지 못했다. 가슴 아린 사연도 많았고 눈물 나는 장면도 많았지만 그 죽음들은 그저 나를 앞질러 간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을 뿐이다. 대신 나는 국경 혁명에서 사라져간 이들 모두를 "존경하는 전사"로 불렀다. 스스로 가늠한 정치적 의지에 따라 스스로 고른 자리에서 사라져가는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역사라 믿었던 까닭이다.
2장 '살윈강의 용_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신화' 중에서, 95p
40여 개 넘는 전쟁터를 취재하는 동안 온갖 파괴를 보면서, 수십만 웃도는 주검 더미를 지나다니면서 절망 따위엔 면역이 되었다고 믿었던 나는 아쩨에서 허물어졌다. 속울음을 억누르며 부둣가로 달려갔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온 천지에 주검이 뒹굴었다. 너무 미안했다. 며칠이라도 더 일찍 이 땅에 오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1989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쩨 전역을 군사작전지역으로 선포한 뒤 처음으로 아쩨를 취재했던 외신기자로서, 2003년 계엄군사작전을 취재했던 유일한 외신기자로서 내가 느껴온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7장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 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중에서, 479p
자하라띠와 바우까는 민사뚜 록응아의 400명 아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100여 명, 그 가운데 둘이었다. 나도 세상도 그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도 국제사회도 그저 1년쯤 반짝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그이들한테 기껏 돈 몇 푼 던지는 걸로 모든 걸 때웠다. 이제 그 쓰나미 10주년이 다가온다고 난리들이다. 아쩨엔 온갖 행사를 알리는 간판이 나붙었고 외신기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
는 밤길은 어둡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나한테 던지는 질문으로 끝없이 시달렸다.
"내게 희망을 보여주었던 그 아이들한테 나는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내게 그 아이들도 쓰나미 10주년 행사용이 아니었을까?"
7장 '영웅을 위한 변명_ 동티모르 독립 13년' 중에서, 488~489p
시대정신_ "소외당한 현장, 그곳이 기자가 지켜야 할 중립이다."
"기자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런 말을 믿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중립'이란 말은 백인, 기독교, 자본주의, 서양중심주의로 무장한 나라 안팎 주류언론사가 떠받드는 신줏단지일 뿐이다. 중립을 앞세워 덩치를 키워온 국제공룡언론사는 제 입맛에 안 맞으면 어김없이 '중립성' 논란을 일으켜 몰매를 퍼부어댔다."
"죽기 살기로 남예멘에 들어갔던 건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예멘전쟁보도는 모조리 북예멘 중심으로만 쏟아졌다. 남예멘발 보도가 절실했던 때다. 저자가 소외당한 뉴스현장인 남예멘을 택한 까닭이다. 사정이 반대였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북예멘을 택했을 것이다."(242p)
저자는 그게 기자의 중립이고, 그곳이 기자가 서야 할 자리라 말한다.
소수민족해방군이나 학생군한테 총을 내리라고 난리 치기 전에 대규모 화력과 정규군을 동원해 시민을 학살해온 그 랑군 군인 독재자들을 다그쳤어야 옳다. 본디부터 군인 독재자들이 총을 거두면 국경은 자동으로 무장해제하는 구조를 지녀왔다. 국경은 결코 전
쟁을 원한 적이 없었다. 전쟁으로 군인 독재자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국경이 잘 알기 때문이다. 국경이 총을 든 건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가장 기쁜 마음으로 총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군사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온 이들이고, 가장 먼저 총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진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다. 바로 국경 사람들이다.
2장 '살윈강의 용_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신화' 중에서, 102~103p
2016년 오늘도 그 카슈미르 산악에는 인디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미국의 야심 찬 전쟁놀음에 볼모로 잡힌 고단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땅에는 아직도 포탄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인디아한테 점령당한 통제선 남쪽 카슈미르 사람들이 무력통치에 짓밟혀 온갖 박해를 받아왔다면, 파키스탄에 이용당해온 북쪽 카슈미르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은 채 전쟁에 시달려왔다. 그 세월이 벌써 69년이다.
국제사회는 카슈미르의 비명에 귀를 막았고, 카슈미르의 권리에 눈을 감았다. 돈줄이 흐르는 전쟁에는 모두가 빛나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그렇지 못한 평화에는 더러운 변명만 늘어놓았을 뿐.
4장 '접선_카슈미르, 분단의 비극' 중에서, 265p
'외국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아쩨를 취재해왔던 한국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정문태 기자가 본디 일정을 앞당겨 월요일 수마뜨라 메단으로 떠났다. 그이가 정부군한테 압력을 받아 아쩨를 떠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자까르따포스트〉, 2003년 6월 24일, 베르니 무수따파
자까르따로 돌아온 나는 꼴난 외국 기자 하나가 아쩨를 떠난 사실을 대문짝만하게 올린 현지 신문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 기사에서 동료들 마음을 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데 어울리며 내가 왜 아쩨를 떠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던 그이들은 외국 기자를 내세워서라도 정부군의 언론통제 사실을 독자한테 알리려고 했다. 아직은 언론이 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 있는 기자들이 있음으로!
4장 '사라져가는 저 별들, 저 별들_ 아쩨계엄군사작전, 자유아쩨운동을 박멸하라' 중에서, 328~329p
'왜 타밀 여성들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가?'
이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여성타이거의 전투력도 타이거 여성도 결코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껏 여성타이거 연구랍시고 내놓은 결과물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비틀어 여성타이거를 남성 지배체제의 강압에 따른 하부구조로 얕잡아 보거나, 적당히 동정심을 덧붙여 노예적 전쟁도구로 몰아붙이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그 연구자들 눈에는 여성타이거가 남성의 부속물이었고 못된 테러리스트였다. 전투력의 고갱이는 전투의지다. 그 전투의지의 원천이 참전동기란 것쯤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도 모르는 이가 없다.
6장 '타밀타이거_ 꽃다운 목숨을 바친 소녀들' 중에서, 431p
내용소개 2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취재해 새로 써서 보탠 내용을 아체, 동티모르, 버마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05 비밀전쟁
한국전쟁, 제2 전선 있었다_ 국민당 잔당, 버림받은 역사
저자는 "사료로 찾아낸 한국전쟁 제2전선의 존재 사실을 확인해줄 증언자"를 찾아 타이 북부 도미 매살롱과 타이를 오가며 1년 가까이 취재에 매달린 끝에 국민당 잔당 제8군 제709연대장으로 윈난 공격작전에 참전했던 슈쯔정 장군을 통해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낸다.
저자와 인터뷰에서 슈쯔정 장군은 "1951년 4월 몽삿에 온 CIA 요원 둘이 리미 장군한테 '윈난 쪽 인민해방군 공격해 전선을 분산시켜 한국전쟁 도와야 한다'고 했어. 내가 직접 들었어. 우리는 그 CIA 요원들과 함께 윈난으로 쳐들어갔지." "인민해방군한테 밀려 다 실패했지만 내가 CIA 지원받으며 윈난 공격한 것만도 1951년 4월과 7월 두 번이야. 그러다 1952년 8월 리미 장군이 직접 군사를 끌고 윈난 공격한 게 실패하면서 결국 한국전쟁 제2전선도 막 내린 셈이지. 내가 아는 것 말고도 뒤져보면 더 많은 한국전쟁 제2전선이 나올 거야"라고 증언한다.(399p) "50년 넘도록 비밀문서로만 나돌던 CIA의 오퍼레이션 페이퍼도, CIA의 국민당 잔당 지원도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나는 1년 가까이 이 취재에 매달리면서 무엇보다 한국전쟁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는 제2전선 존재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그러나 그 제2전선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효과를 거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국민당 잔당이 윈난 전략요충지 장악과 민중봉기에 실패함으로써 인민해방군 전력분산과 견제를 노렸던 CIA의 한국전쟁 제2전선 작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말하자면 트루먼이 꿈꾼 한국전쟁 제2전선은 인민해방군
이 압록강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미국 정보기관과 군부의 부실한 예측이 낳은 또 다른 낭만적 오판이었던 셈이다. 결국 CIA가 버마-윈난 국경에 펼친 제2전선은 한국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친 채, 오히려 국민당 잔당 덩치만 키워 지역 안보문제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고 한편으로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동남아시아 마약보급선을 폭발적으로 키운 패악질이 되고 말았다. _400p
07 내릴 수 없는 깃발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 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2002년 1월 자유아쩨운동 사령관 압둘라 시아피이가 정부군과 교전 끝에 사망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아 4,000여 게릴라를 이"끈 자유아쩨운동 전 사령관은 무자끼르 마납은 휴전을 거쳐 2006년 12월 "주지사 선거 때 독립후보로 나선 자유아쩨운동 출신 이르완디 유숩을 지원하며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497p) 지금은 아쩨 자치주 의회 제1당인 아쩨당 대표에 아쩨 자치주 부지사인 그를 "사람들은 아쩨 실권자라 여긴다."
저자는 "오늘 아쩨 현실에서 무자끼르 팔자를 가늠하긴 힘들다. 아쩨 현대사가 낳은 영웅인지, 장애물인지 아직은 또렷치 않다. 이건 독립을 꿈꾸었던 자유아쩨운동이 자치라는 반쪽짜리 혁명에 성공하고부터 부딪친 역사의 고민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다만 저자가 무자끼르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아쩨의 운명이 무자끼르 손에 들린 것만큼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지금 아쩨에 또렷한 건 오직 하나다. "아쩨를 사로잡은 두려움이다. 아쩨엔 두려움이 몸에 밴 사람들이 살고 있다. 29년 전쟁에 쓰나미에 아직 게릴라 습성을 못 버린 풋내기 정부와 마주친 아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속내를 감춘다. 정치가 독주할 조건을 갖췄고 무자끼르가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쩨 사람들은 무자끼르를 좋다 싫다 보다는 무서워하는 분위기다. 아직은 아쩨 평화를 말하기 힘든 까닭이다."(505p)
무자끼르가 "투쟁은 아쩨에서 한다. 무장투쟁은 망명정부와 상관없다"며 아쩨 산악 게릴라들 상황을 살피지 않고 망명정부 입장만 앞세운 그 휴전에 대놓고 불만을 터트렸던 탓이다. 그때부터 76세대들 사이에는 "우리가 무자끼르 같은 아이들을 데려와서 키웠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건 세상 어디서든 기득권을 놓기 싫은 기성세대가 툭하면 입에 올리는 질 낮은 표현이다. _504p
9년 만에 다시 찾은 아쩨는 분쟁과 휴전을 거쳐 자치로 정치적 해법을 찾은 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아시아 현대사의 소중한 실험실이었다. 우리가 아쩨를 조심스레 지켜보고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_506p
영웅을 위한 변명_ 동티모르 독립 13년
2006년 2월, 독립 4년 만에 방위병들의 무장탈영으로 난장판이 된 동티모르. 저자는 "인터뷰에서 알카티리 총리 입을 통해 '나라 안팎 세력'과 '쿠데타'라는 핵심어 둘을 잡아냈다. 그건 말할 나위도 없이 '샤나나-오스트레일리아-미국' 라인이었다." 알카티리 총리가 왜 샤나나 대통령한테 혐의를 두었을까? "샤나나는 대통령 역할을 다하지 않은 데다 스스로 정치혼란의 한가운데 섰"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사회통합의 상징 같은 인물이자 대통령이 오히려 말썽을 일으키며 알카티리 합법정부를 수렁에 빠트리는 선봉장 노릇을 했다."(520p)
"시민 50%가 실업자고 시민 5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이 신생공화국의 사회적 불만이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300년 넘도록 포르투갈, 일본, 인도네시아한테 식민지배당해온 빈털터리 동티모르를 알카티리 정부가 독립 4년 만에 풍요로운 땅으로 바꿔놓는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주제도 아래 시민이 새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탈영병이든 대통령이든 누구도 극단적 행위로 합법정부를 뒤집을 권리가 없었다."(523p)
"돌이켜보면 샤나나는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전부터 대통령중심제를 요구하며 내각제를 원한 알카티리와 충돌했던 주인공이다. (…) 결국 알카티리 뜻대로 내각책임제가 되면서 대통령은 상징뿐인 허수아비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렇게 샤나나는 총리 알카티리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정치혼란의 진원지 노릇을 해"온 게 사실이었다.(528p)
그렇게 둘 사이의 갈등은 샤나나 대통령에게 안부편지를 받는 탈영한 반란군 우두머리의 "반란, 체포, 탈옥, 그리고 투항명령"(532p)으로 이어지면서 1년 만에 알카티리 축출로 끝이 났고, 2008년 "2월 11일 아침, 오르타 대통령과 샤나나 총리 연쇄 암살기도 뉴스가 터졌다.
"대답보다 의문이 더 많았던 두 암살기도 사건은 1년도 더 지난 2009년 7월 13일 관련자 28명을 딜리 법정에 세웠"지만 결국 "두 암살기도 사건은 누가, 왜 대통령과 총리를 쏘았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다."
저자는 동티모르 13년 정치극 앞에서 "가능성을 붙들어 매고 버텨야 하는 숙명을 지닌" 저널리스트로서 "물증이 없으면 물음표를 붙여서라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내게 동티모르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테러리스트의 눈물_ 버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자는 2004년 10월 버마뿐 아니라 세상에 달군 '승복혁명'을 비보도를 전제로 취재했던 사실들을 이제야 털어놓는다. "승복 혁명은 그동안 세상에 알려졌던 승려시위로만 볼 수 없다. 애초 승복혁명은 랑군과 국경이 손잡고 꼼꼼하게 판을 짠 공동작품이었다.""국경이 재정과 장비 지원뿐 아니라 선전대 노릇까지 해왔다는 뜻이다." "국경 조직을 통해 미국 국무부가 승복혁명에 적잖은 뒷돈을 댔던 사실도 드러났다."(556p)
승복혁명을 무력진압한 군사정부는 총선을 통해 2011년 3월 테인세인을 대통령으로 준군사정부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사회와 경제가 거덜 난 난파선이었다. 이른바 중국 포위전략에 구멍 난 버마가 필요했던 미국도 움직였다.
그사이 국경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2011년 말쯤부터 정부와 주고받은 밀담 사연. "2012년 초로 접어들면서 북부 까친독립군을 빼고는 모든 소수민족해방 세력이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동안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던 버마학생민주전선 쪽에서도 밀담소문이 흘러나왔다.
2012년 2월 9일,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정부 평화협상단과 매솟에서 만남
2012년 5월,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vs 대통령실 장관 아웅민, 밀담
2012년 11월 7일, 88세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치앙마이로 이동
2012년 11월 11일 밤 9시, 88새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첫 번째 만남
8888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두 주인공은 반독재?민주화라는 한 목표 아래 싸웠지만 1930년대 학생운동 때부터 대물림해온 쿳다웅(싸우는 공작) 깃발을 놓고 경쟁의식을 지녀왔다. 이건 버마학생민주전선이 태어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국경에 뿌리를 둔 버마학생민주전선은 8888민주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줏대였고 조직이름에서 보듯 '학생'을 내걸었지만 실제는 노동자, 농민, 교사, 예술가를 비롯해 여러 소수민족 젊은이까지 끌어안은 대중조직이었다. 랑군에 뿌리를 둔 88세대학생그룹은 말 그대로 8888민주항쟁을 이끌었던 학생운동 핵심지도부가 만든 조직으로 강한 성골의식을 지녀왔다. 그러니 '학생'을 내건 두 진영 사이에 적자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_568p
2012년 11월 12일 새벽, 88세대학생그룹 대표단 7명 돌아감
2012년 12월 18일 오전 7시, 버마학생민주전선 중앙위원 대표단 9명, 매솟 도착
2012년 12월 18일 밤 11시, 미얀마평화센터 도착
2012년 12월 19일 오전 10시, 88세대학생그룹 사무실 방문
버마학생민주전선과 두 번째 만남
2012년 12월 21일,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 버마연방학생회 의장 민꼬나잉
공동 기자회견 실시
버마학생민주전선과 88세대학생그룹의 회담은 버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88세대학생그룹 사무실엔 50명 웃도는 현지 기자가 들이닥쳤고 다음 날부터 버마학생민주전선을 1면 톱에 올린 신문들이 줄줄이 가판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테인세인 정부의 변화를 허튼짓이라 의심해왔던 학생군 대표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_577p
2012년 12월 24일 새벽 5시, 탄케, 학생군 대표단, 네이삐도로 이동
2012년 12월 24일 오후 1시,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 먀예 교육장관 등과 공식 회담
"대통령 집무실 별관, 정부 쪽에서는 휴전회담을 이끌어온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에 마예 교육장관을 비롯해 장관 넷과 차관 일곱 명이 나섰다. 예상 보다 훨씬 높은 수위로 학생군 대표단을 맞았다. 정부가 학생군과 휴전협정에 그만큼 공을 들인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인사치레쯤으로 끝나리라 여겼던 회감도 다섯 시간이나 이어졌다. (…) 회담장 안은 서로 협력을 다짐하고 웃음이 넘쳤지만 결국 악수가 다일 수밖에 없었다." _579~580p
2012년 12월 25일, 탄케, 학생군 대표단, 24년 만에 귀향
2013년 1월 6일. 대표단은 현실점검여행을 끝내고 국경전선으로 되돌아왔다.
20일 동안 학생군 대표단과 함께한 저자는 탄케가 랑군에서 했던 마지막 말을 기록한다. "쿳다웅 깃발을 접어서 비굴하게 랑군으로 되돌아오지는 않겠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자으로서 현실점검여행엔 가장 먼저 랑군으로 달려왔지만 진짜 귀향의 날이 오면 모든 동지를 무사히 랑군으로 돌려보낸 뒤 맨 마지막으로 쿳다웅을 펄럭이며 되돌아오겠다." (587p)
"현실점검행 뒤 버마학생민주전선과 정부는 줄기차게 머리를 맞댔고 결국 2013년 8월 휴전협정을 맺고 8월 5일 미얀마평화센터에서 이웅민 장관이 이끄는 정부대표단과 탄케가 이끄는 학생군 대표단이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민꼬나잉을 비롯한 버마 안팎 참관인단과 100여 명 기자가 그 주 단위 휴전 협정 서명을 지켜보았다. 10일에는 연방단위 휴전협정까지 서명하면서 학생군과 정부군은 전면휴전을 선언했"지만 탄케는 "휴전은 전쟁의 일부"임을 되새긴다.(588p)
저자는 탄케와 더불어 민꼬나잉에 각별히 주목한다.
"분열과 배신을 되풀이해온 버마 현대사에서 모두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민꼬나잉이다. 군인 아니면 아웅산수찌뿐인 메마른 시민사회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국경에서도 사람들이 민꼬나잉을 불러온 까닭이다." "청춘을 감옥에 바친 민꼬나잉은 민주화 운동 동력이 시민 품에서 나와야 버마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온 스승이다. 민꼬나잉은 비폭력 평화가 최후, 최고 투쟁방법임을 몸 던져 보여준 진정한 혁명가다." "내가 믿는 이도, 내가 따르는 이도 오직 한 사람 민꼬나잉은뿐이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탄케 입에서 나온 말이다."(595p)
절망할 건 없다. 24년 전 맨손으로 국경 민주혁명전선에 올랐던 수많은 '탄케'가 자신들을 쫓아냈던 바로 그 군인들 앞에서 오늘 당당히 정치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싸우는 이들의 몫이었고, 역사는 그 싸우는 이들 편이었다는 사실을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증명했다. 탄케를 비롯한 아홉 명이 단 20일 동안 버마를 휘젓고 다니면서 오롯이 보여주었다. _587p
목차
목차
1장 전선의 꽃, 전선의 부랑아들
종군기자라고?_전선기자의 고민 15 | 전쟁이 끝나는 날 함께 사라진다_전선기자의 운명 26
2장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
싸우는 공작_버마학생민주전선 사선의 노래 49 | 잠자는 개_작전명 용왕, 마너플로우를 점령하라 70 | 살윈강의 용_버마학생민주전선의 신화 86 | 배반의 계절_마너플로우 최후의 날 104
3장 끝없는 전쟁
카불, 1993년_신이 버린 전쟁 125 | 무슬림이 아니면 이슬람을 말할 수 없다_탈리반, 비극적 결함 145 | 눈 덮인 산악에서 메마른 사막을 보다_바미얀, 천년전쟁 168 | 판쉴의 사자 _누가 마수드를 죽였는가? 192
4장 멀고 먼 전선
홍해를 넘어_과거 속으로 사라진 예멘전쟁 231 | 접선_카슈미르, 분단의 비극 251 | 저격수_팔레스타인 전선의 분노 266 | "인도주의 폭격"_코소보전쟁은 유고 침공이었다 280 | 사라져가는 저 별들, 저 별들_아쩨계엄군사작전, 자유아쩨운동을 박멸하라 307
5장 비밀전쟁
비밀전쟁_끝나지 않은 전쟁, 미국의 라오스 침공 333 | 킬링필드, 미국이 먼저 저질렀다!_또 다른 주범, 미국을 기억하라 348 | 낙원의 비밀_발리 학살 368 | 한국전쟁, 제2전선 있었다_국민당 잔당, 버림받은 역사 389
6장 가슴에 묻은 이야기들
타밀타이거_꽃다운 목숨을 바친 소녀들 427 | 마지막 눈물_동티모르 독립과 나 445 | 전선기자의 고향_방콕·제2전선 460
7장 내릴 수 없는 깃발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477 | 영웅을 위한 변명_동티모르 독립 13년 507 | 테러리스트의 눈물_버마, 어디로 가고 있는가? 550
종군기자라고?_전선기자의 고민 15 | 전쟁이 끝나는 날 함께 사라진다_전선기자의 운명 26
2장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
싸우는 공작_버마학생민주전선 사선의 노래 49 | 잠자는 개_작전명 용왕, 마너플로우를 점령하라 70 | 살윈강의 용_버마학생민주전선의 신화 86 | 배반의 계절_마너플로우 최후의 날 104
3장 끝없는 전쟁
카불, 1993년_신이 버린 전쟁 125 | 무슬림이 아니면 이슬람을 말할 수 없다_탈리반, 비극적 결함 145 | 눈 덮인 산악에서 메마른 사막을 보다_바미얀, 천년전쟁 168 | 판쉴의 사자 _누가 마수드를 죽였는가? 192
4장 멀고 먼 전선
홍해를 넘어_과거 속으로 사라진 예멘전쟁 231 | 접선_카슈미르, 분단의 비극 251 | 저격수_팔레스타인 전선의 분노 266 | "인도주의 폭격"_코소보전쟁은 유고 침공이었다 280 | 사라져가는 저 별들, 저 별들_아쩨계엄군사작전, 자유아쩨운동을 박멸하라 307
5장 비밀전쟁
비밀전쟁_끝나지 않은 전쟁, 미국의 라오스 침공 333 | 킬링필드, 미국이 먼저 저질렀다!_또 다른 주범, 미국을 기억하라 348 | 낙원의 비밀_발리 학살 368 | 한국전쟁, 제2전선 있었다_국민당 잔당, 버림받은 역사 389
6장 가슴에 묻은 이야기들
타밀타이거_꽃다운 목숨을 바친 소녀들 427 | 마지막 눈물_동티모르 독립과 나 445 | 전선기자의 고향_방콕·제2전선 460
7장 내릴 수 없는 깃발
분쟁과 평화의 실험실_도시로 간 자유아쩨운동 게릴라 477 | 영웅을 위한 변명_동티모르 독립 13년 507 | 테러리스트의 눈물_버마, 어디로 가고 있는가? 550
저자
저자
정문태
저자 정문태는 전선기자와 외신기자 역사가 짧은 한국 언론에서 20년 넘게 국제 뉴스 현장을 달려온 정문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제 언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전선을 뛴 기자로 또 가장 많은 최고위급 정치인을 인터뷰한 기자로 꼽힌다. 그이는 40여 개 전선을 뛰고 50여 명에 이르는 대통령, 총리, 혁명지도자를 인터뷰해 수많은 특종을 날리면서 한국 언론을 국제언론으로 남몰래 키워놓기도 했다. 특히 그이가 '아시아 뉴스를 아시아의 손으로'란 구호 아래 아시아 진보 언론인들을 조직한 〈아시아네트워크〉 실험은 일찍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언론이 가져보지 못한 값진 도전이었다.
저서로 '아시아네트워크' 필자들과 함께 쓴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2003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 《위험한 프레임》이 있다.
저서로 '아시아네트워크' 필자들과 함께 쓴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2003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 《위험한 프레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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