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만리(신화를 삼킨 섬)(지혜사랑 대서사시집 5)(양장본 Hardcover)
송수권 시집
『문학사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송수권 시인의 시집 [흑룡만리]. 송수권 시인은 예부터 우리 선조들이 부리던 손때 묻은 전통시의 연장을 들고 우직하게 전통시의 우물을 파고들어가 마침내 가장 깊고 맑은 전통 서정시의 물을 길어 올렸다. 그의 시는 좁게는 소월, 영랑, 백석, 미당으로 이어지는 전통 서정시의 미학과 형식을 잇고 있지만, 넓게는 정지용과 이용악 시의 언어와 심상까지 품고 있어 우리 전통시의 그릇을 크게 확장해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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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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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40년에 가까운 오랫동안 여러 시세계를 탐색해 나갔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놓지 않고 응시했던 하나의 시선은 우리 겨레의 심성이다. 그의 시는 남도의 미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는 이 지역에 머물지 않고 우리 강산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유람하면서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심어져 있는 진정한 정신세계를 통찰해 내었다. 한과 이별의 미학에 머물렀던 우리 전통시의 미학을 넘어 그것을 묵묵히 껴안으며 형성된 넉넉한 품새의 넓은 도량과 형언할 수없이 깊은 아름다움을 절절한 언어로 그려내어 우리 겨레의 진정한 혼을 일깨운 것은 송수권 시인이 얻은 득의의 시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또한 우리 토착어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사전에서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들, 또 지역에서만 맴돌고 있는 정감 넘치고 감칠맛 나는 우리말들이 그의 시 안에서 더욱 빛나는 언어로 거듭나고 있다.
― 고형진, 고려대학교 교수ㆍ문학평론가
송수권 시인이 제주를 절로 사랑하는 시심이 어디 이것뿐인가.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가 아름답다는/것을 안다"(「슬픈 유산」)고 한 시인은 "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살암시면 살아진다라고 말한다"(「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에 응축된 제주의 모든 것들에 그의 온감각을 개방하고 있다. 이것은 제주의 생의 감각과 교감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에서 체념어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보다 앞서 그의 시편에서 읽어본 것처럼 제주와 제주인의 삶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제주 특유의 억척스러운 삶의 근성으로 살아내는, 즉 삶의 바닥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치고 일어나는 삶의 의지를 그는 온몸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음미하건대 송수권의 시편에서 제주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섬"(「수눌음」)이다.
-----고명철, 광운대 교수, 문학평론가
그때 서애청(서북청년단) 사람들 2천명이/'쥐잡이작전'이란 소탕 명령을 받고 빨갱이 잡는다고/ 한라산으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굴 속에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든 것이지요. 모두가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굴 속을 4km 파고 들었다가 미아가 되어/ 겨우 이틀만에 살아 나온 것입니다. 이는 2001년 6월 22일에/ 있었던 양태병(74.어음리) 씨의 증언이다/
- 「빌레못 사람들」 부분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외양간이 불타고 마방이 불타고/ 봄에 뿌릴 씨감자 오쟁이까지/ 불탄다/ 불탄다// 물 건너온 저 잡귀신들을 그냥/ 어쩐다냐/ 아가야, 네가 입어야 할 봇뒤창옷까지 다 불탄다/ 우리는 어쩐다냐
- 「불타는 섬」 부분
살아감서 다 잊었다만 또 꿈에서조차/ 그런 날이 올까 가위눌릴 때가 있구나/ 너는 구덕 안에 있어 모르겠지만/ 그때(1948.11.13.)/ 조천면 교래실 우리 마을 100여 호가/ 모두 불타 없어졌구나/ 마을 사람들이 무장대에게 식량과 은신처/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탓으로/ 한밤중 토벌대들이 들어와 모두 불태웠지/ 나는 설마하니 어린애들까지 어쩌랴 하고/ 그냥 집에 남아 있었지/ 토벌대는 끝내 우리집까지 불을 지르며 덮쳤고/ 나는 잠든 너를 구덕안에 처넣은 채 짊어지고 나와/ 뒤꼍 묵시물동굴까지 뛰었지/ 토벌대는 마구 총질을 해댔지/ 총알이 내 옆구리를 뚫고 갔어/ 구덕 안에서 너는 자지러지게 울었어/ 그때서야 구덕을 내려 놓고 보니/ 내 옆구리를 뚫은 총알이 포대기 속을 파고들어/ 너의 왼쪽 무릎을 부숴놓고 있었지/ 너와 내가 받은 총알자국 흔적이 평생/ 우리 모녀 집안 내력이구나/
- 「찜질방에서」 부분
4ㆍ3사건의 역사적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우역곡절 끝에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시편에서 단적으로 읽을 수 있듯이, 극단적 반공주의로 무장된 서북청년단에 의한 한라산 소탕작전, 그 과정에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무고한 양민들의 처참한 죽음은 한라산 중산간 지대를 핏빛으로 물들였으며, 화마(火魔)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켜 검은 잿더미로 만들었다. 삶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말 그대로 고귀한 생명만을 간신히 유지한 채 피신 도중 제 살 속을 파고든 총알의 고통을 환기하곤 한다. 문제는 그것도 모자라 어린 생명의 무릎을 침범하여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진 것 같은데 망각의 각질에 균열을 내고 오늘까지 틈틈이 의식의 수면 위로 불쑥 고개를 치켜든다는 사실이다. 4ㆍ3사건의 상처와 고통은 현재진행중이다. 4ㆍ3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인의 시작(詩作)은 겸허하다. 우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때, 그곳으로 시인은 돌아간다. 그래서 그때, 그곳에서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가감없이 생생한 실감으로 체험한다. 4ㆍ3의 화마가 엄습한 곳에서 갓난애의 배냇저고리인 제주의 봇뒤창옷이 불타는 장면을 대단히 차분하게 지켜본다. 그리고 희생자의 증언을 가만히 듣는다. 마치 할망당의 여신이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듯이 그는 마치 여신에 빙의가 된 것인 양 온갖 사연들에 귀를 내준다. 이 시적 태도는 4ㆍ3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역사적 진실을 해명하는 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중요한 방편이다. 4ㆍ3에 대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연한 현실 아래 4ㆍ3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냉전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인류를 위한 평화의 원대한 가치를 심화 ㆍ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4ㆍ3 당사자의 목소리를 편벽되지 않게 경청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 안 된다. 바로 여기서 시인이 강조하는 '작은 상징'의 힘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큰 상징은 한 시대의 정신을 찌르고, 작은 상징 하나는 삶을 바꾸어 놓는 시침時針과 같다. 그러므로 큰 상징은 종교와 철학에 있고 작은 상징은 시詩의 언어 속에 있다."?「작은 상징」). 말하자면, 송수권 시인의 4ㆍ3에 대한 시작(詩作)은 4ㆍ3과 제주를 왜곡하는 삶을 바꿔놓는 시침(時針)의 몫을 수행하는 것이다.
마름으로 들어온 천주교 왈패들은/ 가축, 밀감나무, 계란에까지 세금을 매겼다/ 주민들은 견디다 못해 병귤 나무 뿌리에 독약을 부었고/ 민회民會를 조직하여 성내城內로 들어가 항거했다/ 그러나 프랑스 신부와 교도들은 이를 박해와 민란으로 규정했고/ 발포로 사상자가 속출한다/ 평화적 시위는 무력 충돌로 번졌다// 4ㆍ3 항쟁과 이재수의 난은/ 어쩌면 이리도 중앙정부와 외세의 항거로까지/ 닮은 꼴인가
- 「이재수의 난과 드레물」 부분
4ㆍ3을 진압하면서 남로당 일색이라고/ '붉은섬'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던/
경무부장의 뺨을 후려치고 싶고/ 이 '푸른 섬'에 지금까지 굴뚝 공장이/
발을 붙일 수 없는 까닭도/ 해녀박물관에 와서야 알았다
- 「빗창시위」 부분
우리는 시인의 명징하고 웅숭깊은 역사 안목으로부터 4ㆍ3사건이 갑자기 평지돌출한 냉전 갈등의 양상이 아니라 근대 전환기 제주인의 삶을 위협한 봉건적 모순과 억압 및 이들 봉건세력과 야합한 서구제국주의에 맞서 민중 봉기로 일어난 신축제주항쟁(1901, 이른바 이재수의 난)과 겹쳐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최초의 여성 항일투쟁이면서 조직적으로 거세게 일어난 제주해녀항일투쟁(1932)이 지닌 저항의 맥락 속에서 4ㆍ3사건을 인식해야 한다. 그럴 때 4ㆍ3사건을 따라다닌 낡고 시대 퇴행적 성격의 정치억압, 곧 "4ㆍ3을 진압하면서 남로당 일색이라고/'붉은섬'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던/경무부장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시인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시집 [흑룡만리]를 읽으면서 송수권 시인의 제주의 역사를 향한 명민한 인식에 대해 쉽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마치 제주 사람의 뜨거운 피가 그의 혈관 구석구석에서 감도는 것처럼 제주의 생활감각에 자연스레 젖어있다는 점이다. 소박하고 단촐하게 말한다면, 그는 제주 사람 못지 않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제주의 모든 것을 자연스레 사랑한다.
새기 도새기 소낭 낭밭 어멍이란 말/ 제주말은 귀에 설어도 아름답기만 하다./ 그 중에서도 코시롱한 맛이란 말과 맨드롱이라는 말을/ 나는 더욱 좋아한다.// 모자반을 숭숭 썰어 넣어 도새기 살을 으깬/ 늘냇내 나는 느름 몸국을 좋아하고/ 절이 잘 삭은 자리젓에서 올라오는/ 쿠릿한 냄새를 사랑하고/ 돌하르방이란 그늘진 말도 사랑한다.
- 「설두」 부분
서귀포에 한/ 천 년쯤 오는 눈이/ 키 큰 삼나무 숲 하나를 적시고 적시어/ 뿌리째 흔들어 놓는 것을 보았다/ 부드러움은 결코 차거움이 아니라/ 따뜻함이며 그것은 스며들고 스며들어/ 끝없이 포옹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라산 가까운 데서는/ 비자림의 숲이 무너지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처음 정방폭포에 섰을 때/ 바다로 가벼운 물방울들이 풀어지는/ 아름다운 그 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또한 산굼부리의 분화구 침묵을/ 산갈대들의 몸놀림이 조금씩 풀어내는/ 原始의 생음악과도 같았다/
- 「따뜻한 손」 부분
제주 사람이 아닌 한 제주어의 미감을 만끽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다른 지역의 말보다 유달리 유음과 비음이 발달하고 아래아(????)의 음가(音價)가 아직도 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보니 혹자는 중세국어의 흔적이 제주어에 많이 남아 있어 민족어의 보고(寶庫)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표준어 해석이 뒤따라야 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어휘들이 육지의 언어와 다른 섬의 언어 특질을 보여준다. 이러한 육지의 언어와 생경히 다른 제주어의 미감을 시인은 세밀히 포착하고 있으며, 제주 특유의 미각과 후각을 자연스레 즐기고 있다. 여기서, 송수권 시인이 제주의 운명과 함께 해온 언어의 미감과 미각, 그리고 후각과 친연성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라산 남쪽 서귀포에 내리는 눈이 냉온(冷溫)의 감각을 교묘히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한라산 중산간 지대를 휘감는 숲의 소리와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물소리, 그리고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산굼부리의 분화구 주변에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억새의 흔들림이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원시의 생음악" 소리를 귀신 같이 듣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때문에 그는 제주의 들꽃에 들리는 신명을 보인다.
앞오름 체오름 다랑쉬 용눈이꽃오름/ 오름오름마다 쇠똥내 말오줌 퍼질러져/
설문대 할망 거름 보시로 질펀하다/ 이 가을은 지린내에 젖어 들꽃처럼 피고 지고/ 들꽃이 어우러진 들꽃 세상/ 나도 그 들꽃세상에서 들병이처럼 들린다./
- 「들꽃세상」 부분
송수권 시인이 제주를 절로 사랑하는 시심이 어디 이것뿐인가.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가 아름답다는/것을 안다"(「슬픈 유산」)고 한 시인은 "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살암시면 살아진다라고 말한다"(「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에 응축된 제주의 모든 것들에 그의 온감각을 개방하고 있다. 이것은 제주의 생의 감각과 교감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에서 체념어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보다 앞서 그의 시편에서 읽어본 것처럼 제주와 제주인의 삶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제주 특유의 억척스러운 삶의 근성으로 살아내는, 즉 삶의 바닥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치고 일어나는 삶의 의지를 그는 온몸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음미하건대 송수권의 시편에서 제주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섬"(「수눌음」)이다.
그런데, 이 섬이 몹시 아프다. 분노한다. 그리고 허탈해한다. 제주의 '환해장성(環海長城)-흑룡만리(黑龍萬里)'가 절단나고 있다. 수억년 우주의 탄생과 함께 생명을 유지해온 강정마을의 바다 암반 구럼비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파괴되고 있으며, "구럼비 마을은 바야흐로 지금 때늦게/물 속으로 가라앉는 중"(「구럼비 마을」)이다. 구럼비 마을에 또 다시 4ㆍ3의 암연(?然)이 감돈다. 제주 사람들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칫 "평화의 섬 자연의 섬 신화를 삼킴 섬"이 "바람타는 섬, 불타는 섬"(「도둑맞은 인장」)으로 휩싸일 것을 경계한다. 그렇다. 아직도 제주는 그동안 제주를 위협한 온갖 외부의 식민세력들로부터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작, 제주는 "한라산 중산간 마을들의 밭 다믈을 따라 돌고 있"(「흑룡만리」)는 '제주의 돌담-흑룡만리(黑龍萬里)'가 제주의 외세에 의해 절단난 고통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제주는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의 곳곳에서 드러나듯이 이 불가항력의 응전을 쉼 없이 해내는, 제주가 지닌 도저하고 치열한 생의 감각의 그 영원성을 벼리고 있으리라.
도환생꽃으로 문지르면 숨이 돌아오고/ 피살이꽃으로 문지르면 죽은 넋들 돌아오려나/ 도령아 문 열어라 문도령아 문 열어라/ 꽃 감관 세경 할망 들어가신다/ 한라산 바람꽃도 제주 왕나비도 모두 한 꽃잎에 앉았구나
- 「서천꽃밭」 부분
목차
목차
1부
신화를 삼킨 섬 10
흑룡만리黑龍萬里 13
바람타는 섬 15
당구덕 20
순이삼촌 21
심방길 22
당할미들 24
죽음의 트라우마 25
사농꾼들 27
불타는 섬 29
빙떡 31
수눌음 32
정낭 ―닫힘과 열림 33
꽃놀이 패 34
탐라 개국을 엿보다 36
2부
김굴산金窟山 40
구럼비 마을 42
도둑맞은 인장 44
성읍 민속촌에서 일박 45
산 노을 47
바람이 현무암에 새기고 간 말 48
사란결寫蘭訣 ―대정골 추사관에서 49
목호牧胡의 난 51
이재수李在守의 난과 드레물 53
설두 56
감 따는 아이들 ─한림읍 금능석물원에서·2 58
조랑말을 타고 59
공중발사 60
곡두 ─종마장種馬場에서 61
굅시 든 날 아침 62
3부
들꽃 세상 66
빌레못 사람들 68
받이물 69
찜질방에서 70
가마오름 지하동굴 속에서 72
빗창시위 74
뒤웅박 76
우리들의 땅 77
중문 해녀의 집에서 79
관탈도冠脫島 80
슬픈 유산遺産 81
지삿개 주상절리대 82
명지바람나들가게 83
잠자는 돌 ─한림읍 금능석물원에서·1 84
봄날·1 85
봄날·2 86
4부
작은 상징 88
고사리장마 89
이장移葬 91
고향 93
향전梅 ─拔齒說話 94
歲寒圖 96
따뜻한 손 97
동굴의 우화 99
너분숭이 봄을 부르는 민들레 100
화가 이중섭의 방 101
까마귀쪽나무숲 102
마지막 테우리 103
결7호 작전과 토코타이神風隊 1번지 송악산 105
애월 107
이어도 108
서천꽃밭 109
숨비기꽃 사랑 111
송수권 시인 프로필 113
참고 자료편 115
저자
저자
제주 4ㆍ3 사건이란 무엇인가? 제주 4ㆍ3 사건이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사건을 말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을 하고 미군정 시대에 재등장한 친일세력들이 그들만의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고자 했을 때, 남조선노동당은 그것을 격렬하게 반대를 했던 것이다. 친미, 또는 친일 잔존세력들과 공산주의자들의 그 격렬했던 사상과 이념 투쟁 사이에서, 그 어느 노선도 아니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무자비하게 대량학살되었던 것이다. 송수권 시인의 『흑룡만리黑龍萬里』는 {새야새야 파랑새야}, {달궁 아리랑}, {빨치산}에 이은 네 번째 장편 대서사시집이며, 일제식민시대를 거쳐서, 남북분단과 좌우 이념투쟁에 희생된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가라고 할 수가 있다. 하루바삐 우리 한국인들의 역사적 상처와 그 아픔을 치유하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노老 시인의 정신이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기념비적인 대서사시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이탈리아의 단테가 있듯이, 우리 한국문학사도 이제는 송수권 시인이라는 대서사시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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