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졌다(J. H Classic 8)(양장본 Hardcover)
황영숙 시집
황영숙 시집『따뜻해졌다』. 황영숙 시인의 시학의 근저에는 ‘울음’의 정서와 ‘사랑’의 행위가 편재적(遍在的)으로 깔려 있다. 물론 시인의 시편에 착색되어 있는 ‘울음’은, 격정이나 비극이나 감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차분하고 관조적인 자기 성찰적 속성이나 타자를 향한 지극한 연민의 성격을 띠고 있어, 우리는 그 ‘울음’을 통해 인간 존재를 향한 시인의 가없는 ‘사랑’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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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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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산을 넘어오니
언제 왔는지 달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울었구나
달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달을 따라 오던 별들이
싸늘한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차가운 우주의 모든 손들이
따뜻해졌다
― 「따뜻해졌다」 전문
해안 길 돌아가는 길목에
상추 두 고랑 가지 한 고랑 쑥갓 한 고랑 고추 두 고랑
그 사이 사이에
햇빛 한 고랑 이슬 한 고랑 빗물 한 고랑
저희들끼리 어울려 잘도 논다
비탈길 위로 도시로 가는 길엔
차들이 무섭게 달리고 있지만
천진한 아이처럼 잘도 자란다
울타리를 넘나들며 동네 안부를 전해주는
나팔꽃의 입술이 너무 고와서
지나가던 구름이 잠시 머무는 곳
하늘이 하루종일 지켜보고 있는
저 따뜻한 평화
― 「따뜻한 평화」 전문
이 따뜻함의 연쇄는, 이번 시집이 추구하는 주제를 강하게 암시하면서, 황영숙 시학의 생래적 온기를 확연하게 대변해준다. 앞 시편은 '먼 길'을 혼자 걸어온 시인이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달빛과 만나는 상상적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황영숙 시편의 기본 정조(情調)는 단연 '울음'에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울면서 걸어온 세월을 "달을 따라 오던 별들"도 함께 위안해주는 순간, "차가운 우주의 모든 손들이/따뜻해졌다"는 이 온기 전이(轉移)는, 그 자체로 서정시가 가져야 할 직능의 은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시는 "실핏줄 같은 생애를 풀어 허공에 길을" 내며 걸어온 후에 흘리는 "맑은 성자의 눈물"(「거미의 詩」)과도 같은 것일 터이다. 이처럼 따뜻하게 전해져오는 정서적 감염은 뒤의 시편으로 이어지면서 '따뜻한 평화'를 생성해간다. 여기서 시인은 '상추/가지/쑥갓/고추'가 느런하게 심겨진 "그 사이 사이에" 어울려 노는 "햇빛 한 고랑 이슬 한 고랑 빗물 한 고랑"을 배치함으로써 '따뜻한 평화'의 감각적 풍경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도시/차들/속도'의 반대편에서 천진한 아이처럼 자라가는 이 자연 사물들의 생태에 순간적으로 동참한다. '나팔꽃'과 '구름'이 머물며 어울리는 곳에서는 '하늘'도 하루종일 그 "따뜻한 평화"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 불가침의 평화스러운 장면은, 마치 "돌이 된 그대 심장에 온 몸을 새긴/저 천 년의 사랑"(「마애불」)처럼, 오래고 느린 시간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시인의 사랑이 반영된 것일 터이다.
이처럼 황영숙 시학의 근저에는 '울음'의 정서와 '사랑'의 행위가 편재적(遍在的)으로 깔려 있다. 물론 그녀 시편에 착색되어 있는 '울음'은, 격정이나 비극이나 감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차분하고 관조적인 자기 성찰적 속성이나 타자를 향한 지극한 연민의 성격을 띠고 있어, 우리는 그 '울음'을 통해 인간 존재를 향한 시인의 가없는 '사랑'을 읽게 된다. 따라서 그 '울음'은 그쳐야 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존재 조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개재하는 친화적 정서나 행위를 총체적으로 표상한다. 그 점에서 황영숙 시편에 등장하는 대상들이 한결같이 '울음'을 환기하는 '슬픔'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자라는 점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목차
목차
1부
초승달 12
은검초 13
상강霜降 14
따뜻해졌다 15
도다리 16
답장 18
목 백일홍 19
문득 달이 떴다 20
무덤 21
서정시 쓰는 여자 22
마애불 23
달과 밤 24
겨울산 25
그리움 26
민박일기 27
2부
막춤 30
푸른 바다 거북이 32
옥양목 속치마 33
망망대해 34
어느 봄날 36
뱀 37
점례 39
그집 41
일몰 43
봉숭아에게 44
저 어린 것들 45
이장移葬 46
소나기 47
꽃의 말 49
거미의 詩 50
3부
마음 52
거울이야기 53
개미 55
미꾸라지 57
가을저녁 58
직업 60
옥상 61
입춘 62
정물 63
작살나무 64
보석 66
실직 67
히말라야로 떠나며 68
히말라야 시편 1 ―선셋언덕에서 69
히말라야 시편 2 ―랄리구라스 70
4부
새끼 발가락 72
가을 호박 73
문안의 수평선 74
모과 76
그리움이 앉아 있다 77
천리향 78
낮달 79
동행 80
이중섭 박물관에서 ―소 82
섬을 떠나며 84
큰 소리 85
따뜻한 평화 86
연 87
그해 7月 88
허공의 거울보기 89
해설따뜻한 사랑과 근원 지향의 서정유성호 92
저자
저자
황영숙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인 {따뜻해졌다}을 통해 어떤 사물의 속성이 한동안 그 사물을 규율하다가 차츰 소멸되어가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그 소멸 양상이 또 다른 생성을 준비하는 불가피한 단계라고 보여주는 시인의 따뜻하고도 깊은 심성을 만나게 된다. 그 점에서, 황영숙은 전형적인 서정시인이다. 이처럼 황영숙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떠남, 정서의 충만과 결핍이 사실은 한 몸으로 결속되어 있는 두 가지 징후일 뿐이라는 역설의 이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그녀의 시집은 현실 '너머'의 곳을 향한 낭만적 동경과 오랫동안 아로새겨온 사랑의 시간을 보여주는 순도 높은 서정시편들을 풍요롭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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