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의 그늘(지혜사랑 시인선 156)
김명이 시집
김명이 시집『모자의 그늘』. 이는 외로움이 새겨진 유년의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엎질러진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희생했던 이야기 등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또한 칠공주라는 것, 버림을 받는다는 것, 부모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것 등은 우리 신화 속의 바리이야기와 일치한다. 이에 시 속에는 우리나라의 딸들이 지니고 있다는 바리 콤플렉스가 드러나 있으며, 이것이 모든 딸들의 운명임을 시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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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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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옥양목 조각을 접어 엄마 입에 물리고
울음 꼬리가 문고리 붙잡고 멈출 때까지 나는 또 조마조마 쭈그러질 것이었다
등굣길에 삘기를 뜯어 껌이 되도록 씹었다. 채변봉투에 빨간 고추 수두룩 걸린 금줄을 그린 종례시간, 내가 깎아놓은 지시봉이 머리를 겨냥했다. 버짐 핀 낯을 달구며 깨진 창문으로 쏟아진 땡볕, 짝꿍은 원기소를 굴린 후 아깝게 깨물었다. 하굣길에 전설의 능력자처럼 오디를 따서 입가에 무더기로 발랐다. 뛰어나온 엄마의 무릎이 땅에 닿으며, 짚은 날보다 먼저 태어난 사내 같은 계집아이, 그날 꽃고무신 한 짝이 냇가에 떠내려갔다. 해 저물도록 물속에서 뻐끔거렸으나 지느러미는 생기지 않았다
나의 신탁은 들통 났지만 뒤늦게 본 효험
마침내 엄마는 담벼락에 칠공주파를 꽂은 지팡이로 강력한 보스가 되었다
----[담벼락] 전문
「담벼락」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줄줄이 꿰어진 계집아이"들의 삶 속으로 독자들은 초대된다. 백일 된 아기를 등에 업고 마당을 돌다가,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에서야 풀려나곤 하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본다. 아들을 기다려 엄마가 출산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 쭈그러"진 채로 집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던 그녀, 혹은 그녀'들'의 그야말로 조마조마한 성장 이야기다. 그녀들은, 삶이라는 것이 담벼락 근처를 서성이는 일임을 자연히 알게 되었을 터다. 「모자의 그늘」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변주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를 읽고 눈물 흘리지 않자, 넌 독해
내 의지 상관없이 피가 떨어지는 곳
비극의 시절 만난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섯 살 제제의 뒤를 따르며
내게도 자라는 슬픔
작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는 누군가 마치 인심을 쓸 때만 가능하여
홀로 쓰다듬기로 했어요
한스가 물 위에 떠서
하늘의 꿈을 품었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날 벗어놓은 내 신발 떠내려간 것이
손뼉치고 좋아할 일인 것을
아버지의 목청이 커지고서 알았어요
통과의례의 피를 본 듯
테스가 쓴 챙이 모자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거대한 힘 굴복하며
모자를 몇 개씩 고르고
질적으로 다른 안네 프랑크와 마주쳤어요
그런 거예요 그런 거예요
태생적 한계에 맞선다는 것
저기 단상의 빛나는 이름의 그늘들이
해 지기도 전에 늘어만 가는
캄캄한 골목의 아이와
여인이란 순결의 악재를 즐기고 있어요
독서를 통한 성장담을 그린 시다. 그런데 이 모종의 독서담에, 또 하나의 여성 성장담이 오버랩된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내 의지 상관없이 피가 떨어지는 곳" 즉 전쟁의 상황에 마주해야 했던 안네의 운명을 추체험하는 화자 '나'에게, 「담벼락」에서 "달이 차올라 붉은빛 이슬이 비쳤다"고 쓰던 초경의 소녀 이미지가 겹쳐진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물에 빠져 죽게 되는 한스를 읽는 '나'에게, 「담벼락」에서 칠공주를 낳은 어머니의 아들 출산을 기원하며 자신의 신을 냇가에 흘려보내던 소녀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이다. "캄캄한 골목의 아이" 역시 "담벼락에 붙은 땅거미"에게마저 따돌림을 받던 '나'(「담벼락」의 변주가 아닌가. 결국 그러한 성장은 『테스』를 읽고 그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맞섰지만 결국 그 "모자의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로 일단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위 두 편의 시들에서 엿보이는 '칠공주' 이야기, 「실험인간」이나 「외로운 숨바꼭질」 등에서 엿보이는 외로움이 새겨진 유년의 이야기, 또 「허수의 아버지」, 「늦가을―아버지처럼」 등에서의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푸른 쪽창」 속 "엎질러진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상에 입학"하고 "상행선 막차에" 오르는 이야기 등은 우리로 하여금 페르세포네 이야기와는 또 다 딸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칠공주라는 것, 버림을 받는다는 것, 부모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것 등이 그야말로 우리 신화 속의 바리 이야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딸들이 지니고 있다는 바리 콤플렉스가 드러나 있다고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질적으로 다른 안네 프랑크" 혹은 바리, 그것이 바로 여성의, 그리고 모든 딸들의 운명임을 김명이 시인의 시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시의 맥락에서 바리공주 이야기는 거듭 재해석되어 왔다. 김혜순 시인에 의해, 생명을 구해내는 모성적 몸이 되는 바리의 이야기로 다시 읽히기도 했고, 또 김선우 시인에 의해 열정적 사랑의 여인인 바리의 이야기로 되풀이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바리공주 이야기에 대한 또 다른 다시쓰기가 앞으로 김명이 시인의 시 세계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안서현 해설에서).
목차
목차
1부
사과 이야기 12
대화한 적 있었을까 14
어떤 식탁 16
우화 17
실험인간 18
칠월의 석양, 그리고 유리의 새들 20
잠들기 전에 눈은 내리고 22
낙원 잃어버린 24
원형탈모 25
변두리의 백야 26
얼음왕국 27
원시의 정수 28
가냘픈 신념 29
연애도 없는 30
벌레들의 그림자 32
배려의 문 34
붉은 저녁 36
멸치식물 37
모자의 그늘 38
푸념 40
2부
지금은 두 개의 요일 42
지금은 두 개의 요일 -빨간 슬픔 44
지붕의 재해석 45
눈이 먼 베개 46
만년고참, 직업을 대하는 방식 48
초보 외판원 50
중년 워킹 맘 51
종일 현관문에 소리가 들리고 52
분리수거장 53
행복 가득한 e 편한 궁전 아파트 54
대代 56
바닥의 기류 58
불편한 진실 59
언감생심 60
두 개의 요일 - 새들의 비상구 61
외곽의 힘 62
3부
담벼락 64
그녀들의 동굴 66
엄마의 성 68
다듬이 소리 70
외로운 숨바꼭질 72
겨울 문 74
시간의 자세 75
후광 76
월화수목금 77
여름 함백산 78
연인 80
사탕, 그리고 빈 봉지 81
비밀의 방 82
타인들 84
천국의 그늘 86
겨울 소네트 88
흰벽 89
화석 90
4부
망초의 내력 92
참 가벼운 94
구멍의 섬 95
허수의 아버지 96
늦가을 - 아버지처럼 98
최고의 돌을 깨기로 한다 99
푸른 쪽창 100
중독 101
오래된 경험 102
꿈의 연구소
- 내게 적절한 시간이란 걸 알게 되면 나는 시냇물을 건널 거예요 104
간판 106
인도 107
가면놀이 108
적과의 동침 110
느티나무 그림자 112
또 다른 삼경三經 114
해설페르세포네의 편지안서현 116
저자
저자
{모자의 그늘}은 김명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며, 여성들의 사랑과 고통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다. 첫 시집 {엄마가 아팠다}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위한 진혼가라면, {모자의 그늘}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다. 안네 프랑크, 다섯 살 제제, 물 위에 뜬 한스, 테스의 모자(모자의 그늘]) 등이 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뿌리뽑힌 자의 삶이며, 그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자 의무이기도 했던 것이다. 딸과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중심축은 여성성이며,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는 그녀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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