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요일의 죽비(J. H Classic 11)(양장본 HardCover)
이아영 시집
이아영 시집 『꽃요일의 죽비』. 이아영 시인의 시세계를 구성하는 중심축은 불교적 정진과 상상력이 잘 드러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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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못이란 글자는 아무데도 못 가요
못은 한 번 박으면 움직이지 못 하지요
움직이면 굽어서 못 쓰잖아요
못이란 연못이지요.
흐르지 못 하는 물이잖아요
또 못자 字가 들어갔네요.
연못 속엔 연꽃이 탁한 물을 정화시켜주지요
못이란 못 할 일이 없다니까요
못 할 일이 있다는 말도 되지요
못비가 오면 못밥을 먹을 수 있거든요
못이란 다 못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데나 못 박으면 안 되지요
편자에나 못을 박지 식도에까지 못을 박다니
참치횟집에서 참치눈물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아요.
딱 한 모금이 목에 걸려 못 넘어가거든요
못이란 뭐든지 자유자재하는 힘을 갖고 있다니까요
-『못』전문
위의 작품은 못에 대한 진중한 통찰이 형상화되고 있다. 여기서 '못'은 중의적인 의미망을 거느리고 즉 '일즉다(一卽多)'의 형태로 뻗어간다. 벽에 박는 '못'과 '연못' 그리고 '못한다' 할 때의 '못'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와 셋째 의미로 '못'을 읽으면 못은 부정성을 띄지만 '연못'으로 읽으면 해석은 달라진다. "못이란 연못이지요."라는 표현에서는 생명이 자라는 장소로써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못은 "탁한 물을 정화시켜주지요"라거나 "못밥을 먹을 수 있거든요"에서는 재생과 상생의식이 나타난다.
나아가 이 시에서는 사람들이 함부로 "아무데나 못 박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자유로운 생명활동을 하도록 "식도에까지 못을 박"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연민의식에 방점이 찍힌다. 이 시를 아름답게 하는 대목은 "못이란 뭐든지 자유자재하는 힘을 갖"는다는 맨 끝부분으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있다. 이렇게 부정성이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인식에 이 시를 감상하는 묘미가 있으며 '일즉다(一卽多)'의 사고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하겠다.
중생에는 느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사람도 있고 온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송곳 같은 사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도 전체의 관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이 소중하다. 이 모든 사람의 조화가 일미의 대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슨한 것이 답이 될 때도 있고 빠른 것이 답인 경우도 있다. 부분이 모여 전체의 구성원이 되고 전체는 부분을 배려하는 가르침과 연관이 있다.
'모두가 하나'라는 진리를 구현한 의상대사의 '법성게'가 되살아난다. "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역여시,,,)" 하나 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다. 티끌 가운데 온 우주 머금었고,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주도 생명체도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유기적이다. 1천3백여 년 전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하나'라는 진리를 깨우쳤다니 참으로 지혜롭다.
감동적인 시는 이처럼 감상의 폭을 확장하여 만물의 이치에 대해 귀를 밝게 한다. "못"이라는 단어가 "참치횟집에서 참치눈물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아요."로 뻗어가는 상상력에서는 생명의식까지 묻어난다. 일즉다에 담겨 있는 애정 어린 눈길에서 시를 음미하는 맛이 우러난다. 감상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와 같은 진정성일 것이다. "못" 이라는 글자에 의미는 깊다. 그래서 시를 거듭 읽으며 살펴보게 된다. 미처 다 전달되지 못한 진심은 없는지, 마음의 맛, 맛깔스러운 마음을 추적해 본다.
의미론적으로 "못"은 인드라망(因陀羅網)의 세계처럼 서로 비추는 관계이기도 해서 여러 시편으로 맞닿아 연속되는 사유이고 그러한 인과성이 흥미롭다.
나는 올봄 데미안 허스트의
웃고 있는 해골에 몸살 통을 앓고 있다
오패산에 개나리 진달래 라일락이 손짓하고
만개한 벚꽃이 눈꽃처럼 흩날리는데
천만 가지 생각을 죽어서도 떨치지 못한 두개골은
오욕五慾의 덩어리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해놓고
찬란하게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다
죽은 자를 살려놓아
진즉에 940억 원에 팔릴 줄을 누가 알았을까
살아있음의 무상함을
죽비로 내리치는 날
옷가게에 진열된
해골무늬로 디자인한 티셔츠와 모자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골고다 언덕의 쿠트나 호라 해골성당
십자가 촛대 오, 사만 명의 뼈
티베트의 깨달은 자의 해골그릇
원효선사가 해골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 한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꽃요일의 죽비』전문
이 시에는 인생의 무상함과 각성이 두드러진다. 시인은 영국의 설치미술가인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작품인'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보고 있다."천만 가지 생각을 죽어서도 떨치지 못한 두개골은"이제"오욕의 덩어리"에 불과하다."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해놓"아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찬란하게 죽"어"웃고 있"으므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해골무늬로 디자인한 티셔츠와 모자가"팔리고 있는 오늘날의 상업주의 현실과 교차되는 면이 있다. 여기에"골고다 언덕의 쿠트나 호라 해골성당"과 "티베트의 깨달은 자의 해골그릇"과"원효선사가 해골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일화가 겹치며 그야말로 일즉다의 인드라망이 현장성 있게 펼쳐진다.
이타행(利他行) 속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가짐도 짚어 보게 된다. 원효가 당나라 유학을 가지 않고 민중의 아픔을 헤아리는 삶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 불교가 화쟁(和諍)으로 이끌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원효는 진리를 먼 나라에서 추구하지 않고 중생을 사랑하며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진리를 알려는 마음만 앞서고 타인을 헤아리지 않으면 '상구보리 하화중생'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말처럼 진리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중생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만약 원효가 보리심만 있고 '하화중생'의 염원이 없었다면 지위를 떨치고 저자거리로 나가서 '무애의 노래'(無碍歌)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한 원효의 참뜻이 녹아 있고 시인이 "죽비"를 치듯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목차
목차
1부 꽃요일의 죽비
꽃요일의 죽비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보면서 12
곤줄박이 맑은 눈 14
무당벌레 점괘 15
청령포淸迅浦의 뜬소리 17
개심사開心寺 18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20
도끼날 위에 앉은 부처 혹은 예수
─박성희 조각전 '피에타- 不二' 를 보고 22
은방울꽃 24
숨비소리 3 25
노란 꿈의 봄 26
부부 ─이중섭의 '부부' 그림 27
소, 길들이기 28
구절초九節草 29
풍양 조씨 댁의 말 30
오석烏石 물개의 꿈 31
2부 떠다니는 것들은 자유롭다
그날 삼정헌三鼎軒에서 34
영춘화 꽃담 앞에서 2 36
떠다니는 것들은 자유롭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푸른 하늘' 그림을 보고 37
목이 달아난 돌부처 38
못 39
4월의 두타연頭陀淵 40
봄에 나는 없었다 42
케이크를 인 꼭두각시
─앙리 루스의 '아이와 꼭두각시 인형' 그림을 보고 44
불두화佛頭花 45
화택火宅 한 채 46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 47
해인海印 48
숨비소리 49
갈증 50
해맞이 51
3부 오동나무 배웅
오동나무 배웅 54
돌사람 공원에서 56
은빛의 무게 58
목불상의 촛불시위 59
갈참나무 조막손의 집착 61
혀 62
산딸나무 밑에 묻다 63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64
하늘지기꽃 ─하늘지기 양로원 65
오색 손가락 66
안개꽃 68
압해대교 4행시 69
노을 속의 빈손 70
갑장 식물원에는 72
커피 한 잔의 道 73
홀딱벗고새 74
4부 풀밭에 드리운 달기둥
字, 보름달 만들기 76
사유思惟
─폴란드 작가 체스로우 포들스니의 조각 작품 77
恥에 대하여 78
풍경 속의 멸치 79
베개 없는 곳으로 지는 해
─'죽여주는 여자' 영화를 보고 80
풀밭에 드리운 달기둥
─에드바르 뭉크의'생의 춤'을 보고 82
으아리꽃 84
다시 올 힐링캠프의 일기 86
이런 수꽃 보셨나요 88
통곡주점 89
어느 선비의 독백 91
벚꽃 길 92
새둥지버섯 93
추도追悼새 94
노릇노릇해진다는 것 96
해설 일즉다一卽多의 안목과 수행박수빈 100
저자
저자
이아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꽃요일의 죽비}는 '일즉다一卽多의 인드라망因陀羅網의 세계'이며, 우주만물이 '한몸-한생명체'라는 '생의 철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너와 나는 노오란 개나리, 붉디 붉은 진달래, 더없이 화사한 벚꽃과 라일락처럼 '꽃요일'을 이루지만, 이때의 꽃은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모든 욕망을 다 비워낸 참된 인간의 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진리를 향하여 이아영 시인은 무한한 시적 정진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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