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난의 저녁식탁(지혜사랑 시인선 176)
홍산희 시집
홍산희의 시집 『야난의 저녁식탁』. 이 시집은 홍산희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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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도마 위에서 지느러미를 빳빳하게 세운다 쏨뱅이목쥐노래미과 바닷고기 한 마리,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기세다 촘촘히 세운 비늘 득득 긁어내면 퍼덕퍼덕 튀는 놈, 커다란 접시는 차가운 동북해, 노릇하게 구워져서도 등뼈를 한껏 늘린다
난 야난, 난 세상의 모든 할미
아가, 얘 이름이 임연수란다, 이면수라고도 하고, 새치라고도 하지, 옛날, 옛날, 강원도 한 부자는 새치껍데기 쌈 싸먹다 논밭까지 팔아먹었다는구나, 검은 등뼈 쭉 떼어내고 밥숟갈에 척 올린 살점, 날아갈 듯 탱탱하다 말놀이에 신이 난 아이 눈빛이 반짝, 할머니최고, 할머니최고, 엄지를 들어 보인다
난 야난, 난 세상의 모든 아이
새치라고요? 얘가 그럼 날아다니겠네요? 아이가 쏨뱅이눈으로 바라본다 그럼 할머니는 여치로 시금치나물을 만들 수 있어요? 멸치랑 가물치랑 결혼하면 갈치 낳아요? 나는 커서 내 친구 넙치 곰치 날치 다 데리고 고래 잡으러 가야지, 나는야,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후예
*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소설『세상의 모든 딸들』의 주인공
---[야난의 저녁식탁] 전문
시 「산희가 산희에게 쓰는 편지」에서 상처 받은 발의 주인인 '당신'이 아버지임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가을에 섬진강변을 달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그것은 곧 "1950년 6월"의 아버지 발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이자 "나를 잠시 내려놔 보곤" 하며 이미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한 자아 탐색의 길이다. 어릴 적부터 "맨발의 환영"이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누구의 발인지 모르면서 "복숭아뼈에 칠해진 빨간색"을 "등불"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 발 그림을 엄마에게 내보이니 자신을 "처음 안아 본 아버지의 발"이라고 일러 주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는 "가파를 절벽"같은 지난한 현실 속에서도 형제들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이제 "우리의 등불"이 되었던 "아버지의 아픈 발"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지만 아버지께 보내드리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화자는 아버지의 발을 떠올리고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를 그리며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그 여행은 곧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부모를 환상함으로써 자아를 정립하는 성찰의 과정이다. 홍시인은 시 「비밀의 방」에서도 비극적 가족사의 출발지인 "낯선 여관방"으로 되돌아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머물던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시간"의 상황을 매우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화자가 "박꽃처럼 환하던 무덤 속"같은 그 방으로 "혼자 숨어드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념의 대립으로 전쟁을 하고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서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세계에 던져진 홍시인의 실존론적 고뇌 때문일 것이다. 홍시인은 부모라는 자기 존재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불안한 자신의 존재를 세우고 어두운 현실을 초월하여 삶의 본래성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또한 '비밀의 방'에서 환상으로나마 다시 부모를 만나서 존재의 거울로 삼아 참된 자아를 되찾으려는 무의식적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 섬진강변을 달리는 완행열차에서 너를 생각해. 저 강물 여울여울 저물어 가네. 어릴 적 우리가 함께 숨어들던 크고 하얀 맨발의 환영(幻影), 화인처럼 무의식 속에 각인된 그림, 그 때 우리는 알 수 없었지. 그 발이 얼마나 아픈 발이었는지, 누구의 발인지도 모르면서, 복숭아뼈에 칠해진 빨간색을 우리는 등불이라며 따듯해했지.
나 마흔 살이 되던 날, 품고만 있던 발 그림을 엄마에게 내보였어. 고름처럼 차오른, 엄마와 나의 울음주머니를 터뜨렸어. 엄마는 말했지, "그 발은 환영이 아니란다. 1950년 6월,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밤, 너를 처음 안아본 아버지의 발이란다, 복숭아뼈에 난 그 상처를 네 작은 손이 가만히 만져본…… 무릎에 앉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져본…… 그래, 그 발은 왼쪽 발이었지……"
우리 아직 다 자라기도 전, 내가 너를 놓아버렸어, 넌 참 하고 싶은 말도, 가고 싶은 곳도 많은 아이였지, 엄마는 우리 형제들을 안고 가파른 절벽을 걸었고, 나는 착한 딸이고 싶었어. 이명으로 들리는 울음소리 따라, 이제야 길을 나선다.
우리의 등불이 자꾸 흐릿해지네, 이 열차가 간이역을 들르듯, 마음 닿는 곳에 나를 잠시 내려놔 보곤 해, 낯선 사람처럼, 기차가 멈추면 우리 스쳐가지나 않을지, 미안해, 사랑해, 1년 후, 또 1년 후,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와, 늦기 전에 아버지의 아픈 발을 함께 보내드릴 수 있기를……
----[산희가 산희에게 쓰는 편지] 전문
흑백 필름 팽팽히 감기는 소리 이명으로 들릴 때
항라치마 빛 불이 켜진 방문이 열린다
소리가 차단 된 낯선 여관방, 어머니는 찢어진 누런 군복바지의
올을 짜고 있다 아버지의 크고 하얀 맨발이 보인다 무릎에 어린
내가 앉아있다 곰실곰실 복숭아 뼈에 빨간색을 만지는 작은 손
기억일까 상상일까 꿈일까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시간이 낙화(烙畵)
될 때, 옹알거리는 소리와 문풍지 떨리는 소리, 자욱한 그을음 사이
로 맴도는 환청일까
반공방첩 포스터가 붙은 대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면, 어머니는 등잔불
훅 불며 이불 속 깊이 우리들을 묻어버렸다 그런 밤, 나 혼자 숨어드
는 깊은 방,
박꽃처럼 환하던 무덤 속
----[비밀의 방] 전문
홍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무의식적 욕망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 언어의 집에는 일상을 벗어나 소외된 채 밀쳐 둔 자기의 참된 욕망을 찾고 진정한 주체가 되어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시정신이 숨어 있다. 그것은 실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일상에 몰입하여 비본래적인 삶을 살다가 본래적 존재로 자기를 돌려놓으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홍시인은 종종 '존재 가능'이 끝나고 완결되는 죽음으로 미리 앞질러가서 자기의 전체 존재를 이해하여 일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삶을 시도하려 한다. 또한 어머니 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리움을 보여 주는 시들이 많다. 특히 민족사 비극으로 아버지가 부재하는 가운데 살던 홍시인은 자주 부재하는 아버지를 환상한다. 그렇게 부모를 환상하는 것은 그들이 상징하는 존재의 기원이요 최초의 거울 앞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참된 주체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홍산희 시집 , 도서출판 지혜
목차
목차
1부
톱 12
'데려 가네' 라는 말 13
가족사진 15
봄, 라르고Largo 16
나비잠 속의 순례 ―바라나시 트라우마 17
타임캡슐 연대기 18
염습 19
활동심전도일기 21
간절기 22
TK0091번 기로 시차의 사막을 걷다 23
복분자 소사이어티 25
목탄화 26
저어새 27
엄마의 일몰 28
정글 숲을 헤쳐 나가자
엉금엉금 기어서가자 29
산희표 장조림 30
2부
야난의 저녁식탁 34
그믐달 35
맨틀대류설 36
수선화 어린 싹을 자르다 38
맨발내비게이션 39
자라를 심다 40
일시적 전반 기억상실증 1 41
일시적 전반 기억상실증 2 ―휘인 벽 앞에서 43
정글의 아침 44
밀림의 정오 뉴스 45
참나무 화장火葬 47
마티네 즉흥 콘서트 48
청바지기지국 50
사천 가는 길 51
산동양반 52
양파야 양파야 53
산희횟집 54
3부
고리 56
자전거 여행 57
자전거 여행 ―베 짜기 놀이 58
자전거 여행 ―밤나무 집 60
봄비 크로키 61
담채화 ―당신은 누구십니까 62
야단법석 베란다 63
맨발로 서다 ―품밟기 64
붕붕 66
꽃댕강나무는 빈집 67
판넬민박집 68
처녀별자리 69
신新 장화홍련전 71
이소離巢 72
옛날 옛적 귀시미 73
산희가 산희에게 쓰는 편지 74
4부
비밀의 방 78
이산離散 79
양철연어 81
백 년 동안의 지각 82
누구 없어요? 83
커브스 85
지붕 없는 창고 86
자폐 증후군 87
은보라 빛 아기사마귀 태어나다 88
밥 짓는 나무 89
피거산避居山 돌탑 90
턱 91
판화 1950 92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93
밥 95
철로 97
휴보HUBO의 정원 98
해설'비밀의 방'에서 '존재 가능'까지김석환 100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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