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지혜사랑 포켓북 2)
이상규의 시집 『오르간』. 이 시집은 이상규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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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순수함, 이 맑고 투명한 심성은,
매일 작별하는
흔들리는 이 세상
식은 땀 손등으로 태양볕
훔치며 걷는
끝없는 시골길
경산 와촌 갑골길
새로 난 신작로 벗어나
풀숲에 술기운 풀어내는
술벌갱이
키다리 시인
그래서 늘 뒷모습이 더욱
외로워 보이는
키가 장대같은
풀벌레 소리 환한
시의 향연
키만 장대같이 컸지
술 좋아하는
철부지 시인
그의 뒷모습은 늘 쓸쓸해 보인다
라는 {키다리 도광의 시인]을 노래할 때에도 사실 그대로 나타나고, 또한,
왜 어둠이 어제보다 더 깊어졌을까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더 무거워졌을까
젖어오는 밤이슬이
외로움을 더욱 무겁게 매달기 때문일까
푸른 동천冬天 물들지 않은 낙엽 타고
오늘 정완영 시인이
천둥 벼락 장대비 헤치고
길 떠난 탓일까?
라는 [정완영] 시인을 노래할 때에도 사실 그대로 나타난다.
시인은 순수한 동심의 전형이며, 이 동심을 잃어버릴 때, 그의 언어는 타락하게 되고, 그는 양심이 없는 위선자가 된다. 시인은 순수해야 하고, 그의 시에는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그의 영혼이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그의 시는 신선한 충격과 그 감동을 선사해줄 수가 없게 된다. "풀벌레 소리 환한/ 시의 향연"은 "키만 장대같이 컸지/ 술 좋아하는/ 철부지 시인"이 연출해내는 것이지, 매번, 매사에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철든 어른들이 연출해내는 것이 아니다. 또한, "풀벌레 소리 환한/ 시의 향연"은 "천둥 벼락 장대비 헤치고/ 길 떠난" 시인을 생각하며 그 "외로움"의 무게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시인이 연출해내는 것이지, 순풍에 돛 달듯이 꽃상여를 타고 떠나갈 생각만을 하는 철든 어른이 연출해내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다. 죽음이 그만큼 무섭고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죽음 앞에서 그 모든 때묻은 마음, 즉, 모든 욕망을 다 비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죽음 앞에서 더욱더 새로운 어린 아이로 태어난 시인은 외로운 시인이며, 또한 그만큼 그 외로움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불태우고, 그 '외로움의 시학'을 연출해낸다.
한국 사람은 호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입을 모아 세상의 일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일이
묵직한 황금보다
빈약한 경작지 보다
더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산다
행복을 만나러 이야기를 꾸미고
복을 나누기 위해 이야기를 전파하는
신화의 나라
동화의 나라
----[이야기의 나라] 전문
서양의 역사에서 호머는 최초의 대서사시인이자 최후의 대서사시인이라고 찬양을 받고 있다. 언어와 사물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고, 너와 나도 '한마음-한몸'이 되어 그 어느 누구도 불행을 모르고 살았다. "묵직한 황금보다" 더 소중했던 이야기, "빈약한 경작지보다/ 더 소중"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나라는 "신화의 나라"인 동시에 "동화의 나라"이기도 했던 것이다. 신화의 나라와 동화의 나라는 이야기의 나라이며,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찬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상규 시인이 꿈꾸었던 나라는 이처럼 '신화의 나라'와 '동화의 나라'이며, 영원히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런 나라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영원한 어린 아이이며, 이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역사 철학적인 성찰을 하고, 그 모든 것을 비판한다. 양심이 있는 자는 외롭고, 양심이 없는 자는 외롭지 않다. 양심이 있는 자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수함 때문에 외롭게 되고, 양심이 있는 자는 영악하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된다. 발가벗은 자를 발가벗었다고 말할 때에도 외롭게 되고, 당나귀를 당나귀라고 말할 때에도 외롭게 된다. 진실은 홀로서기를 더욱더 좋아하고, 또한, 진실은 천길 벼랑끝의 소나무처럼 살아가는 것을 더욱더 좋아한다. 모든 비판의 힘은 영원히 늙기를 거부하는 어린 아이의 힘이기도 하고, 모든 비판의 힘은 끝끝내 특정 종교나 특정 집단의 패거리이기를 거부하는 외로운 사람의 힘이기도 하다
이상규 시인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고,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을 했으며, 시집으로는 {종이나발}, {거대한 집을 나서며}, {헬리콥터와 새}, {13월의 시} 등을 출간한 바가 있다. 이상규 시인은 외로움의 시인이며, 그는 그 외로움의 시학을 통해서 [키다리 도광의 시인]이나 [이야기 나라]와도 같은 매우 아름답고 탁월한 시들을 쓴 바가 있다.
차츰 줄어듭니다
차츰 가벼워집니다
체중도 식사량도
찾는 이도 찾을 이도
착신 우편물도
초대장도
그리움도
차츰 줄어듭니다
존재의 무용
서글픔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저녁 무렵
아내는 그래도 웃음으로
여위어 가는 내 손목을 잡아줍니다
성그런 밥상 앞에 마주앉다
줄어든 배를 채웁니다
허무한 식은 밥으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노년의 일상
그 언저리에는
지난 숱한 영상이 엄청난 속도로
포개져 있습니다
---[늙음] 전문
늙음은 줄어듦이며, 줄어듦은 가벼워짐이다. 가벼워짐은 연소되고 있다는 것이며, 연소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생명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체중도 타고 있고, 식사량도 타고 있다. 찾는 이도, 찾을 이도 타고 있고, 착신우편물도, 초대장도 타고 있다.삶이란 불이며, 불꽃이고, 대연소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줄어듦이란 에너지의 사용량과 그 나머지를 말한다.
늙음이란 황혼이며, 황혼이란 마지막 대연소 과정의 불꽃을 말한다. "존재의 무용"도 타오르고, "서글픔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저녁무렵"도 타오른다. "여위어가는 내 손목을 잡아"주는 아내도 타오르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노년의 일상"도 타오른다, 대연소과정의 불꽃이란 시인의 인생 전체를 되비추어주는 환영이며, 떠나갈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서럽고 눈물겨운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을 말한다. 외롭기 때문에 순수했고, 순수했기 때문에, 이상규 시인의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늙음]이란 시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목차
목차
1부
도시 사람12
키다리 아저씨 ―도광의 시인에게13
춥다15
오르간16
늙음17
손녀, 윤18
안개19
장맛비20
가을 사랑22
정완영 ─정완영 시인을 보내며23
그리움24
유죄25
영사詠史26
땅거미27
전설28
초여름30
산보31
태화강32
2부
이별36
지진38
팽목항에서 ―세월호를 생각하며40
내 몸의 언어는 눈물이다41
항해43
하늘 풍경44
별빛45
말의 죽음46
일몰47
우레 소리48
소년 시대49
대설주의보50
사물52
유령선53
이야기의 나라54
광기의 한국현대사55
3부
가난이다58
눈빛의 축제59
별60
티끌61
촛불시위62
모딜리아니63
유년64
바다가 세로로 누워있다 ─인양된 세월호를 보며66
산책68
하노이 ─베트남 전쟁기념관에서69
해안선71
김춘수72
수양버드나무74
기다림75
봄기운76
풍경77
충돌79
나목81
죽음의 교신83
눈물85
4부
낙하88
강진 ─다산 초당에서 89
호치민 시티90
차당실92
도리원 삼산 마을94
홍매화95
바다 꽃97
징기스칸100
머리101
긴 노래102
제주 바다103
일상104
눈 내리는 삿포로105
북소리106
2017년 2월 14일 하노이108
밤안개110
주술111
침묵의 아침113
봄날은 간다115
봄 풍경116
침묵118
다랑논119
해설외로움의 시학반경환122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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