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ing(지혜사랑 시인선 206)
박정옥 시집
함축된 언어의 예술, 시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창의성을 과감없이 발휘한다. 그 속에 담긴 감성과 사색이 독자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여 문학적 감수성을 깨운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의 다양한 시 작품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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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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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ing] 전문
요즘 부쩍 돌담이 시끄럽다/ 안팎의 위치에 따라/ 남북으로 대치되는 돌담// 조금씩 허물리는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이 자라나는 겹겹의 입술이/ 돌담 사이 쑤셔 박혀 있다// 쑤셔 박힌 말은 한줌 빗물에도/ 스프링처럼 튕겨나간다// 저것은 풍자를 위한 계절의 과녁/ 푸름의 중심을 겨냥하여/ 곧이곧대로 넘어가려는 것과/ 허공에 창문을 가늠하는 것과/ 서로의 세계를 누르는 압력과/ 바람의 수평과// 그러나 할 말이 많은/ 저 많은 청개구리들/ 파랗게 질리도록/ 돌담을 갈구어/ 비가 오면/ 정말/ 어쩌려고!
----「담쟁이를 넘을 수 없나」전문
"담"은 무엇과 무엇의 경계다. 경계는 긴장을 품고 있다. "돌담이 시끄"러운 까닭은 돌담 사이에 "말이 자라나는 겹겹의 입술" 때문이다. 몸이 없이 "입술"만 존재하는 것들의 소란은 불분명하다. 늘 그랬듯이 세상은 자신만의 말만 뱉을 뿐이다. 그럼에도 "담"이 조금씩 허물어진다는 건 의미 있다. 무엇과 무엇의 경계는 '안'과 '밖'의 속성을 지닌 크로아티아의 협죽도이고,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분단이고, 잔금이 많은 손바닥이다. 결국 "돌담"은 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린 인위적인 나눔이다. 하지만 "돌담"은 완벽하게 막히지 않고 성긴 상태여서 "바람"의 왕래가 자유롭다.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 이념과 이념 그리고 아직도 분단 상태인 남한과 북한의 이미지까지 연결 지어 읽어도 무리가 없다.
박정옥 시인이 만든 '창문' 너머의 세계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함은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커다란 주제를 지향한다. 이때 "청개구리"는 동질의 가치에 반대하는, 다시 말해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목소리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이제는 어루만지는 것을 넘어 통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야 할 때이다.
시집 『lettering』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통점'은 "묵은 밭에서 수크령을 뽑"은 자리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구덩이」)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몸이 기억하는 반응은 슬픔보다 빠르고 정확"(「나를 멈춰주세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세계를 건너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시인에게 고통은 도전이며 방향이다. 모든 자극이 통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통점'을 극대화 시킨 삶이 시인의 걸음이라 할 때, 박정옥 시인은 이것을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고 있음을 이번 시집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걸음에 타자는 동반자다. 손과 손을 맞대는 것은 바닥과 바닥이 만나는 일이다.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시를 쓰는 동력일 것이다. 그래서 사물을 어루만질 줄 아는 힘은 결코 높은 곳에서 얻을 수 없고 통점에서 꺼낸 언어는 묵직하다.
"등을 대 준다는 건/ 서로 어긋나 있어도/ 지긋이 믿는다는 거/ 어떤 무게가 와도/ 그 너머를 견뎌내겠다는 거"(「등대」)라는 말처럼 한동안 '통점'은 박정옥 시인이 타자와 만나는 지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목차
목차
1부
꽃의 안감 10
그 동네 이름이 아프다 12
lettering 14
말 방 15
붉은 벽돌집 16
그해 읽은 책 17
자작나무 시간 19
사스레피 20
비의 발자국 22
아무도 없었던 게 아닌 그 밤 23
구덩이 24
적막한 집 25
커피생각 26
강도가 되겠어요 ─도서관 28
수상한 손금 29
강으로 흐르는 기차 30
의문의 근육 31
2부
月精橋의 밤 34
사소한 반짝임의 알고리즘 35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37
변산 바람꽃 38
난파선 발굴 보고서 39
토끼야 가자 40
풍경 한 장 41
알제리 생각 43
독새둠벙 44
장항사지 45
별이름 46
흔들리다 48
부어오른 꽃 49
성남동 거리 50
웃음을 쏟았다 51
따가운 우리 동네 말은 52
별어곡別於谷 53
3부
무슨 큰 일이 오는 것처럼 56
산밭에 비 57
학성 새벽시장 58
나를 멈춰주세요 60
요실금尿失禁 61
달뿌리 풀 62
납작한 시간 63
맛있는 들판 64
담쟁이를 넘을 수 없나 65
등대 67
찬란이 뭐라고요 68
떠도는 물질 위에 흐르는 말의 안녕들 69
오후 5시 사람 71
거울을 끄다 72
안녕, 멸치 73
해설통점의 서사, 그 무거운 꿈틀거림최은묵 76
저자
저자
박정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lettering』에는 기호마다 통증이 가득하다. 문자가 통점을 지니는 순간 그것들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꿈틀거린다. 시인의 내면을 거쳐 새로운 명(命)을 지닌다는 것은 "애칭만큼 닳고 통증만큼 닮은/ 창문을"(「lettering」)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창문'은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세상을 관조하며 느낀 통증을 공유하려는 통로인 셈이다. 이 시집을 꿈틀거림으로 가득한 창문이라 말한다면, 박정옥 시인은 그곳을 통해 살아있음을 알리려는 사물의 몸짓을 띄우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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