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는 별 대신 그리움 하나(지혜사랑 221)
채만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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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는 경북 예천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지만, 매우 아름답고 이채롭게도 육지 안에 있는 섬마을처럼 보인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회룡포 마을이 들어선 것이다. 내성천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매우 아름답고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며, 이 회룡포의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천년사찰이 있는 장안사의 회룡대에 올라가야 한다. 회룡포 마을 오른편에는 울창한 숲이 있고, 5만평 정도의 논과 밭이 있으며, 맑고 깨끗한 강물과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채만희 시인의 [회룡포 뿅뿅다리]는 머나먼 그 옛날의 동화적 색채를 띠며 매우 부드럽고 경쾌하게 그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지만,“그러나 사람들은 다리에는 관심이 없다/ 이쪽에서 저쪽에만/ 혹은 저쪽에서 이쪽만 카메라렌즈를 맞출 뿐이다”라는 시구를 통해 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반전시켜나간다. 요컨대 [회룡포 뿅뿅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받는 다리가 되고,‘퐁퐁다리’는“오랜 세월 밟히다 보니 사람들이 디딜 때마다/ 퐁퐁으로 나던 소리가/ 뿅뿅으로”그 신음 소리를 토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도구는 생명 없는 노예이고, 노예는 생명 있는 도구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있고,“동물들에게는 가끔 변질이 있으나 결코 윤회는 없다. 그리고 영혼들의 윤회도 없다”라는 라이프니츠의 말도 있다.‘뿅뿅다리’는 생명 없는 노예가 되고, 생명 있는 노예는 시적 화자가 된다. 회룡포에는 뿅뿅다리가 있고, “퐁퐁이란 다리 이름이 뿅뿅으로 변한 것은/ 오랜 세월 밟히다 보니 사람들이 디딜 때마다/ 퐁퐁으로 나던 소리가/ 뿅뿅으로 나기 때문”이었다. 퐁퐁이란 공기가 제대로 주입된 바퀴처럼 탄력적이지만, 뿅뿅이란 가느다란 실펑크가 나고 그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도 같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 뿅뿅다리를 통하여 강을 건너가고 강을 건너온다. 뿅뿅소리를 들으면서 뿅뿅다리를 건너며,“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갈 수 있는 것은 뿅뿅다리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뿅뿅다리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다리는 노동의 가치만 있고, 그 노동력을 상실하면 새로운 다리로 교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일찍 죽고, 악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오래 산다. 약육강식의 사회는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사회이며, 소수의 부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이다. 이쪽과 저쪽, 혹은 이 낙원과 저 낙원,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또 생산하는 곳에만 관심이 있지,‘퐁퐁소리’에서‘뿅뿅’의 신음소리로 바뀐 다리(노예)에는 관심이 없다.
채만희 시인은 [회룡포 뿅뿅다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끊임없이 이용만을 당해온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돌아보니 다리 같은 삶이었다”라는 시구에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삶만을 살아온 자의 회한과 그 탄식의 아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는 없고, 따지고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이는 나라가 더없이 착하고 선량한 인간들을 끊임없이 학대하고 착취하는 야만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돈 많은 부자가 황금의자와 황금옷을 입고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일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마을과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잔혹극을 생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노예, 혹은 뿅뿅다리는 황금을 실어나르는 황소가 되고, 그 노동력을 상실하면 곧바로 푸줏간으로 팔려나간다.
“돌아보니 다리 같은 삶이었다.”그렇다. 퐁퐁에서 시작하여 뿅뿅으로 끝나는 인생이 있었던 것이다.
채만희 시인의 [회룡포 뿅뿅다리]는 머나먼 그 옛날의 동화적 색채를 띠며 매우 부드럽고 경쾌하게 그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지만,“그러나 사람들은 다리에는 관심이 없다/ 이쪽에서 저쪽에만/ 혹은 저쪽에서 이쪽만 카메라렌즈를 맞출 뿐이다”라는 시구를 통해 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반전시켜나간다. 요컨대 [회룡포 뿅뿅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받는 다리가 되고,‘퐁퐁다리’는“오랜 세월 밟히다 보니 사람들이 디딜 때마다/ 퐁퐁으로 나던 소리가/ 뿅뿅으로”그 신음 소리를 토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도구는 생명 없는 노예이고, 노예는 생명 있는 도구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있고,“동물들에게는 가끔 변질이 있으나 결코 윤회는 없다. 그리고 영혼들의 윤회도 없다”라는 라이프니츠의 말도 있다.‘뿅뿅다리’는 생명 없는 노예가 되고, 생명 있는 노예는 시적 화자가 된다. 회룡포에는 뿅뿅다리가 있고, “퐁퐁이란 다리 이름이 뿅뿅으로 변한 것은/ 오랜 세월 밟히다 보니 사람들이 디딜 때마다/ 퐁퐁으로 나던 소리가/ 뿅뿅으로 나기 때문”이었다. 퐁퐁이란 공기가 제대로 주입된 바퀴처럼 탄력적이지만, 뿅뿅이란 가느다란 실펑크가 나고 그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도 같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 뿅뿅다리를 통하여 강을 건너가고 강을 건너온다. 뿅뿅소리를 들으면서 뿅뿅다리를 건너며,“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갈 수 있는 것은 뿅뿅다리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뿅뿅다리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다리는 노동의 가치만 있고, 그 노동력을 상실하면 새로운 다리로 교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일찍 죽고, 악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오래 산다. 약육강식의 사회는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사회이며, 소수의 부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이다. 이쪽과 저쪽, 혹은 이 낙원과 저 낙원,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또 생산하는 곳에만 관심이 있지,‘퐁퐁소리’에서‘뿅뿅’의 신음소리로 바뀐 다리(노예)에는 관심이 없다.
채만희 시인은 [회룡포 뿅뿅다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끊임없이 이용만을 당해온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돌아보니 다리 같은 삶이었다”라는 시구에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삶만을 살아온 자의 회한과 그 탄식의 아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는 없고, 따지고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이는 나라가 더없이 착하고 선량한 인간들을 끊임없이 학대하고 착취하는 야만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돈 많은 부자가 황금의자와 황금옷을 입고 수많은 착취와 학대와 약탈을 일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마을과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잔혹극을 생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노예, 혹은 뿅뿅다리는 황금을 실어나르는 황소가 되고, 그 노동력을 상실하면 곧바로 푸줏간으로 팔려나간다.
“돌아보니 다리 같은 삶이었다.”그렇다. 퐁퐁에서 시작하여 뿅뿅으로 끝나는 인생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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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채만희 시인은 문경 사람이다. 그는 문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직장생활 역시 문경을 중심으로 했기에 삶의 근거지는 문경이었고 퇴직 직전까지 문경에서 출퇴근하였다. 퇴직 후 여전히 문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문경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이런 그의 문경에 대한 애정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의 첫 시집 제목이 『그리운 금천』이다. 여기 나오는 '금천'은 문경의 대표적인 강이다.
그의 문경사랑은 정서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다. 퇴임 후 문경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하여 혼신을 다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장을 맡아 문경문학을 경북의 대표적인 위상으로 끌어 올렸는가 하면 현재 한국예술총연합회 문경지회장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랑의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빨갛게 익은 얼굴이 못내 수줍다// 만져도 보고 싶고/ 깨물어도 보고 싶고/ 빈센조 페루지아처럼 보쌈을/ 해버리고 싶은/ 빛깔 고운 달콤한 여인이다// 옷 한 겹만 벗겨도 향긋한 내음이 풍기고/ 입 안 가득 달달함이 고이게 하는/ 가을의 여인이다// 단단하게 속을 채우고/ 빛나는 盛裝을 하고 사랑을 찾아서/ 길 떠나는 여인이다//
聞喜 사람들의/맑은 영혼과 푸른 육신을 하나로 모은/ 여인이다
- 〈문경사과〉 전문
'문경사과'를 제재로 하는 시다. 사과는 문경의 특산물 중 하나다. 지방의 특산물은 그 지방에 대한 사랑을 노래할 때 소재로 흔히 차용된다. 채만희 시인 역시 그러하다. 시에서 '사과'는 여인으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 '여인'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시적 표현을 극복하고 있다. 첫 연 "사랑의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빨갛게 익은 얼굴이 못내 수줍다" 는 사과의 외양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과의 빨갛게 익은 겉모양에서 사랑에 취한 여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당도'를 강조하여 빨갛다에서 받는 시각적 이미지와 당도에서 느끼는 미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시적 신선감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만져도 보고 싶고/깨물어도 보고 싶고/빈센조 페루지아처럼 보쌈을/해버리고 싶은/빛깔 고운 달콤한 여인이다" 와 같이 사과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여기서도 촉각적, 미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고 있다. 셋째 연, " 단단하게 속을 채우고/빛나는 盛裝을 하고 사랑을 찾아서/길 떠나는 여인"으로 나타난다. 즉 문경 특산물인 사과가 문경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팔려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 聞喜 사람들의 /맑은 영혼과 푸른 육신을 하나로 모은/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어 문경 사람들의 사과에 대한 애정과 사과를 가꾸는 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과를 여인으로 변주한 것에서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를 연상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로틱한 여성적 체취가 이 시의 바탕에 은은하게 배어 있어 문경의 사과를 새롭게 노래하고 있다.
문경의 진산이다/ 새파란 하늘에 치솟은 사람 형상의 돌산/ 그 아래에는 미끄러지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 여궁폭포,/ 문경의 어머니를 만난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계곡/ 홍건적난 때 공민왕이 피난했던 그 길 위에/ 혜국사 풍경소리가 흩날린다/ 지금 역사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역사 드라마 촬영 세트장,/ 백제궁에서 잠시 자신의 안에 있던 왕을 만나기도 하고/ 초가의 저잣거리에서는/ 우리들 일상을 돌아보기도 하는 관람객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오늘을 현상한다// 문경의 어머니, 주흘산에서/ 오미자 막걸리 한 잔으로/ 태평성대가 얼린다
- 〈주흘산〉 전문
인용한 시는 '주흘산' 전문이다. 고향을 노래할 적에 가장 보편적인 소재는 산천이다. 이에 따라 채만희 시인도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을 노래했다. 이 시의 첫째 연을 통해 시인이 보여주는 주흘산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인 것 같다. 동시에 산마루가 마치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산의 절경을 이루는 것이 '여궁폭포'이다. 채만희 시인은 그 여궁폭포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아마 주흘산에서 만나는 어머니는 문경이라는 큰어머니일 게다. 이어진 둘째 연에서는 주흘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고 있다. 이 주흘산 "홍건적난 때 공민왕이 피난했던 그 길"이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아픈 역사적 현장이 지금 "혜국사 풍경소리가 흩날"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현장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주흘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사극 세트장을 노래하여 문경이 우리나라 역사극의 중심이 되고 있음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주흘산 관광객들이 산기슭 주막에서 문경의 특산물인 오미자주 마시는 풍류를 노래하여 주흘산 예찬에 그치지 않고 문경 정취까지 담아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땐 모든 것이 검었지요
산도 검고 강도 검고 바람도 검어 빨래조차 검었지요
막장에는 막장인 사람들로 차고 넘쳤어요
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었어요
농사 고거 지어서 생활이 곤궁해
광산 문을 두드리면 '인원 다 찾습니다' 그럼에도
연줄만 닿으면 이력서도 없이 임시부로 고단을 캤지요
검은 것이 돈이 됐지요
고걸로 쌀도 팔고 새끼들 옷가지도 사고
젓가락 장단에 목구멍도 씻고
그냥저냥 뻗쳤지요
갱도는 좁고 발파한 먼지안개로 눈앞은 안보였지요
한증막보다 더한 지열에 방진마스크는 썼지요
못 견디고 도중에 갱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많았어요
때로 하늘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낙반사고로 구조를 기다리는 그 막막함이 상상이나 되나요
이런 날은 여백 없는 가슴이 울었어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요
검은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지요.
얼굴 말쑥한 넥타이는 요정에서 사람 취급도 안 했다니까
검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반은 우습고 반은 찡하다
- 〈광부의 노래〉 전문
앞서 인용한 시들은 문경의 특산물과 문경의 경치를 중심으로 노래한 시다. 고향 이야기에는 산천과 특산물이 주요한 소재이지만 역시 그 중심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경은 탄광촌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남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경탄광이 개발되었고 광복 후 본격적으로 탄광이 개발되어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시행되어 비경제적 탄광들을 정리한 뒤로 문경탄전의 모든 탄광도 폐광되었다. 지금은 문경시에서 문경석탄박물관을 건설하여 1999년에 개관하였다.
인용한 시, 〈광부의 노래〉는 탄광 도시의 삶을 추억하는 시다.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아픔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다. 석탄의 상징인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첫 연 "그땐 모든 것이 검었지요/산도 검고 강도 검고 바람도 검어 빨래조차 검었지요/막장에는 막장인 사람들로 차고 넘쳤어요/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었어요" '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 시에서도 그 일반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제시하지 않지만 그래서 광부들의 고달픈 삶을 '검다'를 통해 암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는 모습을 통해 밝은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부들의 극한적인 삶이 셋째, 넷째 연에서 그려내고 있다. "갱도는 좁고 발파한 먼지안개로 눈앞은 안보였지요/한증막보다 더한 지열에 방진마스크는 썼지요/못 견디고 도중에 갱 밖으로 뛰쳐나가는/사람도 많았"을 정도로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때로 하늘이 무너지기도 했어요/낙반사고로 구조를 기다리는 그 막막함이 상상이나 되나요/이런 날은 여백 없는 가슴이 울"어야 하는 것이 광부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직업이 바로 광부였다. 그렇지만 되돌아보는 그 시절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온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요/검은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노래한다.
채만희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시는 시적 기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고향에 대한 실천적인 생활의 발로이기에 그 감동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경사랑은 정서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다. 퇴임 후 문경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하여 혼신을 다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장을 맡아 문경문학을 경북의 대표적인 위상으로 끌어 올렸는가 하면 현재 한국예술총연합회 문경지회장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랑의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빨갛게 익은 얼굴이 못내 수줍다// 만져도 보고 싶고/ 깨물어도 보고 싶고/ 빈센조 페루지아처럼 보쌈을/ 해버리고 싶은/ 빛깔 고운 달콤한 여인이다// 옷 한 겹만 벗겨도 향긋한 내음이 풍기고/ 입 안 가득 달달함이 고이게 하는/ 가을의 여인이다// 단단하게 속을 채우고/ 빛나는 盛裝을 하고 사랑을 찾아서/ 길 떠나는 여인이다//
聞喜 사람들의/맑은 영혼과 푸른 육신을 하나로 모은/ 여인이다
- 〈문경사과〉 전문
'문경사과'를 제재로 하는 시다. 사과는 문경의 특산물 중 하나다. 지방의 특산물은 그 지방에 대한 사랑을 노래할 때 소재로 흔히 차용된다. 채만희 시인 역시 그러하다. 시에서 '사과'는 여인으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 '여인'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시적 표현을 극복하고 있다. 첫 연 "사랑의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빨갛게 익은 얼굴이 못내 수줍다" 는 사과의 외양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과의 빨갛게 익은 겉모양에서 사랑에 취한 여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당도'를 강조하여 빨갛다에서 받는 시각적 이미지와 당도에서 느끼는 미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시적 신선감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만져도 보고 싶고/깨물어도 보고 싶고/빈센조 페루지아처럼 보쌈을/해버리고 싶은/빛깔 고운 달콤한 여인이다" 와 같이 사과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여기서도 촉각적, 미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자아내고 있다. 셋째 연, " 단단하게 속을 채우고/빛나는 盛裝을 하고 사랑을 찾아서/길 떠나는 여인"으로 나타난다. 즉 문경 특산물인 사과가 문경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팔려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 聞喜 사람들의 /맑은 영혼과 푸른 육신을 하나로 모은/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어 문경 사람들의 사과에 대한 애정과 사과를 가꾸는 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과를 여인으로 변주한 것에서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를 연상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로틱한 여성적 체취가 이 시의 바탕에 은은하게 배어 있어 문경의 사과를 새롭게 노래하고 있다.
문경의 진산이다/ 새파란 하늘에 치솟은 사람 형상의 돌산/ 그 아래에는 미끄러지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 여궁폭포,/ 문경의 어머니를 만난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계곡/ 홍건적난 때 공민왕이 피난했던 그 길 위에/ 혜국사 풍경소리가 흩날린다/ 지금 역사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역사 드라마 촬영 세트장,/ 백제궁에서 잠시 자신의 안에 있던 왕을 만나기도 하고/ 초가의 저잣거리에서는/ 우리들 일상을 돌아보기도 하는 관람객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오늘을 현상한다// 문경의 어머니, 주흘산에서/ 오미자 막걸리 한 잔으로/ 태평성대가 얼린다
- 〈주흘산〉 전문
인용한 시는 '주흘산' 전문이다. 고향을 노래할 적에 가장 보편적인 소재는 산천이다. 이에 따라 채만희 시인도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을 노래했다. 이 시의 첫째 연을 통해 시인이 보여주는 주흘산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인 것 같다. 동시에 산마루가 마치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산의 절경을 이루는 것이 '여궁폭포'이다. 채만희 시인은 그 여궁폭포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아마 주흘산에서 만나는 어머니는 문경이라는 큰어머니일 게다. 이어진 둘째 연에서는 주흘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고 있다. 이 주흘산 "홍건적난 때 공민왕이 피난했던 그 길"이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아픈 역사적 현장이 지금 "혜국사 풍경소리가 흩날"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현장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주흘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사극 세트장을 노래하여 문경이 우리나라 역사극의 중심이 되고 있음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주흘산 관광객들이 산기슭 주막에서 문경의 특산물인 오미자주 마시는 풍류를 노래하여 주흘산 예찬에 그치지 않고 문경 정취까지 담아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땐 모든 것이 검었지요
산도 검고 강도 검고 바람도 검어 빨래조차 검었지요
막장에는 막장인 사람들로 차고 넘쳤어요
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었어요
농사 고거 지어서 생활이 곤궁해
광산 문을 두드리면 '인원 다 찾습니다' 그럼에도
연줄만 닿으면 이력서도 없이 임시부로 고단을 캤지요
검은 것이 돈이 됐지요
고걸로 쌀도 팔고 새끼들 옷가지도 사고
젓가락 장단에 목구멍도 씻고
그냥저냥 뻗쳤지요
갱도는 좁고 발파한 먼지안개로 눈앞은 안보였지요
한증막보다 더한 지열에 방진마스크는 썼지요
못 견디고 도중에 갱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많았어요
때로 하늘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낙반사고로 구조를 기다리는 그 막막함이 상상이나 되나요
이런 날은 여백 없는 가슴이 울었어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요
검은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지요.
얼굴 말쑥한 넥타이는 요정에서 사람 취급도 안 했다니까
검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반은 우습고 반은 찡하다
- 〈광부의 노래〉 전문
앞서 인용한 시들은 문경의 특산물과 문경의 경치를 중심으로 노래한 시다. 고향 이야기에는 산천과 특산물이 주요한 소재이지만 역시 그 중심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문경은 탄광촌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남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경탄광이 개발되었고 광복 후 본격적으로 탄광이 개발되어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시행되어 비경제적 탄광들을 정리한 뒤로 문경탄전의 모든 탄광도 폐광되었다. 지금은 문경시에서 문경석탄박물관을 건설하여 1999년에 개관하였다.
인용한 시, 〈광부의 노래〉는 탄광 도시의 삶을 추억하는 시다.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아픔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다. 석탄의 상징인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첫 연 "그땐 모든 것이 검었지요/산도 검고 강도 검고 바람도 검어 빨래조차 검었지요/막장에는 막장인 사람들로 차고 넘쳤어요/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었어요" '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 시에서도 그 일반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제시하지 않지만 그래서 광부들의 고달픈 삶을 '검다'를 통해 암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광부들은 늘 하얗게 웃"는 모습을 통해 밝은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부들의 극한적인 삶이 셋째, 넷째 연에서 그려내고 있다. "갱도는 좁고 발파한 먼지안개로 눈앞은 안보였지요/한증막보다 더한 지열에 방진마스크는 썼지요/못 견디고 도중에 갱 밖으로 뛰쳐나가는/사람도 많았"을 정도로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때로 하늘이 무너지기도 했어요/낙반사고로 구조를 기다리는 그 막막함이 상상이나 되나요/이런 날은 여백 없는 가슴이 울"어야 하는 것이 광부의 삶이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직업이 바로 광부였다. 그렇지만 되돌아보는 그 시절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온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요/검은 것이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노래한다.
채만희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시는 시적 기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고향에 대한 실천적인 생활의 발로이기에 그 감동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바람에 관하여 12
술래 13
씨앗 14
회룡포 뿅뿅다리 15
낙화 16
안과 밖 17
애엽 18
광부의 노래 19
통영 활어시장 21
보랏빛 향기 22
봄비 23
표류하는 마음 24
하회탈 25
있는 것들이 더해 26
신호등 앞에서 27
2부
귀뚜라미의 말 30
옥야 식당에서 31
거미에 관하여 32
허기 33
정지화면 34
현대 비둘기 35
호미 36
구제역 37
영강潁江 38
단언할 수는 없지만 40
나무의 편지 41
문경사과 42
주흘산 43
김용사 44
골목길을 걸으며 45
3부
매무새인형의 말 48
눈썹달 49
별 50
풀 51
울음 52
허풍쟁이 54
배추벌레 55
타령 56
끈 57
등나무 58
다행 59
도자기 1 60
도자기 2 61
모정 62
등대 63
4부
웅덩이 66
육친 67
골필 68
상추쌈 69
장례식장에서 70
담쟁이 71
백수일기 72
휴대폰 73
택배 74
희망 75
쌀 76
공 77
사슴 78
그리움 79
상수리나무의 말 80
1부
바람에 관하여 12
술래 13
씨앗 14
회룡포 뿅뿅다리 15
낙화 16
안과 밖 17
애엽 18
광부의 노래 19
통영 활어시장 21
보랏빛 향기 22
봄비 23
표류하는 마음 24
하회탈 25
있는 것들이 더해 26
신호등 앞에서 27
2부
귀뚜라미의 말 30
옥야 식당에서 31
거미에 관하여 32
허기 33
정지화면 34
현대 비둘기 35
호미 36
구제역 37
영강潁江 38
단언할 수는 없지만 40
나무의 편지 41
문경사과 42
주흘산 43
김용사 44
골목길을 걸으며 45
3부
매무새인형의 말 48
눈썹달 49
별 50
풀 51
울음 52
허풍쟁이 54
배추벌레 55
타령 56
끈 57
등나무 58
다행 59
도자기 1 60
도자기 2 61
모정 62
등대 63
4부
웅덩이 66
육친 67
골필 68
상추쌈 69
장례식장에서 70
담쟁이 71
백수일기 72
휴대폰 73
택배 74
희망 75
쌀 76
공 77
사슴 78
그리움 79
상수리나무의 말 80
저자
저자
채만희
채만희 시인은 195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1978년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입사했다. 2009년 안동지사장으로 명예 퇴임하였고, 2009년 『대구문학』에 [담쟁이] 외 1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6년 첫 시집 {그리운 금천]을 출간한 바가 있다.
채만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오늘 밤에는 별 대신 그리움 하나}는 인간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리움의 시학'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채만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오늘 밤에는 별 대신 그리움 하나}는 인간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리움의 시학'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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