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지혜사랑 시선 233)
박형욱 시집
시집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은 〈산으로 가는 배 -카누를 타며〉, 〈엄마 탓만 같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가도 가도 시작이 반〉, 〈어떤 시 낭송회〉, 〈낭만에 대하여〉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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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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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으려는 산을/ 나무가 일으켜 세우려는 안간힘이다// 무너지며 포기하려는 산을/ 부축하기 위해/ 나무는 비탈에서도/ 수직으로 힘을 쓰고 있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황혼의 동반자는/ 나무가 일으켜 세운 푸른 산처럼/ 영원히 젊다// 당신도 고생 많았네 그려/ 일어나 손잡아 주고 싶은/어느 날
---{나무의 부축} 전문
박형욱 시인은"나무가 비탈에서도/ 바로 서는 것은/ 태양이라는 지향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주저앉으려는 산을/ 나무가 일으켜 세우려는 안간힘"이라고 말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무너지며 포기하려는 산을/ 부축하기 위해/ 나무는 비탈에서도/ 수직으로 힘을 쓰고 있다"라고 말한다."나무가 먼저이냐/ 산이 먼저이냐"라는 말은"닭이 먼저이냐/ 달걀이 먼저이냐"라는 문제만큼의 난제이며,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는 것일까? 나무가 있고 산이 있는 것일까? 산이 없는 나무와 나무가 없는 산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박형욱 시인은 이처럼 낡고 낡은 통속적인 편견과 그 관념을 던져버리고, 나무가 산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다한다고 말한다. 나무가 없는 산은 산이 아니며, 만일 나무가 없다면 사납고 매서운 눈보라와 더없이 거칠고 난폭한 장맛비와 그 홍수피해를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농부이고 부처이며, 나무이다. 요컨대 나무의 존재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신이고, 구세주이며, 이 지구와 우주를 떠받쳐 주는 우주목宇宙木인 것이다. 산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이고,"황혼의 동반자", 즉, 남편과 아내가 영원히 젊고 푸른 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모든 산새와 짐승을 다 품어 기르고, 나무가 모든 사랑과 자유와 평화의 둥지를 마련해준다.
산을 일터로 삼고 살아가는 박형욱 시인, 박형욱 시인이 시인--농부로서 나무에게 부여한 가치는 신화창조적인 것이며, 이것이 부처의 마음, 즉,'나무숭배사상'의 그 모든 것이다. 그의 마음은 나무--부처이고, 이 나무--부처의 힘으로 모든 만물을 다 품어 기른다. 시인의 윤리적 토대는 나무이고, 이 나무의 사상이 그의 푸르디 푸른 영원한 청춘의 힘이 된다. 시는 나무의 꽃이고, 부처의 마음이다. 박형욱 시인이 나무숭배사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최선의 것은 지혜이며, 이것에 의하여 그는 시인 자체의 삶, 즉, 예술자체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생의 가장 예쁜 꽃을/ 딱,/ 한 번/ 피우고 싶다/ 이제 거울 앞에서 돌아서자/ 눈을 뜨자// 생에 딱 한 번/ 웃다 가도 좋다
-〈눈을 뜨다〉 부분
삶의 어느 특정 시점에서부터 시를 썼다고 확언하는 말은 왠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어딘가 경솔해 보인다. 꼭이 경직되게 문학의 어느 창작 시점을 말하지 않더라도 형욱은 어쩌면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의 저 먼 옛일로부터 시를 경모(景慕)해 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다고 막연하게 말하는 사람에겐 생소한 예술의 한 장르이자 고상한 취미의 경우이겠지만 어쩌면 그에게 시(詩)는 그가 예전부터 여러 다른 일들을 하며 살아오면서도 거느렸던 삶의 내밀한 결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산림과 관련된 일을 하고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농업 및 임업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공동체적 삶을 시험하는 동안에도 시는 그의 또 하나의 정신적 살림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좋은 일이 있고 없고 무망(無望)한 시간이 한정없이 지속될 거 같은 시절 속에서도 언제 왔는지 모르고 어떤 특별한 언질과 매력을 발산했는지 불분명하면서도 곁을 지켜준 듯한 시의 뉘앙스를 그는 낙락하게 품었을 듯싶다. 그런 나름으로는 오랜 동숙(同宿)의 인연과 뜸들임을 거쳐 그는 '생의 가장 예쁜 꽃'을 바라보는 시점에 어느덧 다달았다. 그 찬연한 도착의 시점은 어둑한 저녁이어도 한낮의 밝음이 있다.
자기연민과 자기 폄하 같은 지난날의 숱한 지리멸렬한 되새김질을 물리듯 '이제 거울 앞에서 돌아서'고 오롯이 자기 응시(凝視)의 늡늡한 정신의 보폭을 가지려는 듯 '눈을 뜨자'고 그는 새삼 다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그가 걸으려는 시의 다짐이기도 하리라. 무릇 시라는 것이, 그 어떤 경향의 시이든 간에 매순간 자기 자신에게 눈 뜨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더불어 세상과 자신, 이웃과 자신을 둘러싼 존재의 주변과 사물을 향해 눈을 떠가는 과정의 발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발견물로써의 시(詩)를 도도록이 쌓아온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를 만나기 이전의 삶을 엿보는 소슬함이 없지 않다. 친구가 되기까지 친구의 삶의 이모저모를 그윽이 헤아리는 지점에도 그의 시는 소박하고 진솔하게 놓여있다.
한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것과/ 쉼 없이 멀리 흐른다는 것은/ 모두 지극한 합장// 언제던가/
죽을 만큼 치열해본 적이// 생의 절반/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해/ 절집 마당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다
-〈서성이다〉 일부
우리는 오십 줄에 들어서 만났다. 담양은 그 일합(一合)의 일회(一會)가 맺어진 곳이다. 예로부터 그 나이를 지천명이라고 하나, 내가 아는 것은 글이 잘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도 배고픔은 거의 정확하게 찾아온다는 거였다. 술과 밥과 국과 소박한 반찬들, 봄날에 채취한 죽순이 적막한 식욕을 위로하곤 했다. 천명을 알지 못하고 그 천명이 뭘까, 궁금해지는 나이에 겨우 다다른 나이였다. 그러할 때 박시인과 주변 들판을 거닐고 헤맸다. 넓게 보면 그의 표현대로 '서성이'는 일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잘 맺히지 않는 깨달음 부스러기라도 만져보자 스스로를 흔드는 일이 그 서성임의 영역에 드는지 몰랐다. 시인이 영민하게 일갈한 것처럼 '한 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것과/ 쉼없이 멀리 흐른다는 것은/모두 지극한 합장'이라는 통 큰 시야를 그는 끝까지 가져갈 것이라 믿는다. 바람 부는 논둑길에서 혹은 수초가 그득히 번져 거무스레 으늑해 보이는 저수지 둑방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누었던가. 아마 서로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숱한 바람과 햇빛과 그늘, 구름의 바뀌는 체위와 빛깔 속에서 번져오는 자연의 무늬를 존재의 문양으로 바꿔보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순간을 매일 반복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어찌 새로운 무엇으로 바꿔볼까 자꾸 서성이는 일을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자신을 보고 느끼면서 멀리 가까이 내다보는 생각의 언저리를 시로 바꿔보려 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단력보다 오래되고 인간적인 서성임을 시인이 스스로 받아들이듯이 그는 삶의 한가운데서 시를 추인하고 추진해 나갈 것이다. 몇 해 전 초겨울 들판 한구석에 핀 들풀을 설명해주는 그의 남다른 식견을 듣고 있으면 벌써 그 등짝에 야생화 도감이 인화돼 있는 듯하다. 그런 그는 이 대자연의 작고 소소한 것과 크고 듬쑥한 것을 가리지 않고 숨탄것들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작은 식물들을 더 잘 보라고 말없이 준 루페 돋보기는 그래서 더욱 이색적인 선물이었다. 무엇이나 그가 겸손되이 낙락하게 소중하게 키워온 시(詩)의 은화식물이 이젠 그늘과 양지를 가리지 않고 점차 세상의 척박한 곳으로 당당하게 나아가 사람들의 황량함을 적셔줄 것이다. 그런 도량이 그를 더욱 진전케 하리라.
목차
목차
1부
나무의 부축 12
눈을 뜨다 14
대竹 16
설원雪原 -Tree run ski 18
산으로 가는 배 -카누를 타며 19
연리목連理木 20
소쇄원 대숲1 21
소쇄원 대숲2 22
엄마 탓만 같다 23
안개지대 24
남은 이력履歷 26
임종 연습 27
평범하게 산다는 것 28
슬픔을 만지다 30
2부
좌우명座右銘 32
호박 33
시골 풍경 34
풍등 35
오래된 유산 36
세월호 37
가도 가도 시작이 반 38
찐드기 39
개 전문가 40
투표전投票戰 42
참나무 43
고라니 44
비트코인 45
3부
어떤 시 낭송회 48
낭만에 대하여 50
아내의 문 51
바람의 노래 52
고드름 54
창밖의 여자 55
길동무 56
안마 시술소 58
권태기 60
목백일홍 -윤증 고택에서 61
무인텔 62
서 서 오줌 누는 여자 63
보름달 64
진달래 65
빼앗긴 우울 66
4부
건기 캄보디아 68
두릅을 꺾으며 70
분꽃 시집살이 71
질항아리 72
먼 길 돌아외는 바람 73
겨우살이 74
단풍 75
평균대 76
담쟁이 77
삽목 78
목련 80
쥐똥나무 81
찔레꽃 82
기찻길 83
잇는다 84
5부
통로 86
꿈꾸는 바람 -김영식 형을 생각하며 87
나목裸木 88
넋두리 89
예쁘게 산다는 것 90
주연배우 94
진수식 95
소심한 후회 96
잔설 98
풍토병 100
장마 101
시골 장 102
문진 103
설날 아침 104
서성이다 105
빈 자리 106
비 오시는 날 108
해설출범出帆유종인 112
저자
저자
박형욱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 은 그의 나무숭배사상이 육화된 시집이며, 이 나무숭배사상에 의해서 시인 자체의 삶, 즉, 예술 자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산을 일터로 삼고 살아가는 박형욱 시인, 그의 마음은 나무--부처이고, 이 나무--부처의 힘으로 모든 만물을 다 품어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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