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에게 미안해(J.H CLASSIC 72)(양장본 HardCover)
여행을 통한 여러 지명이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한다. 해당 방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적 의식을 보여준다. 토포필리아는 정서에 장소를 결합한 용어로 공간에 경험들이 더해져 친밀한 장소로 만드는 인식이다. 단순한 공간 차원의 개념을 넘어 안정감을 희원하며 존재 의미가 깃들어 있고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이집트의 시내 산을 오르는 길” 즉 이 시에 나타나는 장소는 위치하는 그 이상의 의미로 관심과 특성을 부여한다.「낙타에게 미안해」는 생명성과 장소애(場所愛)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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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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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는 풀어내고 허당은 밭쳐주고,
한결 가벼워졌다
수시로 하늘과 땅을 불러들인다
-「석부작 사랑법」부분
입 막고 눈 감고 살아온
세월이 어디냐고, 잘 참고 참았노라고
한때는 아라공주 궁 안에서 사랑을
독차지 했음직 한
붉은 볼이 선명한 아라홍련
아름답고 당당하다
-「아라홍련」부분
혼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무수히 날개를 퍼덕여 본다
그것만이 사는 길이다
때로는 가시덩쿨에 떨어지고 돌무덤에
내려꽃이는 상처투성이로 뒤뚱거리면서도
다시 또 날개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나그네 새」부분
석부작은 '난이나 분재 따위를 돌에 붙여 자라게 하여 만든 관상 장식품'이다. "가느다란 철사 줄로 가슴을 옥죄"이면서도 "응어리는 풀어내고 허당은 밭쳐"준다. 그러나 정작 석부작 자체는 가볍다는데 주시할 필요가 있다.「석부작 사랑법」에서 시인이 난이나 분재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석부작을 중심소재로 다루는 만큼 석부작에 비중이 실리고 있다. 이 시에서 석부작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의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또 "가야시대 함안에 자리 잡은 나라"인 아라국은 오랜 세월 깊은 잠에 들었다. 700년 만에 피어난「아라홍련」을 통해 지극한 마음을 표현한다. 단아하고 고결한 모습이 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연자육은 상처를 받지 않으면 내처 잠만 잔다고 한다. 누군가의 상처가 생명을 일깨우는 힘으로 작용해 단단히 여문다고 한다. 단단한 껍질을 벗고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장면은 "아름답고 당당하"게 그려지고 있다.
"붉은 빰 멧새"를「나그네 새」에 비유한 것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녀서 그렇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이 많아서 날개를 접는 곳이 쉼터가 된다. 부화하여 열흘 만에 어미 곁을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어린 새는 부지런히 날갯짓을 익혀야 살아남는다.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구름 뚫고 고개 넘어서 어디나 자유롭게 날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된다.
위 3편의 시는 공통으로 상처를 이겨야 살 수 있는 면에서 진정성이 있고 절박하다. 고통이 굳센 의지와 승화를 낳았다. 생채기며 그림자를 안았기에 서늘한 사랑을 실현하게 되었으리라. 어둠을 견디는 모습이 뭉클하게 와 닿는 시이다. 시인이 그늘지는 부분을 들여다보았기에 시적 대상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다. 삶의 밝은 편에서는 미처 모르다가 그늘이 지는 쪽에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늘진 마음을 교류하는 시인의 온정이 전해온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찬찬히 볼 수 있을 때 이른다. 사람의 내면을 조각처럼 보지 않고 아우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이다. 지극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면 무심함도 반성하게 된다. 순례의 길에 오르는 다음의 시를 보자.
이집트의 시내 산을 오르는 길이었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돌산 길,
행여 떨어질세라 손이 저리도록
낙타 등에 달린 2개의 봉우리를 움켜쥐었지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새벽녘
나는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어
지그재그로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를 때,
바르르 떨고 있는 가녀린 낙타의 다리
덕지덕지 군살 돋아 갈라터진 무릎
그렁그렁 눈물가득한 눈망울,
방향을 조종하는 채찍소리
낙타의 등에 앉아 조금 더 편하게 산을 오르려는
무심한 나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었어
생각 할수록 미안한 순례의 길
-「낙타에게 미안해」부분
여행을 통한 여러 지명이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한다. 해당 방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적 의식을 보여준다. 토포필리아는 정서에 장소를 결합한 용어로 공간에 경험들이 더해져 친밀한 장소로 만드는 인식이다. 단순한 공간 차원의 개념을 넘어 안정감을 희원하며 존재 의미가 깃들어 있고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이집트의 시내 산을 오르는 길" 즉 이 시에 나타나는 장소는 위치하는 그 이상의 의미로 관심과 특성을 부여한다.「낙타에게 미안해」는 생명성과 장소애(場所愛)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낙타의 등에 앉아 조금 더 편하게 산을 오르려는" 행위가 낙타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을지 시인은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를 때,/바르르 떨고 있는 가녀린 낙타의 다리"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갈라터진 무릎"과 "눈물가득한 눈망울"이며 "채찍소리"는 순례의 길에 생각할수록 측은지심과 반성을 낳는다.
이 시의 배경이 "순례의 길"이므로 수행하는 공간으로 재현되고 있다. 시인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는 각성으로부터 비롯하고 주제의식으로 연동이 된다. 이 시를 읽다가 편안 하려는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행위를 돌아보게 된다. 희생하는 동물의 노고에 대한 연민도 느껴진다. 이렇게 이섬의 시편들은 공감의 폭이 넓다. 찬찬한 눈길로 곱씹는 일면에 깨달음이 있다. 고통에 당면한 존재와 함께하는 따듯한 마음이 자리한다. 주위를 돌아보는 시인의 성품은 다정하게 읽힌다. 목청을 높이지 않으며 대상을 배려한다. 비슷한 소재라 하더라도 어떻게 다루며 주제를 발현하느냐가 관건일 텐데, 이섬 시인은 소외된 존재들을 보듬으며 생명의 귀함을 강조하고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게 한다.
요즘 많은 이들이 시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삶에서 우러난 시가 아니고 시론에 맞추어서 쓰느라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온화한 시선으로 서정시의 특장을 발휘하며 감동을 선사하는 이섬 시인의 작품들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목차
목차
1부
벨라지오-삼박자
사슴, 4차원 세계로
누가 날 위해 저 꽃을!
낙타에게 미안해
바다, 지문
꿀벌들의 말은 참 달콤하다
반딧불이 축제
보름사리
한여름 밤의 편지
시나위
불장골 저수지
바닷길, 뱃길
통과의례, 포인세티아
다시 황촉규에게
석부작 사랑법
아라홍련
성장일기
호수에도 간이 베어 있다
비어있음의 미학
2부
뻐꾸기와 놀다
푸른빛 희망
맹그로브 사랑
꽃편지
슬픔의 농도
기도하는 손
고양이 호텔
외달도 또는 애달도
연어 엄마
버킷리스트
박스집
미어켓 수문장
위문편지
집중력 카드
보통으로
봄을 차려놓다
대한과 소한사이
나그네 새
3부
7번 국도
유유하다
화풍경운
능가산 내소사
가얏고
고령
또 하나, 비밀의 통로
동해레일바이크
청잣빛 그리움으로 빚다
신선들이 노닐던 곳
갈색 DNA
루어
물돌이 마을
물의 가든
밀당
나팔꽃 아날로그
내가 모르는 나
3월 꽃의 마음
4부
협곡에 들다
사막체험
울릉도 밤바다에서
롤러코스터 비행
멸치 떼가 돌아오다
이별은 짧게
마음과 겨루다
자작나무 문신
감정도우미
눈과 비, 그 사잇길
가을의 맛
입맛이 돌아요
한산세모시, 매혹
동춘당, 팔작지붕
지금은 기다려야 할때
달맞이꽃 노래
존재에 대하여
목련 고문
해설 존재를 향한 온화한 눈길 박수빈
저자
저자
이섬의 여덟 번째 시집『낙타에게 미안해』는 모든 사물을 서정적이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기성찰의 모티브로 삼아 좀 더 밝은 세상을 꿈꾸는 희망이 내재해 있다.
이메일 주소: 2s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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