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발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지혜사랑 254)
지혜사랑 시인선 254권. 최종월 시집. 시(詩)라는 언어의 고삐를 삶의 주변과 내면에 연결하고 관심의 고삐줄을 풀었다 당기면서 시인은 세상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초대장을 띄우는지도 모른다. 곡진한 삶은 고통의 외면으로부터 오지 않고 그걸 감내하는 진실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데 있다고 시인이 말한다. 그야말로 그대 누구라도 초대하고 싶은 날이고 그 누구에게든 초대 받고 싶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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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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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 전문
시지푸스의 운명적인 사투의 저항처럼 시인도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광맥을 향한 굴착은 '석공(石工)'이라는 장인과 그 직업세계를 통해 유비적(類比的)으로 활성화된다. 그 굴착의 대상은 유형(有形)의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것들도 늘 상존한다. '투명해도 존재'하는 것들과 '투명해도 멀리서 서로를 생각하는 시공간'을 향한 최종월의 열린 시야는 자신의 언어적 굴착의 행위가 어느 새 '발효된/말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끌밋한 조각의 수준으로 향상되고 또 그만큼 지향성(指向性)을 갖는 매력과 공력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최종월의 시적 굴착과 타공(punching)의 궁극적인 대상은 한 마디로 '어둠'이며 그녀의 시적 굴착의 행위는 '어둠을 캔다'라는 명제로 오롯하게 드러난다. 이 어둠은 단순한 시간적 흐름에 편승한 공간적 분위기에 한정하지 않고 화자가 겪어왔으며 또 겪고 있는 숱한 생의 우여곡절의 딜레마로 확장된 비유이다.
석공은 세상에 미만(彌滿)해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시선을 불식시키고 그녀가 원하는 바의 에스프리(Esprit)가 갈마든 기억과 경험을 '백색 대리석'의 시간으로부터 굴착해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불모의 시절과 상황 속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바의 '다비드가 걸어나'오게 하고 '큐피트'가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의 미학(美學)으로 완성되도록 하는 지난한 응시의 언어를 발효시키는 함의(含意)를 지닌다. 그야말로 최종월에게 있어 시창작은 언어의 세공 이전에 단단한 정신의 근육과 감각의 유연성,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적 눈썰미를 가지고 언어의 대리석을 부수고 깨며 조각의 심층부에 이르려는 존재의 몸부림인 듯 싶다. 시인의 이런 언어적 예술작업에 대한 비유적 정황과 대상으로서의 〈석공〉은 적실한 비유이자 그 자체의 적확한 문학가적 삶의 전체를 아우르는 표본 같은 것이다. 이런 언어적 공력의 과정을 자칫 소홀히 여기는 시대에 최종월의 이런 치열한 문학적 소산(所産)에의 투명하도록 시린 응시는 시가 가닿아야 할 어떤 궁극의 극점(極點) 같은 것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겨우내 난방을 하지 않은 방/ 불도 켜지 않은 방/ 상자 안 감자가 새끼를 낳았다/ 혹한의 어둠에서/ 어금니 물고 산고를 겪었다/ 도토리만한 새끼 감자가 뽀얗다/ 몸통 전체를 뒤덮은 골짝들/ 새끼 감자 손 꼭 잡고 매달린/ 별 하나/ 씨감자는 수유 중이다/
- 「수유」 전문
무엇보다 소소한 사물이나 풍경의 구석진 곳에 처한 상황을 흘리지 않고 꼼꼼하고 적실하게 보아내는 최종월의 시선은 생명에 대한 본원적인 아낌이나 사랑에 본능적으로 끌리고 천착한다. '혹한의 어둠에서/어금니 물고 산고를 겪었'을 겨울 감자의 내성(耐性)과 끈질긴 생명력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 이 시편은 앞서 〈낙타는 무릎을 꿇어야 잠들 수 있다〉와 그 혹독한 배경이나 엄혹한 상황은 비슷하지만 화자의 좀 더 따스한 눈길과 감성적 정감으로 '씨감자' 하나의 우주적인 모성(母性)을 확장해 내는데 성공한다.
극한의 고통과 쉽게 끝나지 않는 지리한 통증의 여로를 견디고 통과하면서 '새끼 감자 손 꼭 잡고 매달린/별'을 확인하듯 보아내는 이 과정 자체가 숨탄것인 감자나 진솔한 시적 응시를 포기하지 않는 시인에게나 '별'이 돋는 일이 아닐까. 외계의 별이 아니라 고군분투의 사랑의 본성을 키워내는 그 마음자리에 돋는 별을 우리는 '수유(授乳)'라는 생명 연대와 그 내리사랑의 본원적인 내어줌 속에서 그윽이 확인하게 된다. 사랑의 우주적 기율은 이런 냉방에 유폐된 쪼글쪼글한 겨울 감자 한 알에서도 도드라진 바가 역력하다. 이런 어쩌면 자질구레한 것들에서 소상한 내력을 밝혀내는 최종월의 시적 눈매에서 디테일(detail)이 곧 시의 방편으로 가는 한 갈래길이다, 라는 일종의 어록의 한 마디를 얻게 된다.
이 땅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살아가는 건 걸어가는 거다/ 햇살을 꼭 안아주는 거다/ 끊어진 통화/ 그 다음을 기쁘게 적어 보는 거다// 지구의 봄날에 초대 받은 지금/ 경사진 풀밭에 주저앉아/ 엉덩이로 우주의 별 하나를 밀고 있다/ 만난 적 없는 행성의 먼 그대에게/ 초대장을 띄운다
- 「초대 받은 날」 부분
숱한 기억의 명암(明暗)은 나름의 여사여사한 사연과 거기에 따른 곡진한 인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예시했으며 그걸 통해 시인은 성장하고 성찰하고 아파했으며 그 통증과 견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흔히 범박하게 인생사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걸 '끊어진 통화/그 다음을 기쁘게 적어 보는' 일에 다름 아닌지도 모른다. 우울하고 적막하며 불우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크고 작게 닥쳤지만 '그 다음을 기쁘게' 예감하는 일은 단순한 바람을 넘어서 시인의 도저한 생의 긍정(肯定)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애써 그런 긍정의 시도를 세상을 향해 열어두는 일의 종요로움을 이제 시인은 '초대'라는 언어를 통해 폭넓게 섭외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참한 일들이 있었고 우리는 이 지구촌 크고 작은 비극의 딜레마를 아우르고 다독이면서 '지구의 봄날에 초대 받은' 바로 여기의 '지금'이라는 시간을 그 자체로 끌밋한 초대로 여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최종월의 시는 몸소 겪은 삶의 풍경과 내밀한 응시의 내면을 예시하지만 그 안에 폭넓고 깊게 사랑으로 가자는 그 눈길의 시어들로 하나의 초대의 성찬을 이루고 있다. 그의 시를 읽는 순간 '경사진 풀밭에 주저앉아/엉덩이로 우주의 별 하나를 밀고 있'다는 느낌과 모종의 예감이 들 거라는 믿음은 그 자체로 행복에의 초대이지 싶다.
시(詩)라는 언어의 고삐를 삶의 주변과 내면에 연결하고 관심의 고삐줄을 풀었다 당기면서 시인은 세상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초대장을 띄'우는지도 모른다. 곡진한 삶은 고통의 외면으로부터 오지 않고 그걸 감내하는 진실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데 있다고 시인이 말한다. 그야말로 그대 누구라도 초대하고 싶은 날이고 그 누구에게든 초대 받고 싶을 날이다. 어쩌랴, 시라는 것이 그 시인의 곡진한 언어로의 한바탕 초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마지막 타종이 울리기 전// 나무는 누구에게도 발바닥은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 나무의 가녀린 손가락들이다// 잎과 잎 틈새// 절벽과 절벽 틈새를 휘젓다가// 등으로 기어오르면// 나무는 고개 숙여 가슴을 안아준다
- 「나무」 전문
목차
목차
1부
벼랑 12
파르마콘 13
이름에 대한 명상 15
밥알의 우화 17
석공 19
저녁이 밝아오면 21
외투 22
폭설 예보 23
점토 공작 24
어머니의 골목 26
쪽배 27
국자 생각 29
시. 외면하기 30
꽃이라 불러도 될까 31
2부
부재중 34
별똥별 36
술 항아리 38
그림자가 명령한다 39
낙타는 무릎을 꿇어야 잠들 수 있다 40
지금 네 잠은 어떤지 41
우리 어느 별에서 왔나 43
운동화를 씻는 동안 비가 내리다 44
해가 강을 건너는 중이다 45
붉은색에 대하여 1 47
붉은색에 대하여 2 48
초대 받은 날 49
아직은, 이라고 했나요? 50
느리게 아주 느리게 52
3부
먼지 한 됫박 54
등 56
주상절리 57
그녀는 야맹증이었다 58
껍질 깎는 동안 59
수몰, 그 후 60
파편을 깨물다 62
해 64
고삐 65
젖다 67
아버지 주머니 68
까치는 사람보다 자동차를 따른다 69
오후 70
채탄 계장 71
4부
나무 74
팽나무가 있는 자리 75
검지 손톱과 놀다 77
바늘쌈지 78
메뚜기를 문상하다 79
문패 81
인사하는 여자 82
어쩌나 83
상수리 나무가 쓰러진 날 84
어디서 기다릴까 86
들녘 88
한파주의보 89
수유 91
등이 푸른 날 92
저자
저자
최종월 시인의 시집 『나무는 발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그의 네 번째 시집이며, 그가 몸소 겪은 삶의 풍경과 내밀한 응시의 내면을 예시하지만 그 안에 폭넓고 깊게 사랑으로 가자는 그 눈길의 시어들로 하나의 초대의 성찬을 이루고 있다. 시詩라는 언어의 고삐를 삶의 주변과 내면에 연결하고 관심의 고삐줄을 풀었다 당기면서 시인은 세상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초대장을 띄'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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