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과 함께(지혜시선 6)(양장본 Hardcover)
이창윤 시집
이번 시집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는 이창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며, 이 시집에는 오랜 세월을 의사로서, 재미 한인으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노시인의 상상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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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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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전문
이 시에서 "쓸모없는 것들"은 바로 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일평생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인이 시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낯설다. 그런데 이 낯섦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와 닮았다. 낯설게 하기란 일상적 언어를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문학적 표현을 일컫는 것이다. 시인이 '시는 쓸모가 많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낯익은 표현이므로, 그것은 시에 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에 '시는 쓸모없다'라는 말에는 시에 관한 역설적 인식, 즉 시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시를 쓴다"라고 표현된다. 이 말속에는 시는 타락한 현실의 기준으로 볼 때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드높이는 데는 쓸모가 많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시는 "내 어릴 적 뒤뜰에/ 풀벌레 몇 마리"에 기억처럼, 각박한 현실 너머의 아름다운 서정을 마음속에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이 마음을 우리는 시심(詩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문학은 "삶 자체"를 위해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 문학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어떠한 권력을 가질 수 없으며, 문학을 통해 경제적인 풍요를 일구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문학사가 증명하듯이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문학에 헌신하면서 살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사람들은 오늘도 권력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는 문학에 왜 그토록 열정적인가? 그것은 현실의 쓸모보다 더 나은 쓸모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추구하는 꿈 꾸기, 정갈한 영혼, 진실한 사랑, 진정한 자아의 발견, 타인과의 공감 등이 세상에서 현실의 쓸모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셈이다. 또한 "내 시는 나처럼 어리석고 엉뚱해져서"는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는 물질이나 권력이 할 수 없는, 인간적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시가 물질과 권력으로 할 수 없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많은 것들을 제공해 주니 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가? 하여 시인들은 현실의 성공 욕망을 물리치고 자발적 가난과 자발적 고독의 길에 기꺼이 들어서는 것이다.
시가 쓸모없음의 쓸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시는 강퍅한 현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기 위한 언어 활동이다. 꿈의 형식과 언어의 형식은 다르지 않을 터, 압축과 전치를 통해 시에 인간의 정신과 세계를 반영한다. 꿈꾸기 혹은 시 쓰기는 비정한 현실과 운명을 넘어서기 위한 정신적, 정서적 실천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십여 년만에 모국에 들렸을 때의 일이다/ 누군가 읽다가 공항의자 위에 두고 간 신문/ 시인마을란에 실린 시를 읽었다/ 낙타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낙타의/ 질긴 슬픔으로 모래의 흐느낌을 듣고 싶다는/ 한 여성시인의 시였다/ 그날 밤 나는 낙타의 행렬에 함께 걸어가는/ 꿈을 선물로 받았다/ 여자가 행렬에 참가할 수 있었는가 하는 나의 의문에/ 낙타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여자라고 했다// 꿈은 당신의 영혼이 쓰는 시입니다/ 꿈의 언어는 상징과 은유로 되어있다는/ 조금은 낭만적인 해설에 말려들어/ 내가 이 시를 쓰는 오늘 밤에는 낙타가 되는 꿈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부자가 되는 꿈은 진작 버렸으니까 바늘귀는 문을/ 활짝 열어 그리로 낙타를 통과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낙타는 꿈에서 깨어 커피를 끓이는 아침에/ 내 영혼이 쓰는 시를 한 번 더 읽어보게 될 것이다
-「낙타가 되는 꿈」 전문
이 시는 "낙타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매개로 한 꿈에 관해 노래한다. 잠시 모국을 방문하면서 읽은 "낙타의 질긴 슬픔으로 모래의 흐느낌을 듣고 싶다"라는 어느 여성 시인의 시구가 "나"를 꿈꾸게 한 것이다. 그 꿈의 구체적인 장면은 "낙타의 행렬에 같이 걸어가는" 것인데, 이처럼 "낙타가 되는 꿈"은 인간이 짊어진 운명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다. 등에는 항상 큰 짐을 지고 일평생 거친 사막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낙타"처럼, 인간은 본래적으로 비루하고 속악한 현실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꿈속에서나마 "낙타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것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정직한 인식에 동참하는 일이다. 이 꿈은 "부자가 되는 꿈"과는 전혀 다른, 인간 영혼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이는 2연의 첫 시구에서 "꿈은 당신의 영혼이 쓰는 시"라고 하는 정의와 맞닿는다. 시는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인간의 영혼을 성찰하는 데 아주 쓸모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시인은 "삶 자체의 조건에 쫓기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다."(김현, 「한국문학의 위상」에서)라는 문장과 부합한다. 이창윤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이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꾸"는 일임을 인식한 것이다.
이제 '시는 쓸모가 없다'라는 문장은 '시는 정말 쓸모가 많다'라고 고쳐 써야 한다. 시는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현실 너머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시가 현실에서의 자본이나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고 자아를 성찰하고 마음의 빈틈을 만드는 데 많은 쓸모가 있다. 이 쓸모는 현실에서 괴물과 같이 쓸모가 큰 자본이나 권력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자본이나 권력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창윤 시인이 이 시집에서 시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시의 이러한 쓸모를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꿈을 꾸고 이상을 추구하는 일, 아득함과 흔들림을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를 지향하는 일, 이민자의 고달픔을 위무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얼마나 큰 쓸모인가? 하여 당연히 그가 세상에서 아무 쓸모 없는 시를 일평생 쓰고 있다는 잦은 고백은 역설적이다.
이창윤 시인은 이제 맑고 깨끗한 산정에서 발원한 영혼의 물줄기가 골짜기를 고쳐 작은 시내가 되어 흐르다가 굴곡 많은 인생의 강을 지나 드넓은 바다에 다다르고 있다. 그 바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 지금까지 써온 시보다 더 넓은 세계를 의미한다.
강은 바다에 이르러 흐름을 멈추고 잠시 망설인다/?깊이를 감추고 있는 저 검푸른 세계로/ 스며들어 사라지기 전 그 망설임의 물빛을/ 영산강 하류에 자리 잡은 어촌/ 강구마을에서 보았다// 오늘은 벽난로 위에 놓인 고려자기 한 점/ 아내가 물려받은 보물의 먼지를 닦아내다가/ 그 망설임의 물빛을 다시 보았던 것이다// 옹기가마의 그 뜨거운 불길이 어떻게 물빛을/ 구워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실패에도 끝내 좌절하지 않았을/ 그 도예공도 어느 강의 하류에 자리 잡은 어촌/ 강구마을에서 자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찾아와/ 나를 아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 물빛」 전문
시인은 "강구마을"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다. 강이 바다와 인접한 곳에 자리잡은 "강구마을"에서 "강은 바다에 이르러 흐름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는 모습에 주목한다. "깊이를 감추고 있는 저 검푸른 세계"인 바다로 "사라지기 전 그 망설임의 물빛"을 떠올린 것이다. 그 "물빛"의 이미지를 "오늘은 벽난로 위에 놓인 고려자기"에서 발견하고 있다. "고려자기"의 비취색에서 바다로 사라지기 전의 강물에서 보았던 "망설임의 물빛"을 본 것이다. 이 "물빛"은 삶과 죽음 혹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경계에서 빛나는 불빛이다. 그것은 예술의 상상력만이 도달할 수 있는 역설적 상상력의 표상이다. 그것은 "반복되는 실패에도 끝내 좌절하지 않았을/ 그 도예공"의 정신이다. 그 정신은 저의 생명을 다하고 죽음에 도달한 강물이 한 점 도자기로 다시 생명을 얻은 예술혼과 다르지 않다. "강구마을에서 자랐을" 그 "도예공"의 눈빛과 예술적 재능에 의해 "망설임의 물빛"이 아름다운 "고려자기"로 승화된 것이다. 이창윤 시인은 "망설임의 물빛"과 도예공의 눈빛을 이 한 편의 시에서 동시에 발견하고 있다. 이 발견으로 그는 다시 시적 통찰의 마음, 즉 "아득"한 시심을 얻은 것이다.
"망설이는 물빛"과 도예공의 예술혼으로 시심을 얻은 이창윤 시인은 이제 인생이라는 강물의 하구에 도달했다. 시간은 저녁이다. 인생의 강물을 흘러오는 동안 스스로 포기한 사람도 있고 나룻배가 뒤집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흐름이 어느 기슭에 닿아, 누군가의/ 마음 기슭에 닿아서, 함께 흘러오지 않았는가", "용케도 여기까지 무사히 흘러오다니/ 고마워, 함께 흘러주어서 외롭지 않았어"(「아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할 말」 부분)라는 고백은 얼마나 우리를 얼마나 아득하게 하는가, 또 얼마나 큰 감동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가? 이 감동은 시의 쓸모없음을 쓸모로 만들기 위해 "잘 길들여진 지식과 정돈되어/ 줄지어 선 생각들이 비껴서서/ 보다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에게 길을 내어줄 때/ 마침내 새로운 오솔길이 선뜻 보였던 것이다/ 뒤풀이한다, 이 늦은 나이에도 가끔은/ 어리석고 엉뚱해지고 싶어서 시를 쓴다."(「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부분)라는 고백을 생각나게 한다. 현실을 지배하는 "잘 길들여진 지식"과 "줄지어 선 생각들"에 저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어리석고 엉뚱해지"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것은 분명 새롭고 아름답고 독창적인 시와 삶을 위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16
헐거워진 저녁 17
저녁이 말했다 19
마음의 지평선 20
저녁노을을 머리로 들이받은 새 21
바다의 지붕 22
세월을 본다 23
갈대밭을 지나가다 24
가을의 뒷모습 25
봄꿈 26
철새들을 기다리던 시절 27
푸성귀를 키우며 28
가을의 손 29
봄날의 아득함으로 30
우연한 음악이 은혜에 기대다 31
껍질째 먹는 농담 32
내 시의 독자는 33
가끔, 시를 쓰는 일은 35
시베리안 아이리스 36
해안선 위에 걸린 달 37
2부
내 영혼이 쓰는 시
첫눈의 예감 40
북쪽 마을에 두고온 낙원 41
시골교회 뒷마당에 서있는 43
상처 입은 나무들과 함께 44
당나귀 편에 서보다 45
낙타가 되는 꿈 47
산을 위한 추천서 48
못다 쓴 편지 49
흔들리는 봄날 50
우습지만 슬픈 농담 51
나를 기다리게 해주는 것들 52
무화과의 계절 53
행복해지기 쉬운 날 54
멸치국물 그 맛의 오솔길 55
웨일 워칭 투어 시즌 56
엉겅퀴란 말은 욕설이 아닙니다 58
봄볕 아늑한 날에 60
능금, 그 향기의 무게 61
3부
무엇으로 흔들리는가
그 물빛 64
애리조나주의 밤하늘 65
푸른 별 66
섬 67
따스했던 그해의 겨울 68
낙타의 눈물 69
무엇으로 흔들리는가 70
무화과나무 앞에 다시 서보다 72
아직도 시를 쓰나요? 73
잔디밭을 맨발로 걸어보라 74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76
시조새의 화석을 본다 77
아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할 말 78
아득함이 데려다주는 새벽 79
문이 말한다 80
그리움의 세계가 따로 있다 81
푸른 하늘 83
아마존 강 84
반도네온이 한 번 더 울었다
- 배정웅 시인을 추모하며 86
해설/ 아득하게 흔들리는 저녁을 위한 시
-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한 상상들/ 이형권 89
저자
저자
시집으로는 『잎새들의 해안』, 『강물은 멀리서 흘러도』, 『다시 쓰는 봄편지』, 『내일은 목련이 지는 날 아닙니까』가 있고 재미시인상, 미주시인상(전 미주시학상), 해외문학상, 가산문학상, 미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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