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카르멘
김대성 소설집
김대성 소설. 김대성 소설의 인물들이 추구하는 사랑은 열정적 사랑에 가깝다. 많은 인물들은 결혼을 한 상태에서 사랑을 추구하고 연애의 대상과 육체적 관계도 맺는데 이것은 결혼과 일상의 의무로부터의 해방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열정적 사랑을 추구하는 인물이라면 그 사랑을 온전한 사랑으로 인식하고 만족해야 하는데 작중 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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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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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소설의 인물들이 추구하는 사랑은 이 둘 중 열정적 사랑에 가깝다. 많은 인물들은 결혼을 한 상태에서 사랑을 추구하고 연애의 대상과 육체적 관계도 맺는데 이것은 결혼과 일상의 의무로부터의 해방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열정적 사랑을 추구하는 인물이라면 그 사랑을 온전한 사랑으로 인식하고 만족해야 하는데 작중 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의 다리는 굵다」의 재준은 나이 많은 백수에 사랑 한번 안 해본 처지이다. 그런 그에게도 그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이 나타난다. 그는 그녀와의 연애도 즐기며 섹스도 하지만 그녀와의 육체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는 재준이 단지 육체적 쾌락을 주는 열정적 사랑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준은 이것을 온전한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캬! 신사임당이 환생했단 말인가. 하마터면 그녀를 끌어안고 엉엉 울 뻔했다. 정말 눈물 나도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못생긴 거북이의 입으로 들어야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친구들에게나 부모 형제에게나 인간대접을 못 받은 지가 꽤 오래된 듯하다. 그러니까 3년 전쯤이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자고 모두들 의기투합했었다. 마지막 의식으로 우리의 뜻을 모아 작성한 연판장에 서명하는 일만 남겨놓았다. 그런데 아무도 맨 윗자리에다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 꽁무니 빼는 모양이 비겁해보였고 내가 그런 비겁한 무리에 끼기가 싫었다. 그 싸인 하나로 난 노조결성 주동자가 되었고 결국 몇 달 후 8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름대로 직장을 구해보려 별의 별짓을 다 해보았다. 심지어는 직업소개소를 거쳐 양식집 주방에서 그릇도 닦아 보았고 택시회사 스페어 기사로 일하다 취객과 싸우고 그나마 남은 비상금마저 털리고 나온 적도 있었다. 만약 그녀의 외모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았더라면 조금 전 그녀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쩡한 세상에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역시 다시 봐도 거북이다.
-「그녀의 다리는 굵다」 에서
재준이 그녀와의 관계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꿈꾸는 사랑과 현실의 사랑 사이에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재준이 그녀와 육체적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정신적인 사랑이 결핍돼 있기 때문이다. 기든스식의 사랑으로 볼 때 재준이 바라는 사랑은 열정적 사랑에 더해 사랑의 대상을 이상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적 사랑이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재준은 그녀를 이상화할 수가 없다.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결핍을 주는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육체적 쾌락과 열정적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라테 카르멘〉의 '나'와 수미 또한 마찬가지다. 멀어진 거리로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는 직장의 후배, 동료와 애정관계를 유지해보려 한다. '나'는 회사 후배 정연에게 신선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랑으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는다. 반면 수미는 원균과 열정적 사랑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사랑은 할 수가 없다. 즉 둘 다 새로운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김대성 소설의 인물들이 추구하는 사랑이 단지 열정적 사랑이 아닌 낭만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사랑이란 그리스도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 즉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결합된 사랑이다.
겉으로 보기엔 소설 속 인물들은 열정적 사랑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 추구하는 사랑은 오히려 정신적 사랑 쪽에 가깝다. 많은 인물들이 육체적 관계를 통한 열정적 사랑을 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며 「그녀의 다리는 굵다」의 재준은 육체적 사랑은 가능함에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녀와 헤어진 재준은 다시 이상화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미안해. 난 역시 거기한테 방해만 되는 여자였지. 부디 예쁜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살아. 정말로…꼭!"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끔벅거린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것이 주루룩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땐 왜 몰랐을까, 그녀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던 행동들이 이렇게 후회될 줄을. 이제 나는 허전하게 남아있는 나의 빈자리를 완전하게 채워줄 사랑스런 거북이를 사냥하러 가야한다. 택시 한 대가 바람처럼 가볍게 잠실대교 위를 미끄러져가고 라디오에선 '빙고'가 흘러나온다.
-「그녀의 다리는 굵다」 에서
김대성 소설의 인물들은 육체적, 열정적 사랑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을 때 오히려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도 한다. 「라떼 카르멘」의 '나'와 수미부부는 불륜과 불신 속에서 헤어지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는데 오랜 세월 애정과 증오의 과정을 거치며 이들의 정신적 사랑이 한층 충만해진다. '나'는 오랜 세월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시 만난 이들 부부에게 열정적 쾌락적 사랑은 그리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사랑이 더 단단해 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였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미소에는 약간의 수줍음이 묻어있었다. 그의 목소리로 살아난 싯구절은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수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수미에게 다가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에서 멈춰 섰다.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수미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노을빛에 아롱진 그녀의 눈가가 보석처럼 영롱했다. 목이 메이는 수미의 목소리가 꺼이꺼이 흐느낌으로 바뀌면서 그의 가슴팍으로 스며들고 수미의 등을 감싸 안은 그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 지나갔던 안타깝고 서러웠던 시간들이 남해의 석양빛에 녹아내리면서 두 사람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흐르고 있었다.
-「라떼 카르멘」에서
그런 면에서 「건들 장마」의 선영과 '그'의 사랑은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오래전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애에도 열정적 사랑을 한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현실적 한계로 헤어진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이들은 이제 육체적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선영의 딸 별이도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만큼 아름다운 사랑이 된다. '그'와 선영의 사랑은 이제 열정적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선영이 치매에 걸려 육체적 사랑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히려 이들의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자 받아. 꼭 보여 주고 싶었어."
노인이 손에 들고 온 책을 선영에게 내민다.
"나 이 책 수십 번은 더 읽었던 걸."
선영의 목소리가 소녀처럼 들떠있어서 노인의 눈에 그렁그렁 맺혔던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루륵 흘러내린다.
"넌 해낼 줄 알았어. 이걸 쓰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 그땐 왜 그리 옹졸했던지."
눈물과 콧물에 뒤범벅이 된 그의 목소리를 별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등을 토닥이는 선영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고 여한이 없다는 듯 편안해진 표정은 삼십 삼년 전 이팝나무 꽃잎이 흩날리는 두물머리에 가 있었다. 무심했던 세월을 건너온 해후를 다독여주려는 듯 흐린 가을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건들장마」에서
목차
목차
그녀의 다리는 굵다 009
停止線 위의 savant 055
라떼 카르멘 091
안개 사랑을 삼키다 195
떠나지 못하는 자 231
건들장마 279
파란 우산 315
해설 | 사랑, 꿈 그리고 글쓰기 | 백지영 353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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