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봉오동 독립전쟁 100주년, 숨겨진 어느 장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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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독립전쟁 100주년에 다시 만난 영웅
최운산 장군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하여
2020년은 봉오동 ‘독립전쟁’ 100주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독립군이 일본군에게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이 책에서는 ‘독립전쟁’으로서 재조명한다. 봉오동 전투는 작년에 이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됐을 만큼 우리 마음에 기적 같은 승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간 잘못 알려져 왔다. 홍범도 장군이 전투를 지휘했으며, 봉오동 전장이 수몰되었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또한 수천 명의 독립군이 치러낸 ‘대규모 독립전쟁’은 ‘소규모 게릴라전’으로 축소되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은 이러한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대한북로독군부를 이끈 봉오동 독립전쟁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이 전쟁이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승리라는 것을 말한다.
100년 전 봉오동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최운산 장군의 손녀가 나섰다. 봉오동 독립전쟁의 발자취를 추적해온 저자 최성주 이사는 최진동ㆍ최운산ㆍ최치흥 형제, 그리고 또 한 명의 독립군이었던 최운산의 아내 김성녀 등 제대로 조명된 적 없던 최운산 가문의 삶을 선명히 그리고 있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국내 사료들을 모으고 역사 연구가들과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봉오동의 기억을 되짚는 과정은 봉오동 참호에 매복한 채 일본군에게 총구를 겨냥하던 그 순간의 긴장감까지 되살려 낸다.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와 ‘인간 최운산’을 역사의 이름으로 불러낸 이 책은 우리가 봉오동 독립전쟁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수천 명의 독립군이 목숨을 걸었던 그날의 언어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봉오동 독립전쟁’의 귀중한 기록이다.
최운산 장군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하여
2020년은 봉오동 ‘독립전쟁’ 100주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독립군이 일본군에게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를 이 책에서는 ‘독립전쟁’으로서 재조명한다. 봉오동 전투는 작년에 이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됐을 만큼 우리 마음에 기적 같은 승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간 잘못 알려져 왔다. 홍범도 장군이 전투를 지휘했으며, 봉오동 전장이 수몰되었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또한 수천 명의 독립군이 치러낸 ‘대규모 독립전쟁’은 ‘소규모 게릴라전’으로 축소되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은 이러한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대한북로독군부를 이끈 봉오동 독립전쟁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이 전쟁이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승리라는 것을 말한다.
100년 전 봉오동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최운산 장군의 손녀가 나섰다. 봉오동 독립전쟁의 발자취를 추적해온 저자 최성주 이사는 최진동ㆍ최운산ㆍ최치흥 형제, 그리고 또 한 명의 독립군이었던 최운산의 아내 김성녀 등 제대로 조명된 적 없던 최운산 가문의 삶을 선명히 그리고 있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국내 사료들을 모으고 역사 연구가들과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봉오동의 기억을 되짚는 과정은 봉오동 참호에 매복한 채 일본군에게 총구를 겨냥하던 그 순간의 긴장감까지 되살려 낸다.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와 ‘인간 최운산’을 역사의 이름으로 불러낸 이 책은 우리가 봉오동 독립전쟁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수천 명의 독립군이 목숨을 걸었던 그날의 언어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봉오동 독립전쟁’의 귀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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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신화가 아니라 실화로 본 봉오동
지금껏 우리가 배운 봉오동 전투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신화에 가깝다. 황량한 만주벌판을 떠돌며 무기도 식량도 없이 헐벗고 굶주린 독립군들, 화승총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관총과 대포로 중무장한 대규모의 일본군에 맞서는 그들의 결기, 몇 배가 넘는 일본군 사상자를 만든 게릴라전, 이 불가능에 가까운 전투를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끈 시대의 명장 홍범도 장군 등. 얼핏 보기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이 책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은 봉오동 전투의 진실을 바로 잡는다. 최운산 장군의 손녀이자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인 저자 최성주가 나섰다. 신화를 벗겨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제대로 다시 보자는 취지에서다.
저자는 봉오동 전투의 총지휘관이 홍범도 장군으로 알려져 온 것과 달리, 만주에 흩어진 독립군을 하나의 군대로 조직해 이끈 통합군단의 총사령관은 대한북로독군부장 최진동 장군이었으며 홍범도 장군은 2연대의 지도자로서 최진동 장군의 지휘를 받았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학계는 땅과 몸, 일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공헌했던 최운산 삼형제를 외면하고 홍범도만을 영웅으로 기록해왔다. 최운산을 제대로 조명하는 이 책은 그동안 역사에서 묻히고 연구가들이 건너뛰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또한 저자는 봉오동 전투는 소규모 게릴라전이 아니라 잘 정비된 무장독립군의 대규모 전쟁이었음을 지적하며 일제에 본격적으로 대항해 승리한 무장독립군의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봉오동 '전투'가 아닌 봉오동 '독립전쟁'으로 호칭한다. 실제로 저자는 부모님과 일가친척으로부터 당시에도 '봉오동 독립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들어왔으며 대한북로독군부는 당시 이미 일본군에 맞설만한 입지의 군대였음을 증명한다. 기적이 아니라 최진동·최운산·최치흥 형제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략, 병사들의 사기와 병참이 이뤄낸 승리였던 봉오동의 그날이 신화 아닌 실화로 되살아난다.
최운산 장군,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것들
1장에서는 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과 최운산 장군을 이야기한다면 2장에서는 최운산 장군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저자가 어릴 적 아버지와 일가친지들로부터 수집한 가족사가 역사와 맞물려 봉오동 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를 재조명한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고난과 승전의 역사를 복원하는 저자의 기록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다. 독립운동부터 6.25 전쟁까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최운산 일가의 기록에는 봉오동에 신한촌을 건설했던 증조할아버지 최우삼,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였던 할머니 김성녀 여사, 최운산 장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온 일생을 고난 속에 살아야 했던 7남매의 삶이 있다. 최운산 장군의 삶이 이제 역사의 문을 열고 100년 만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독립군부대의 안살림을 모두 책임졌던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 김성녀 여사의 증언과 진정서 기록이 증언의 구체성에 힘을 더한다. 대범하고 겁 없던 그녀는 총을 쥔 채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집이 독립군기지로 쓰일 때는 3000명이 넘는 독립군에게 밥을 해먹이며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만주의 무장독립운동과 봉오동 독립전쟁, 그리고 가족사에 대한 증언이 왜곡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상세한 전황의 기록에는 역사의 진실에 호소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있다. 최운산 장군의 삶을 온전히 세상으로 드러내려는 이 책은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잃어버린 봉오동을 찾아서
"내 고향은 봉오동"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김성녀 여사의 증언과 아버지가 남긴 말씀들을 되새기며 최운산 장군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봉오동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면 봉오동의 현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두만강을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 봉오동은 저자의 아버지이자 최운산의 큰아들인 최봉우가 평생 차마 가지 못한 곳이다. 저자를 포함한 5남매와 역사학자들, 아직도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6촌들, 100년 전 봉오동의 흔적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수남촌의 주민들이 마침내, 묘비 대신 흑송 세 그루로 표식 삼았던 증조부 최우삼의 묘에 비석을 세우고 제막을 올리기까지,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봉오동에서 자신의 뿌리를 차근히 되짚어나가며 선조들의 흔적을 마주하는 시간은 잊힌 역사를 되찾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무명용사가 손에 꼭 쥐고 생을 마감했을, 땅 아래 묻혀있던 녹슨 무기들을 마주하고 최우삼의 묘에 비석을 세웠다. 산기슭 한가운데 솟아있는 묘지 위 흑송들이 그들의 혼처럼 곧게 뻗어있다. 저자 일행이 최우삼의 혼을 기억하며 절을 올릴 때 그 흑송들이 포근히 일행을 감싸며 위로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할아버지 최운산 장군에게 전하지 못할 편지를 썼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역시 내 손주답게 살았구나! 하고 미소 짓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라고 꾹 눌러쓴 편지에 담긴 진심이 먹먹하다.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가려진 역사는 어떻게 복원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대와 싸워 이긴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 승리가 무기도 없는 민병대들이 이뤄낸 눈물겨운 기적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 만주 독립운동에 대해 오랫동안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전멸당한 것은 그들에게 기관총과 같은 신형 무기가 있었지만 동학군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핵심은 무기다. 상대에 필적할 무기와 병력도 없이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봉오동전투'는 무기와 무기가 격돌한 현대전이었다. 우리가 일본군에 이겼다는 것은 우리 독립군도 무장력을 제대로 갖춘 군대였다는 뜻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할 수 없는 일이다. 군사를 모으고, 매일 정신무장과 체력을 단련하고, 무기를 갖추고, 총포사용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모든 군대는 언제일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실전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언젠가 벌어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우리 독립군도 그랬다. 그들은 급조된 게릴라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의 독립군들이었다.
만주 봉오동은 장기간에 걸쳐 독립군을 양성한 본격적인 항일 무장독립군기지였다. 봉오동을 신한촌으로 건설한 간도의 억만장자 최운산 장군은 1912년 조선 사람들을 마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봉오동에 자위부대를 창설했고, 그 100여 명의 사병부대를 모체로 전국에서 모여오는 애국청년들을 정예 무장독립군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이 점점 늘어나자 1915년 봉오동 산중턱을 개간해 연병장을 만들고, 벌목한 나무로 막사를 짓고, 본부 둘레에 토성을 쌓아 독립군기지 봉오동을 완성한 뒤 본격적인 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 국민을 일깨웠고,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되자 최운산 장군은 그동안 봉오동을 지켰던 사병부대 '도독부'를 대한민국의 첫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했다. 다음해 '대한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 간도의 독립군들이 하나로 뭉쳐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府)'를 출범시켰다. 1920년 5월에 작성한 통합문서에 '대한민국 2년 5월 19일'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봉오동의 독립군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임을 자임했던 것이다. '대한북로독군부'는 수천의 독립군이 3개 연대 예하에 각 대대와 중대로, 그리고 후방부대와 보급부대, 의무부대까지 편제했던 대군단이었다.
대규모 전쟁을 몇몇 게릴라전으로 축소해버린 지난 역사로 인해 무장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를 배우지 못한 우리는, 만주라는 역사적·시대적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그날의 승리를 민족적 자부심과 일상의 독립정신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저 일본군에게 이겼다니 기뻐했고 또 쉽게 잊어버렸다.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까지 만주의 독립군들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갔는지, 수천 명의 독립군들이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었던 그날의 언어는 무엇이었는지, 간절했던 그들의 꿈과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상상하지 못했다. 승전의 역사는 축소되고 숫자화 되어 우리 기억의 창고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런 역사공부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도, 선조들의 삶에 응답하는 용기를 배우게 하지도 못한다.
이제 역사의 이름으로 그날의 전투현장을 불러내고 복원해야 한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봉오동 산 위 참호에 매복한 채 일본군의 진입을 기다렸던 그 순간의 긴장을 우리도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그날의 역사가, 시대가 당신들에게 요구했던 그 열정이, 후세대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당신들의 삶을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봉오동 대첩 실기
_김삼웅(前독립기념관장)
광대한 대륙 국가이던 고구려와 발해가 망하고 반도국가로 전락한 이래 우리 민족은 숱한 외적의 침략을 당하고, 1910년에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국치를 겪게 되었다. 4천년 역사, 3천리 강토, 2천만 민족이 왜놈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왜적의 앞잡이가 된 매국노ㆍ친일파가 적지 않았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국내외에서 싸운 애국지사도 수없이 많았다. 독립운동사에 고딕체로 기록된 지사들은 그나마 명예라도 회복되었으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고도 망각 속으로 사라진 분들도 적지 않다.
올해는 봉오동ㆍ청산리 대첩 100주년이다. 세계 식민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잔혹한 탄압 그리고 왜곡된 식민사관으로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를 패배와 굴종의 기간으로 그렸고,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산 것처럼 인식해왔다. 그러나 100년 전의 봉오동ㆍ청산리 전쟁은 '대첩'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승리한 전투였다.
양대 대첩이 있었기에 한민족의 상무정신이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임시정부ㆍ의열단ㆍ한인애국단ㆍ조선의용대ㆍ광복군 등 무장독립운동의 정맥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4ㆍ19 혁명 반유신투쟁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당당한 민족운동사의 마그마로 작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1920년 6월 봉오동 대첩은 독립운동사의 금자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치 이래 최초로 우리 독립군이 왜적과 싸워 승전했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군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정예군 19사단과 싸우고 통쾌하게 물리쳤다. 일본군 사망자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을 내고,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경미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어떻게?'는 생략되고 대첩은 몇 사람의 영웅담으로 마무리되었다. 역사 드라마라면 몰라도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쟁에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도자의 전략, 무기와 병사들의 사기, 병참이 일체가 되어야 승전에 이르게 된다. 봉오동 전투는 이런 것이 갖춰져서 대첩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 최진동ㆍ최운산ㆍ최치흥 형제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최운산 형제들의 대한군무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과 홍범도의 독립군, 여기에 대한신민단 독립군부대 등 통합부대가 이룬 전과였다. 국치 이래 최대 병력이 집결하여 대첩을 이루었다. 최운산 형제들의 숨은 공적은 지대했지만 역사에서는 묻혀지고 연구가들은 건너뛰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들이 총론이나 개론에 머물다보니 최진동ㆍ최운산 4형제가 1909년경부터 두만강변 봉오동에 터를 닦고 둔전屯田을 통해 군사를 양성하고, 연해주에 출병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구입하여 일전에 대비해온 사실은 외면되었다.
100년을 기다리다 못해 최운산 장군의 손녀가 직접 나섰다. 최운산의 부인이자 지은이의 할머니 김성녀 여사의 증언을 비롯, 중국 측의 각종 자료와 단편적인 국내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하여,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뒤늦게나마 봉오동 대첩의 정사正史를 펴냈다. 마치 한글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환산 이윤재 선생이 외교의 힘으로 우리 땅 울릉도를 지켜낸 안용복安龍福의 일대기를 쓰면서 피력했던 견해를 방불케 한다.
책을 엮은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성주 씨는 민주언론운동가답게 팩트를 중심으로, 경쾌한 문장으로 독립운동의 대서사시 봉오동 전투를 그리고 있다. 흔히 독립운동사가 건조하고 딱딱한 편인데, 이를 벗어난 것과 함께 묵은 흑백사진 대신 엮은이가 직접 촬영한 컬러의 현장사진이 더욱 입체감을 살려준다.
일제강점 초기 연해주에 최재형 선생이 있었다면 만주에 최운산 장군의 일가가 있었다. 이들의 존재로 하여 봉오동ㆍ청산리 대첩이 가능했고, 그곳이 해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지은이가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역시 내 손주답게 살았구나! 하고 미소 짓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듯이, 100년을 갈마드는 손녀와 선대들의 역사인식이 무척 이채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란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과거를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껏 우리가 배운 봉오동 전투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신화에 가깝다. 황량한 만주벌판을 떠돌며 무기도 식량도 없이 헐벗고 굶주린 독립군들, 화승총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관총과 대포로 중무장한 대규모의 일본군에 맞서는 그들의 결기, 몇 배가 넘는 일본군 사상자를 만든 게릴라전, 이 불가능에 가까운 전투를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끈 시대의 명장 홍범도 장군 등. 얼핏 보기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이 책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은 봉오동 전투의 진실을 바로 잡는다. 최운산 장군의 손녀이자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인 저자 최성주가 나섰다. 신화를 벗겨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제대로 다시 보자는 취지에서다.
저자는 봉오동 전투의 총지휘관이 홍범도 장군으로 알려져 온 것과 달리, 만주에 흩어진 독립군을 하나의 군대로 조직해 이끈 통합군단의 총사령관은 대한북로독군부장 최진동 장군이었으며 홍범도 장군은 2연대의 지도자로서 최진동 장군의 지휘를 받았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학계는 땅과 몸, 일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공헌했던 최운산 삼형제를 외면하고 홍범도만을 영웅으로 기록해왔다. 최운산을 제대로 조명하는 이 책은 그동안 역사에서 묻히고 연구가들이 건너뛰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또한 저자는 봉오동 전투는 소규모 게릴라전이 아니라 잘 정비된 무장독립군의 대규모 전쟁이었음을 지적하며 일제에 본격적으로 대항해 승리한 무장독립군의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봉오동 '전투'가 아닌 봉오동 '독립전쟁'으로 호칭한다. 실제로 저자는 부모님과 일가친척으로부터 당시에도 '봉오동 독립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들어왔으며 대한북로독군부는 당시 이미 일본군에 맞설만한 입지의 군대였음을 증명한다. 기적이 아니라 최진동·최운산·최치흥 형제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략, 병사들의 사기와 병참이 이뤄낸 승리였던 봉오동의 그날이 신화 아닌 실화로 되살아난다.
최운산 장군,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것들
1장에서는 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과 최운산 장군을 이야기한다면 2장에서는 최운산 장군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저자가 어릴 적 아버지와 일가친지들로부터 수집한 가족사가 역사와 맞물려 봉오동 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를 재조명한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고난과 승전의 역사를 복원하는 저자의 기록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다. 독립운동부터 6.25 전쟁까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최운산 일가의 기록에는 봉오동에 신한촌을 건설했던 증조할아버지 최우삼,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였던 할머니 김성녀 여사, 최운산 장군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온 일생을 고난 속에 살아야 했던 7남매의 삶이 있다. 최운산 장군의 삶이 이제 역사의 문을 열고 100년 만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독립군부대의 안살림을 모두 책임졌던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 김성녀 여사의 증언과 진정서 기록이 증언의 구체성에 힘을 더한다. 대범하고 겁 없던 그녀는 총을 쥔 채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집이 독립군기지로 쓰일 때는 3000명이 넘는 독립군에게 밥을 해먹이며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만주의 무장독립운동과 봉오동 독립전쟁, 그리고 가족사에 대한 증언이 왜곡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상세한 전황의 기록에는 역사의 진실에 호소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있다. 최운산 장군의 삶을 온전히 세상으로 드러내려는 이 책은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잃어버린 봉오동을 찾아서
"내 고향은 봉오동"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김성녀 여사의 증언과 아버지가 남긴 말씀들을 되새기며 최운산 장군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봉오동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면 봉오동의 현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두만강을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 봉오동은 저자의 아버지이자 최운산의 큰아들인 최봉우가 평생 차마 가지 못한 곳이다. 저자를 포함한 5남매와 역사학자들, 아직도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6촌들, 100년 전 봉오동의 흔적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수남촌의 주민들이 마침내, 묘비 대신 흑송 세 그루로 표식 삼았던 증조부 최우삼의 묘에 비석을 세우고 제막을 올리기까지,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봉오동에서 자신의 뿌리를 차근히 되짚어나가며 선조들의 흔적을 마주하는 시간은 잊힌 역사를 되찾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무명용사가 손에 꼭 쥐고 생을 마감했을, 땅 아래 묻혀있던 녹슨 무기들을 마주하고 최우삼의 묘에 비석을 세웠다. 산기슭 한가운데 솟아있는 묘지 위 흑송들이 그들의 혼처럼 곧게 뻗어있다. 저자 일행이 최우삼의 혼을 기억하며 절을 올릴 때 그 흑송들이 포근히 일행을 감싸며 위로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할아버지 최운산 장군에게 전하지 못할 편지를 썼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역시 내 손주답게 살았구나! 하고 미소 짓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라고 꾹 눌러쓴 편지에 담긴 진심이 먹먹하다.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가려진 역사는 어떻게 복원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대와 싸워 이긴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 승리가 무기도 없는 민병대들이 이뤄낸 눈물겨운 기적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 만주 독립운동에 대해 오랫동안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전멸당한 것은 그들에게 기관총과 같은 신형 무기가 있었지만 동학군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핵심은 무기다. 상대에 필적할 무기와 병력도 없이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봉오동전투'는 무기와 무기가 격돌한 현대전이었다. 우리가 일본군에 이겼다는 것은 우리 독립군도 무장력을 제대로 갖춘 군대였다는 뜻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할 수 없는 일이다. 군사를 모으고, 매일 정신무장과 체력을 단련하고, 무기를 갖추고, 총포사용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모든 군대는 언제일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실전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언젠가 벌어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우리 독립군도 그랬다. 그들은 급조된 게릴라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의 독립군들이었다.
만주 봉오동은 장기간에 걸쳐 독립군을 양성한 본격적인 항일 무장독립군기지였다. 봉오동을 신한촌으로 건설한 간도의 억만장자 최운산 장군은 1912년 조선 사람들을 마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봉오동에 자위부대를 창설했고, 그 100여 명의 사병부대를 모체로 전국에서 모여오는 애국청년들을 정예 무장독립군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이 점점 늘어나자 1915년 봉오동 산중턱을 개간해 연병장을 만들고, 벌목한 나무로 막사를 짓고, 본부 둘레에 토성을 쌓아 독립군기지 봉오동을 완성한 뒤 본격적인 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 국민을 일깨웠고,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되자 최운산 장군은 그동안 봉오동을 지켰던 사병부대 '도독부'를 대한민국의 첫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했다. 다음해 '대한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 간도의 독립군들이 하나로 뭉쳐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府)'를 출범시켰다. 1920년 5월에 작성한 통합문서에 '대한민국 2년 5월 19일'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봉오동의 독립군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임을 자임했던 것이다. '대한북로독군부'는 수천의 독립군이 3개 연대 예하에 각 대대와 중대로, 그리고 후방부대와 보급부대, 의무부대까지 편제했던 대군단이었다.
대규모 전쟁을 몇몇 게릴라전으로 축소해버린 지난 역사로 인해 무장독립전쟁의 장대한 서사를 배우지 못한 우리는, 만주라는 역사적·시대적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그날의 승리를 민족적 자부심과 일상의 독립정신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저 일본군에게 이겼다니 기뻐했고 또 쉽게 잊어버렸다.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까지 만주의 독립군들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갔는지, 수천 명의 독립군들이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었던 그날의 언어는 무엇이었는지, 간절했던 그들의 꿈과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상상하지 못했다. 승전의 역사는 축소되고 숫자화 되어 우리 기억의 창고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런 역사공부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도, 선조들의 삶에 응답하는 용기를 배우게 하지도 못한다.
이제 역사의 이름으로 그날의 전투현장을 불러내고 복원해야 한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봉오동 산 위 참호에 매복한 채 일본군의 진입을 기다렸던 그 순간의 긴장을 우리도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그날의 역사가, 시대가 당신들에게 요구했던 그 열정이, 후세대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당신들의 삶을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봉오동 대첩 실기
_김삼웅(前독립기념관장)
광대한 대륙 국가이던 고구려와 발해가 망하고 반도국가로 전락한 이래 우리 민족은 숱한 외적의 침략을 당하고, 1910년에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국치를 겪게 되었다. 4천년 역사, 3천리 강토, 2천만 민족이 왜놈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왜적의 앞잡이가 된 매국노ㆍ친일파가 적지 않았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국내외에서 싸운 애국지사도 수없이 많았다. 독립운동사에 고딕체로 기록된 지사들은 그나마 명예라도 회복되었으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고도 망각 속으로 사라진 분들도 적지 않다.
올해는 봉오동ㆍ청산리 대첩 100주년이다. 세계 식민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잔혹한 탄압 그리고 왜곡된 식민사관으로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를 패배와 굴종의 기간으로 그렸고,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산 것처럼 인식해왔다. 그러나 100년 전의 봉오동ㆍ청산리 전쟁은 '대첩'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승리한 전투였다.
양대 대첩이 있었기에 한민족의 상무정신이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임시정부ㆍ의열단ㆍ한인애국단ㆍ조선의용대ㆍ광복군 등 무장독립운동의 정맥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4ㆍ19 혁명 반유신투쟁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당당한 민족운동사의 마그마로 작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1920년 6월 봉오동 대첩은 독립운동사의 금자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치 이래 최초로 우리 독립군이 왜적과 싸워 승전했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군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정예군 19사단과 싸우고 통쾌하게 물리쳤다. 일본군 사망자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을 내고,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경미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어떻게?'는 생략되고 대첩은 몇 사람의 영웅담으로 마무리되었다. 역사 드라마라면 몰라도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쟁에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도자의 전략, 무기와 병사들의 사기, 병참이 일체가 되어야 승전에 이르게 된다. 봉오동 전투는 이런 것이 갖춰져서 대첩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 최진동ㆍ최운산ㆍ최치흥 형제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최운산 형제들의 대한군무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과 홍범도의 독립군, 여기에 대한신민단 독립군부대 등 통합부대가 이룬 전과였다. 국치 이래 최대 병력이 집결하여 대첩을 이루었다. 최운산 형제들의 숨은 공적은 지대했지만 역사에서는 묻혀지고 연구가들은 건너뛰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들이 총론이나 개론에 머물다보니 최진동ㆍ최운산 4형제가 1909년경부터 두만강변 봉오동에 터를 닦고 둔전屯田을 통해 군사를 양성하고, 연해주에 출병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구입하여 일전에 대비해온 사실은 외면되었다.
100년을 기다리다 못해 최운산 장군의 손녀가 직접 나섰다. 최운산의 부인이자 지은이의 할머니 김성녀 여사의 증언을 비롯, 중국 측의 각종 자료와 단편적인 국내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하여, 역사와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뒤늦게나마 봉오동 대첩의 정사正史를 펴냈다. 마치 한글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환산 이윤재 선생이 외교의 힘으로 우리 땅 울릉도를 지켜낸 안용복安龍福의 일대기를 쓰면서 피력했던 견해를 방불케 한다.
책을 엮은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성주 씨는 민주언론운동가답게 팩트를 중심으로, 경쾌한 문장으로 독립운동의 대서사시 봉오동 전투를 그리고 있다. 흔히 독립운동사가 건조하고 딱딱한 편인데, 이를 벗어난 것과 함께 묵은 흑백사진 대신 엮은이가 직접 촬영한 컬러의 현장사진이 더욱 입체감을 살려준다.
일제강점 초기 연해주에 최재형 선생이 있었다면 만주에 최운산 장군의 일가가 있었다. 이들의 존재로 하여 봉오동ㆍ청산리 대첩이 가능했고, 그곳이 해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지은이가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역시 내 손주답게 살았구나! 하고 미소 짓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듯이, 100년을 갈마드는 손녀와 선대들의 역사인식이 무척 이채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란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과거를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목차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부 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과 최운산 장군
1장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제1회전: 봉오동 독립전쟁
봉오동 신한촌과 무장독립군 기지 건설 이야기
2장 대한군무도독부
3장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
4장 영원을 꿈꾸던 독립군 기지 봉오동을 떠나다
5장 체포와 투옥,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전쟁
2부 최운산 장군 가족 이야기
1장 연변 도태 최우삼
2장 최운산 장군
3장 또 한 명의 독립군 김성녀
4장 내 아버지, 최운산 장군의 큰아들 최봉우
5장 세월을 건너온 최운산 장군의 자녀들
6장 빛나는 형제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7장 최운산 장군의 맏며느리 차연순
8장 최진동 장군의 딸 최경주
3부 봉오동에 가다
1장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2장 최운산 장군의 마을, 봉오동 첫 방문
3장 봉오동 독립군을 따라 그날을 걷다
4장 봉오동 수남촌 라철룡 촌장
5장 최운산 장군의 손자들
6장 당신은 서간도와 북간도의 차이를 아시나요?
에필로그
프롤로그
1부 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과 최운산 장군
1장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제1회전: 봉오동 독립전쟁
봉오동 신한촌과 무장독립군 기지 건설 이야기
2장 대한군무도독부
3장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
4장 영원을 꿈꾸던 독립군 기지 봉오동을 떠나다
5장 체포와 투옥,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전쟁
2부 최운산 장군 가족 이야기
1장 연변 도태 최우삼
2장 최운산 장군
3장 또 한 명의 독립군 김성녀
4장 내 아버지, 최운산 장군의 큰아들 최봉우
5장 세월을 건너온 최운산 장군의 자녀들
6장 빛나는 형제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7장 최운산 장군의 맏며느리 차연순
8장 최진동 장군의 딸 최경주
3부 봉오동에 가다
1장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2장 최운산 장군의 마을, 봉오동 첫 방문
3장 봉오동 독립군을 따라 그날을 걷다
4장 봉오동 수남촌 라철룡 촌장
5장 최운산 장군의 손자들
6장 당신은 서간도와 북간도의 차이를 아시나요?
에필로그
저자
저자
최성주
항일 투쟁의 숨은 주역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로서 봉오동 독립전쟁 학술 세미나 및 현장 답사를 수차례 진행했다. 역사 전문가들과의 학술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봉오동 독립전쟁 현장의 정확한 위치를 밝히는 등 봉오동 독립전쟁 승리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로서 언론분야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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