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유고집 복각본(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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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거 3주년 기념시집의 원본을 그대로 살린 유고시집
한글학계의 거두 최현배 선생의 영향으로 최초 가로쓰기 시집
증보판부터 삭제된 정지용, 유영, 강처중의 서문, 추도시, 발문이 살아있는 시집
이 시집은 1948년 2월 16일 윤동주 서거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명동 플라워다방에 모인 친구와 선후배들이 나눠 갖기 위해 10부가 제작된 윤동주 시인의 최초 유고집이다. 지금은 이 유고집이 경매에서 1억을 호가하는 희귀본이 되어 복각본의 소장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유고집에는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윤동주가 생체실험을 당해 옥사하고, 광복이 되어 세상이 바뀌는 등 많은 우여곡절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유고집의 원고는 윤동주가 그동안 써온 시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시 19편을 직접 골라 연희전문학교 졸업기념 시집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인 이양하 교수가 이들 시에는 저항시가 대부분이라면서 제자를 염려하여 말리는 바람에 자유가 없던 일제 암흑시대의 울분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쉽지만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는 19편의 육필원고를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기고 친구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학업이 끝날 무렵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송몽규와 함께 체포되었다. 재판을 받은 두 사람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원인모를 주사를 맞고 윤동주는 1945.2.16.일, 송몽규는 3.7일 옥사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광복을 목전에 두고 식염수라는 주사를 계속 맞으며 생체실험을 당해 사망한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공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주사를 매일 계속해서 맞아야하는 윤동주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울분을 참아야 했을까?
윤동주 유고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는 후배인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19편과 윤동주와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 한방을 쓰기도 했던 친구 강처중이 일본 릿교대학에서 편지와 함께 보낸 5편의 시와 윤동주의 물품과 함께 보관하고 있던 7편을 추가하여 31편으로 유고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의 편집을 주도한 강처중은 윤동주와 함께 한글 사랑이 남달라서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을 존경한 제자이기도 했다. 강처중은 잡지 「문우」의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윤동주 유고집을 편집할 때는 정지용 시인이 주간으로 계시던 경향신문의 기자로 있었다. 강처중은 이 유고집을 과감하게 한글의 뜻을 살려 최초로 가로쓰기로 편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문은 직접 쓰고, 추모 시는 친구인 유영에게 맡기고, 서문은 정지용 시인에게 부탁하여 수록된 윤동주 유고시집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윤동주 최초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 가치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글학계의 거두 최현배 선생의 영향으로 최초 가로쓰기 시집
증보판부터 삭제된 정지용, 유영, 강처중의 서문, 추도시, 발문이 살아있는 시집
이 시집은 1948년 2월 16일 윤동주 서거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명동 플라워다방에 모인 친구와 선후배들이 나눠 갖기 위해 10부가 제작된 윤동주 시인의 최초 유고집이다. 지금은 이 유고집이 경매에서 1억을 호가하는 희귀본이 되어 복각본의 소장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유고집에는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윤동주가 생체실험을 당해 옥사하고, 광복이 되어 세상이 바뀌는 등 많은 우여곡절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유고집의 원고는 윤동주가 그동안 써온 시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시 19편을 직접 골라 연희전문학교 졸업기념 시집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인 이양하 교수가 이들 시에는 저항시가 대부분이라면서 제자를 염려하여 말리는 바람에 자유가 없던 일제 암흑시대의 울분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쉽지만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는 19편의 육필원고를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기고 친구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학업이 끝날 무렵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송몽규와 함께 체포되었다. 재판을 받은 두 사람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원인모를 주사를 맞고 윤동주는 1945.2.16.일, 송몽규는 3.7일 옥사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광복을 목전에 두고 식염수라는 주사를 계속 맞으며 생체실험을 당해 사망한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공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주사를 매일 계속해서 맞아야하는 윤동주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울분을 참아야 했을까?
윤동주 유고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는 후배인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19편과 윤동주와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 한방을 쓰기도 했던 친구 강처중이 일본 릿교대학에서 편지와 함께 보낸 5편의 시와 윤동주의 물품과 함께 보관하고 있던 7편을 추가하여 31편으로 유고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의 편집을 주도한 강처중은 윤동주와 함께 한글 사랑이 남달라서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을 존경한 제자이기도 했다. 강처중은 잡지 「문우」의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윤동주 유고집을 편집할 때는 정지용 시인이 주간으로 계시던 경향신문의 기자로 있었다. 강처중은 이 유고집을 과감하게 한글의 뜻을 살려 최초로 가로쓰기로 편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문은 직접 쓰고, 추모 시는 친구인 유영에게 맡기고, 서문은 정지용 시인에게 부탁하여 수록된 윤동주 유고시집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윤동주 최초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 가치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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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으로
윤동주를 세상에 알려 오늘에 있게 한 세 사람
경향신문 주간으로 있던 정지용 시인을 같은 신문 기자인 강처중이 찾아왔다. 그는 윤동주가 일본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온 5편의 시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육필원고를 건네며 친구의 시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정지용은 강처중이 건 낸 시중에서 한편을 골라 1947년 2월 13일 경향신문에 소개했다. 이 시 「쉽게 씌어진 시」가 오늘날 윤동주 저항시의 대표로 꼽히면서 인기를 더해가는 시가 되었다.
정지용은 소개 글에서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십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더 자랑스럽다.'라고 썼다. 정지용은 그 후 「조선시의 반성」이라는 글에서 무력했던 자신의 행적을 고백한 후 '친일도 배일도 못한 나는 산수에 숨지 못하고 들에서 호미도 잡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절필선언까지 했다.
따라서 윤동주를 오늘에 있게 한 사람 중에는 윤동주가 일본유학을 떠나면서 맡긴 19편의 원고를 그의 어머니가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파묻어 지켜낸 후배 정병욱과 윤동주가 일본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준 5편과 함께 자신이 보관하던 유고시를 포함한 12편을 윤동주가 사망하자 친구의 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두 사람이 결정적이다. 또한 사람 정지용이다. 그는 경향신문에 윤동주 시를 실어 세상에 알리고 직접 소개까지 했다.
이 세 사람은 윤동주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알려 오늘에 있게 한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유고집은 한글을 사랑한 윤동주는 한문을 거의 쓰지 않고 대부분의 시를 쉬운 한글로 썼기 때문에 그 뜻을 살려 가로쓰기 시집으로 출간된 배경과 함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시집이다. 따라서 윤동주 유고 시집은 따로 골라 읽을 필요도 없이 완성도 높은 시만을 시인 본인이 직접 골라 펴낸 귀한 시집으로 소장가치도 인정되는 복각본이다.
윤동주를 세상에 알려 오늘에 있게 한 세 사람
경향신문 주간으로 있던 정지용 시인을 같은 신문 기자인 강처중이 찾아왔다. 그는 윤동주가 일본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온 5편의 시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육필원고를 건네며 친구의 시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정지용은 강처중이 건 낸 시중에서 한편을 골라 1947년 2월 13일 경향신문에 소개했다. 이 시 「쉽게 씌어진 시」가 오늘날 윤동주 저항시의 대표로 꼽히면서 인기를 더해가는 시가 되었다.
정지용은 소개 글에서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십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더 자랑스럽다.'라고 썼다. 정지용은 그 후 「조선시의 반성」이라는 글에서 무력했던 자신의 행적을 고백한 후 '친일도 배일도 못한 나는 산수에 숨지 못하고 들에서 호미도 잡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절필선언까지 했다.
따라서 윤동주를 오늘에 있게 한 사람 중에는 윤동주가 일본유학을 떠나면서 맡긴 19편의 원고를 그의 어머니가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파묻어 지켜낸 후배 정병욱과 윤동주가 일본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준 5편과 함께 자신이 보관하던 유고시를 포함한 12편을 윤동주가 사망하자 친구의 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두 사람이 결정적이다. 또한 사람 정지용이다. 그는 경향신문에 윤동주 시를 실어 세상에 알리고 직접 소개까지 했다.
이 세 사람은 윤동주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알려 오늘에 있게 한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유고집은 한글을 사랑한 윤동주는 한문을 거의 쓰지 않고 대부분의 시를 쉬운 한글로 썼기 때문에 그 뜻을 살려 가로쓰기 시집으로 출간된 배경과 함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시집이다. 따라서 윤동주 유고 시집은 따로 골라 읽을 필요도 없이 완성도 높은 시만을 시인 본인이 직접 골라 펴낸 귀한 시집으로 소장가치도 인정되는 복각본이다.
목차
목차
서(序) - 정지용
1. 서시(序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자화상(自畵像) | 소년(少年) | 눈 오는 지도(地圖) | 돌아와 보는 밤 | 병원(病院) | 새로운 길 | 간판(看板)없는 거리 | 태초(太初)의 아츰 | 또 태초(太初)의 아츰 | 새벽이 올 때까지 | 무서운 시간(時間) | 십자가(十字架) | 바람이 불어 | 슬픈 족속(族屬) | 눈 감고 간다 | 또 다른 고향 | 길 | 별 헤는 밤
2. 흰 그림자
흰 그림자 | 사랑스런 추억(追憶) | 흐르는 거리 | 쉽게 씨워진 시(詩) | 봄
3. 밤
밤 | 유언(遺言) |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 위로(慰勞) | 간(肝) | 산골물 | 참회록(懺悔錄)
추도시: 창밖에 있거든 두다리라 - 유영
발문(跋文) - 강처중
에필로그
1. 서시(序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자화상(自畵像) | 소년(少年) | 눈 오는 지도(地圖) | 돌아와 보는 밤 | 병원(病院) | 새로운 길 | 간판(看板)없는 거리 | 태초(太初)의 아츰 | 또 태초(太初)의 아츰 | 새벽이 올 때까지 | 무서운 시간(時間) | 십자가(十字架) | 바람이 불어 | 슬픈 족속(族屬) | 눈 감고 간다 | 또 다른 고향 | 길 | 별 헤는 밤
2. 흰 그림자
흰 그림자 | 사랑스런 추억(追憶) | 흐르는 거리 | 쉽게 씨워진 시(詩) | 봄
3. 밤
밤 | 유언(遺言) |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 위로(慰勞) | 간(肝) | 산골물 | 참회록(懺悔錄)
추도시: 창밖에 있거든 두다리라 - 유영
발문(跋文) - 강처중
에필로그
저자
저자
윤동주
(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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