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를 꿈꾸다
권분자 소설집
시인 권분자 씨의 첫 소설집이다.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빚어낸 작품들에서는 여성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소설에서는 굴곡진 삶을 사는 주인공 저마다의 결핍과 그리움이 무성영화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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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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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출소를 꿈꾸다」의 행간에서는 건조한 장미 꽃잎 냄새가 난다. 바람에 할퀴거나 찢어진 장미는 그 빛이 바랬다. 철심에 나사로 조여 놓은 몸은 창틀에서 시들어가는 장미분재와 다를 바 없다. 도시를 등지고 돌아앉은 낡은 바닷가 아파트의 노인들은 늙음이 죄목이 되어 갇혀 버린 죄수처럼 서로를 집 호수로 부른다. 205호는 아파트 귀퉁이 육각 정자에 모이는 노인들이 물갈이 되고도 또다시 살아남는다. 하지만 분재도 205호도 몸부림쳐 봐야 깨끗한 회복이란 없다. 이파리로 둘러앉은 자식들이 꽃인 205호를 받쳐 들고 흐린 눈으로 올려다본다.
「달방」의 '나'는 명상을 대신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판 위에 그린 장미는 어둡고 차가운 밤공기에 얼굴이 할퀴어 자꾸만 담벼락 아래로 고개를 처박는다. 한적하고 협소한 장소에도 깃든 세상 풍파에 가녀린 장미의 손목이 오래도록 떨리는가 싶었는데 다시금 주먹을 쥐는 듯 불끈해진다. 살기 위해서는 손끝에 닿는 무엇이라도 낚아채야만 한다. 움켜쥔 이상, 그 손아귀는 결단코 풀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눈 하나 까딱 않고 바늘과 물감으로 손목에 노란 장미 문신을 새긴 미희는 홍화와 '나'의 손목에도 똑같은 장미를 새긴다. 빨강과 노랑의 드레스를 번갈아 걸치고 방음벽이 있는 도로변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홍화의 의지는 붉디붉었고, 안개꽃에 둘러싸인 한 송이의 장미이던 홍화의 붉은 입술은 시들어 버렸다. '나'가 마우스로 장미 그림의 삭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야생의 마법에 걸렸던 홍화와 '나', 미희가 지지직거린다.
중심 대궁이가 되지 못한 존재의 이야기도 있다. 「뿔」의 원소는 뒤늦게 접어두었던 꿈을 이뤄보겠다고 문예창작 강의를 듣고 있다. 이름난 고등학교에서 평생 고 3 학생들만 가르쳐온 H는 일방적인 성격으로 원소를 제자 대하듯 거침없이 부려먹는다. 시평을 받기 위해 P 교수에게 간 날, H의 억지로 1박을 하며 술자리를 가진다. 중심 대궁이로 꼿꼿이 올라섰을 그들의 서글픈 이야기에 원소는 아리송한 시선을 보낸다. 거친 눈보라에 눈꽃송이처럼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서야 원소는 잠시 잠깐 중심 대궁이가 피워 올린 꽃이 된다.
주어진 운명을 견뎌내느라 퍼석해질 대로 퍼석해진 채
우지끈 내려앉던 뼈의 소리를 기억한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또한 주목할 만하다.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의 '나'는 가늘고 휘어진 반지에 묶여 버린 삶을 살았던 할머니에게 씁쓸함을 느낀다. 만나 보기도 전에 요절한 남편에게 쓴 애처로운 문장들은 마치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 같았다. '나'는 자꾸만 땅 밑 공간을 살피게 된다. 할머니 세대와 맞물린 아래 세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와 형님이 투쟁해 온 방식은 이미 조카 앞에서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지층의 갈피마다 망각이 끼워져 있다」에서는 몽롱한 최면에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전생을 넘나든다. 지금의 자신이 되기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듯 익숙함이 느껴지는 못 근처에서 '나'는 전생의 소꿉친구 유미를 떠올리며 노상의 밤을 보낸다. 모호한 경계에 주저앉아 나보다 더 고통을 맛본 이들과 조우하며 비대해진 상처를 찾아 곳곳에 연고를 바르며 자신의 몫이 아닐지도 모를 굴레에 대해 생각한다.
다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저마다의 고통과 결핍의 굴레 안에 또 다른 굴레가 들어 있다. 권분자 소설가는 상상을 뭉쳐 놓은 글을 상징으로 바꿔 놓으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몫이 아닌 굴레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힘겨운 현실에서의 자기 왜곡처럼 그저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할 것들을 너무 가까이서 보려 하지는 않았는지. 시인의 사유가 녹아든 시적 언어와 삶에 대한 통찰이 결합된 문장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색을 위해 놓아둔 징검다리가 되어 줄 소설이다.
목차
목차
- 봄으로
- 저승으로
· 달방
· 바람이 오므리는 입술에서 궤나 소리가 들렸다
· 뿔
· 지층의 갈피마다 망각이 끼워져 있다
저자
저자
《월간문학》을 통해 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 『엘피판 뒤집기』가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출소를 꿈꾸다』가 첫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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