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나라
깨어나라, 청요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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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도 보노니아는 있었다
누구나 ‘유종의 미(有終美)’를 말한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보내는 이들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되지 않는 것이 유종의 미다.
하지만 청백리들은 그걸 해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정치판이 죽 끓듯 해 권력의 행배가 하루아침에 변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다시 양지가 되는 상황에서도 청백리는 자기 길을 갔다.
사실 청백리 길은 고행의 길이다. 살아서 세상살이하려며 삼고(三苦)를 겪어야 한다. 필연적이다.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삼고란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를 지칭함이다. 고고는 추위와 더위, 기갈 질병 등에서 생기는 육체적 괴로움, 행고는 현상계(有爲法)가 모두 무상하기에 윤회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괴고는 집착을 하는 사물이 파괴, 변해갈 때 느끼는 정신적 괴로움을 말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청백리들은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갔다. 그들이 만든 청백리문화는 한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청사로 기록될 것이다.
누구나 ‘유종의 미(有終美)’를 말한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보내는 이들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되지 않는 것이 유종의 미다.
하지만 청백리들은 그걸 해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정치판이 죽 끓듯 해 권력의 행배가 하루아침에 변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다시 양지가 되는 상황에서도 청백리는 자기 길을 갔다.
사실 청백리 길은 고행의 길이다. 살아서 세상살이하려며 삼고(三苦)를 겪어야 한다. 필연적이다.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삼고란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를 지칭함이다. 고고는 추위와 더위, 기갈 질병 등에서 생기는 육체적 괴로움, 행고는 현상계(有爲法)가 모두 무상하기에 윤회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괴고는 집착을 하는 사물이 파괴, 변해갈 때 느끼는 정신적 괴로움을 말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청백리들은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갔다. 그들이 만든 청백리문화는 한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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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작가의 말
어느 시대에도 보노니아는 있었다
누구나 '유종의 미(有終美)'를 말한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보내는 이들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되지 않는 것이 유종의 미다.
하지만 청백리들은 그걸 해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정치판이 죽 끓듯 해 권력의 행배가 하루아침에 변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다시 양지가 되는 상황에서도 청백리는 자기 길을 갔다.
사실 청백리 길은 고행의 길이다. 살아서 세상살이하려며 삼고(三苦)를 겪어야 한다. 필연적이다.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삼고란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를 지칭함이다. 고고는 추위와 더위, 기갈 질병 등에서 생기는 육체적 괴로움, 행고는 현상계(有爲法)가 모두 무상하기에 윤회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괴고는 집착을 하는 사물이 파괴, 변해갈 때 느끼는 정신적 괴로움을 말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청백리들은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갔다. 그들이 만든 청백리문화는 한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청사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는 그 민족이 살아남아 있는 한 존재 이유의 에너지인 동시에 이뤄야 할 새로운 지평이기도 하다. 세상이 어지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왕조시대엔 청백리이며 오늘날 자유민주의 국가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목마르다.
권력은 잘 익은 사과와 같다. 먹을수록 맛있고 따서 바구니에 넣으면 더 넣고 싶은 것이 잘 익은 사과일 게다. 권력이 딱 잘 익은 사과 같다는 얘기는 한번 잡으면 놓기 싫은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잘 익은 사과는 어느 한 곳에 상처가 나면 금방 썩어 못 먹게 되고 권력도 한번 취하면 깨어나기 어렵다.
이때 보노니아(Bononia 청백리)가 아쉽다. 조선조에서 제도화된 청백리는 총 218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루지 않고 특별한 사연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청백리가 되어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빛낸 주인공들만 소개함을 그들의 탄생배경과 가문의 내력을 보기 위함에서다.
사실 왕조시대에서 백성들은 등 따숩고 배부르면 청백리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조 500년에서 특정 왕의 통치 기간별 청백리 탄생도 유심히 살폈다.
청백리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하다. 생존 시에는 염근리(廉謹吏)라 불렀으며 포상을 했을 후엔 청요(淸要)라 지칭했다. 청요란 요직에 있으면서 부정과 비리와는 거리가 있는 관리를 말한다.
또한, 조선조 때 청백리 탄생을 왕별로 살펴보면 중종(中宗 재위1506~1544) 때 34명, 선조(宣祖 재위 1569~1608) 때 25명,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때 22명,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때 20명,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때 15명, 인조(仁祖 재위 1623~1649) 때 13명으로 모두 두 자리 숫자다.
아예 없는 왕도 있다. 단종, 예종, 인종, 광해군, 효종, 현종,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은 청백리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중종 때 청백리가 가장 많은 34명이나 탄생했음은 왕의 각별한 배려가 있지 않았나 고려된다. 청백리는 선발에서부터 심사 그리고 최종 결정 과정이 복잡, 엄격하다.
예조에서 후보자를 초계(抄啓)한 다음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경조(京兆)의 당상관 이상과 사간원·사헌부의 수장들이 결정하지만, 임금이 최종 재가한다.
이같은 과정에서 임금의 마음을 흔드는 신하가 있으면 심사하는 위원들에게 의중을 나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중종 시대에 청백리가 유독 많이 탄생했음은 훈구파와 신진 사림의 대립이 격동 정치에서 엘리트들의 희생(기묘사화)도 많았겠으나 인재발굴 또한 무시 못 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선조 땐 임진왜란이 있었으며 숙종 시대엔 여자 문제가 역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터다. 성종과 인조 그리고 세종 시절에도 정치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보이는 정세(政勢)다.
청백리는 고려에도 있었다. 사실 삼국(三國 고구려·백제·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정황을 분명하나 기록이 없어 아쉽다.
고려조에선 인종 14년(1136) 청백수절자(淸白守節者)를 등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선종(宣宗 재위 1083~1094)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최석(崔奭) 그리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의 장본인 최영(崔瑩)은 각별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보다 앞선 인물이 함문(咸門)의 양경공(良敬公) 함유일(咸有一 1106~1185)이다. 양경공은 인종(仁宗 재위 1122~1146) 때 내시(內侍 환관이 아닌 고급 보좌관)로 시작, 명종(明宗 재위 1170~1197)까지 염리로 소문났던 인물로 유명하다. 고려 때 염리여서 조선조에서 탄생된 청백리엔 들어가지 않았다. 최영 등은 고려조의 신하인 동시에 조선조에서도 벼슬을 해 선국후사(先國後私)의 공신으로 청백리가 되었다.
양경공 함유일은 『청백리 나라』 2부에서 상술하려 한다. 사실 청백리 218명 모두 상술하면 직성이 풀리겠으나 이 난에선 지면 관계로 부자 청백리, 형제 청백리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청백리의 일상들을 들여다보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져 숙연한 마음으로 펜을 놓았다. 그들이 있어 오늘의 역사가 존재해 있으며 앞으로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순교자(殉敎者)적인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하겠다.
2021년 6월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 우거(寓居)에서
함경옥·함기철
어느 시대에도 보노니아는 있었다
누구나 '유종의 미(有終美)'를 말한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보내는 이들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되지 않는 것이 유종의 미다.
하지만 청백리들은 그걸 해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정치판이 죽 끓듯 해 권력의 행배가 하루아침에 변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다시 양지가 되는 상황에서도 청백리는 자기 길을 갔다.
사실 청백리 길은 고행의 길이다. 살아서 세상살이하려며 삼고(三苦)를 겪어야 한다. 필연적이다.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삼고란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를 지칭함이다. 고고는 추위와 더위, 기갈 질병 등에서 생기는 육체적 괴로움, 행고는 현상계(有爲法)가 모두 무상하기에 윤회를 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괴고는 집착을 하는 사물이 파괴, 변해갈 때 느끼는 정신적 괴로움을 말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청백리들은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고스란히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갔다. 그들이 만든 청백리문화는 한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청사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는 그 민족이 살아남아 있는 한 존재 이유의 에너지인 동시에 이뤄야 할 새로운 지평이기도 하다. 세상이 어지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왕조시대엔 청백리이며 오늘날 자유민주의 국가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목마르다.
권력은 잘 익은 사과와 같다. 먹을수록 맛있고 따서 바구니에 넣으면 더 넣고 싶은 것이 잘 익은 사과일 게다. 권력이 딱 잘 익은 사과 같다는 얘기는 한번 잡으면 놓기 싫은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잘 익은 사과는 어느 한 곳에 상처가 나면 금방 썩어 못 먹게 되고 권력도 한번 취하면 깨어나기 어렵다.
이때 보노니아(Bononia 청백리)가 아쉽다. 조선조에서 제도화된 청백리는 총 218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루지 않고 특별한 사연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청백리가 되어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빛낸 주인공들만 소개함을 그들의 탄생배경과 가문의 내력을 보기 위함에서다.
사실 왕조시대에서 백성들은 등 따숩고 배부르면 청백리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조 500년에서 특정 왕의 통치 기간별 청백리 탄생도 유심히 살폈다.
청백리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하다. 생존 시에는 염근리(廉謹吏)라 불렀으며 포상을 했을 후엔 청요(淸要)라 지칭했다. 청요란 요직에 있으면서 부정과 비리와는 거리가 있는 관리를 말한다.
또한, 조선조 때 청백리 탄생을 왕별로 살펴보면 중종(中宗 재위1506~1544) 때 34명, 선조(宣祖 재위 1569~1608) 때 25명,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때 22명,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때 20명,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때 15명, 인조(仁祖 재위 1623~1649) 때 13명으로 모두 두 자리 숫자다.
아예 없는 왕도 있다. 단종, 예종, 인종, 광해군, 효종, 현종,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은 청백리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중종 때 청백리가 가장 많은 34명이나 탄생했음은 왕의 각별한 배려가 있지 않았나 고려된다. 청백리는 선발에서부터 심사 그리고 최종 결정 과정이 복잡, 엄격하다.
예조에서 후보자를 초계(抄啓)한 다음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경조(京兆)의 당상관 이상과 사간원·사헌부의 수장들이 결정하지만, 임금이 최종 재가한다.
이같은 과정에서 임금의 마음을 흔드는 신하가 있으면 심사하는 위원들에게 의중을 나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중종 시대에 청백리가 유독 많이 탄생했음은 훈구파와 신진 사림의 대립이 격동 정치에서 엘리트들의 희생(기묘사화)도 많았겠으나 인재발굴 또한 무시 못 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선조 땐 임진왜란이 있었으며 숙종 시대엔 여자 문제가 역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터다. 성종과 인조 그리고 세종 시절에도 정치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보이는 정세(政勢)다.
청백리는 고려에도 있었다. 사실 삼국(三國 고구려·백제·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정황을 분명하나 기록이 없어 아쉽다.
고려조에선 인종 14년(1136) 청백수절자(淸白守節者)를 등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선종(宣宗 재위 1083~1094)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최석(崔奭) 그리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의 장본인 최영(崔瑩)은 각별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보다 앞선 인물이 함문(咸門)의 양경공(良敬公) 함유일(咸有一 1106~1185)이다. 양경공은 인종(仁宗 재위 1122~1146) 때 내시(內侍 환관이 아닌 고급 보좌관)로 시작, 명종(明宗 재위 1170~1197)까지 염리로 소문났던 인물로 유명하다. 고려 때 염리여서 조선조에서 탄생된 청백리엔 들어가지 않았다. 최영 등은 고려조의 신하인 동시에 조선조에서도 벼슬을 해 선국후사(先國後私)의 공신으로 청백리가 되었다.
양경공 함유일은 『청백리 나라』 2부에서 상술하려 한다. 사실 청백리 218명 모두 상술하면 직성이 풀리겠으나 이 난에선 지면 관계로 부자 청백리, 형제 청백리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청백리의 일상들을 들여다보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져 숙연한 마음으로 펜을 놓았다. 그들이 있어 오늘의 역사가 존재해 있으며 앞으로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순교자(殉敎者)적인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하겠다.
2021년 6월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 우거(寓居)에서
함경옥·함기철
목차
목차
제 1 부
사대부들의 로망, 청백리 녹선
프롤로그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고 멀다(日暮途遠) 13
조선 최초의 청백리, 안성安省 장례행렬 22
벼슬을 50여 차례 거부한 이태중李台重 28
제1장 가업家業이 된 부전자전 청백리
이제신李濟臣 1536~1583 이명준李命俊 1572~1630 39
최유경崔有慶 1343~1413 최사의崔士儀 1376~1452 41
윤지인尹趾仁 1652~1718 윤용尹容 1684~1764 43
제2장 청사靑史의 파수꾼 청백리들
허종許琮 1434~1494 허침許琛 1444~1505 49
정갑손鄭甲孫 1395~1451 정창손鄭昌孫 1402~1487 56
김전金詮 1458~1523 김흔金? 1448~1492 58
구사안具思顔 1523~1562 구사맹具思孟 1531~1604 60
홍섬洪暹 1504~1585 홍담洪曇 1509~1579 62
임호신任虎臣 1506~1556 임보신任輔臣 ?~1558 64
제3장 왕도王道 정치를 꿈꾸었던 선각자들
불꽃같은 삶, 38년에 꺼지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 69
황금을 돌같이 보았다-최영崔瑩 1316~1388 74
소를 타고 다니는 고불정승-맹사성孟思誠 1360~1438 76
세종이 알아본 송곳 충언 -최만리崔萬理 1398~1445 79
우린 당신의 신하가 아니다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81
살았어도 죽은 목숨 -생육신生六臣: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84
제4장 시대정신이 나라를 이끈다
미美 의원단에 국권 회복 포효 -양기탁梁起鐸 1871~1938 87
삼천리三千里를 울린 님의 침묵-한용운韓龍雲 1879~1944 94
나라 잃은 설움, 천둥 같은 통곡 -유관순柳寬順 1902~1920 97
암울한 시대에 빛의 노래 열창-윤동주尹東柱 1917~1945 99
◆ 청백리(淸白吏) 배출가문
6명 이상 배출 가문-전주 이씨·파평 윤씨·안동 김씨·연안 이씨·남양 홍씨·전의 이씨, 5명 이상 배출 가문-광주 이씨·한산 이씨·양천 허씨 등 청백리 배출 가문, 총 44씨족에 총 218명이다.
에필로그
어느 시대에도 보노니아는 있었다 103
* 제 2 부
함문咸門의 청백리 문화, 양평에 만발
문화·예술세계로 초대
위대한 성조姓祖님께 송구스러울 뿐 113
프롤로그
찬란했던 문화를 찾아 나선다 119
제1장 〈개국시대〉 용문산 골짜기마다 성군의 발자국
천제天祭, 함문의 문화 극적 재현 127
함왕혈제咸王穴祭로 진화된 천제天祭 133
용문산은 함문의 위대한 성지 142
함왕성의 정체성正?性과 성城 문화 155
함왕성의 역할과 거란, 몽골의 침략 162
제2장 〈저무는 달〉 불교국가에서 유교 나라로
함규 장군은 경기 일대 군왕이었다 169
왕규는 양후공 함규 장군이다 174
함규 장군, 강산면 수호신이 되다 178
두 임금의 부원군, 양후공 181
제3장 〈문화시대〉 역사를 창조한 예술인들
고려시대 대표 청백리, 함유일 193
대문장가 함순과 강좌칠현 208
고려 불교와 함문의 관계 216
전라감사 함부림·우치 부자 226
제4장 〈충효시대〉 소수가 성취한 위대한 유산
함문의 빛나는 정신문화 '4세5효자각'효자마을 241
북방식 전통가옥, 고성 왕곡마을 247
독립운동가·민선부통령 함태영 260
함문咸門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 함석헌 옹 266
한국 국악계의 태산泰山, 오당梧堂 함화진 279
5장 〈교육시대〉 함순·함헌의 후예들
가야금병창의 명인名人 함동정월 287
함문을 빛낸 문화·예술인들 294
함문은 전통적 교육가문 303
명문가 빛과 그림자의 현주소 308
안내를 끝내며
함문의 종사는 쉼 없이 진화 중 319
용어 풀이 323
참고문헌 331
저자 약력 335
사대부들의 로망, 청백리 녹선
프롤로그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고 멀다(日暮途遠) 13
조선 최초의 청백리, 안성安省 장례행렬 22
벼슬을 50여 차례 거부한 이태중李台重 28
제1장 가업家業이 된 부전자전 청백리
이제신李濟臣 1536~1583 이명준李命俊 1572~1630 39
최유경崔有慶 1343~1413 최사의崔士儀 1376~1452 41
윤지인尹趾仁 1652~1718 윤용尹容 1684~1764 43
제2장 청사靑史의 파수꾼 청백리들
허종許琮 1434~1494 허침許琛 1444~1505 49
정갑손鄭甲孫 1395~1451 정창손鄭昌孫 1402~1487 56
김전金詮 1458~1523 김흔金? 1448~1492 58
구사안具思顔 1523~1562 구사맹具思孟 1531~1604 60
홍섬洪暹 1504~1585 홍담洪曇 1509~1579 62
임호신任虎臣 1506~1556 임보신任輔臣 ?~1558 64
제3장 왕도王道 정치를 꿈꾸었던 선각자들
불꽃같은 삶, 38년에 꺼지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 69
황금을 돌같이 보았다-최영崔瑩 1316~1388 74
소를 타고 다니는 고불정승-맹사성孟思誠 1360~1438 76
세종이 알아본 송곳 충언 -최만리崔萬理 1398~1445 79
우린 당신의 신하가 아니다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81
살았어도 죽은 목숨 -생육신生六臣: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84
제4장 시대정신이 나라를 이끈다
미美 의원단에 국권 회복 포효 -양기탁梁起鐸 1871~1938 87
삼천리三千里를 울린 님의 침묵-한용운韓龍雲 1879~1944 94
나라 잃은 설움, 천둥 같은 통곡 -유관순柳寬順 1902~1920 97
암울한 시대에 빛의 노래 열창-윤동주尹東柱 1917~1945 99
◆ 청백리(淸白吏) 배출가문
6명 이상 배출 가문-전주 이씨·파평 윤씨·안동 김씨·연안 이씨·남양 홍씨·전의 이씨, 5명 이상 배출 가문-광주 이씨·한산 이씨·양천 허씨 등 청백리 배출 가문, 총 44씨족에 총 218명이다.
에필로그
어느 시대에도 보노니아는 있었다 103
* 제 2 부
함문咸門의 청백리 문화, 양평에 만발
문화·예술세계로 초대
위대한 성조姓祖님께 송구스러울 뿐 113
프롤로그
찬란했던 문화를 찾아 나선다 119
제1장 〈개국시대〉 용문산 골짜기마다 성군의 발자국
천제天祭, 함문의 문화 극적 재현 127
함왕혈제咸王穴祭로 진화된 천제天祭 133
용문산은 함문의 위대한 성지 142
함왕성의 정체성正?性과 성城 문화 155
함왕성의 역할과 거란, 몽골의 침략 162
제2장 〈저무는 달〉 불교국가에서 유교 나라로
함규 장군은 경기 일대 군왕이었다 169
왕규는 양후공 함규 장군이다 174
함규 장군, 강산면 수호신이 되다 178
두 임금의 부원군, 양후공 181
제3장 〈문화시대〉 역사를 창조한 예술인들
고려시대 대표 청백리, 함유일 193
대문장가 함순과 강좌칠현 208
고려 불교와 함문의 관계 216
전라감사 함부림·우치 부자 226
제4장 〈충효시대〉 소수가 성취한 위대한 유산
함문의 빛나는 정신문화 '4세5효자각'효자마을 241
북방식 전통가옥, 고성 왕곡마을 247
독립운동가·민선부통령 함태영 260
함문咸門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 함석헌 옹 266
한국 국악계의 태산泰山, 오당梧堂 함화진 279
5장 〈교육시대〉 함순·함헌의 후예들
가야금병창의 명인名人 함동정월 287
함문을 빛낸 문화·예술인들 294
함문은 전통적 교육가문 303
명문가 빛과 그림자의 현주소 308
안내를 끝내며
함문의 종사는 쉼 없이 진화 중 319
용어 풀이 323
참고문헌 331
저자 약력 335
저자
저자
함경옥
시인·작가·역사연구가
남양주에서 전형적인 농부아들로 태어나 서울 유학, 용문고·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일간스포츠·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 기자, 세계일보 편집부장·편집위원·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기자생활 중 KBS 구성작가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 저서론 『한국기자사회의 이해』, 『정보화시대』, 『선비문화』, 『취재&편집, 기자의 세계』, 『기자가 말하는 기자』 (공저)가 있으며, 논문으론 『국익과 알 권리』 등이 있다.
그리고 10여 년간 약업신문에 「풍류천일야화」와 화장품신문에 「美人美?」을 연재했었다. 지금은 원래 꿈이었던 시와 소설 쓰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듣고 보고 쓰고 삼고(三苦)의 작업이 즐겁고 즐겁다.
남양주에서 전형적인 농부아들로 태어나 서울 유학, 용문고·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일간스포츠·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 기자, 세계일보 편집부장·편집위원·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기자생활 중 KBS 구성작가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 저서론 『한국기자사회의 이해』, 『정보화시대』, 『선비문화』, 『취재&편집, 기자의 세계』, 『기자가 말하는 기자』 (공저)가 있으며, 논문으론 『국익과 알 권리』 등이 있다.
그리고 10여 년간 약업신문에 「풍류천일야화」와 화장품신문에 「美人美?」을 연재했었다. 지금은 원래 꿈이었던 시와 소설 쓰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듣고 보고 쓰고 삼고(三苦)의 작업이 즐겁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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