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 내 길을 걷다(양장본 Hardcover)
이기택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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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기택 전 총재의 삶과 정치!
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회고록인 이 책은 고인이 운명하기 전날 밤 10시에 최종 탈고한 것으로 알려져 이미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정치적 삶에 대한 회고록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정치사 특히 한국야당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학생위원장으로서 4·19혁명을 주도하고 정계에 입문, 7선 의원의 정치 거목으로 한국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저자는 그가 관통해온 한국현대사를 정통 야당인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과 김영삼의 양김시대에서 악전고투하며 독자노선을 견지해온 저자의 생생한 증언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한국 야당의 이면사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정치적 삶을 회고하며 회고록 여기저기에 던져놓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을 접하며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한 소중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회고록인 이 책은 고인이 운명하기 전날 밤 10시에 최종 탈고한 것으로 알려져 이미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정치적 삶에 대한 회고록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정치사 특히 한국야당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학생위원장으로서 4·19혁명을 주도하고 정계에 입문, 7선 의원의 정치 거목으로 한국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저자는 그가 관통해온 한국현대사를 정통 야당인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과 김영삼의 양김시대에서 악전고투하며 독자노선을 견지해온 저자의 생생한 증언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한국 야당의 이면사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정치적 삶을 회고하며 회고록 여기저기에 던져놓은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을 접하며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한 소중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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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어느 정치인의 소회
10년 넘게 이어온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도화선은 3.15 부정선거였다. 이에 분개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4.18 고대시위를 일으켰고 이기택 총재는 당시 학생위원장으로서 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잠시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1967년 제7대 국회에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이래 8, 9, 10, 12, 13, 14대 국회의원으로 연이어 당선되었다. 1976년 신민당 최연소 사무총장, 1979년 신민당 최연소 부총재를 역임하며 한국야당사 유례없는 행보로 양김시대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국민적 관심을 받아왔다.
그런 그였지만 1990년 3당 야합 당시 YS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싸워온 군부독재 세력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따라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김정길, 김광일, 노무현, 장석화 의원 등과 함께 3당 통합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한 정치 현실에 맞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창당한 '꼬마 민주당'의 총재로 선출되기도 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자연스레 정계를 은퇴했다. 겸허히 정치적 생명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잠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계은퇴 후에는 '해외한민족교육진흥회' 사업에 전념했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온 그에게 정계은퇴 후 간혹 기자들이 묻곤 했다. YS와 DJ를 넘어서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모로 내가 그분들보다 못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지키지 못한 원칙을 지켰고, 때론 그분들이 외면했던 정도(正道)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긴 세월 정치를 해오면서 어찌 아쉽고 아픈 대목이 없으랴만, 그래도 나는 후회가 없다. 소처럼 묵묵히 내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본문 374쪽)
권위와 맞서 싸우고 합리적인 정치 문화를 소망하다
70~80년 야당을 이끌어오던 거두 YS와의 결별은 그에게 더 큰 시련을 주었다. 3당야합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216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되었고, 거기에 합류하지 않은 이기택은 다시 야당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새로 창당한 민주당은 전체 의원이 8명 밖에 되지 않는 미니 정당이자 원외 정당이었다. 게다가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를 거부하는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보니 총재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당의 운영자금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 전적으로 이기택 총재의 몫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정당문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의 영향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민주화를 주장하는 야당까지도 양김이라는 보스를 축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정치형태에 회의를 품고 있었던 이기택은 진정한 민주정당의 운영방식을 민주당에 도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일지도체제의 정당이었지만, 가장 자유스러운 논의과정을 거쳐 의사를 결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정당 민주화가 일반화된 데에는 내가 총재로 있으면서 개척해온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문화가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10년 넘게 이어온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도화선은 3.15 부정선거였다. 이에 분개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4.18 고대시위를 일으켰고 이기택 총재는 당시 학생위원장으로서 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잠시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1967년 제7대 국회에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이래 8, 9, 10, 12, 13, 14대 국회의원으로 연이어 당선되었다. 1976년 신민당 최연소 사무총장, 1979년 신민당 최연소 부총재를 역임하며 한국야당사 유례없는 행보로 양김시대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국민적 관심을 받아왔다.
그런 그였지만 1990년 3당 야합 당시 YS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싸워온 군부독재 세력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따라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김정길, 김광일, 노무현, 장석화 의원 등과 함께 3당 통합을 거부함으로써 부당한 정치 현실에 맞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창당한 '꼬마 민주당'의 총재로 선출되기도 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자연스레 정계를 은퇴했다. 겸허히 정치적 생명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잠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계은퇴 후에는 '해외한민족교육진흥회' 사업에 전념했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온 그에게 정계은퇴 후 간혹 기자들이 묻곤 했다. YS와 DJ를 넘어서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모로 내가 그분들보다 못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지키지 못한 원칙을 지켰고, 때론 그분들이 외면했던 정도(正道)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긴 세월 정치를 해오면서 어찌 아쉽고 아픈 대목이 없으랴만, 그래도 나는 후회가 없다. 소처럼 묵묵히 내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본문 374쪽)
권위와 맞서 싸우고 합리적인 정치 문화를 소망하다
70~80년 야당을 이끌어오던 거두 YS와의 결별은 그에게 더 큰 시련을 주었다. 3당야합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216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되었고, 거기에 합류하지 않은 이기택은 다시 야당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새로 창당한 민주당은 전체 의원이 8명 밖에 되지 않는 미니 정당이자 원외 정당이었다. 게다가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를 거부하는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보니 총재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당의 운영자금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 전적으로 이기택 총재의 몫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정당문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의 영향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민주화를 주장하는 야당까지도 양김이라는 보스를 축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정치형태에 회의를 품고 있었던 이기택은 진정한 민주정당의 운영방식을 민주당에 도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일지도체제의 정당이었지만, 가장 자유스러운 논의과정을 거쳐 의사를 결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정당 민주화가 일반화된 데에는 내가 총재로 있으면서 개척해온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문화가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목차
목차
서문
일민이 걸은 길
제1부 어린 시절
내 고향 청하
제2의 고향 부산
제2부 4·19혁명
고려대학교
4·18 고대의거
민주혁명의 깃발
제3부 직장인 시절
5·16 군사쿠데타
회사원 생활
제4부 청년정치인
정계입문
3선개헌 저지투쟁
야당의 세대교체
유신시대의 야당
제5부 5·30 전당대회
야당다운 야당
유신체제의 종말
서울의 봄
제6부 양김시대의 독자노선
정통야당의 재건
직선제 개헌 투쟁
6월항쟁과 양김 분열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
제7부 새로운 정치실험
3당 통합
민주당 창당
야권통합
제8부 영욕의 세월
제1야당 총재 시절
서로 만날 수 없는 길
말년에 닥친 정치적 시련
회고록을 마치며
이기택 연혁
일민이 걸은 길
제1부 어린 시절
내 고향 청하
제2의 고향 부산
제2부 4·19혁명
고려대학교
4·18 고대의거
민주혁명의 깃발
제3부 직장인 시절
5·16 군사쿠데타
회사원 생활
제4부 청년정치인
정계입문
3선개헌 저지투쟁
야당의 세대교체
유신시대의 야당
제5부 5·30 전당대회
야당다운 야당
유신체제의 종말
서울의 봄
제6부 양김시대의 독자노선
정통야당의 재건
직선제 개헌 투쟁
6월항쟁과 양김 분열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
제7부 새로운 정치실험
3당 통합
민주당 창당
야권통합
제8부 영욕의 세월
제1야당 총재 시절
서로 만날 수 없는 길
말년에 닥친 정치적 시련
회고록을 마치며
이기택 연혁
저자
저자
이기택
저자 이기택은 1937년 7월 25일 경북 포항시 청하면 필화리에서 태어나 부산중학교, 부산상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1960년 4·19혁명을 주도했고, 1967년 제7대 국회에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이래 8,9,10,12,13,14대 국회의원으로 연이어 당선되었다. 1976년 신민당 최연소 사무총장, 1979년 신민당 최연소 부총재를 역임하며 한국야당사 유례없는 행보로 양김시대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국민적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1979년 신민당 5·30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을 지지하여 선명야당을 출범시킨 것과 1990년 3당 통합 당시 이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창당한 것은 대표적인 업적으로 손꼽힌다. 정계은퇴 후 회고록 집필에 전념해오던 저자는 2016년 2월 19일 운명하기 바로 전날 밤 10시에 극적으로 이 회고록을 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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