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진보적 성향(시인동네 시인선 41)
김효연 시집
김효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 김효연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드고어적 상상력은 일단 여성이라는 젠더의 강력한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처럼 여성적 주체를 공고하게 쌓아올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극빈의 기억과 불온한 가족사 등의 역할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비루하기만 한 현실도 큰 몫을 차지한다. 가령 구름이라고 하는 낭만적인 시적 대상이 김효연의 시에선 전혀 다른 의미 맥락을 가지고 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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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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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고어적 상상력
《시인동네 시인선》 041. 2006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한 김효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에 자주 등장하는 하드고어적 상상력은 일단 여성이라는 젠더의 강력한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처럼 여성적 주체를 공고하게 쌓아올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극빈의 기억과 불온한 가족사 등의 역할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비루하기만 한 현실도 큰 몫을 차지한다. 시인은 언어가 가진 유희적 측면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 하드고어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데, 이는 기존의 틀이나 전통을 깨부수고 일탈적 주체의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는 시적 방법론이다. 일례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근원을 신체를 해부하는 과정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낸 시편들에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모든 전통이나 계약이나 관습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태도가 깊이 스며 있다. 이러한 김효연의 시는 그동안 피학의 주체였던 여성적 목소리의 다짐이며, 더 나아가 억눌리고 소외된 모든 자들의 목소리다. 시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삶이며, 우리는 그 고단한 삶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통과 파멸의 기억을 온몸으로 운용하는 김효연 시들이 보여주는 이 먹먹한 진실들이야말로 『구름의 진보적 성향』을 더욱 단단하고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출판사 서평]
시에서의 하드고어적 상상력은 일찍부터 언어가 가진 유희적 측면을 극대화한 방법론으로 부각되고 있다. 관습으로까지 불릴 수는 없겠지만 각 시대마다 언제나 등장하는 소수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하드고어다. 하드고어는 특히 영화 장르에서 빈번하게 출몰되는데 공포나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는 언제나 등장하게 마련이다. 특히 피가 낭자하고 흐르고 튀기고 창자가 흘러내리고 사지가 절단되는 상상력은 이천 년대를 넘어서면서 젊은 시들의 보편적인 상상력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효연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드고어적 상상력은 일단 여성이라는 젠더의 강력한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처럼 여성적 주체를 공고하게 쌓아올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극빈의 기억과 불온한 가족사 등의 역할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비루하기만 한 현실도 큰 몫을 차지한다. 가령 구름이라고 하는 낭만적인 시적 대상이 김효연의 시에선 전혀 다른 의미 맥락을 가지고 표출되고 있다.
새가 자라 새장이 되는 거 아시죠/ 날개와 겨드랑이라는 동의어/ 우리 지금부터/ 새장을 덮어쓰고 다니기로 해요// 송아지가 자라 정육점이 되지요/ 언젠가는 내가 갈고리에 걸려/ 음메음메 울면 살점을 오려/ 핏물 뚝뚝 듣는 드레스를 짓지요/ 레드카펫은 황홀해지고// 건반이 자라 노래가 되면/ 머리뚜껑을 열어 피아노를 퉁퉁 두들기다/ 가슴에서 자라나는 머리카락에/ 물을 주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요// 인형이 하늘에서 툭/ 눈을 감기 전에 심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또 여자는 자라 남자가 된 걸요// 키가 자라 신발이 된다면/ 팬티를 벗어던지듯 벗어버리고/ 입술은 핸드백에게나 줘버리고/ 구름 신발을 신고 가요// 레이디 가가/ 당신을 쫓아가는 내 신발이 너무/ 헐거워도 용서하시길// 부디
―「구름의 진보적 성향」 전문
여기서 진보적이라고 칭하는 구름은 하늘과 관계 맺거나 흘러가고 걷히는 속성과 관계 맺지 않는다. 시의 화자가 얘기하는 구름은 화자의 신발이라는 다소 낯선 자리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구름 신발"이라고 하는 것이 화자의 동화적 상상력이나 기발한 시적 발견을 이루어내는 시적 대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구름 신발"은 레이디 가가를 쫓는 신발이다. 레이디 가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전위적이고 엉뚱하고 과격한 뮤지션으로 손꼽힌다. 또한 악마적이고 파괴적인 퍼포먼스, 선정적인 패션 취향, LGBT 성적 취향 등으로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시의 화자는 레이디 가가를 쫓는다는 이상적 행위를 통해 시인의 시적 지향점을 넌지시 전달해준다. 시에서는 살아 있는 개체와 사물과의 변신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고 있다. "새"가 자라 "새장"이 되고, "송아지"가 자라 "정육점"이 된다. 게다가 "건반"이 자라 "노래"가 된다는 사물이 소리라는 감각의 차원에까지 변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새와 새장, 송아지와 정육점, 건반과 노래는 의미 관계의 맥락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기표의 놀이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한 듯싶다. 이 시어들의 짝패는 뒤이어 등장하는 시행과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새장을 덮어쓰고 다닌다"거나 "살점을 오려/ 핏물 뚝뚝 듣는 드레스를 짓"는다거나 "머리뚜껑을 열어 피아노를 퉁퉁 두들"긴다는 극단적 행위들은 시의 주체가 지닌 세계관을 일별할 수 있는 행위에 봉사한다. 시인은 이러한 낯설고 과격한 행위들을 '진보적'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틀이나 전통을 깨부수고 일탈적 주체의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는 시인의 집념이 집약적으로 위의 시에 드러난다.
꽃들의 험담을 엿들어// 아기 내다버리기/ 남의 애인 가로채기/ 술주정으로 세상 난장판 만들기/ 새빨간 입술, 샛노란 혓바닥/ 되바라진 침을 퉤퉤// 꽃밭에서 우연히// 인어공주 말고 라푼첼 말고 메리다 말고/ 신데렐라 말고/ 그녀들을 지독히 괴롭힌/ 마녀가 바비인형으로// 이상한 모자와 망토를 버리고/ 어머, 이 고운 얼굴 좀 봐/ 우아한 자태로 꽃에 다가가/ 향기에 취해 입술을 쏙 내민다면
―「꽃밭의 마녀」 부분
강인한 여성적 주체는 시인의 전복적 의지와 탈주의 행위들을 떠받치는 에너지로 자리한다. 시인은 '꽃'이라고 하는 아름답고 예쁜 시적 대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꽃들이 하는 '험담'은 실상 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연기에 가깝다. 꽃들의 험담은 과격하기만 하다. 아기를 내다버리고 애인을 가로채고 세상을 난장판 만드는 범죄에 가까운 진술들이 "되바라진 침을 퉤퉤" 뱉으며 반복된다. 험담을 하는 꽃들은 '꽃은 예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관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존재다. 시 「나는」에서는 꽃의 근원이 "뱀"이라고 말한다. 뱀은 원죄의 화신이자 사악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꽃을 욕망의 질료로 보는 시선은 "치마"를 기억하는 여성적 주체의 태도에 있다. "부끄러움을 가린 천 한 토막"인 치마는 "야합"을 낳는다. 이 치마의 힘은 강력하다. "어떤 사태도 내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욕망의 사슬을 지니고 있다.
금붕어와 토끼와 왕관 앵무새와 함께// 할아버지를 낳았어요/ 화분에 엄마를 낳았어요/ 고모를 낳고 남동생을 낳고// 할아버지를 주워왔어요 엄마를 사왔어요/ 남동생을 얻어오고 고모를 납치해왔어요// 할아버지는 식탁/ 엄마는 화장대/ 고모는 화장실/ 남동생은 다용도실// 서로 안부도 묻지 않고 식사만 챙기며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어항 속에서 금붕어와 놀고/ 엄마는 화분의 따귀를 때리며/ 고모가 토끼와 교미하는 동안/ 남동생은 앵무새에게 왕관을 내놓으라며/ 깃털을 뽑아요
―「입양」 부분
시인의 불가해한 환영과 질식의 언어들은 시집 속에서 불행한 가족사와 자주 중첩된다. 와해되고 해체된 가족사를 「입양」은 고통스럽게 제시한다. 운명적으로 엮인 혈연의 가족사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모두 거래되고 매매되는 가족사.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의 관계를 절연한 채 집의 다른 동물이나 사물과 관계를 맺는다. 즉 "할아버지는 식탁"과 "엄마는 화장대"와 "고모는 화장실"과 "남동생은 다용도실"을 점거하여 일상적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태생은 자못 특별하다. 할아버지도 주워왔고 엄마는 사왔으며 남동생은 얻어오고 고모는 납치해왔다고 전한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들의 행위는 가족들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어떤 사물과 이루어진다. "할아버지는 어항 속에서 금붕어와 놀고/ 엄마는 화분의 따귀를 때리며/ 고모가 토끼와 교미하는 동안/ 남동생은 앵무새에게 왕관을 내놓으라며/ 깃털을 뽑"는다는 엽기적인 장면들은 시인이 생각하는 가족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은 늘 누추하며 지난하다. 김효연의 오늘은 어떠한가. 혹은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시 「오늘」은 김효연의 오늘이자 우리의 오늘과도 같다. "월세방 전화번호"를 뜯어먹고 다니고 "낙엽주식을 끌어 모아 사기꾼이 되고" "직업소개소에서 일당 구만 원 선불을 떼고/ 초겨울 철근을 심으러 떠나는" 고단한 삶의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시인은 "우린 마조히스트/ 우린 사디스트"라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삶이다. 고통이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때 "단호히 차가운 등을 보이며 서로 멀어져 갈" 수 있을 것이다. 고통과 파멸의 기억을 온몸으로 운용하는 김효연에게 희망이나 더 나은 어떠한 소명이 있을까. 그런 희망은 김효연의 사전에는 애초에 없다. 김효연은 "진정하세요./ 나는 단 한 번도 내일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코미디」)라고 말한다. 희망과 같은 출구는 김효연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지만, 지키지 않아도 너무나 무방한 숙제다. 이러한 먹먹함이야말로 김효연 시편들을 더욱 단단하고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시인의 산문]
감히 우러러보던 그분께서
"자네는 지금 뛰어노는 그 흥으로 시를 쓰면 되네."
오래전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때 날라리가 되었어야 했다.
네가 내 모든 것의 처음이란 걸 눈치채기 바라다가
그 첫이 뭐 별거라고
그래도 당신의 오만방자, 독기, 궁극적인 침묵에 혀를 들이미는……
새로운 흥이 불쑥,
발이 상상하는 곳으로 손은 가리라.
목차
목차
제1부
증인/ 꽃밭의 마녀/ 손톱 끝의 고양이/ 나는/ 병 혹은 병/ 왜 그래/ 애국가를 빙자한 가족사/ 불후/ 오늘/ 자꾸 걸어 나가면/ 두드러기/ 나는 선반이다/ 목숨값/ 꿈, 언제나 꿈/ 가방과 나
제2부
메토이소노/ 구름의 진보적 성향/ 입양/ 회/ 양파를 믿다/ 살신(殺身)/ 총각귀신이 산다/ 법원에 가자/ 깊고 지루한 옷장/ 된장, 된장/ 딱따구리/ 화장하러 갑니다/ 복음/ 쉰/ 징후
제3부
슬픔에 대한 예의/ 어이, 벚꽃/ 기초수급자를 위한 발라드/ 공손한 장례/ 사생아/ 코미디/ 외계어/필요한 것/ 김〔海苔〕 이야기/ 촛불을 들고 걸어오는 섬/ 천일야화 풍으로/ 집, 빌어먹을/ 소행성 B-612/ 유쾌한 고백
제4부
유다처럼/ 자화(自畵)/ 관광의 힘/ 안부/ 3월 3일/ 눈/ 실밥/ 사월/ 미스 문/ 상가(喪家)의 꽃/ 냄새, 늦었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말하자면 그게/ 1월
해설 하드고어적 구름의 서사/ 이재훈(시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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