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문학의전당 시인선 215)
이기헌 시집
이기헌 시집 『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방법론적 자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정신적 변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서정의 원리’ 즉 ‘동화와 투사’를 시의 방법론으로서 적극 활용하며, 인격화된 대상들의 입을 빌려 스스로의 바람 혹은 고백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차라리 가을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15. 2008년 시집 『고깔모자 피자가게』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기헌 시인의 신작 시집. 『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는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사건과 사물과의 교감(交感)을 통해 주체로서의 '나'를 확인하고 그것을 새롭게 확립하고자 하는 열망의 산물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헤매는 대신 그 미망(迷妄)의 계절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자기 확인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이러한 방법론적 자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정신적 변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서정의 원리' 즉 '동화와 투사'를 시의 방법론으로서 적극 활용하며, 인격화된 대상들의 입을 빌려 스스로의 바람 혹은 고백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하여 이번 시집을 통해 이기헌 시인이 보여준, 아니 스스로 자기 확인에 다다르게 된 경지는 "먼 산에 핀 진달래꽃은/먼 산에 그냥 피어 있게 하라"는 것이다. 시인은 "뜨락에는 황금을 심을지라도/먼 산에는 그대로의 꽃을 피게 하라"는 시적 정언명령을 내린다. 자기 확인이란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가 있다〔만물개유위(萬物皆諭位)〕'는 깨달음에 다름 아니라는 걸까. 이 깊은 사유에 대한 실감은 책을 펼쳐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출판사 서평]
『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는 '서정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시인이 마주하게 되는 사건과 사물과의 교감(交感)을 통해 주체로서의 '나'를 확인하고 새롭게 확립하고자 하는 열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의 말'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어느 한적한 가을 무렵에/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나는 당황하며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울창한 숲속에서 찾아보기도 하고/번잡한 쇼핑센터를 기웃거리기도 했지만/사라져버린 나를 찾을 수 없었다./흔적도 없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한 계절 내내 수소문해 보았지만/끝내는 찾을 수 없었다./나는 나를 찾아 헤매는 대신/차라리 가을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헤매는 대신 그 미망(迷妄)의 계절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자기 확인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바로 이러한 방법론적 자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시인의 정신적 변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서정의 원리'란 서정시, 즉 '동일성의 시학'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동원하게 되는 방법을 지시한다. 간단하게 말해 '동화(同化)와 투사(投射)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세계에 피투(被投)된 존재로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사물과 세계의 요소들과 갈등과 부조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갈등과 대립, 투쟁, 불화를 넘어 세계와의 일체감 혹은 조화를 지향하는 정신이 바로 서정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속에서의 참된 '나'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서정성의 가장 큰 의미인 것이다.
상식적이지만, '동화'는 사물이나 세계를 시인 자신 속에 끌어들여서 대상을 인격화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자아화'다. 반면 '투사'는 시인 자신을 사물과 세계 속에 상상적으로 투여하여 대상을 인격화하는 것으로 '자아의 세계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을 중요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자아와 세계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 즉 감정이입이나 전이를 통해 세계 속에서 시적 자아의 질적 위상을 확립하거나 재확인하려는 분명한 의도에 있다. 이기헌 시인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집 1부에는 주로 연어?철새?딱따구리?강아지?귀뚜라미?망둥어?참새우?나비 등 작은 생명체가 표제가 되고 있고, 2부에서는 해바라기?사과나무?난쟁이붓꽃, 별바라기꽃, 억새풀 등 식물군이 표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때 이들 시에서 주로 사용된 시적 수법은 '의인법'이다. 시인은 의인법을 통해 인격화된 대상들의 입을 빌려 스스로의 바람 혹은 고백을 더욱더 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의인화를 통한 시적 비유가 성공한 작품들의 중요성은 그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뚜렷한 인식적 차원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낮에 한적한 길을 걷다가/하루를 기약 없이 굴리고 가는/쇠똥구리 한 쌍을 만났다/서글퍼지는 세상을/짙은 아픔만 간직한 채/끝없이 흘러가는 모습이/그날 밤 꿈속에서도 가고 또 가고//삶이란 그런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부분
시적 화자가 '나(시인)'가 되고 '쇠똥구리'가 그저 대상으로 고정되었을 때, 다시 말해 이입(移入)이나 투사, 전이(轉移)와 같은 나와 세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방법이 아무것도 동원되지 않았을 때, 시적 명제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피상적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시적 형상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런'이 다시 명제를 추상화하고 만다. 반면 이기헌 시인은 '자아의 세계화', 즉 '투사'를 통해 형상화 정도가 가장 뛰어나고 더불어 인식의 깊이가 심원한 시적 성취에 다다른다.
내 안을 무수히 두드리고서야/너에게 내가 있음을/말할 수 있을 뿐이다//끓어오르는 열정을/철갑 속에 가둬놓는다 해도/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다/안으로 휘몰아치는 몸부림을/나는 누군가의 가슴속에/점점이 새기고 싶다/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그의 내부를 불사르고 싶다//내 안을 무수히 멍들게 하고서야/너를 향한 그리움을/잠재울 수 있을 뿐이다
?「종」 전문
내가 '종'이 되었을 때 자아와 세계의 간극은 최대치로 줄어든다. 표현과 시각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나', 또는 내부로 향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융(C. G. Jung)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원형(圓形)적으로 보았다. 마치 양궁의 표적지처럼 여러 개의 원이 동심원으로 퍼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격〔탈, 가면(persona)〕의 외부를 외계(外界)로, 내부를 내계(內界)로 보았다. 이성적 행위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에서 주로 생성되지만, 정서적 반응은 외부의 자극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내계의 심층, 즉 불안〔융에 따르면 그림자(shadow)〕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인식했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인용 작품은 높은 수준의 시적 인식을 드러낸다. "내 안을 무수히 두드리고서야", 이는 종은 맞아야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현상에 기반한 표현이지만 "너에게 내가 있음을/말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뒤 행과 결합하여 시적으로 극화된다. '너'를 향한 내 그리움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그 사실을 고지(告知)하는 데서 오는 고통까지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지에서 시인은 "지극히 간절함만으로는/꽃은 피지 않는다"(「외사랑」)는 인식과 "새가 간직한 신념은/날아가는 일이었기에/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랑이/그에게는 보잘것없는/장식품에 불과했다"(「날아간 새」)는 사실마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의 태도, 또는 시적 태도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먼 산에 핀 진달래꽃은/먼 산에 그냥 피어 있게 하라/그 꽃이 마냥 예쁘다고/뿌리째 뽑아다 뜨락에 심어놓으면/아무도 부를 수 없는 꽃이 된다//뜨락에는 황금을 심을지라도/먼 산에는 그대로의 꽃을 피게 하라/산새가 마음 아파하고/산짐승이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마라/먼 산에 핀 진달래꽃 보고/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을 느꼈다면/산새의 기분이야 어떻고/산짐승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먼 산에 핀 진달래꽃은/먼발치에서 그냥 바라만 보라
?「먼 산 진달래꽃」 전문
이번 시집을 통해 이기헌 시인이 보여준, 아니 스스로 자기 확인에 다다르게 된 경지는 "먼 산에 핀 진달래꽃은/먼 산에 그냥 피어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삶이란 그런 것이다"라거나 "두려움도 외로움도 아닌/무수한 쓸쓸함처럼/하루가 또 흘러가네"(「하루가 또 흘러가네」)처럼 막연하고 피상적인 수준에 더 이상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뜨락에는 황금을 심을지라도/먼 산에는 그대로의 꽃을 피게 하라"는 시적 정언명령을 내리고 있다. 자기 확인이란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가 있다〔만물개유위(萬物皆諭位)〕'는 것을 깨닫는 것에 다름 아니다. 먼 산에 그냥 피어 있어야 '먼 산 진달래'가 되는 것처럼 이기헌의 시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로를 지켜보는 것도 기쁨이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장미
연어
철새
오동나무와 딱따구리
강아지
모래성
귀뚜라미의 기도
망둥이와 참새우
주전자
영동고속도로
마지막 태풍이 지나가면
나비의 꿈
담쟁이덩굴
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
하루가 또 흘러가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제2부
꽃
너에게
밤길
속박
사과나무
해바라기
외딴섬
별바라기꽃
난쟁이붓꽃
개기일식
외사랑
억새풀
물안개
무지개
우산
개화(開花)
제3부
연
파문
망상해수욕장
겨울행 버스
내 젊은 날의 가을 노래
도시인들
잠수교
별
종
번개와 천둥
날아간 새
길목
고독
님 그리운 시
양수리
목련
제4부
먼 산 진달래꽃
비 오는 날
젊은 날의 자화상
공중전화
그때는 알 수 있었다
토로
홀로 방 안에 있을 때면
가을 열차
가을의 기원
겨울 꽃
노을빛 언덕
다짐
사랑
단풍나무에게
진눈깨비
그런대로 행복
꽃이 된 이유
해설|자기 확인을 위한 서정의 힘 / 백인덕(시인)
저자
저자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