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문학의전당 시인선 217)
노창재 시집
노창재 시집『지극』. 시인이 보여주는 ‘능청’과 ‘처연’은 이 시집에서 그가 취한 표현의 전략일 뿐, 시인이 담아내고자 한 의미와 독자에게 내미는 공감의 손바닥 전부일 수는 없다. 그가 보여주는 촉수의 끝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뭇 생명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애틋한 부름을 형상화한 시들은 강한 여운, 혹은 무덤덤한 듯하지만 날카롭게 혈을 찌르는 지경,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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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학의전당 시인선》 217. 계간 《포엠포엠》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노창재 시인의 신간 시집. 노창재 시인은 지극한 마음이 가닿는 뭇 생명의 경계와 내면에 아로새겨질 그 흔적에 예민한 시작 태도를 가졌다. 섬세한 '관찰'을 통해 사태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궁리하는 시인은 세계라거나 현실 혹은 생활이라는 굳이 딱딱하고 복잡하게 이름 붙은 차원들에서 한 걸음 물러서 그의 몸과 마음의 자리에서 수없이 서로 끌어당기고 맞닿고 멀어지고 아쉬워지는 생명의 양태들에 예민한 촉수를 들이민다. 이때 일어나는 공명(共鳴)을 시인은 '능청'과 '처연'이라는 시적 태도를 통해 다시 언어로 번역해낸다. 시인이 보여주는 '능청'과 '처연'은 이 시집에서 그가 취한 표현의 전략일 뿐, 시인이 담아내고자 한 의미와 독자에게 내미는 공감의 손바닥 전부일 수는 없다. 그가 보여주는 촉수의 끝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뭇 생명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애틋한 부름을 형상화한 시들은 강한 여운, 혹은 무덤덤한 듯하지만 날카롭게 혈을 찌르는 지경,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노창재 시인은 지극한 마음이 가닿는 뭇 생명의 경계와 내면에 아로새겨질 그 흔적에 예민한 시작 태도를 가졌다. 그는 세계라거나 현실 혹은 생활이라는 굳이 딱딱하고 복잡하게 이름 붙은 차원들에서 한 걸음 물러서 그의 몸과 마음의 자리에서 수없이 서로 끌어당기고 맞닿고 멀어지고 아쉬워지는 생명의 양태들에 더 예민한 촉수를 들이민다. 이때 일어나는 공명(共鳴)을 시인은 '능청'과 '처연'이라는 시적 태도를 통해 다시 언어로 번역해낸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저 사내는/ 대저 낫을 갈면서/ 아래로 위로 엉덩이를 흔들지 않고/ 당겼다 놓았다의 움직임 말고는/ 일말의 미동도 없는가.// 움찔,/ 알 수 없는 사연에/ 앞서간 불혹의/ 때늦은 벼림이라니.
?「낫 가는 사내」 전문
소위 말하는 라이선스가 없는,/ 후진 골목의 담벼락이거나 무명한 골짝의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증상에 따라 잡초도 좀 익혔지./ 가끔은 리어카에 부려놓은 무조건 천 원짜리 동의보감이며, 명리학에 주역에/ 철 지난 명랑이나 선데이서울도 몇 권 앉은뱅이책상 책꽂이에 꽂았다는 거 아니겠어./ 근동 노인네 손목을 짚으면서 구라도 좀 쳐본 터라 이제는 제법 호가 났겠지./ 오늘은 샛별다방 왕언니가 전파사로 부동산으로 비닐하우스까지 얼마나 커피를 날랐던지/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 영업을 못한다는 절호의 소문에/ 번개반점 스쿠터보다 잽싸게 다방 안으로 들어선 것 아니겠어.
?「봉달이 형님」 부분
노창재 시인이 언어로 번역해내고자 했던, 아니 그가 방법적으로 선택한 '처연과 능청'의 모습이 앞의 두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저 사내'의 사연은 오직 '낫'을 가는 그의 자세, "아래로 위로 엉덩이를 흔들지 않고/ 당겼다 놓았다"만을 반복하는 일종의 강박은 자기 체벌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복수심인지 회한인지 알 길이 없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낫을 가는 그 모습은, 아니 그 인생은 일종의 '처연함'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유독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안전장치로 무장된 겹겹의 면도기도 있지만/ 순간의 틈입도 허락지 않는/ 다중의 잔인성"(「외날의 면도」)이 싫어 가끔 '허방'을 짚는 '외날의 면도'를 고집하는 시인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낫 가는 사내'에게서 옮겨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면 '봉달이 형님'은 '라이선스'도 없이 이른바 무면허 의료 행위를 자행하는데, 가만히 되짚어보면, "증상에 따라 잡초도 좀 익혔"고, "천 원짜리 동의보감이며, 명리학에 주역"도 좀 보았고, "노인네 손목 짚으면서 구라도 좀 쳐본 터라" 아주 돌팔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면허만 없다 뿐 '봉달이 형님'은 나름 인술을 펼친 셈이다. 시인은 이를 다시 "고프고 주린 날이 오래오래 머물더라도/ 맑고 형형한 눈빛으로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눈발 휘몰아치는 매서운 들판에서도/ 옷을 걸치지 않아야 한다."(「백수論」)고 자기 자신에게 돌려 세운다. 일종의 '능청'인 셈이다. '옷', 즉 위선과 위계의 옷을 걸치지 않는다면, 나아가 생명의 층위에서 '옷'이란 겉치레는 진정으로 무의미하다. 제 색을 거부하는 '동백'을 보았는가, 혹은 '개망초'를.
노창재 시인이 보여주는 '능청'과 '처연'은 이 시집에서 그가 취한 표현의 전략일 뿐, 시인이 담아내고자 한 의미와 독자에게 내미는 공감의 손바닥 전부일 수는 없다. 시인은 뭇 생명과 교감할 수 있는 촉수, 또는 소통의 회로를 갖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촉수의 끝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익히 보아 온 우포늪을 다룬 생태시의 전형과 사뭇 다르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본연의 우포늪을 그는 체험에서 얻은 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 노창재의 시는 강한 여운, 혹은 무덤덤한 듯하지만 날카롭게 혈을 찌르는 지경,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 노창재 시인은 '우포늪'에 관한 많은 시를 수록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비롯한 것으로부터 현재 상황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시를 진정한 의미에서 환경의 영향 아래 생산되는 이차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면, 시인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관동에서 소야 지나/ 한터 끝으로 이어지는/ 사지포에서 쪽지벌 먼 쪽까지 창창하였네/ 무장의 만리장성/ 십리// 구름 흐르면 지평선 되고/ 노을 걸리면 만종 소리 들리는/ 할배, 순하디순한 일소〔牛〕우리 할배는// 일장기 품에 석삼년/ 부역의 어깨 팔았다고/ 저 빛나는 둑방길 쌓았다고/ 달빛 비추면 소리하고/ 뻐꾸기 울면 소리하고/ 밀주 익으면 소리하고/ 기러기 가면 소리한다
?「우포」 부분
직접적으로 '우포'가 표제가 된 이 작품은 '우포늪'의 내력을 말하면서 "일장기 품에 석삼년/부역의 어깨 팔았다고"라는 부분에서 드러나듯 그것을 사람의 시대와 삶 속으로 끌어오고 있다. 인공적 조성물이라는 말 속의 비인간성, 무책임성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우포 인근의 사람들의 삶, 그들의 애환을 문서에 기록되는 딱딱한 언어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언어로 형상화해야 하는 것, 그래서 오래도록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시인에게 주어진 자연스런 책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도 자연으로서 당연히 사람살이도 '발생?생장?소멸'하는 자연의 이법에 따라 환경을 주무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요소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봄비/ 백수/ 봉달이 형님/ 외날의 면도/ 정월보름/ 낫 가는 사내/ 꺽지/ 황간 가네/ 지극/ 어느 사진가를 추모하며/ 버들치/ 잉어/ 중원미륵사지에서/ 용선대 석조여래좌불/ 9월 저녁의 아라비안나이트/ 수수꽃 장다리/ 붕어
제2부
봄 늪/ 2월/ 봄비 온 날 저녁/ 우포/ 늪가의 하루/ 정오의 마을/ 우포늪 사지마을/ 언덕/ 소나기/ 새벽 들녘/ 개망초/ 우포 산책/ 부용/ 꽃잎열쇠/ 동백
제3부
소묘/ 그런 날/ 사막에 내리는 눈/ 거미/ 붓/ 겨울밤/ 꽃/ 온전한 하나를 위하여/ 탄(坦)/ 저음의 간격/ 할미꽃 잔등/ 치어/ 매화/ 삼천포/ 칸나의 뜰
제4부
정월그믐/ 봄/ 새싹에게/ 새해 아침/ 복수초 혹은 노루귀/ 진달래/ 개나리/ 붓꽃/ 목련 1/ 목련 2/ 다시, 찔레/ 석류/ 우수 즈음/ 처서 이후/ 부메랑/ 시월/ 파기환송
해설|생명을 부르는 애틋한 지극 / 고영(시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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