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지붕을 사야겠다(시인동네 시인선 40)
유종인 시집
유종인 시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이 시집은 유종인 시인의 시편을 수록한 책이다. '물총', '잔챙이 토란', '산매', '새들의 시간표', '성곽의 돌', '앵두', '물 밑의 손', '솔가리 방석', '부럼' 등 주옥같은 작품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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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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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040. 유종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이전 시집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유종인 시인은 무엇보다도 시가 들린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선 시각에 포박되어 있던 사물을 향해 귀가 열린다. 나아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세계의 크고 작은 파동에 얼마나 섬세하게 반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시인은 결코 사물을 지우고 언어만으로 세계를 구성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망막에 맺히는 빛의 일렁임과 소리의 진동은 함께 반응한다. 그의 시는 이와 같이 긴밀한 조응의 과정에 놓여 있다. 이 과정에서 사물들은 교향(交響)하며 섞인다. 그저 악기에서 빠져나오는 공기의 진동이 음악이 아니듯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과 생각과 개념이 조금씩 어우러지며 울리는 관계의 맥락이야말로 단순한 단어와 문장을 비로소 시가 되도록 만든다. 유종인은 이런 식으로 한 편의 시가 쓰이면서 들린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출판사 서평]
유종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이전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 이후 4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유종인 시인은 무엇보다도 시가 들린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선 시각에 포박되어 있던 사물을 향해 귀가 열린다. 나아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세계의 크고 작은 파동에 얼마나 섬세하게 반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시인은 결코 사물을 지우고 언어만으로 세계를 구성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망막에 맺히는 빛의 일렁임과 소리의 진동은 함께 반응한다. 그의 시는 이와 같이 긴밀한 조응의 과정에 놓여 있다.
실제로 시집의 거의 모든 갈피에서 다채로운 소리가 들린다. "까마귀 소리"(「새들의 시간표」)에서부터 "파도 소리를 듣는 망자들"(「소나무와 무덤과 잔디씨」)의 모습까지, 거대한 "사월 천둥소리"(「천둥과 밥」)에서 살짝 "허리에 감기는 밧줄 소리"(「품」)까지. 시인은 "허공에 구첩반상을 차려도 넘치는 소리의 가짓수"(「새들의 시간표」)에 하나씩 귀를 기울이고 나아가 그것을 입 안에 넣고 '지긋이 깨물었다가 씹고 끊어 먹'(「새소리를 씹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물들은 교향(交響)하며 섞인다. 그저 악기에서 빠져나오는 공기의 진동이 음악이 아니듯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과 생각과 개념이 조금씩 어우러지며 울리는 관계의 맥락이야말로 단순한 단어와 문장을 비로소 시가 되도록 만든다. 유종인은 이런 식으로 한 편의 시가 쓰이면서 들린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소나무숲 가까이 막 어두운데
처음 듣는 새소리가 허공에 돋는다
무슨 감정의 열매를 먹었기에
빛도 어둠도 반쯤 물린 데 번지는 소리의 돌,
그 새가 소리 한 수를 두고 사라지니
나는 내내 장고(長考)에 빠져 골똘해지는 돌,
―「저녁의 포석」 부분
허공에 새소리가 울린다. 낯선 새가 내는 소리가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숲으로 번진다. "돋는다"는 말은 일단 낮게 깔리는 어둠 속에서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적막에 휩싸인 숲의 저녁 공기는 이런 식으로 활기를 얻는다. 그런데 '울린다'나 '퍼진다'와 달리 '돋는다'는 말은 다른 상상이 가능하게 만든다. "무슨 감정의 열매를 먹었기에"라는 표현은 '감정이나 기색 따위가 생겨나다'라는 '돋다'의 다른 용례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저 단순한 새의 소리는 이처럼 시어를 감돌면서 놀라운 자질을 지닌다. 귀로 흘러든 소리는 피부에 소름을 돋게 만들고 나아가서 이상한 감정까지 이어진다.
숲가의 저 나무들
고요를 격동시키는 잎잎의 수런거림들
하나의 흔들림 속에
천수(千手)가 넘나든다
나무는
유심함을 다 알아버린 무심결이다
―「나무」 전문
"무심결"이라는 말은 유종인 시가 지닌 매력의 중심에 놓인다. 허공으로 번지는 새소리를 따라 무심하게 곁에 늘어선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복잡한 마음의 움직임을 느낀다. 침묵의 고요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잎의 수런거림은 더 크게 들린다. 그렇지만 어떤 목적에서 벗어나 무심한 상태로 나무들 사이를 거닐지 않으면 그 작고 미세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시는 우리가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 격동하는 리듬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거대한 것과 작은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엉킨 마음과 텅 빈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유종인 시의 "무심결"은 결코 해탈이나 초월과 같은 정신적 경지나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새벽 잠귀를 불러내는/소낙비 소리"(「산매(山梅)」)와 같이 잠든 감각을 깨우는 순간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마음의 지도를 헤매다가 "그대 등 뒤로/무심코 빗 하나를 넘겨받아/복숭아빛 뺨의 시간을 빗어주고 싶"(「태풍과 머리카락」)은 마음이 깃드는 순간과도 같다. 또한 '무심결'은 어지러운 마음속 끝없는 망설임과 고요한 침묵의 고독 사이를 배회하던 사람이 문득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알 수 없는 감각이 집결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세계와 사물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다.
세상에 나와 맞는 게 정말 있을까
때 아닌 걱정을 하게 됐을 때
전통 정원 뒤편의 대숲이 눈에 들어찬다
바람에 비스듬히 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푸르른 마디들
뿌리에서부터 마디의 간격은 넓어진다
그 중에 내 손 한 뼘에 딱, 맞는
대나무 마디도 있으리라
나의 한 뼘과 대나무 한 마디의 그 맞춤을
수평선이라 부를까
지평선이라 부를까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
서로 마음이 몸을 포개오는 마중을
기다려온 그대여
내 말 한 마디에 온 마음이 열리는 속도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아무 섭섭할 거 없는 세월의 눈총이여
―「궁합」 전문
이 시는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난 유종인 시의 특징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세상에 나와 맞는 게 정말 있을까"라는 복잡한 마음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시 속의 화자는 바람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대숲을 바라본다. 오직 각기 다른 대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과 그것이 흔들리며 내는 다양한 소리에 가만히 몸을 맡길 뿐. 흔들리는 대숲과 진동하는 마음이 섞이는 와중, 그 무심결의 순간에 "나의 한 뼘과 대나무 한 마디의 그 맞춤"이 떠오른다. 의미의 지평 너머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리듬을 지닌 하나의 몸이 육박한다. "서로 마음이 몸을 포개오는 마중을/기다려온 그대여/내 말 한 마디에 온 마음이 열리는 속도에"라는 시의 핵심 구절은 기다리는 자세와 속도의 변화 그리고 몸과 마음이 함께 섞이는 순간이라는 유종인 시의 중요한 자질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순간에 하늘과 땅과 바다, 광활한 우주는 하나의 시간으로 모인다. 늘어선 단어들은 문장의 구조와 갖가지 복잡한 비유의 원칙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현상이 된다.
이제 "모든 소리에 성감대를 가진/양철지붕을 올려야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다시 살펴보자.
거울을 눌러 입힌 양철지붕을 그믐밤 고양이가 거닐 때
그 발자국에서
꽃들이 눌러 퍼지는 소리에 소스라치는 고양이여
겨울에도 한뎃잠을 자다 깬 꽃들이
양철지붕에 꿈속의 비명을 던져 올려도 좋겠네
한 무덤 방에 누워
부부가 동짓달 궁금한 입군것질거리를 구시렁거릴 때
(…중략…)
키 높은 옆집 처마의 눈석임물이
양철북을 두드리듯
양철지붕을 두드려 먼가래 한 꽃들의 귀를 부르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부분
양철지붕 아래 누운 사람을 떠올려보자. 시인의 궁합은 단순히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정해진 사주에 따라 사람의 운명을 나누는 일방적인 계산법과도 전혀 다르다. 그것은 "말간 근심과 엇갈리는 연애의 기척들"(「붉은머리오목눈이」)이 함께 몸을 부비며 내는 소리와도 같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시에 양철지붕을 얹고 고양이의 발자국과 꽃들의 퍼지는 소리와 꿈속의 비명 소리에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있다. 그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 시도하지 않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마치 양철지붕 아래 누운 것처럼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서 흐르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너'와 '나'와 세계의 무수한 사물들이 함께 녹아 흐르는 리듬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더 천천히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자. 하모니를 이루는 무심결의 순간을 향하여.
[시인의 산문]
내가 만난 것들이 그간 사람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뒤미처 보니 늡늡한 만남은 인간이 아닌 것들과의 너나들이 속에도 인간적인 깊이를 더한다.
만남의 의미를 너무 사람에게만 입히다보니 인간은 외로움과 상처를 덧입게 되는지도 모른다. 무슨 대단한 결단도 없이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구분이 조금씩 맑게 흐려질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새가 운다와 새가 소리낸다, 새가 말한다 같은 대상의 실제에 망설일 때가 있다. 나의 망설임에는 자본사회가 그들만의 논리와 스피드로 달려갈 때의 그 주변 어눌하고 소소한 것들과 가만히 마음의 어깨를 겯는 정겨움이 있다. 날래고 영악한 것의 첨단 곁에서 나는 어눌하고 뒤쳐진 것들의 일상과 몸짓에 섬뜩하게 놀랄 때가 있다. 거기엔 어떤 권력과 첨단으로도 억압할 수 없는 마음의 본향(本鄕) 같은 게 있다. 그것은 감각적이지만 현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깨달음에 가깝다. 주변의 것들과 주변의 인사를 나누는 중심이 조금 생겼다. 그 인사가 깊어지면 인생과 자연이 의형제라 해도 그리 두동지지 않겠다.
목차
목차
제1부 궁합
궁합 /물총 /나무 /잔챙이 토란 /산매(山梅) /새들의 시간표 /소나무와 영정사진과 폭설과 달밤에 대하여 /까마귀 /성곽의 돌 /앵두 /돌 밑의 손 /솔가리 방석 /부럼 /산길 샛길 /숲의 방랑자 /박쥐 /태풍과 머리카락 /역사(力士) /산성을 가리키다 /리무진을 보내다 /산벚나무 아래 /나무를 붙잡다 /소나무와 무덤과 잔디 씨 /도라지밭 반 평
제2부 연리지
초가을 /연리지(連理枝) /청설모가 준 시 /가뭄 /나무 인상 사전 /붉은머리오목눈이 /대지의 등을 긁게 되다 /저녁의 포석 /새소리 값을 주러 갔다 /바람을 마시다 /물집 /외팔이 장사 /버드나무에게로 /주문 /가마우지 /남루의 빛 /연리지(連理枝) 2
제3부 천둥과 밥
심정 /천둥과 밥 /벼루를 놓치다 /기저귀 기적 /햇 접시 /품 /가을 침대 /가을 심장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새소리를 씹다 /비 맞은 자전거를 끌고 /시래기 전망 /밤의 여로 /점심(點心) /환생 /낡은 마룻바닥 밑의 무덤 /산밤 /산벚나무꽃 /단풍 낚시 /구름들 /로드킬
해설 음양오행의 교향을 청음하는 무심결의 시학/ 장은석(문학평론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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