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지 않는 탑(문학의전당 시인선 219)
이성의 시집
이성의 시집 『저물지 않는 탑』. 이성의 작가의 시 작품을 수록한 책이다. '원형을 꿈꾸다', '걸레질', '봄의 립스틱', '목소리', '허방을 건너다', '그대의 숲', '하루의 절반' 등 주옥같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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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학의전당 시인선〉 219. 2007년 『예술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성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성의는 깨끗하고 맑은 자연의 존재감을 간직한 순은(純銀)의 세계를 꿈꾸는 시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활력은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근원적 이치나 가치를 대표할 만한 것이다. 그 상상력은 새로운 생성의 이치를 터득하고 체현하기보다 소멸의 이치를 존재의 근본과 연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존재의 근본을 거머잡는 일은 선사(禪師)들의 수행에서 '마군(魔軍)'과의 겨룸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용맹정진의 수행 정신과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위험을 각오하고 가파른 생의 바다에 뛰어들려는 모험심을 가리킨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위태로운 지경을 감내하려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생의 가파른 모서리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을 삶과 자연의 절실한 정서를 표현하는 시편들이 그리는 순은의 세계는 서로 상반된 생의 진실과 정황이 맞물려서 치열하게 갈등하면서 빚어내는 정서와 맞닿아 있다.
[출판사 서평]
이성의는 순은(純銀)의 세계를 꿈꾸는 시인이다. 깨끗하고 맑은 자연의 존재감을 간직한 순은의 세계를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곳은 언제나/ 때 묻지 않은 꽃들이 핀다기에/ 그곳은 언제나/ 해맑고 빛이 고운 무지개가 뜬다기에/ 하현달 입술에 물고 종일토록/ 꽃구경하다 일어서는 바람/ 그 가늘디가는 달빛 사이로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ㅡ「이미 돌아가고 있음을」 부분
"때 묻지 않은 꽃"과 "해맑고 빛이 고운 무지개"가 존재하는 그곳에 바로 순은의 속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승의 문명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런 속성을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시의 화자는 "하현달 입술에 물고"라는 실마리를 찾아낸다. '하현달'은 자라나는 달의 모습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하현달의 그런 속성이 어떻게 순은의 세계를 누리는 방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달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원형(Archetype)'이다. 그리고 여성성은 생성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하현달은 이지러지면서 소멸해가는 방향으로의 존재감만을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시 초승달로 태어난다. 동양의 순환적 세계관과 불교의 윤회사상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만해의 유명한 시 구절인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처럼 하현달은 초승달로 거듭 태어난다. 시의 화자가 "하현달 입술에 물고"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까닭도 그렇게 새로 태어나는 순수한 세계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에게는 새로 태어나는 꿈보다 오히려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꿈이 절실해 보인다.
손끝에서 바람 냄새가 난다/ 토도독 두드리던 그녀의 가을 냄새가 아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뿌리/ (…)/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 물안개 속으로 걸어온 강이 하류로 흘러간다/ 원점, 흩어진 듯 다시 모여드는 원점이다// 언제 너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할 수 있을까/ 고생대로부터 걸어 나온 길을 따라 다시 걷는다/ 비우고 또 비우며 덩그러니 솟는 저녁/ 아무도 모르는 정령들의 뒤척임 속에/ 세상이 눈부신 유희를 하고 있다
ㅡ「원형을 꿈꾸다」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인 '원형을 꿈꾸다'가 여성성의 원형만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삶의 근원인 "어딘지 알 수 없는 뿌리"에 대한 갈망을 내포하고 있다. 삶의 뿌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시의 화자는 "뒤돌아보"는 시선에서 찾아낸다. 그 시선은 새로운 생성의 시간대인 새벽이나 아침을 기대하기보다 "비우고 또 비우며 덩그러니 솟는 저녁"을 응시하기에 분주하다. 그 상상력은 새로운 생성의 이치를 터득하고 체현하기보다 소멸의 이치를 존재의 근본과 연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존재의 근본을 탐구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제시해 놓은 요소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바로 다음과 같이 '벽'과 '과녁'의 이미지들로 표현되고 있다.
오직 한쪽 벽만을 바라보다/ 또 다른 벽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세월은 희끗희끗 반백의 물감을 풀어내며/ 저녁노을을 짓고 있네
ㅡ「만선」 부분
가끔씩 내가 가야 하는 방향에/ 화살을 놓지 못하고/ 가야 하리라는 정반대의 길에다/ 시위를 당긴다
ㅡ「과녁」 부분
인용된 시행들의 공통점은 모두 작품의 첫 부분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한 모두 자신이 익숙하게 살아온 삶의 길에 대한 의혹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에 있기도 하다. 시인이 꿈꾸는 삶의 근본이나 영혼의 집이 이런 의혹을 절실하게 끌어안는 자리에서 탐구되고 있다. 시인은 먼저 익숙하고 평온하게 기대고 싶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활력마저도 떨쳐내고자 한다. 어떠한 것이든 익숙함이나 평온함의 속성은 삶의 진실을 가리거나 제한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을 가리거나 제한하면서 삶의 근본에 이를 수는 없는 법이다. 시인 스스로도 그런 점을 자각하기에 이런 결단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 다른 우주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심연 깊숙이 파도 한 자락 출렁거려 보는 일/ 그 파도에 패여 내가 사라진다 해도/ 비록 그것으로 인해 길을 잃어버린다 해도
ㅡ「만선」 부분
"파도 한 자락 출렁거려 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위험을 각오하고 가파른 생의 바다에 뛰어들려는 모험심을 가리킨다. 생의 근본을 거머잡는 일은 선사(禪師)들의 수행에서 '마군(魔軍)'과의 겨룸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용맹정진의 수행정신과도 다르지 않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위태로운 지경을 감내하려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해 저물어 어둑어둑 밤이 내리면/ 흐물흐물 내 마음마저 빛을 덮는 밤이 오면/ 산허리 허리마다 쏟아지는/ 오렌지 같은 불빛들/ 저 많은 불빛들이 혼신을 다해 밤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우리는 두 눈을 감고/ 행복한 잠을 이루리라// 이처럼 보이지 않는/ 우리의 삶 속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한 채 건너가는/ 행복의 건널목들이/ 수없이 왔다가/ 수없이 밀려왔다가는 가고
ㅡ「동행」 전문
작품의 제목이 '동행'이듯이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공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혼신을 다해" 공존하고 있는 정황의 절실함이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시의 화자는 섣불리 어느 편을 들고 있지 않다. 그는 평온하게 불빛에 기대지 못한다. 불빛이 존재하는 공간이 허름한 산촌이나 달동네의 가파른 현실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불빛의 아름다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그때의 불빛이란 가파른 현실의 어둠과 맞물려 겨루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 운명을 간직한 불빛인 것이다. 시의 화자가 안겨 "행복한 잠을 이"룰 만한 생의 근본은 이렇듯 서로 상반된 생의 진실과 정황이 맞물려서 치열하게 갈등하면서 빚어내는 정서와 맞닿아 있다.
목차
목차
제1부
연서 / 원형을 꿈꾸다 / 걸레질 / 봄의 립스틱 / 목소리 / 허방을 건너다 / 그대의 숲 / 하루의 절반 / 언어, 그 축복의 바다 / 포인세티아 / C에게 / 커튼을 달며 / 만선 / 눈물 / 낌새
제2부
현미경으로 보지 마오 / 아나카프리 / 사월 / 과녁 / 사랑의 법칙 / 부활 / 꽃잎에 대한 명상 / 오월의 왈츠 / 강물소리 / 쓰나미 / 회색도시 / 이미 돌아가고 있음을 / 산다는 것은 / 거울 / 자라나는 나무들
제3부
풍경 / 풍선 / 물안개 꽃 / 가을날의 초상 / 따라 걷는 길 / 낙엽 지는 소리 / 찻잔 속의 해일 / 경칩 일기 / 해빙의 계절 / 잡초 / 약속 / 이치 / 동행 / 함성 / 생각
제4부
드라이플라워 / 주상절리 / 그런 여행길이라면 / 문학에 대하여 / 당신에게는 / 저물지 않는 탑 / 바다 생각 / 불꽃놀이 / 이유 / 술 한 잔의 자유 / 달빛 향기 / 간격 / 길 / 행복나무 아래에 서면
해설|순은의 세계를 지향하는 꿈과 모서리의 현실 / 이경호(문학평론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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