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의 힘(문학의전당 시인선 22)
강희주 시집
강희주의 시집『마디의 힘』. 가족과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 머물던 시인의 눈길은 사회현실로 뻗어나가며 뭇 생명에 대한 ‘우주적 연민’을 보여준다. 《호수와 코스모스》, 《크리스마스 전야》, 《연필은 영원한 스승》, 《만남은 눈뜸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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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학의전당 시인선] 220. 강희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자랑스럽기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 회한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 것을. 어디에 갈 것을. 다른 일을 할 것을. 그래서 강희주 시인은 잘되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뒤늦게 수능시험 공부를 해 명지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 졸업했고 건국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학사와 석사가 그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창의적이고도 창조적인 일을 '시 쓰기'라고 생각한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들어가 다년간 시를 쓰고 고치고 퇴고하고 버린다. 그렇게 두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5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안정적이고 연륜의 깊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가족과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 머물던 시인의 눈길은 사회현실로 뻗어나가며 뭇 생명에 대한 '우주적 연민'을 보여준다. 이 시대가 각박할수록 모두의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시인의 마음 씀씀이는 더욱 빛난다.
[출판사 서평]
지난날을 회상하고 내일을 꿈꾼다
젊은이 옆에 날개 꺾인 새처럼
끼어 앉아 있는 노인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움츠러든 어깨 초점 잃은 눈동자
초초(??)한 모습이다
-「후회」 부분
노인은 "말라죽을 불안이란 놈 때문에/전화를 걸고/불안해서 술을 마시게" 되었을 것이다. 그 노인의 불안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늙음이, 역할 부재가, 빈 호주머니가, 소원한 가족관계가 불안의 원인이지 않을까. 하지만 지난날을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므로 노인의 불안과 고독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시인의 관심사는 몇몇 이웃으로부터 사회현실로 확대된다.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개울물이 말했다
우리는 같은 유전자를 가진 먼 친척이라며
자기는 일생을 떠돌며 지구청소부로 살고 있노라고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핏속에는
굶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검은 눈물과
포탄에 쓰러진 시체더미 속에서 아들을 부여잡고 통곡하
던 어머니의 붉은 각혈도
지난여름 광우병에 걸려 황망하게 끌려가던 황소들의 분
노와 눈물도 섞여 있노라고
농부들의 한숨 섞인 땀방울도
공사판 인부들의 땀방울도 몇 줌 섞여 있다고
-「개울물이 말했다」 부분
시인의 소망은 개울물처럼 맑게 사는 것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기아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 땅에서도 광우병에 걸린 황소들을 집단 폐사시킨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피와 살이 썩은 침출수는 결국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이런 사회현실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방관자인 것을. 시인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의 선봉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관심을 갖고 괴로워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모색한다.
남태령 왕릉도 당했다
진시황제 무덤처럼 토우가 발견되고
옷가지며 부장품이 어지럽다
군사들이 지키는 왕릉 입구 언저리쯤
고급승용차 한 대가
옛 고을 원님 공덕비처럼 처박혀 있고
토우를 실어 나르는 구급차 소리 요란하다
-「삼 일간의 폭우」 부분
이 시는 사흘 동안의 폭우로 경기도 우면산 일대에 산사태가 나 인명 피해가 있었던 어느 해 여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재난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깝다. 적절히 대비를 했더라면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는데 안전 불감증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다. 시인의 현실인식과 참여 정신이 간과하지 않은 우면산 참사다.
나무의 유전자를 지닌 연필을 들고
산등성이에 핀 억새꽃보다
어지러운 도심 속 삶
연필은 야수의 눈을 가진 천사처럼
헤집고 다니며 갈래 길을 만든다
연필과 같이한 아득한 세월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리지 못해
현자는 숲을 가꾸는 동안
게으름뱅이 방랑자 한 그루의 빈곤함
어두운 밤 지나고 희뿌연 아침이 밝아오면
길 위에 빛과 그림자 보이리니
분명 연필에는 나무의 유전자가 있다
-「연필은 영원한 스승」 전문
연필이 상징하는 것은 시다. 사물의 이면을 들춰보고 거울의 뒷면을 투시하는 이가 시인이다. 시인은 연필을 들고 "산등성이에 핀 억새꽃보다/어지러운 도심 속 삶"에서 시를 쓰는 동안 밤을 홀딱 새운다?"어두운 밤 지나고 희뿌연 아침이 밝아오면/길 위에 빛과 그림자 보이리니". 현자는 숲을 가꾸겠지만 "게으름뱅이 방랑자"인 시인은 "야수의 눈을 가진 천사처럼/헤집고 다니며 갈래 길을 만든다". 나무의 유전자를 지닌 연필을 들고 시인은 이와 같이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고 있다. 이번 시집이 생의 마지막 시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시인에게는 아직도 이웃에게,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많다.
목차
목차
제1부
몽돌 13
난(蘭) 14
아내 16
벚꽃 17
한 잔의 커피 18
거울 19
개들의 꿈 20
가을 22
유월 23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 24
탄생 25
오미자 26
연필은 영원한 스승 27
수녀들의 봄나들이 28
소나무 29
핑퐁 30
제2부
별똥별 33
아무 날의 서울역 34
삼 일간의 폭우 36
눈길 37
장갑 38
만남은 눈뜸이다 40
내 마음의 뒤란 42
겨울비 44
나무 45
침(針) 46
항아리 47
태풍 48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 50
다문화가족 51
세상을 밝게 하는 것들 52
음악회를 연출하다 54
제3부
부부 57
열차에 핀 효심 58
삶 59
노년 60
후회 62
고주박 64
고물 줍는 노인 65
개망초꽃 66
별은 스스로 빛난다 67
마디의 힘 68
크리스마스 전야 70
개울물이 말했다 72
아픔은 혹이 되다 74
그대 손을 잡는다면 76
천장 78
제4부
여행 81
지폐 열린 들깨 82
대치고개의 전설 84
쌀을 푸며 86
연천 방앗간에서 87
호수와 코스모스 88
호수의 이력서 90
인왕산 92
동으로 창문을 내며 93
봄이 오는 길목 94
민주주의를 신봉하다 96
기러기의 여로 98
탐라 도깨비 100
먹감나무 반닫이 102
해설|방랑자, 지난날을 회상하고 내일을 꿈꾼다 / 이승하(시인·문학평론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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