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쓰는 시(문학의전당 신작시집)
윤재건 시집
윤재건 시집 『나무가 쓰는 시』. 시에는 ‘나무를 사랑하자’는 식의 구호가 아니라 당신이 심었던 나무, 돌보았던 나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시집은 제2부에 이르러 이 땅의 노인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고령화 사회, 핵가족 시대의 비애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 시집을 읽는 모든 독자가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시집은 후반부에 가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느낌을 종종 다룬다. 또한 시인이 직접 경험한 역사적 사건을 시화(詩化)하기도 하고, 당대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이런 전방위적 관심을 보면 시인의 촉수는 나이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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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 중에 '산림녹화'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윤재건 시인은 제3공화국 시절 대통령이 주도한 '나라의 큰일'을 현장에서 실행한 실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임학 연수과정을 수료한 뒤 산림청 조림과장, 중부영림서장, 충청남도 산림국장을 역임했으니 1960~70년대 우리나라 '산림녹화사업'의 산 증인이다.
공직 생활을 마치고 70대에 들어서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이번에 네 번째 시집을 발간했는데, 앞서 낸 3권의 시집도 그렇거니와 이번 시집도 나무에 대한 시가 절반에 달한다. '나무를 사랑하자'고 포스터 그리기 식의 구호가 아니라 당신이 심었던 나무, 돌보았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니 얼마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것인가.
위풍당당한 거목이 아닐지라도
총생(叢生)한 나무들의 숲
숲의 호흡은 유혹적인 향기는
사람에게 주는 보상
우리의 산림욕장
숲은 거대한 생명
오염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오존층을 지키는 지구의 수호자
숲에 깊이 들어가 마셔보라
나무가 시를 쓰고 있다
?「숲은 나무가 쓰는 시」 부분
숲은 나무가 시를 쓰고 있는 곳이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우리 정신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시처럼 뭇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소를 공급해주는 곳, 모든 건축물에 들어가는 목재를 제공해주는 곳, 온갖 약재와 약초를 제공해주는 곳, 홍수를 막아주는 곳, "오염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오존층을 지키는 지구의 수호자"인 숲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개발'과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아름드리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있다. 심지어는 공원이나 자전거 길을 만든답시고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을 베어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즘 과도한 개발로
산을 훼손하여
하늘의 화를 자초하는 일
더 이상 산림은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
가꾸어 후손에게 이어줄 우리의 미래
나무들 아직은 치유(稚幼)의 모습
육성하여 삼림부국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의 관심도 마음에 담아보자
?「산림복지」 부분
산림녹화사업은 제3공화국 시절에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나무를 심고 가꿔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과도한 개발로 산을 훼손하고 있으니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나무를 한창 심던 시절에는 아카시아나무를 "먼 나라 귀한 손님 맞이하듯" 했었다. 아카시아나무의 꽃은 또 향기가 짙어 "꿀벌의 잔치/버거운 우리네 삶에 향기 담아/새로운 꿈을 안겨주는 꽃"이었다. 숲은 나무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의 터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숲을 잘 가꾸어 길이길이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시집은 후반부에 가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변화에 따른 느낌을 종종 다룬다. 시를 쓰기 전에야 봄이 오면 날이 풀려 다행이네, 여름이 오면 너무 더워 부채를 찾게 되네, 가을이 오면 왠지 쓸쓸해지는데, 겨울이 오면 연탄 사 광에 채울 일이 걱정이네 하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정도의 감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가 시심을 자꾸만 움직여 많은 시를 쓰게 된다. 대체로 잔잔하게 전개되는 이들 시편에 대한 감상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제부터는 시인이 겪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추억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안성시 양성면 원곡면 주민 3천여 명이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이어
4월 1일에는 천덕산 고개를 넘나들며 외쳤던 곳
후에 이곳을 만세고개라 부르고
안성 4·1만세운동이라고 했다
그때 일경(日警)에 희생된 231명의 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가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고갯마루에서 외치던 충의와 호국의 만세 소리
이를 지켜보던 소나무 나이테는
일경의 만행을 기억하겠지
?「만세고개」 제2, 3연
3ㆍ1운동 때 전국적으로 약 7,0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안성의 한 고을에서 23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은 독립운동의 기세가 그 어느 곳보다도 높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고장에서 다들 목숨을 내놓고 만세운동을 전개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이후에도 징병과 징용으로 끌고 가 수십만 명의 조선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과거의 역사를 평화와 공존의 미래로/승화되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지금의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평화법 파기 등을 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시인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인식을 거부하는 일본 정치인/여기 안성 3ㆍ1운동 기념관에 와서 똑바로 보라"고 외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돈사 청소를 제대로 못했다고 달려가는 목탄차를 돌아서 오라는 벌을 받았던 것도 기억에 새롭다. 아무리 힘껏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목탄차를 돌아서 오라는 명령은, 조선인 실습주임 교사의 만류가 없었더라면 이행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 차별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쉼 없이 행해졌다. 재일교포들은 광복 후에도 계속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윤재건 시인의 우리 것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아리랑 민요」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아리랑 아리랑 그 어원이 무엇인지
아리랑 고갯길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우리 혼의 노래
굽이굽이 숨 막히는 고갯길
산 넘어 들 너머 열두나 고행 길을
한숨 거두게 하는 삶의 노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한의 노래
?「아리랑 민요」 부분
지역마다 있는 아리랑 노래는 대개 한의 노래였다. 이별을 안타까워하고 다시 못 보게 됨을 서러워하는데 요 근래 새로 만든 (신민요) 아리랑은 그렇지 않다. "지역의 화합을 이루는 통일의 아리랑"이요, "사랑과 기쁨의 아리랑", "평화와 희망의 아리랑"이다. 이제는 한의 노래가 아니라 "민족의 위상과 가치를 높이는 노래"인 힘 있는 아리랑을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비극의 연속이다. 시인은 세월호의 비극 앞에 기도를 드린다.
이제 겨우 싹트려 하는 어린 학생과 일반 승객들
진도 앞바다에 수장해버리려 합니까.
생사의 기로에서 주님의 구원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 마음도 몸도 부서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듯이
이 선량한 승객들에게도 부활의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기도」 부분
세월호 침몰 사건의 사망자는 295명이고 실종자는 9명이다. 대다수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을 위해 시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부활은 예수의 부활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도로 구원의 은총이 죽은 학생들에게 내려지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오월의 향기」에서는 꽃들이 피어나 향기를 풍기지만 소쩍새도 꾀꼬리도 세월호 노란 리본을 보고 목소리를 낮춘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모두 애도를 표한다는 뜻이리라.
이런 비극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도 윤재건 시인은 잘 견지해 왔다. 연세가 여든이 넘은 지금, 최선을 다해 시를 쓰고 있다.
시(詩) 밭에 씨를 뿌린 지
희수(稀壽)에 시작하여 산수(傘壽)가 넘어도
시는 싹이 트지도 않아
갈증만 더해가고
건기는 계속되니
잡초와 싸우다 짧은 생을 마감하나
?「시의 농사」 부분
시의 농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겸양의 말이다. 일흔 나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어언 네 권째 시집을 내게 되었으니, 그간 얼마나 열심히 시의 농사를 지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시인 자신,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시인이니 또다시 자신을 출발선상에 세워 둘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하늘을 받치는 금강소나무
사방오리나무 13
울창한 소나무 숲 14
잡초 16
외상으로 사는 난(蘭) 17
낙엽송 숲에 들다 18
숲의 향기 20
숲은 나무가 쓰는 시 22
붉은 대추 24
아카시아나무 꽃향기 25
산림복지 26
분재 28
구상나무의 이변 30
정자나무 아래서 32
까치집 34
꽃을 싫어하는 나무 36
제2부 더불어 이루는 숲
지탱해주는 것 39
오리의 슬픔 40
터벅터벅 42
Well Old,Well Die 45
할머니의 길 46
할머니의 사랑 48
두루미 가족 50
꿈 52
어머니의 재봉틀 54
어느 노부부의 사랑 56
보리밥 58
땀방울의 맛 60
토종 생굴 62
情을 나르는 64
제3부 담장 넘어 그 나무
섭생(攝生)의 소망 67
안 들리는 소리 들으면 68
귀리죽 70
버려진 장식장 72
물 한 컵 74
노란 버스 76
인간 속달 78
기도 79
개미의 호소 80
등나무 정자 82
가을 하늘 84
미리내 85
만세고개 86
개나리 88
아리랑 민요 90
제4부 잊지 못할 추억
봄기운 등에 업고 93
3월이 가기 전에 94
시의 농사 95
오월의 향기 96
유월의 오면 98
얼마나 초록빛이었는지 100
가을 비 102
창문을 열면 104
철새의 날개 106
가을이 오는 소리 108
초겨울의 서정 109
우수(雨水) 110
겨울의 추억 111
주먹밥 112
천리 길 회상 114
기억 속의 목탄차 116
한 해를 보내며 118
볏짚 곤포(梱包) 120
해설|나무를 통하여, 나무와 함께, 나무 안에서 /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12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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