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루우움(시인동네 시인선 55)
유안나 시집
시인동네 시인선 055 『당신의 루우움』. 2012년 『애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안나 시인의 첫 시집이다. 그의 순정한 마음의 기록이자 세상을 향한 고백이기도 한 이 시집 속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의 ‘당신’이 있다. 그것은 때로 유년의 ‘고향’이나 ‘어머니’, ‘이웃사람’들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리운 ‘옛사랑’의 대상들, 나아가 영혼의 안식처인 ‘절대적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당신’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단절된 감정을 시화(詩化)하면서 깊은 비애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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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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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는 애틋한 노래
〈시인동네 시인선〉 055. 2012년 『애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안나 시인의 첫 시집이다. 그의 순정한 마음의 기록이자 세상을 향한 고백이기도 한 이 시집 속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의 '당신'이 있다. 그것은 때로 유년의 '고향'이나 '어머니', '이웃사람'들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리운 '옛사랑'의 대상들, 나아가 영혼의 안식처인 '절대적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당신'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단절된 감정을 시화(詩化)하면서 깊은 비애감을 전한다. '당신'을 통하여 만나는 시편들은 천편일률적 이미지를 생성하지 않고 다양성을 확보하면서도 인류가 공감하는 슬픈 이미지를 개성적으로 형상화하여, 세상의 모든 '당신'을 향한 연민의 감정을 절실하고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당신'에 대하여: 영혼의 시학
유안나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루우움』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의 '당신'이 있다. 이를테면 유안나의 '당신' 표상은 유년의 '고향'(「북채」 「아버지」 「대추」)을 상기시키거나, 그리운 이름 '어머니'(「산벚꽃」 「하늘 어디를 구르다 나오시는가」 「콩나물에 대한 단상」 「백야」)이다가, 때로는 우리 '이웃사람'들(「금자씨」 「함평댁」)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옛사랑'(「누흔」 「능소화」 「현기증」 「서어나무 우듬지를 본다는 것」 「얼음 붉새」)인 그리운 대상이 되며, 더 나아가 내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절대적 존재'(「당신의 루우움」)를 떠오르게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당신'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단절된 감정을 시화(詩化)하면서 깊은 비애감을 전한다. '당신'을 통하여 만나는 시편들은 천편일률적 이미지를 생성하지 않고 다양성을 확보하면서도 인류가 공감하는 슬픈 이미지를 개성적으로 형상화하여, 세상의 모든 '당신'을 향한 연민의 감정을 절실하나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인이 이제 비로소 세상에 내놓는 시집 『당신의 루우움』은 그러므로 '당신'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애틋한 노래로 세상의 모든 당신과 나의 영혼을 위무하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것은 '당신'과'나'의 진심이 서려 있는 세계이기에, '영혼의 시학'이라 불러도 지나친 수사는 아닐 것이다.
당신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에게로 온다
와서 쉬어가라 한다
어제는 짐이 무거웠으므로
오늘은 밖으로 들어간다
당신의 안이었으나
잠긴 문이 여럿이어서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어두운 빛만 새어나올 뿐이다
당신을 열기 위해 오랜 시간 마음을 벼렸는데
문 앞의 거울은
딱딱해지고 구겨지고 있는 내 모습을
되비치고 있다
당신을 먹고 마시고
나는 당신 안에 있으니
나를 키우는 흙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그늘
거울을 밀치고 들어간다
하나의 방을 열면 열 개의 방이
열 개의 방을 열면 백 개의 천 개의 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신의 발자국 소리는 맛있지만
당신이란 당신은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의 거울을 버린 적이 없어서
나는 당신의 겨울이 되기로 한다
씨앗 한 줌을 들고
돌밭의 부드러움을 판다
당신의 루우움을 판다
-「당신의 루우움」 전문
표제 시 「당신의 루우움」은 "당신"과 "나"의 관계를 대비적 구도로 그린다. 그것은 마치 "흙"과"씨앗"의 관계와도 같다. "씨앗"에게 있어 "흙"은 절대적이다. "나"는 "당신의 루우움"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 꽃피기를 열망한다. 마치 절대자와 절대자를 향한 구도자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무한한 대자연(흙)과 그 속에서 숨 쉬는 생명체(씨앗)의 관계처럼 종속적이지만, 나에게 당신은 신의 존재와도 같은 유일(唯一)의 안식처이다.
당신에게 향하는 길은 그러므로 위로의 길이 된다. 일상의 피로에 지친 나에게 "당신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와서 쉬어가라" 하지만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안으로(영혼으로) 향하는 길이어서 쉽지 않다. "하나의 방을 열"어 보면 "열 개의 방이/열 개의 방을 열면 백 개의 천 개의 방"이 당신을 향하는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 숱한 "방"들은 당신의 부재를 확인해줄 뿐이며, 당신의 진심은 알 길이 없지만, 당신은 다다를 수 없는 저 세상 '바깥'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유안나의 '방'엔 "안"과 "밖"의 이미지가 도치(倒置)되어 있어 흥미롭다. 예컨대 "어제의 짐이 무거웠으므로/오늘은 밖으로 들어간다"의 시행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 내가 감당해야할 책무가 힘겹고 무거웠으나 그것을 잘 이겨냈으니 이제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의무감으로 가득한 이 세상 "안"을 벗어나 "밖"의 세계(당신의 세계)로 가 편히 쉬고자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 바로 이 세상이 "안"이라면, 세상 "밖"은 결국 "당신의 안"이 된다. 위 시는 안과 밖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 제기되어 있다.
그런데 그 "밖"은 다시 "방"으로 이어진다. 이 "방"은 "루우움"의 공간으로 다시 변형된다. 여기서 "루우움"은 '룸'과는 분명 다른 것으로, 가시적 공간이 아니라 '공감'의 장소라 할 수 있는 비가시적 공간이 된다. 시의 앞부분에 사용된 "방"의 의미가 당신에 이르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장애물'로 여겨진다면, 후반부의 "루우움"은 당신과의 만남을 예정하는 '편안한 장소'라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의지로 당신이 머물 "당신의 루우움"을 기꺼이 만들고, 나만의 당신을 그 "루우움" 안에 머물게 한다. "루우움"은 "나"의 진심에 의해 만들어진 영혼의 쉼터인 것이다.
또한 유안나의 "루우움"엔 '거울'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거울은 성찰 즉 자신을 투사하는 매개체로 흔히 사용된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성찰적 자아를 만나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거울을 밀치고 들어간다"와 "나는 당신의 거울을 버린 적이 없어서"의 두 표현은 '거울'을 통해 대면하는 자아를 암시한다. 내가 바라보는 '당신'은 실은 거울을 사이에 둔 바로 '나'를 향해 있다.'내 안'에 머무는 절대적 자아의 영혼이 바로 '당신'과 오버랩이 되는 것이다. "흙"이기도 하고 "루우움"이기도 한, 내가 쉬고 의지하는"그늘"은 바로 내안의 휴식을 관장하고 있는 '당신'이란 절대적 존재이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당신의 루우움」은 내면의 불완전한 자아를 토닥이며 스스로를 궁굴리고 위무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 시는 '당신'이라 부르며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 지닌 시공간적 제약을 '루우움'의 세계로 짐짓 전환하는 시인의 능숙한 시적 기교가 돋보인다. 시인이 말한 '세공사'의 손놀림처럼(「시인의 말」) '룸'이 지니고 있는 도식적 공간의 의미를 '루우움'이라는 영혼의 장소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지닌 언어적 감각과 의미의 깊이는 '루우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듯이 가시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내면의 자유공간을 확보한다. 이것은 '룸'보다 훨씬 유연한 공간으로 생성된 것이다. '루우움'은 이제 심미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안식의 장소를 표방한다. 시인이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이 영혼의 안식처 '루우움'은 '당신'이 거처하는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다가가거나 마주하거나 손잡을 수 없도록 일정한 거리를 지니는 "내면"의 세계로 규정된다.
매미는 이제 노래를 둘둘 말아 등에 메고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공원 화단에 칸나는
죽은 꽃잎을 날려 보내야 할지 땅속에 묻어야 할지
생각에 젖어 있다
분꽃은 한여름을 잘 익혀
이미 열매 속에 담아놓았다
풀벌레는 목구멍이 좁아져
입술만 들썩인다
그러니까 무엇에서 무엇으로 건너가고 있다
냇가의 돌은 구르고
달은 둥글어지고 있다
칠월 열이레
오늘은 어머니의 기일이다
어머니는 또 하늘 어디를 구르다 기우뚱한 모습으로 나오시는가
저 돌이 달로 둥글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뼈마디를 구부려 넣었을까
전라선 밤차를 타고 푸른 문을 열면 만나고 올 것 같은 달의 이마
그 둥근, 하늘
-「하늘 어디를 구르다 나오시는가」 전문
생(生)과 사(死)를 모두 겪는 자의 숙명은 "그러니까 무엇에서 무엇으로 건너가고 있"는 만물의 이치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무엇에서 무엇으로 건너가고 있다"는 우주론적 깨달음은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나는 유안나 시인의 '시적 명제'로 보인다. 생명의 소멸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인데, 이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바로 "무엇에서 무엇으로 건너가는" 필연의 변화를 갖는다. 시인은 이 변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둔다.
특히 '죽음(소멸)'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떠난 자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동반하기에 더욱 아프다. 죽음을 소재로 한 시는「하늘 어디를 구르다 나오시는가」 외에도 「비 냄새」 「아우슈비츠-눈」 「킬링필드」 「고흐의 잠」 등 시인의 남다른 관심으로 시화되었는데 그 시적 형상화의 범주는 넓고 다양하게 표출된다. 즉, 시인이 직접 목도한 죽음(「비 냄새」)을 다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사건, 역사적 사건 등을 망라하여(「아우슈비츠-눈」 「킬링필드」 「고흐의 잠」) 죽음의 대상과 그 의미를 파헤친다. 유안나 시인은 죽음으로 "건너가는" 생명의 소멸을 깊게 응시하고 있다.
인용 시 1연은 이처럼 삼라만상의 변화를 바라보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말한다. "매미"의 지난한 삶의 "노래"도 화단의 붉은 생명 "칸나"도 미미한 "풀벌레"조차도 "무엇에서 무엇으로" 생과 사의 순리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산 것은 죽고 죽은 것은 다시 다른 생명체로 되살아난다는 윤회의 방식이 드러나 있다.
"어머니의 기일"에 이르러 생사의 의미를 헤아리는 시인의 감정은 "전라선 밤차"를 타고 오르는 귀향길이어서 더욱 애잔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귀향길에 바라다본 "둥근, 하늘"은 삶과 죽음이 한 울타리로 엮여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그 둥근, 하늘"의 윤회성이 "무엇에서 무엇으로 건너가고 있"다는 시인의 근원적 깨달음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냇가의 돌은 구르고/달은 둥글어지고"있는 것에 시인의 시선이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어깨를 뒤에서 툭 치면
찰박찰박 출렁거리는 소리가 난다
히아신스 같은 미소도 함께 출렁거린다
대관절 어디에 물을 담아놓고 있기에
보이지도 않는 물이 졸졸졸 흐르는가
나는 둥근 달의 둥근 틈을 본다
둥근 달의 모서리를 슬몃 잡아당기면
당신의 출렁거림이 출출출 흐른다
당신은 저기 멀리 은하수 위에서
외줄 타던 발 하나가 삐끗 헛디뎌
물의 항아리를 엎지르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햇빛의 수레 위로 바람이 불고 또 분다
둥근 달 앞에 서면 나의 마음도 둥글둥글해진다
같은 한숨을 쏟아놓고 마주 보기도 하고
늑골에 깊숙이 숨겨놓았던
문장을 펼쳐놓고 달빛으로 읽기도 한다
그러면 연줄을 매달듯 울음을 매달고 달은 점점 차올라서
풍경이 된다 당신이 된다
-「물의 울음」부분
"둥근 달 앞에 서면 나의 마음도 둥글둥글해진다"고 시인은 "히아신스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둥근"것들의 뒤에는 "울음"을 쏟아낸 (아픈) 순간이 있다. 달은 이 "울음을 매달고" "차올"라 마침내 둥글어진 것이다. "둥근 달"은 "졸졸졸" 흐르는 "물 항아리"를 품고 있으며, "달빛"은 "당신의 출렁거림"도 "출출출" 흐를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둥근 달"의 숨겨진 아픔은 "물의 울음"으로 표출되고 당신은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 이제 시인이 찾아낸 "깊은 한숨"과 "늑골"의 "문장"은 "물의 울음"에 가닿은 "둥근 달"의 모습을 보이며, "풍경"으로, "당신"으로, 재탄생한다. "물의 울음"을 읽어내는 '당신'(여기선 시인이라 말하고 싶다)을 통해 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기에 젖은 영혼을 본다. 그리움이란 이런 것인가. 젖어 있는 영혼의 울음을 "달빛"으로 읽는 것. '당신'이 오고 있는가. 『당신의 루우움』을 통과하며 내 안에 머무는 '당신'이 이처럼 오는가. "물의 울음"을 안고 "출출출" 오는 것만 같으니…… 문득, 나에게로 '올' 당신이 기다려진다.
목차
목차
제1부
톨레도 마음 13
그 많던 삐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4
산벚꽃 16
비 냄새 18
금자 씨 20
백야 22
나사못 24
돌고 돌고 돌고 26
배암의 등을 밟고 28
킬링필드 30
불면 32
비등점 33
고흐의 잠 34
밤비 36
접삭(接朔) 38
귤의 시간 40
제2부
허기 43
누흔 44
당신의 루우움 46
검은 긍휼 48
꽃병 50
그 남자 52
북채 54
가부끼 56
밤의 무늬 58
칼집 60
보라 61
sand man 62
바람술래 64
나무의 방 66
대추 68
아우슈비츠 70
제3부
작약 73
하늘 어디를 구르다 나오시는가 74
현기증 76
서어나무 우듬지를 본다는 것 78
콩나물에 대한 단상 80
능소화 82
함평댁 84
매지구름 86
굴뚝 88
얼음 붉새 90
동지 91
물의 울음 92
도란도란 94
바위 남자 96
댓잎 소리 98
제4부
공생 101
슬픈 사자 102
선녀와 나무꾼 104
피리가 될 때까지 106
향나무 속으로 들어가다 108
죽음을 소환하다 110
샐비어 111
네트워크 112
門 114
환장 116
환상통처럼 바람이 울며 지나간다 118
바람 상여 120
태풍을 그리다 122
아버지 124
해설 '당신'에 대하여: 영혼의 시학 125
/전해수(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2012년 『애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4년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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