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김연복 여사(시인동네 시인선 57)
정대구 시집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대구 시인이 팔순을 맞은 아내에게 헌정하는 시집 『위대한 김연복 여사』. 이 시집의 헌사를 통해 그간의 창작 여정 동안 스무 권 넘는 시집을 출간해 온 꾸준함으로 정평이 난 시인이 자신의 “위대한 김연복 여사”에게 한 권의 시집을 ‘바칠 수밖에 없는’ 따뜻한 비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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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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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농투성이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
정대구 시인의 시적 행보에 있어 이번 시집은 대단히 특이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팔순을 맞이한 아내에게 헌정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이니 만큼 회갑연이나 칠순잔치를 하지 않고 그 대신에 시집을 출간해 출판기념회를 갖는 경우는 왕왕 봐 왔지만 시인이 아내의 팔순을 기념해 한 권의 시집을 출간, 헌정한 예는 한국 문단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초유의 일이다. 헌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김연복이 내 마누라라서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딴 것 안 읽어줄 것 뻔히 알지마는
안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팔순을 기해 드리는 것 오직 이것 하나뿐
백면서생 이 못난 나약한 남편
반성하는 남자
정대구,
왜 시인은 아내가 이 시집을 안 읽어줄 거라고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일까? 시인이'이딴 것', '백면서생', '못난 나약한 남편'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자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이 헌사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이런 여러 가지 궁금증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시력 44년에 20여 권의 시집을 냈다면 2년 반 만에 1권씩의 시집을 내온 셈이다. 정대구 시인의 꾸준함은 우리 시단에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 시집은 시집 서두의 이 헌사가 일단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 궁금증을 뭇 독자와 함께 지금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도록 할 것이다.
아내는 내가 잘 먹는 파김치랑
이미 시집 장가간 아이들 몫까지
혼자서(딸 며느리 불러 내리지 않고)
며칠을 두고 혼자서
올겨울 김장을 다 해냈습니다
여름 내내 아내가 손수 가꿔온
고추의 가루를 내고
무 파 마늘 다듬고
배추 절여서
-「김장하는 아내」 부분
이 땅의 주부들 중에 김장 안 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만 대부분 한다고 했을 때 '김장하는 아내'는 별 대수로울 것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장의 재료다. 화자의 아내는 여름 내내 손수 배추, 고추, 무, 파, 마늘을 가꿔 가을에 그것을 수확해 김장을 담그는 것이다. 화자는 아내를"늙은 구식 아내"라고 부른다. "낡고 볼품없는 똥똥한 냉장고/무시로 툴툴거려/말 붙이기도 어렵"다고 하니, 시인의 아내가 이 시를 읽으면 언짢아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농촌에서 나고 자라 잔뼈가 굵어/초등학교를 겨우 나와 떠듬떠듬 한글을 읽고 그리는" 정도니 시를 누가 읽어준다고 한들 고개를 끄덕여줄 리 만무하다. 그런데 화자의 아내가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당신 같은 사람은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풀 한 포기 제대로 못 뽑을 거야
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
붓대나 놀리고
세 치 혓바닥이나 놀리던 자가
어떻게 감히 이 신성한 흙을 만지겠다는 거야
썩 비켜, 저리 비켜서지 못할까
어차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당신
-「농부 아내와 얼치기 남편」 부분
이제 비밀이 풀렸다. 집의 농사일을 도맡아서 하는 아내에게 "붓대나 놀리고/세 치 혓바닥이나 놀리던 자"가 일을 돕겠다고 하니 방해만 될 뿐이다. 농부 아내는 얼치기 남편에게 방해나 하지 말라고 "썩 비켜, 저리 비켜서지 못할까"하고 큰소리를 친다. 고추를 수확할 시점에 화자는 고추밭에 가서 "고추는 여자가 따야지 고추가 좋아해" 농담을 건네면서 고추를 따는데, 이 말조차 "건 뭔 소리/고추나 잘 따/고추도 요령 있게 따야지"하면서 핀잔을 듣는다. 이런 일에조차도 큰 도움이 안 되는 남편이다. "집 앞이 바로 들길이요/집 뒤가 바로 뒷산이니/논두렁길이든 산길이든/원하는 대로 언제든 갈 수 있"(「농촌에 살며」)는 곳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생활 반경은 영판 다르다.
아내가 옷 갈아입고 나설 때 어디 가냐고 물으면 누구네 초상이 나서 간다고. 누구 엄마 칠순 잔치에 간다고. 누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안 가볼 수 없어 간다고. 오늘 대동회가 있어 마을회관에 간다고. 사강 장터에 모여 무슨 반대운동 데모하러 간다고. 새 공장이 어디 들어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 길을 막고 못 들어오게 하러 간다고. 어디 모여서 어디로 새우젓 사러 간다고. 부녀회 회원끼리 야유회 가는데 따라가야 한다고. 그런데 당신은 몰라도 된다고.
…(중략)…
아득한 별나라 화성, 시인은 화성인. 화성서도 땅끝 동네, 송산면 지화리 우복동 221번지. 여기가 지금 시인이 세 들어 사는 시인의 별, 시인의 현주소다. 서울서부터는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이고 지구서부터는 아주 먼. 시인은 차를 왕복 열두 번 갈아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혜화동에 있는 한국시인학교엘 나간다. 오다가다 마을 사람을 만나면 그들이 묻는다. 어디 가세요. 어디 다녀오세요.뭣 하러 다니세요. 시를 가르치려 다니지요. 그 어려운 걸 가르치면 돈 많이 받겠네요. 허, 그런가요. 시인은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부분
화자의 아내가 사시사철 주야장천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다. 농사 외에도 이렇게 일이 많다. 그에 비해 이 시의 화자인 경기도 화성 벽촌에 사는 시인은 일주일에 한번 서울 혜화동에 있는 한국시인학교에 가서 시를 가르친다. 시를 가르쳐서 버는 돈은? 동네사람이 궁금해 물어보는데 차마 말할 수 없다. "차를 왕복 열두 번 갈아타"야 하니 교통비와 식대 지출만 해도 강사료가 거의 다 나가리라. "돈이 안 되는, 밥도 안 되고 옷도 안 되는/그 잘난 붓이나 벼리"겠다고 집을 나서는 화자는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핀잔 구박 멸시에 자존심이 상한 구선생"은 오기를 발동해 "더욱 열심히 호밋자루 움켜쥐고/농자천하지대본 따라다니며/땀을 동이로 쏟는 것"이었다. 핀잔, 구박, 멸시를 주는 아내이건만 어찌하여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우러러 부르게 된 것일까. 가장 노릇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시집의 앞부분에 놓인 시의 제목이 「감사할 뿐」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내는 땅을 터전으로 하여 살아온 사람이다. 가장 정직하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제2부의 시편에서는 아내의 삶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제 저녁 어두컴컴할 때까지
포도나무 고랑에 나랑 마주 서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지네발 따고
곁순 주고 육손이를 따내던 아내
밤새 어깨 결림도 잊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아내
따뜻이 새벽밥 지어놓고
이 사람 어딜 갔나 했더니
포도농사 짓는 늙은 아내
부슬부슬 가랑비 속에
아침 일찍부터 노란 우비 덮어쓰고
알 솎음이 늦었다면서
또다시 왕성한 포도덩굴과 마주 서 있네
-「밥이나 먹었는지」 전문
아내의 일과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밤늦도록 일했으니 다음날 하루쯤은 쉬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런데 농사꾼에게는 휴가도 없고 월차도 없다. 새벽밥을 지어놓고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를 뚫고 포도 알 솎아주는 것이 늦었다고 포도밭으로 달려갔으니, 이런 아내가 고맙지 않으면, 사랑스럽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아래의 시를 보면 시인의 아내 김연복 여사가 어찌하여 야생마로 길들여졌는지, 과거지사가 펼쳐진다. 한 인간의 일대기라고 할까 평전이라고 할까, 그 내력이 흥미진진하다.
내 마누라 김연복은 오 남매를 쑥쑥 낳아 길러낸 생산적인 여자
김연복은 여섯 살 땐가 일곱 살 때
아버지 그러니까 내 장인어른의 특명으로
난산의 어미 돼지 좁은 산도에, 어린 조막손 밀어 넣어
오물오물 일곱 마리의 새끼돼지를 꺼낸 것을 기억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그녀는 동네의 억센 머슴 녀석들과 어울려
녀석들이 못하는 거친 일도 척척 해내며 그들을 손아귀에 넣고 커갔다
이를테면 남자들도 못 드는 무거운 쌀가마니를 번쩍번쩍 들어 올린다든가
누구와 싸움이 붙어도 절대 지지 않는 그런 여장부로 야생마로 길들여진 김연복,
중매결혼으로 나에게 시집온 뒤에도 힘으로 군림하는 그녀에게
손에 흙 안 묻히는 일들은 일도 아니다 거지발싸개다
이를테면 내가 밤새워 쓰는 시 나부랭이는 휴지 쪼가리에 불과하고
내 혀를 갈아 입으로 벌어오는 돈은 돈 가치로 쳐주지도 않는다
-「위대한 김연복 여사」 부분
설사 아버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어미 돼지의 산도에 조막손을 넣어 일곱 마리의 새끼를 꺼낸 데는 보통 이상의 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가 여섯 살 때였던가, 일곱 살 때였던가. 그렇게 남자 못지않게 씩씩했던 아내는 여자이면서도 덩치 큰 사내들 틈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면서 성장해갔다. 중매결혼으로 화자와 결혼을 했는데, 하고 보니 남자가 백면서생이다. "열심히 되지도 않는 글을 써대는 비생산적인/나는 그녀 앞에서 언제나 졸장부"다. 자책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시 한 편 지어 바치지도 못하는 나"로 이어진다. 자, 그런데 아내는 나이 팔십을 바라보고 있다. 음식점이나 마을회관을 빌려 잔치를 벌일 수도 있지만 그 돈은 아내가 농사를 지어 번 돈이거나 자식들이 모은 돈일 것이다. 궁리를 해서 마련한 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아내가 땅을 통해 벌어들인 것이 아내로서 가장 정직한 수확물인 것처럼 화자가 붓을 들어 벌어들인 것이 시인으로서 가장 정직한 결과물인 것을 알고 시집을 헌정하기로 했으니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렇게 하여 이번 시집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 시인의 시세계에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농산물 수입 개방에 반대하여 WTO 멕시코 카쿤 대회에서 스스로 시퍼런 목숨을 끊어 태양보다 진한 붉은 피를 세계만방에 뿌린 대한민국의 농민 대표 이경해 씨, 다 아시죠. 나는 이 소식에 접하면서 왜 수십 년 전 어느 해 큰 홍수에 시퍼런 자신의 몸을 던져 터져나가려는 논두렁을 베고 죽었다는 홍사영 그분이 생각났는지 모르지만요. 생각해봅시다.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거센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어요.
-「논두렁 정기」 부분
화자는 아내의 농사일을 지청구를 들어가며 간간이 도울 따름이다. 하지만 농사꾼의 고충을 모를 리 없다. 농산물 수입 개방에 반대해 "스스로 시퍼런 목숨을 끊"은 이경해 농민을 애도하는 이런 시는 시인의 현실비판의식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工業立國'의 기치를 높이 든 이래 농업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농산물 가격을 저가로 유지해야 공산품 가격이 안정된다고 생각한 역대 정부는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책을 채택하여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게다가 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허용한 WTO 체결이 한국 농민의 숨통을 틀어막는 행위라고 간주한 농민 이경해는 자살을 함으로써 이 조약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려고 했다. 이경해 님의 자살은 "일견 바위에 계란 치기 같은 무모한 몸부림이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 농민도 해내지 못하는, 작지만 매운 고추 맛으로 우리는 오천 년을 버티어 지금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농촌의 공동화 현상도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수년 사이 한 번도 어린애 우는 소릴 듣지 못합니다.
여자라곤 오륙십 대 과수댁이거나
칠십 대 이상 할머니들뿐,
이십 대 전후 꽃다운 나이가 되기 무섭게
여자애들 도회로 빠져나가고
생산 가능한 젊은 엄마들 까닭 없이 집을 나가버려
생홀아비가 한둘이 아니고
삼사십 대 노총각도 서너 명 됩니다.
-「여자를 찾습니다」 부분
다 떠나고 몇 집 안 되는 마을 사람들
호미 걸어놓고 적자뿐인
땀을 씻어 내리는 농부들
-「칠월의 한때」 부분
한국 사회 전체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인데 농촌은 더욱 심하다. 농촌의 60대는 청년이고 70∼80대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가 못 간 농촌 총각들이 워낙 많다 보니 시인은"주방도 도시에 진배없이 현대화되고/자가용 없는 집 없는데 여자가 없습니다./여자를 찾습니다. 철수랑 승국이랑 수만이랑/신랑감들도 보장하건대 모두 착하고 건실합니다."라고 하면서 농촌으로 시집올 여자를 찾는다고 부르짖지만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하다못해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신붓감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백년해로하는 경우보다는 파경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떠나가는 농정(農政)에서 돌아오는 농정으로' 정책을 펴지 못하는 선량들이 원망스럽다.
여의도는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 풍랑이 장난이 아니다
조용히 끝내는 회기가 없다
여야
야야
혀를 갈아먹고 사는 선량이라지만
말씀이 너무 거세다
파도가 하늘을 치겠다
관습처럼 멱살 잡는 말싸움 몸싸움으로
삿대질로 사공은 산으로 가고 오랫동안 표류하는
여의도 너무 멀리 왔다
제19대 국회 개원을 기해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이제는 등대를 세우자
-「여의도 등대」 부분
어느 정권 어느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들은 상스런 말을 함부로 하고 "멱살 잡는 말싸움 몸싸움"에다 날치기 통과를 일삼았다.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 어기기를 밥 먹듯이 하니, 시인은 등대라도 세워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도시 서민과 농민의 고충을 아는 대통령을 바라는 것인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가 있다. "공사판이나 시장바닥 또는 농어촌을 돌면서/유권자와 어울려/막걸리 한 사발 캭, 들이켤 줄 알아야 당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느니"하는 시를 쓴 이유를 누가 모르겠는가. 역대 대통령 중 이런 서민적 풍모를 보여주었던 이는 박정희와 노무현 두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안다. 아무튼 "기생오라비같이 빤질빤질 갈급한 정치이거나/부글부글 거품만 풍기는/마침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사라지는/소모적인 거품정치밖에 남는 게 없으리" 하면서 날카로운 현실비판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 있지 않고 초록 들판에서 초록 촛불을 켠 마을사람들을 칭송하기도 한다. 본분을 다한다는 것, 그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눈부셔라 우쭐우쭐 춤을 추듯
시위하는 우리 마을의 평화
한 포기 한 포기의 벼는 바로 한 포기 한 포기 촛불
쭉쭉 자라나는 싱싱한 초록 촛불을 보아라
숨 가쁘게 내뿜는 시퍼런 목소리
어떤 권력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평화가
고요히 넘쳐흐르는 이 아침
-「초록 촛불」부분
광화문에 모여서 촛불을 밝혀 시위하는 군중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화자가 생각하건대 농사꾼이 농사일을 팽개치고 시위현장에 있다면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니, 한 포기 한 포기 초록 촛불을 밝히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사가 한창인 때는 벼락 치는 소리도 귀 밖에 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심이 되는 시가 아내 예찬의 시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와 헤어지는 여자
내 머릿속 내 가슴속 내 꿈속까지 들어와
온통 나를 다 차지하는 단 한 사람의 여자
-「마누라」전문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와 헤어지는 여자"라고 한 것은 아마도, 아내의 심한 잔소리 때문이 아닐까. "내가 무슨 말이든 입을 벌렸다 하면/주먹으로 냅다 입을 틀어막아 주니 고맙습니다/이해가 안 되겠지만/덕분에 내가 묵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하는 것은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길 내 언행에/일일이 토를 달고 잔소리를 해주어서" 그저 고맙다고 한다. 잔소리는 관심이 없으면 하지 않는 소리다. 아무튼 아내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무능한 것도 같다. 농번기 때는 장정 몫을 해주어야 할 사람인데 풀 뽑기, 고추 따기 정도밖에 할 줄 아는 일이 없다.
단순히 시를 짓는다는 죄 때문에
아무리 윽박지름을 당해도
밟히고 밟혀도 다시 고개 드는
내가 이만큼이나 시 쓰는 고통을 누리는 것이 다
내 마누라님이 되어준 그대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연
시 쓰는 일의 가치를 아내한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시인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해설자가 보건대 정대구 시인과 김연복 여사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인의 하해와 같은 마음이 한몫한 덕분이 아닐까.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네, 네 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눈치 보고순종하며 아내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노년의 생존법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쓸쓸한 세상에서 그래도 아내는 노년의 추레함과 외로움을 다독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농촌에 살면서도 자신은 농사일에 방관자인 셈이다. 시를 쓰고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한 생을 살아왔지만 자신의 삶이 아내 앞에서는 부끄럽다.
내가 아직도 빳빳이 고개 세우고
여기저기 얼굴 내밀고 나댈 때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이삭을 생각하며
나는 부끄럽다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나락이 하나하나 껍질을 벗고 드러내는 눈부신 통통한 알몸[米]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고 살이 되고 피가 될 때
나는, 나의 시는 어떤가
얼굴 들지 못한다
-「벼에게 배운다」 부분
시인은 이렇게 겸양의 말을 하지만, 사실 정대구 시인은 한국 시단에서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다. 문단의 단체장이 되기 위해 뛰어다니는 문인, 상을 받기 위해 운동을 하는 문인, 등단 장사를 하는 문인, 파당을 만들어 몰려다니는 문인, 자기가 소속된 단체의 문인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문인…… 이런 문인들 틈바구니에 끼지 않은 순결한 시인이었다. 정대구 시인은 20년 이상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20년 이상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이제 시력 44년에 20여 권의 시집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땅을 일구어 생명체를 키워내는 농사꾼 아내를 예찬하는 시를 묶어서. 이번 시집이 시인의 종착역일 수 없다. 정대구 시인의 시는 전혀 난해하지 않고 체험의 시, 생활의 시, 이야기 조의 시다. 즉, 상상력의 시, 관념의 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가 아니다. 일견 지나치게 쉬워서 인식의 깊이나 사색의 넓이가 부족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소통불능의 시가 양산되고 있는 우리 시단에 정대구 시인의 정직함이나 순수함은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앞으로 더 나은 시, 오래 남을 시를 써주기 바랄 뿐이다.
목차
목차
제1부
고추를 따면서 13
감사할 뿐 14
김장하는 아내 16
나를 휩싸고 도는 찬 공기가 따뜻한 공기로
바뀌기까지는 18
논두렁 정기 20
농부 아내와 얼치기 남편 22
농촌에 살며 24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26
들불 놓기로부터 28
멍이 들었는데 30
나의 아내는 냉장고 32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33
물푸레나무 종아리채 34
모내기 36
제2부
밥이나 먹었는지 39
검은 암퇘지의 추억 40
부모님 모시듯 혼정신성(昏定晨省)하건만 42
여자를 찾습니다 44
위대한 김연복 여사 46
이웃사촌 49
쌀값과 시집 값이 너무 싸다 50
평화를 노획하다 51
포도나무 전지 제1장 52
풀과 나무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54
흙과 소꿉놀이 55
흙을 찾아서 56
줄탁(?啄) 58
지화리 우복동에서 60
제3부
새 보기 63
거지와 소년 64
고맙습니다 66
가을볕 68
기러기 행렬을 바라보면서 69
김치 예찬론 70
마누라 72
벼에게 배운다 73
막걸리와 대통령 74
복날이 그냥 지나갈까 76
빵의 임자는 77
어떻게 알았는지 78
가을 80
제4부
귤 가족 83
돼지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나는 아내에게
사육당한다 84
얼치기 86
여의도 등대 88
잔디를 위하여 90
잡풀을 뽑으며 92
장마 끝 94
어머니 소리 96
제사를 지내는데 98
태극기 99
초록 촛불 100
칠월의 한때 102
시와 놀란다 104
해설 농투성이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 105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저자
저자
숭실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으며『나의 친구 우철동씨』 『곰할머니 고맙습니다』 『칼이 되어』 『흙의 노래』 외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 『녹색평화』 『구선생의 평화주의』, 저서 『김삿갓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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