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두고 왔다(시인동네 시인선 62)
이진욱 시집
이진욱 첫 번째 시집『눈물을 두고 왔다』. 이진욱의 시를 구성하는 심층에는 사물의 표면을 넘어서 저편의 기원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좋은 눈’을 통해 잡동사니로 흩어진 세상의 폐허를 하나로 묶어내며, 뛰어난 언어적 압축과 탁월한 알레고리를 통해 순진한 사람들을 홀리고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강한 비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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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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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시는, 시인은
사람에게 고향이 있듯이,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사건들에는 각각의 기원이 있는 듯하다. 시작점, 혹은 기원, 때로는 뿌리였다가, 때로는 잘못 들어선 이 길의 모든 원점 같은 것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진욱 시인의 시를 한 마디로 평가하면, 이런 "기원 혹은 원점을 바라보는 시선이 탁월하다"라는 것이다. 그의 시편에서는 애초에 잘못 되어버린 모든 일들도, 또 지금 힘들게 서 있는 자신을 간신히 버티게 하는 힘들도, 모두 저 '먼 곳'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되어 '지금, 여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이진욱의 시를 구성하는 심층에는 그래서 회고적이면서, 사물의 표면을 넘어서 저편의 기원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보자.
아폴로 14호 셰퍼드 선장은
달 표면에 내려서기 전
6번 아이언과 골프공을 챙겨
착륙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달 표면에 흠이 생겼다
ㅡ「프로골퍼」 전문
한때 프로골퍼였던 시인의 특이한 이력 때문에 각별히 이 시가 주목되는 것은 아니다. '달 표면에 흠'은 사실 전혀 다른 자연적인 생성 원인이나 우주적 기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 흠이 '6번 아이언과 골프공'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이렇게 인간의 어떤 행동이나 삶의 특정한 국면, 그리고 기억에 대한 알레고리를 '지금, 여기'의 모든 현실에 바로 연결시킨다. 즉, '지금, 여기'의 삶이란 시인이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어떤 일들이 기원으로 작동하고 있는 '알레고리'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6번 아이언과 골프공은 달의 흠보다 훨씬 나중에 생긴 것임에도, 시인의 '연상'속에서 그 둘의 순서는 서로 뒤바뀐다. 시인에게는 골프공의 흠이 달의 흠집보다 더 먼저 존재하는 기억이고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 원인관계는 일종의 역설이면서 시 전체를 새로운 알레고리적인 이야기 구조 속으로 끌고 간다. 실제로 이진욱의 시는 이미지와 상상의 자연스러운 펼침이 아니라 재구성된 알레고리적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이진욱 시인을 이야기적 자질을 풍부하게 지닌 시인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벌교와 고흥을 잇던 27번 옛 지방도가
4차선으로 확장된 뒤
다시는 흙먼지가 일지 않았다.
울창했던 메타세쿼이아도 시름시름 사람들을 앓기 시작했다.
경운기는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소문보다 먼저 도착한 복덕방에는 외간여자들이 빼곡하게 들러 앉아 화투짝을 만졌다.
청년들은 밤늦도록 색싯집을 기웃거렸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
당신 생에는 없던 거드름과 악수한 종백부 손이 종일 다방레지 치마 속을 들락거렸고
군수보다 바쁜 이장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렸다.
개발(開發)은 개발도 땀나게 할 만큼
누구나에게 기회가 되었지만
정작 섭섭하게 땅문서를 넘긴 아버지는 끝내 머리를 싸매고 누웠고
팔자에도 없는 자책을 밤새 늘어놓았다.
팔 땅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만 오래도록 입을 닫고 살았다.
침묵은 영원히 돈이 되지 않았다.
ㅡ「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 전문
어쩌면 이런 개발의 후유증에 대한 시편은 '사실주의적'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근대적 개발의 후유증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발의 진행과정을 하나의 기이한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1연의 "울창했던 메타세쿼이아도 시름시름 사람들을 앓기 시작했다"는 표현은 부조리한 징후이면서 마을에 전개될 불행의 전조 같은 것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이 구절에서 자신을 이미 '이야기꾼'의 위치에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의 2연은 마을에 나타난 변화를 서술하고 있는데, 그 서술의 방식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치 않은 공기, 즉'분위기 암시', '부조리한 사건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는 정황이나 분위기가 병적일 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마치 부조리한 질병 혹은 돌림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이라는 표현은 하늘에 해가 두 개 뜨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패러디한 것으로 장차 벌어질 마을의 불행을 암시한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개발'이 일종의 역병처럼 '사람들을' 욕망에 홀리게 함으로써 마을을 부정이 탄 병적 장소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이 시에서 그려낸다.
물론 이런 형태의 시적 화자는 이성복, 이하석 등 80년대 후반 시인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진욱의 알레고리적 시풍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을 넘기는 시점에서 이진욱과 같은 알레고리스트로서의 시인의 등장은 자못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야기꾼의 면모와 절제된 감정을 통해 시를 압축해낼 줄 아는 이진욱의 시풍은 상당히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기 위해 단순히 스토리 차원의 변조만을 시도해서는 미학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성좌(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어쩌면 조각난 세상, 흩어진 기억을 한군데로 모아서 새로운 전체를 만드는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레고리는 단순한 사실들이나 과거의 기억만을 품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이야기꾼 혹은 시인의 미래적 관점이나 세계관이 동시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레고리적인 미학의 성패는 이 점에서 시인의 세계관이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는가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이진욱 시인의 장점은 이 점에서 세계관 혹은 잡동사니로 흩어진 세상의 폐허를 하나로 묶어내는'좋은 눈'에 있다고 판단된다. 알레고리스트의 가능성이란 어떤 식으로든 해체된 세상에 하나의 새로운 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 하나의 '역설'이거나 '지옥의 풍경'일지라도 말이다.
챙겨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이 많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지갑 속 부적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책상과 서랍장과 냉장고가 실려 나가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업무일지를 바람이 빠르게 읽고 지나갔다
깨알처럼 빼곡히 적힌 대출금 상환일과
수첩 사이에서 눈치만 살피던 각종 고지서들이
시, 위, 하, 듯,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입들의 시간에게 자갈을 물리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가벼웠고, 무거웠으며
시차에 적응하기엔 지구의 자전은 너무 빨랐다
융통한 시간의 기록들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
실수(失手)가 실소(失笑)를 부르는 날의 연속이었다
빈 가방 속에 빈 가망을 쑤셔 넣으며
주인 없는 슬픈 표정을 바닥에 고이 내려놓았다
챙겨야 할 것이 눈물뿐인 정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삶은 공평하다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창틀 봉숭아 화분에 눈물 몇 점 뿌려주고
시, 위, 하, 듯,
부도난 거래처 장부를 접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ㅡ「눈물을 두고 왔다」 전문
밑줄 친 구절처럼 "챙겨야 할 것이 눈물뿐인 정리는/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삶은 공평하다"라고 시인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런 담담함의 배후에는 '억울함'이 감추어져 있다. "시, 위, 하, 듯,"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것들은 각종 고지서, 부도난 거래처 장부들이다. 어쩌면 대출금 상환일, 고지서, 부도난 장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해진 사람들의 비유일 수도 있다. 억울해서 "시, 위, 하,듯,"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일은 챙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은 '마지막 지점'에 그들이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시인이 말하는 "챙겨야 할 것이 눈물뿐인 정리"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공평하다"라고 시인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적인 '위로'이다. 그리고 이런 위로가 '위로'일 뿐이라는 것은 시인도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 벌어지는 이 일은 나만의 불행은 아니다"는 위로는 모든 실패자, 자본주의의 희생자들 사이에 나눠지는 동병상련이자 '감정의 연대'이다. 그러나 이런 공평함의 영역 밖에는 여전히 "시, 위, 하, 듯," 항거해야 할 자본과 욕망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 시에서 선택한 '위로'로서의 눈물은 욕망의 구조 속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자신에 대한 조소를 포함하는 것이다. 눈물밖에 챙길 것이 없다는 말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징벌'을 스스로 인정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당연히' 챙길 것이 눈물뿐인 정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시, 위, 하, 듯"창밖으로 무엇인가를 날리는 행위는 시인의 양면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자기 조소와 위안' 그리고'세상의 일그러진 구조에 대한 항변'이 이 시에는 동시에 나타난다.
이 작품과 연관이 있는 아래 인용한 「빚」이라는 작품에서 시인은 '돈'을 둘러싼 욕망의 구조와 그 속에 편입하는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화자는 '빚'이 숙명처럼 사람을 옥죄이는 과정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시적 주제 면에서 보면, 이진욱의 시는 대부분 개발, 돈, 일확천금 등 자본주의적 욕망이 순진한 사람들을 홀리고,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강한 비판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등 농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순박한 삶이 '인생의 고통과 정직한 가치'를 보여준다면, 그런 존재들에 가해지는 가혹한 시련이나 고통은 돈, 자본, 세상의 급격한 변화 등에 의해서 비롯된다.
꽁무니에 붙어 졸졸 따라온 녀석
깊숙이 넣어도 고개를 쳐든다 곤혹스럽다 달래보고 도망가고 몸을 숨겨도 어느새 옆에 붙어 있다 가끔 밀치기도 하고 목을 조여 오기도 한다 발버둥 쳐도 떼어낼 수 없다 처음엔 주머니에 쏙 들어오던 녀석은 빠르게 몸집이 커졌다 통제가 안 됐다 항상 눈을 부라렸다 달래면 잠시 잠잠하다가 또 나타났다 폭력은 매우 합법적으로 이뤄졌고 공권력은 늘 멀리 있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내 곁에 앉아 서서히 목을 조였다 점점 권력이 되어갔다 녀석의 존재 이유다.
날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집이 늘어났다 어떤 사람은 옥상에서 떨어져 바닥이 되었고 물속으로 숨는 사람도 있었다 경계를 떠나는 이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장자리로 파고들었다 녀석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뒷골목에선 죽여 달라고 했고 실제 칼부림이 나기도 했다 녀석에 의해 지워지는 자들이 빠르게 늘었다 이유 없이 술에 취해 시비를 걸었다 매일 구인광고 신문을 뒤적였다 복권방에는 초점 잃은 눈동자들이 불을 켰다 그들의 철학은 한방이었다 해는 항상 짧았고 월말은 서둘러 찾아왔다
나도 점점 맷집이 좋아졌다
ㅡ「빚」 전문
위에 인용한 작품에서 '빚'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유혹하고 타락시키고 집요하게 달라붙어 노예로 삼는 '절대권력' 같은 것으로 그려진다. 돈이 아니라 '빚'이라고 하는 점에서 이 권력은 '합법'이다. 2연에 묘사된 장면은 '지금, 여기'의 현실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의 철학은 한방이었다 해는 항상 짧았고 월말은 서둘러 찾아왔다"는 구절이 '우리'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면, 우리는 이미 '빚'이라는 권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이, 왜, 끔찍하거나 문제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나도 점점 맷집이 좋아졌다"는 구절처럼, 우리 모두 '맷집'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빚'에 익숙해짐으로써, 삶이 어떻게 황폐하게 변하는가를 이 시는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빚'의 뒤편에 어떤 권력과 폭력이 존재하는지를 이 시는 폭로한다.
이 시집에서 1부와 2부의 시편이 자본주의적인 만화경에 의해 낯설게 보이는 세상을 담고 있다면, 3부와 4부는 토속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인의 언어적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대조는 시인의 비판적인 시선과 동시에 내향적인 풍부한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처럼 1, 2부의 다소 풍자적이고 부조리한 알레고리가 여전히 언어적인 탄력성이나 시적 감수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이진욱의 서정성의 탁월함과 언어적인 심미성 때문이다.
멸치젓을 담급니다
소금을 한 줌씩 뿌리며
항아리 속으로 당신도 반 정도 담가봅니다
개중 한 마리 건져 맛을 보며
다른 건 잘 몰라도
젓갈은 천일염으로 꾹꾹 눌러야 한다고 중얼거립니다
다른 건 몰라도
소금은 넉넉히 버무려야 한다고,
밀봉도 야무지게 해야 한다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가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건 모른다는 건
비로소 채비가 되었다는 것
그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깊은 말
영님*해야 한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화석이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얼마나 만졌는지 지문에 피어난 소금꽃
그러고도 사람은 적당히 싱거워야 한다는 당신
그 앞에선 알았다는 말조차 쉬 할 수 없습니다
간이 배도록 여태 만져준 손
발효된다는 것은 안으로 간이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영님: 똑똑히, 야무지게의 전라도 사투리.
ㅡ「다른 건 잘 몰라도」 전문
위 시의 밑줄 친 부분은 시인의 언어적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것과 시적 진정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인은 "다른 건 모른다"라는 말을 통해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진정성을 이 시에서 자신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이 말은 표현상 '완곡한' 고집에 해당된다. "다른 건 모른다"는 겸손이 오히려 "이것만은 확실히 안다"를 강조하기 위해 쓰임으로써, 이 말이 옹호하는 가치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시인이 이 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양보해도 절대로 내어줄 수 없는 어떤 가치,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채비가 되었다는 것/그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깊은 말"이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시인이 구축하고 만드는 시적인 세계는 기본적으로 역설에 바탕을 둔다. '져주지만 지는 것이 아닌 것', '물러서지만 물러서는 것이 아닌 것', 그런 지혜와 경지에 대한 지향이 이 시에 나타난다.
이진욱 시인의 서정은 이 점에서 단순히 미적인 형태만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동행」, 「시작(詩作)」, 「뱀」 등의 짧은 시들을 보면, 언어적인 압축도 뛰어나지만 그 짧은 시 구절들이 함축하고 있는 알레고리 등이 탁월하다.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오던/산벚나무가 어느 날/내 가슴속으로 성큼 뛰어 들어왔다//그때부터/산벚나무와 두근거리는 사이가 되었다"(「시작(詩作)」 전문)에서 보듯이, 사물(산벚나무)과 시인의 '교감'을 '두근거림'으로 나타내는 이 시는 표현도 좋지만, 시적 교감이 구원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비전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봉숭아가 쓴 詩」, 「꽃낙지」, 「봄맛에 데다」 등의 작품은 시인의 체험적 지혜를 시적으로 승화해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체험을 통한 세계의 재구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열망을 언제나 포함한다. 최근 한국시의 다양성은 이런 재구성될 세계에 대한 비전을 생산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진욱은 이런 다양성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지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고기대를 받아 마땅한 시인이다.
그가 바라보는 기원은 언제나 육체 속에 각인된 삶과 되풀이 반복된 기억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진다. 그가 시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맛이 무엇이 될지,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어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이미 '뛰어난 시적 이야기꾼'이며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꾸준히 모색해 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란, 이미 오래전부터 시인들의 고집과 천형을 나타내던 말이 아니던가.
목차
목차
제1부
프로골퍼 13
쌍화차에 보름달이 두 개나 뜨던 날 14
황천 간다 16
눈물을 두고 왔다 18
칡꽃 20
곡우 21
빚 22
민들레 보살 24
산댁 25
송곳이 운다 26
박하사탕 28
다른 건 잘 몰라도 30
데프콘 32
동행 34
제2부
시작(詩作) 37
드라이버의 꿈 38
Blue moon 40
각색을 하다 42
희곡을 기다리다 44
뱀 46
11월 47
그 사람의 모노드라마 48
현실주의 한 편 50
피카디리 52
모항 54
마누라 氏 56
면역력 57
슬픈 사람이 걸어갔다 58
돌멩이 60
제3부
똬리 63
각주 64
검은 콩 66
씨앗의 정체 68
멸치가 왔다 70
마수 71
무정 72
전별금 73
독을 만지다 74
보리숭어 76
마중 78
고구마 순에 마음이 꺾이다 79
삼재 80
오늘의 사주(四柱) 82
제4부
시래기 85
봉숭아가 쓴 詩 86
저수지 물이 울던 날 88
고추꽃 피던 날 89
봄맛에 데다 90
눈물을 줍다 92
아버지 94
보다 먼 답십리 95
꽃낙지 96
고욤나무 옛집 98
명자 100
명자 2 101
늙은 목수의 꿈 102
뱀딸기 104
해설 다른 것은 몰라도, 시는, 시인은 105
/김춘식(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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