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두(문학의전당 신작시집)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시의 본질이라 정의한다면, 신광휴 시인의 이번 첫 시집 『마지막 화두』는 아픔을 통과해오며 시인이 담금질한 눈물과 회복 과정이 금강석처럼 맺혀 있는 결정체이다. 지극한 가족사의 고통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듯 함묵에 가까운 방식으로 내놓는 시인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멈칫거리지만 과장하지 않는 시인의 고백은 어느새 특정한 개인의 아픈 자서(自敍)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삶과 가족 문제, 사회와의 관계 문제로 읽히며 정서적 파고를 높여간다. 시인이 유독 천착하는 ‘한’이나 ‘허수아비’ 등은 통념적인 시적 대상이 아니다. 시집 속 아로새겨진 시인의 맑은 애통과 함께하면서, 그것이 유년의 불가항력적 일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 소년이 자신의 무능과 나약에 대해 일생토록 간직해 온 참회의 표현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단순히 지난날에 대한 무거운 소급이 결코 아니다. 시간을 헤아리고 삶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따뜻한 위무와 치유에 이르는 시적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한층 더 맑고 깊은 근원적 시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가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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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 편편마다 유난히 어둡고 암울했던 유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기막힌 삶이었다.
참새떼 날아와
알곡 쪼아 먹네
우리 아버지 쪼아 먹고
우리 어머니 쪼아 먹네
나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서서
바라보고 있네
?「허수아비 1」 전문
참새떼가 날아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로 눈앞에서 쪼아 먹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그냥 서서 바라보고" 있다. 형벌 중에 가장 혹독한 형벌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가족이 나쁜 일을 당하는 것이라 하는데, 어린 화자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쪼아 먹히고 있는 것이다. 신광휴 시인은 「허수아비」라는 제목의 시가 많다. 보통 '허수아비'는 무엇을 '지키는 자'보다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자'로 읽힌다. 이 시에서도 참새떼가 알곡,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쪼아 먹는데도, 화자는 망연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다. 왜 그랬을까? 대항하기에는 "참새떼"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인은 새 중에서 가장 작은 참새를 큰 존재로 묘사했다. 역설이다. 형체는 작지만, 뭔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등 뒤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또 시인은 자신을 허수아비 같은 바보로 만드는데, 당시 자신의 무능이나 나약함을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로 명칭을 바뀌는 그해
국대안 사건
아버지가
갑자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949년 4월 17일
잊을 수 없는 그날
아직도 가슴에 인두로 지지고 있는
그날
?「그날」 부분
여기서 "아직도"와 "갑자기"라는 부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시인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왜 끌려갔으며 죽었는지 어린 화자는 모른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이게 대체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서울대로 명칭을 바꾸는데 사람이 왜 죽어야하느냐?" "아버지가 대학 학도호국단장인 게 죄냐?" "이런 놈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 등 악다구니로 대들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화자는 아버지라는 큰 산이 코앞에서 무너지는데도, "갑자기"라는 단어 하나를 내놓았다. "너!"가 아닌 "나!"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불빛하나 없는 어두운 세상, 그 안에 도사린 것들이 무엇인지 몰라 더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화자는 그 한 단어에 모든 것을 밀어 넣어놓고 입을 닫아버렸다. 그것이 풀어내지 못한 한(恨)으로 남아 "아직도" 가슴을 "인두로 지지고 있는" 것이다.
미님이네 옆집 아저씨 심부름으로
내가 전한 편지 한 통
도무지 영문 모를 일
편지 받은 엄마의 긴 여행 길
서대문형무소
…(중략)…
엄마는 언제 돌아올까?
멀기만 한 서대문 여행
?「서대문 편지」 전문
소년이 갖다 준 편지를 받고 엄마가 떠났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편지를 받고 행복해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홀연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처럼, 유년의 시인도 저물도록 '어둡고 무서워,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훌쩍 울었을 것이다. 신광휴 시인의 유년은 어두웠다.
비낀 해가 들어 있는 호수 속에
볼이 발그레한 소년이 있다
별 보고 나가면 이맘때쯤 들어오던
찹쌀떡 통
구두 통
아이스께끼 통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통통통 뛰어다니던
그 소년 뒤로
하늘 높이 오르는 연
더 높이 올리려고
이리저리 통통통 뛰는 아이들
다른 아이들의 연에 실려
오늘에야 비로소
하늘로 오르는 소년
?「자화상」 전문
다른 아이들이 화롯불에 군고구마 구워먹고 삼삼오오 딱지치기하거나 멱 감고 송사리를 잡을 때, 소년은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고무신 속 송사리 수를 셀 때 소년은 동전의 수를 세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뛰어다닐 때 소년은 갖은 통들을 메고 이 사람 저 사람,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은 아니다. 마지막 결구에서 시인은 동경의 세계인 "하늘로 오"른다. 유년 시절 그리워했던 그곳에 "오늘에야 비로소" 오르게 된 것이다.
시끄러웠던 말 말 말 뒤로하고
오대산에 오르네
상원사 동종
문수사 동자좌상
비로봉
적멸보궁
아무 말도 해주지 않네
도대체 말이 없네
알겠네
고요한 말
고요한 생각
고요한 몸가짐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이네
?「마지막 화두」전문
사람은 모든 걸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세상이 바로 보인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이제 시인도 이만큼 시로 풀어내었다. 그 길이 이제는"꽃길/숲길/낙엽길/눈길"이 되었다고, 그래서 "계절 계절"마다 "환한 길"(「개웅산 길」)이 되었다고 했다. 「봄봄」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겹친 봄을 말했다.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이 인생의 최고점인 봄인 것이다. 신광휴 시인의 첫 시집 『마지막 화두』 또한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 따뜻한 가슴이 되는 좋은 시집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마지막 화두 13
봄나들이 14
차이 15
몽우리 진 꽃들이 못 피는 이유 16
돌 틈에 핀 제비꽃 당신과 17
넝마주이 18
시 20
무아지경 21
자화상 22
개웅산 길 24
보물찾기 25
가족 모임 26
구로문화원 27
밝은 길 28
제2부
허수아비 1 31
허수아비 2 32
허수아비 3 34
허수아비 4 35
허수아비 5 36
허수아비 6 37
허수아비 7 38
허수아비 8 39
허수아비 9 40
허수아비 10 41
장미의 미소 42
은혜 44
크게 외친다 45
오늘도 파이팅 46
제3부
왜 진작 베풀지 못했을까 49
그날 50
서대문 편지 52
내 동생 복희 53
엄마의 재산 54
쌀 다섯 가마 56
우리 누나 58
이모 60
내 유년의 유산 62
재당숙 신의구 64
황홀하게 저물기 65
산수유 붉은 열매 66
봄은 오는가 68
봄봄 70
제4부
그 여인 73
사기막골 74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75
신명난 놀이꾼들 76
엄마가 그리운 날에는 78
오늘 79
오디나무 숲의 비밀 80
오늘을 산다 82
제발 84
가을 문턱에서 86
장미의 계절 1 87
장미의 계절 2 88
추모 90
배웅 92
해설 | 불휘기픈남간바람에아니뮐새 93_손옥자(시인)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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