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시인동네 시인선 151)
박정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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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혹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기
1995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한 박정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51로 출간되었다. 시집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박정구 시인에게 ‘그리움’은 시적 발화의 근간이자 생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현재의 리비도(무의식)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애의 처연한 다짐이자,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한 박정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오늘은 제가 그리움을 빌려야겠습니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51로 출간되었다. 시집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박정구 시인에게 ‘그리움’은 시적 발화의 근간이자 생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현재의 리비도(무의식)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애의 처연한 다짐이자,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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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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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이 시집의 최종 원고를 열면서 나는 먼저 '시인의 말'에 주목했다. 시인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몇 번의 여름이 가고" 시인의 어머니도 "단풍나무 숲으로 떠났다." "미련 가질 여유조차 없이" 시인은 "고향까지 팔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미치도록 그리워지는 것까지 참고 견디는 일만 남았다."는 그의 전언을 읽으며, 나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피조물의 운명에 대해 다시 궁구한다. 삶은 수많은 배리(背理)의 연속이고, '배리'란, 말도 안 되는 것, 용납하기 어려운 모순을 의미하므로, 그것을 견딘다는 것은 단지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깊은 비극을 참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피할 수 없이 사선(射線)으로 내리쳐진 운명의 칼자국을 늘 대면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존재가 겪어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는 보편적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겪는 모든 개체의 삶을 녹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재를 존재'론' 상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Dasein)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시간은 모든 존재 이해와 모든 존재 의미의 지평"이다. 존재를 시간성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마음 씀(Sorge)?죽음의 장엄한 파노라마 안에서 존재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별 혹은 죽음 같은 것은 오로지 시간의 방정식이 존재에 적용될 때에만 발생한다. '시인의 말'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시집에서 박정구 시인의 서사를 가동시키는 것은, 주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와의 사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싼, 사라져서 그리운 것들에 대한 추억이다. 사별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박정구 시인은 이 복구 불가능한 사건을 중심으로 사라진 것들의 다양한 스펨트럼을 그려낸다. 그 그림에는 그리움의 정동(情動)이 수묵화처럼 번져 있다. 박정구 시인에게 있어서 사라진 과거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재의 시인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현존재 자신의 과거는 현존재의 뒤에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존재에 선행한다." 사라진 과거는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의 정념으로 존재 앞에서 존재를 이끈다.
자작나무 숲에 어머니를 눕히고 돌아서는데 노을이 옷깃을 잡아당긴다
고개를 돌리자
틀니 사이에 잘 익은 석류 알 같은 미소보다 이슬방울이 먼저 툭, 떨어지고 있다
- 「눈물」 전문
"눈물"은 피조물인 존재가 감당할 수 없거나 견딜 수 없는 순간에 흘리는 슬픈 기표이다. 이 눈물 앞에서 그 누구도 생물학적 노화와 그로 인한 죽음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 없다. 과학이 존재를 규정하지 않는다. 사랑?주체(lovesubject)는 생물학적 죽음조차도 '부조리(the absurd)'로 읽는다. "노을이 옷깃을" 잡아당겨 "고개를 돌"리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랑?주체의 안타까운 몸짓이다. 화자는 "틀니 사이에 잘 익은 석류 알 같은 미소"를 잊지 못한다. 생물학적 죽음과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화자의 정념 사이의 모순을 감당해야 하는 자는 오로지 화자밖에 없다. 냉정한 우주는 생물학의 기계를 차가운 손으로 계속 돌릴 뿐이다.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미치도록 그리운 것"을 "참고 견디는 일"('시인의 말')밖에 없다.
-오민석(시인·단국대 교수)
시인의 산문
신안군 도초면 이곡리, 빚보증으로 차압 들어오던 날 할머니와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아버지가 소싯적에 심었다는 통싯간 귀퉁이 배롱나무도 한여름 무섭게 꽃을 피웠다.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던 칠월, 거센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섬과 뭍을 오갔다. 행여 빚진 것 있나 생각해보세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던 아버지는 백 일을 넘기지 못하고 배롱나무 꽃 한 섬을 지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연천군 미산면 우정리, 아버지 만나러 간다. 아버지 무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 건너 고향 집을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서 머물다 가는 산 그림자, 오늘도 텅 빈 고향 집에 들렀겠다. 저 홀로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 가지에도 붉은 그리움 그렁그렁 맺혔겠다.
이 시집의 최종 원고를 열면서 나는 먼저 '시인의 말'에 주목했다. 시인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몇 번의 여름이 가고" 시인의 어머니도 "단풍나무 숲으로 떠났다." "미련 가질 여유조차 없이" 시인은 "고향까지 팔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미치도록 그리워지는 것까지 참고 견디는 일만 남았다."는 그의 전언을 읽으며, 나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피조물의 운명에 대해 다시 궁구한다. 삶은 수많은 배리(背理)의 연속이고, '배리'란, 말도 안 되는 것, 용납하기 어려운 모순을 의미하므로, 그것을 견딘다는 것은 단지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깊은 비극을 참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피할 수 없이 사선(射線)으로 내리쳐진 운명의 칼자국을 늘 대면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존재가 겪어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는 보편적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겪는 모든 개체의 삶을 녹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재를 존재'론' 상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Dasein)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시간은 모든 존재 이해와 모든 존재 의미의 지평"이다. 존재를 시간성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마음 씀(Sorge)?죽음의 장엄한 파노라마 안에서 존재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별 혹은 죽음 같은 것은 오로지 시간의 방정식이 존재에 적용될 때에만 발생한다. '시인의 말'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시집에서 박정구 시인의 서사를 가동시키는 것은, 주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와의 사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싼, 사라져서 그리운 것들에 대한 추억이다. 사별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박정구 시인은 이 복구 불가능한 사건을 중심으로 사라진 것들의 다양한 스펨트럼을 그려낸다. 그 그림에는 그리움의 정동(情動)이 수묵화처럼 번져 있다. 박정구 시인에게 있어서 사라진 과거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재의 시인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현존재 자신의 과거는 현존재의 뒤에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존재에 선행한다." 사라진 과거는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의 정념으로 존재 앞에서 존재를 이끈다.
자작나무 숲에 어머니를 눕히고 돌아서는데 노을이 옷깃을 잡아당긴다
고개를 돌리자
틀니 사이에 잘 익은 석류 알 같은 미소보다 이슬방울이 먼저 툭, 떨어지고 있다
- 「눈물」 전문
"눈물"은 피조물인 존재가 감당할 수 없거나 견딜 수 없는 순간에 흘리는 슬픈 기표이다. 이 눈물 앞에서 그 누구도 생물학적 노화와 그로 인한 죽음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 없다. 과학이 존재를 규정하지 않는다. 사랑?주체(lovesubject)는 생물학적 죽음조차도 '부조리(the absurd)'로 읽는다. "노을이 옷깃을" 잡아당겨 "고개를 돌"리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랑?주체의 안타까운 몸짓이다. 화자는 "틀니 사이에 잘 익은 석류 알 같은 미소"를 잊지 못한다. 생물학적 죽음과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화자의 정념 사이의 모순을 감당해야 하는 자는 오로지 화자밖에 없다. 냉정한 우주는 생물학의 기계를 차가운 손으로 계속 돌릴 뿐이다.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미치도록 그리운 것"을 "참고 견디는 일"('시인의 말')밖에 없다.
-오민석(시인·단국대 교수)
시인의 산문
신안군 도초면 이곡리, 빚보증으로 차압 들어오던 날 할머니와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아버지가 소싯적에 심었다는 통싯간 귀퉁이 배롱나무도 한여름 무섭게 꽃을 피웠다.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던 칠월, 거센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섬과 뭍을 오갔다. 행여 빚진 것 있나 생각해보세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던 아버지는 백 일을 넘기지 못하고 배롱나무 꽃 한 섬을 지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연천군 미산면 우정리, 아버지 만나러 간다. 아버지 무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 건너 고향 집을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서 머물다 가는 산 그림자, 오늘도 텅 빈 고향 집에 들렀겠다. 저 홀로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 가지에도 붉은 그리움 그렁그렁 맺혔겠다.
목차
목차
제1부
내 마음의 첫ㆍ 13
한 생이 젖은 풀잎처럼 눕혀질 때ㆍ 14
분리수거 ㆍ 16
빈말 ㆍ 17
나도 이름 병ㆍ 18
공존 ㆍ 20
궁합 ㆍ 21
버림이라는 것ㆍ 22
비설거지 ㆍ 24
시래기 ㆍ 25
주인 없는 방ㆍ 26
만년필 ㆍ 28
밑창 ㆍ 30
파종 ㆍ 31
羊의 마감ㆍ 32
혼자 먹는 밥상ㆍ 34
제2부
장ㆍ 37
새해 수첩ㆍ 38
날궂이 ㆍ 40
따뜻한 등ㆍ 41
치열함에 대하여ㆍ 42
민들레의 지혜ㆍ 44
벼꽃 ㆍ 45
여뀌바늘 ㆍ 46
저수지에 빠진 달ㆍ 48
사랑니 ㆍ 49
그런 사람이 그립다ㆍ 50
뒤를 돌아보니ㆍ 52
말나리꽃 ㆍ 54
칡넝쿨 ㆍ 55
골목길 이발관ㆍ 56
옥잠화 ㆍ 58
제3부
빚ㆍ 61
아비의 손ㆍ 62
손가락을 꼽았다ㆍ 64
귀뚜라미 ㆍ 65
누군가 고향을 서리해 갔다ㆍ 66
아련한 꽃ㆍ 68
망초꽃 ㆍ 69
짚신나물 ㆍ 70
호상(好喪) ㆍ 72
눈물 ㆍ 73
땅 따먹기ㆍ 74
매미 ㆍ 76
누이에게 ㆍ 77
부자(父子) ㆍ 78
지는 꽃이 피는 꽃만 하랴ㆍ 80
제4부
소리로 걷는 야간 산행ㆍ 83
보조라는 말ㆍ 84
참당귀꽃 ㆍ 86
하눌타리 ㆍ 87
쥐똥나무 ㆍ 88
소록도 ㆍ 90
흔들리는 날ㆍ 91
걸림돌 ㆍ 92
풍선덩굴 ㆍ 94
을왕리 ㆍ 95
다순구미 마을ㆍ 96
겨울 바다ㆍ 98
지장산 계곡에서ㆍ 99
너를 기다리며ㆍ 100
옛사랑 ㆍ 101
빙어 ㆍ 102
해설
오민석(시인·단국대 교수) ㆍ 103
내 마음의 첫ㆍ 13
한 생이 젖은 풀잎처럼 눕혀질 때ㆍ 14
분리수거 ㆍ 16
빈말 ㆍ 17
나도 이름 병ㆍ 18
공존 ㆍ 20
궁합 ㆍ 21
버림이라는 것ㆍ 22
비설거지 ㆍ 24
시래기 ㆍ 25
주인 없는 방ㆍ 26
만년필 ㆍ 28
밑창 ㆍ 30
파종 ㆍ 31
羊의 마감ㆍ 32
혼자 먹는 밥상ㆍ 34
제2부
장ㆍ 37
새해 수첩ㆍ 38
날궂이 ㆍ 40
따뜻한 등ㆍ 41
치열함에 대하여ㆍ 42
민들레의 지혜ㆍ 44
벼꽃 ㆍ 45
여뀌바늘 ㆍ 46
저수지에 빠진 달ㆍ 48
사랑니 ㆍ 49
그런 사람이 그립다ㆍ 50
뒤를 돌아보니ㆍ 52
말나리꽃 ㆍ 54
칡넝쿨 ㆍ 55
골목길 이발관ㆍ 56
옥잠화 ㆍ 58
제3부
빚ㆍ 61
아비의 손ㆍ 62
손가락을 꼽았다ㆍ 64
귀뚜라미 ㆍ 65
누군가 고향을 서리해 갔다ㆍ 66
아련한 꽃ㆍ 68
망초꽃 ㆍ 69
짚신나물 ㆍ 70
호상(好喪) ㆍ 72
눈물 ㆍ 73
땅 따먹기ㆍ 74
매미 ㆍ 76
누이에게 ㆍ 77
부자(父子) ㆍ 78
지는 꽃이 피는 꽃만 하랴ㆍ 80
제4부
소리로 걷는 야간 산행ㆍ 83
보조라는 말ㆍ 84
참당귀꽃 ㆍ 86
하눌타리 ㆍ 87
쥐똥나무 ㆍ 88
소록도 ㆍ 90
흔들리는 날ㆍ 91
걸림돌 ㆍ 92
풍선덩굴 ㆍ 94
을왕리 ㆍ 95
다순구미 마을ㆍ 96
겨울 바다ㆍ 98
지장산 계곡에서ㆍ 99
너를 기다리며ㆍ 100
옛사랑 ㆍ 101
빙어 ㆍ 102
해설
오민석(시인·단국대 교수) ㆍ 103
저자
저자
박정구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995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도는 섬』 『섬 같은 산이 되어』 『아내의 섬』, 산문집 『설악에서 한라까지』 『백두가 한라에게』 『푸성귀 발전소』 등이 있다. 〈한하운문학상〉 본상, 〈경기문학상〉 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고양예총 회장, 원당신협 이사장,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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