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시인동네 시인선 185)
박윤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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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자유, 생산의 시학
2015년 《문예바다》로 등단한 박윤근 시인의 첫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가 시인동네 시인선 185로 출간되었다. 박윤근 시인이 펼쳐놓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상상력의 천국이고 자유의 유토피아임을 알 수 있다. 박윤근 시인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초현실적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그려내는 화려한 그림을 보려면, 독자들도 새와 별이 되어 대척적인 공간들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2015년 《문예바다》로 등단한 박윤근 시인의 첫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가 시인동네 시인선 185로 출간되었다. 박윤근 시인이 펼쳐놓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상상력의 천국이고 자유의 유토피아임을 알 수 있다. 박윤근 시인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초현실적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그려내는 화려한 그림을 보려면, 독자들도 새와 별이 되어 대척적인 공간들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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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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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엿보기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리더였던 앙드레 브르통(A. Breton)에게 아나톨 프랑스(A. France)와 같은 사실주의자는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서 사실주의를 "순순하고 단순한 보고 문체"의 문학이라 적시하고, "일체의 지성적, 정신적 비약에 자못 적대적인" "개떼의 삶"이라고 야유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볼 때, 가장 한심한 예술은 현실의 외양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재현'의 예술이었다. 그들이 볼 때 예술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창조 혹은 생산이어야 했다. 브르통이 볼 때 예술은 "정신의 가장 위대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지 현실의 실증적 재현이나 메시지의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자유라는 낱말 하나가 아직도 나를 열광시키는 모든 것"이라 고백했으며, "오직 상상력만 있으면 나는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
박윤근의 첫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는 이런 점에서 상상력의 천국이고 자유의 유토피아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순하고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거부하고, 현실을 전혀 다른 언어로 재가공하는 것이다. 그는 분방한 상상력으로 범용한 세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상상력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 사물의 실증적 재현에 익숙한 자들에게 그의 시는 잘 읽히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물꼬를 자유롭게 열어놓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고향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샤갈(M. Chagall)의 그림을 실증적 시선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나귀와 물고기가 하늘을 날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풍경을 만드는 것도 상상력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상상력이다. 이 시집은 자유로운 연상으로 일상의 인과성을 파괴한다. 시인의 언어적 붓칠이 시작될 때, 낡은 관습의 세계가 무너진다. 그러나 상상력이 있다면 독자는 그 굉음 속에서 부활하는 새의 날갯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불에 타는 죽은 나무 위로 붉은 화염의 새가 날 듯, 박윤근의 언어는 낡은 재현의 죽음 위에서 날리는 꽃이다.
종이는 모두 둥근 각의 성채를 입고 있다
날카롭지만
달콤한 수액을 가진 파인애플처럼,
가령, 책상 위 저 종이를
가로와 세로 반 대각선으로 수만 번 곱접으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물방울을 볼 수 있다
동화를 들려주는 별들과
풀잎 끝 풍경을 모을 수도,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접는 이의 의도에 따라
달리 접히거나 생략되는 순간
멍든 사과처럼 흠집이 생기거나 구겨진 채 버려진다
어둠 속, 긴 포물선을 그리며
지구를 스쳐 지나는 저 유성도
실은 우주의 뭇별들과 각을 이루기 위해
지상 끝 저 모서리로 내리는 것이다
저녁별이 가득 앉은 과수원,
또 펀펀하게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지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문장의 한쪽 각이 또 불안하다
막 계곡 틈 사이로
사과 한 알 떨어지는 참이다
- 「각」 전문
시인은 (원할 때면) 아무 때나 평면을 구체(球體)로 만든다. "둥근 각"이라는 형용모순은 상상력의 왕자에게는 거짓이 아니다. 평면의 종이는 둥근 "파인애플"이 될 수도 있고, 잘 "곱접으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물방울", 혹은 별을 바라보는 풀잎의 풍경이 될 수도 있다. 상상력의 궤도에 따라 종이는 "멍든 사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종이를 자유자재로 가공하는 상상력이 한바탕 지나간 자리에 "과수원"이 생기고 거기에 "저녁별"이 내려앉는다. 시인의 공감각이 성급한 단맛을 느낄 때,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이 시는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계를 재가공하는지, 그 독특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글이 써지고 문장이 이어지는 동안 시인은 메시지의 전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종이가 접히면서 주름을 만들듯이 문장들이 마주쳐 둥근 각을 이룬다. 모든 만남은 "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각과 각이 만나서 하나의 세계, 즉 "둥근 각"이 이루어진다. 각들의 만남은 각의 날카로움을 어르고 달랜다. 각이 둥글어지는 것은, 다른 각을 만날 때이다. "문장의 한쪽 각"이 "불안"할 때, 그 각은 다른 각이 필요하며, 다른 각을 만나 둥글어질 때 그 각의 불안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 쓰기란 평면을 접어 구체를 만들 듯, 불안한 상상의 각들을 만나게 해서 둥근 각을 만드는 것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 시인의 산문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희망이든 우울이던 바둑알처럼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불안한 온도와 습도가 손끝에 잡혔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마음이 먼저 보낸 풍경은 이미 마을 곳곳에 끼워져 있다. 오래전 집에서 내려간 거위들은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양에서 음으로 천칭 축이 기울며 그곳 공기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본 정상은 내가 사는 도로 위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리더였던 앙드레 브르통(A. Breton)에게 아나톨 프랑스(A. France)와 같은 사실주의자는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서 사실주의를 "순순하고 단순한 보고 문체"의 문학이라 적시하고, "일체의 지성적, 정신적 비약에 자못 적대적인" "개떼의 삶"이라고 야유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볼 때, 가장 한심한 예술은 현실의 외양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재현'의 예술이었다. 그들이 볼 때 예술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창조 혹은 생산이어야 했다. 브르통이 볼 때 예술은 "정신의 가장 위대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지 현실의 실증적 재현이나 메시지의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자유라는 낱말 하나가 아직도 나를 열광시키는 모든 것"이라 고백했으며, "오직 상상력만 있으면 나는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
박윤근의 첫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는 이런 점에서 상상력의 천국이고 자유의 유토피아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순하고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거부하고, 현실을 전혀 다른 언어로 재가공하는 것이다. 그는 분방한 상상력으로 범용한 세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상상력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 사물의 실증적 재현에 익숙한 자들에게 그의 시는 잘 읽히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물꼬를 자유롭게 열어놓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고향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샤갈(M. Chagall)의 그림을 실증적 시선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나귀와 물고기가 하늘을 날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풍경을 만드는 것도 상상력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상상력이다. 이 시집은 자유로운 연상으로 일상의 인과성을 파괴한다. 시인의 언어적 붓칠이 시작될 때, 낡은 관습의 세계가 무너진다. 그러나 상상력이 있다면 독자는 그 굉음 속에서 부활하는 새의 날갯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불에 타는 죽은 나무 위로 붉은 화염의 새가 날 듯, 박윤근의 언어는 낡은 재현의 죽음 위에서 날리는 꽃이다.
종이는 모두 둥근 각의 성채를 입고 있다
날카롭지만
달콤한 수액을 가진 파인애플처럼,
가령, 책상 위 저 종이를
가로와 세로 반 대각선으로 수만 번 곱접으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물방울을 볼 수 있다
동화를 들려주는 별들과
풀잎 끝 풍경을 모을 수도,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접는 이의 의도에 따라
달리 접히거나 생략되는 순간
멍든 사과처럼 흠집이 생기거나 구겨진 채 버려진다
어둠 속, 긴 포물선을 그리며
지구를 스쳐 지나는 저 유성도
실은 우주의 뭇별들과 각을 이루기 위해
지상 끝 저 모서리로 내리는 것이다
저녁별이 가득 앉은 과수원,
또 펀펀하게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지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문장의 한쪽 각이 또 불안하다
막 계곡 틈 사이로
사과 한 알 떨어지는 참이다
- 「각」 전문
시인은 (원할 때면) 아무 때나 평면을 구체(球體)로 만든다. "둥근 각"이라는 형용모순은 상상력의 왕자에게는 거짓이 아니다. 평면의 종이는 둥근 "파인애플"이 될 수도 있고, 잘 "곱접으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물방울", 혹은 별을 바라보는 풀잎의 풍경이 될 수도 있다. 상상력의 궤도에 따라 종이는 "멍든 사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종이를 자유자재로 가공하는 상상력이 한바탕 지나간 자리에 "과수원"이 생기고 거기에 "저녁별"이 내려앉는다. 시인의 공감각이 성급한 단맛을 느낄 때,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이 시는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계를 재가공하는지, 그 독특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글이 써지고 문장이 이어지는 동안 시인은 메시지의 전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종이가 접히면서 주름을 만들듯이 문장들이 마주쳐 둥근 각을 이룬다. 모든 만남은 "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각과 각이 만나서 하나의 세계, 즉 "둥근 각"이 이루어진다. 각들의 만남은 각의 날카로움을 어르고 달랜다. 각이 둥글어지는 것은, 다른 각을 만날 때이다. "문장의 한쪽 각"이 "불안"할 때, 그 각은 다른 각이 필요하며, 다른 각을 만나 둥글어질 때 그 각의 불안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 쓰기란 평면을 접어 구체를 만들 듯, 불안한 상상의 각들을 만나게 해서 둥근 각을 만드는 것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 시인의 산문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희망이든 우울이던 바둑알처럼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불안한 온도와 습도가 손끝에 잡혔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마음이 먼저 보낸 풍경은 이미 마을 곳곳에 끼워져 있다. 오래전 집에서 내려간 거위들은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양에서 음으로 천칭 축이 기울며 그곳 공기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본 정상은 내가 사는 도로 위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목차
목차
제1부
달빛 고삐ㆍ13/시조새ㆍ14/아쿠아맨ㆍ16/허방ㆍ18/도마ㆍ20/새 발의 문장ㆍ22/텃밭ㆍ23/삐비꽃ㆍ24/달빛 감는 고양이ㆍ26/스텝ㆍ28/각ㆍ30/쇄빙선ㆍ32/안녕, 피시맨ㆍ34/귀제비 집ㆍ36
제2부
사진ㆍ39/85호 크레인 나무ㆍ40/시간과 둥근 모자ㆍ42/칸나ㆍ45/감자꽃이 피는 것은ㆍ46/미늘ㆍ48/습(習)의 통로ㆍ50/새의 입술은ㆍ52/안단테ㆍ54/뾰족 부리 늙은 새ㆍ55/흠집 난 안경ㆍ56/발자국 무덤ㆍ58/거위벌레ㆍ60/제빵 골목ㆍ62
제3부
빵 위에 쓰는 편지ㆍ65/거울 그림자ㆍ66/말티즈와 아내ㆍ68/달빛 족속ㆍ70/나무 이름 저장소ㆍ72/물방울 퍼즐ㆍ73/바다의 어원ㆍ74/청과물 16호ㆍ76/비등점에 대해ㆍ78/흰 섬 하나 그리며ㆍ80/여름의 끝ㆍ81/구피ㆍ82/구천동 능금ㆍ84/쌀의 무게ㆍ86/그녀의 소금 레시피ㆍ88
제4부
어둠 한 채ㆍ91/한때 장미ㆍ92/장미와 태양ㆍ94/날아라, 골목ㆍ96/자전ㆍ98/단팥빵과 바게트ㆍ100/협궤열차ㆍ102/등(腰)의 감정ㆍ104/자꾸만 별이 생긴다ㆍ106/섬ㆍ108/1200령 사과ㆍ110/신 황조가ㆍ112/토르소ㆍ114/피아노포르테ㆍ116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ㆍ117
달빛 고삐ㆍ13/시조새ㆍ14/아쿠아맨ㆍ16/허방ㆍ18/도마ㆍ20/새 발의 문장ㆍ22/텃밭ㆍ23/삐비꽃ㆍ24/달빛 감는 고양이ㆍ26/스텝ㆍ28/각ㆍ30/쇄빙선ㆍ32/안녕, 피시맨ㆍ34/귀제비 집ㆍ36
제2부
사진ㆍ39/85호 크레인 나무ㆍ40/시간과 둥근 모자ㆍ42/칸나ㆍ45/감자꽃이 피는 것은ㆍ46/미늘ㆍ48/습(習)의 통로ㆍ50/새의 입술은ㆍ52/안단테ㆍ54/뾰족 부리 늙은 새ㆍ55/흠집 난 안경ㆍ56/발자국 무덤ㆍ58/거위벌레ㆍ60/제빵 골목ㆍ62
제3부
빵 위에 쓰는 편지ㆍ65/거울 그림자ㆍ66/말티즈와 아내ㆍ68/달빛 족속ㆍ70/나무 이름 저장소ㆍ72/물방울 퍼즐ㆍ73/바다의 어원ㆍ74/청과물 16호ㆍ76/비등점에 대해ㆍ78/흰 섬 하나 그리며ㆍ80/여름의 끝ㆍ81/구피ㆍ82/구천동 능금ㆍ84/쌀의 무게ㆍ86/그녀의 소금 레시피ㆍ88
제4부
어둠 한 채ㆍ91/한때 장미ㆍ92/장미와 태양ㆍ94/날아라, 골목ㆍ96/자전ㆍ98/단팥빵과 바게트ㆍ100/협궤열차ㆍ102/등(腰)의 감정ㆍ104/자꾸만 별이 생긴다ㆍ106/섬ㆍ108/1200령 사과ㆍ110/신 황조가ㆍ112/토르소ㆍ114/피아노포르테ㆍ116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ㆍ117
저자
저자
박윤근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2015년 《문예바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12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제14회 〈시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뉴스1》에 이어 현재 《아시아투데이》 호남본부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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