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문학의전당 시인선 365)
장서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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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온기가 묻어나는 시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 절치부심 끝에 촌철살인의 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장서영 시인의 첫 시집 『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5로 출간되었다. 장서영의 이 시집은 그리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사람이 시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장서영의 시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따뜻해서 좋다.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 절치부심 끝에 촌철살인의 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장서영 시인의 첫 시집 『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5로 출간되었다. 장서영의 이 시집은 그리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사람이 시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장서영의 시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따뜻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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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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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엿보기
'뒷면'이라는 삶의 기원
장서영 시인의 시는 존재의 뒷면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것, 전면이 될 수 없는 걸 시로 탄생시켜내는 것이다. 알다시피 뒷면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물의 뒷면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시선에 노출되는 순간 전면으로 탈바꿈해버린다. 뒷면은 언제나 응시를 회피하면서 전면을 부각해낸다. 특히 자기의 뒷면이 그렇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등을 바라볼 수 없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럴만한 신의 뜻이 있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자기 등을 볼 수 없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믿는다면, 거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존재의 수수께끼라고 부르고 싶다.
수수께끼는 존재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다. 그리고 존재 물음은 "반쯤 덜어낸 심장에 새살이 돋"(「1309호에는 코끼리가 산다」)는 것 같은 비극적 재생을 동반한다. 이때 비극적 재생은 존재의 뒷면에 주어진 운명 같은 이름이다. 존재의 뒷면은 언제나 자기를 소멸하거나 덜어내는 방식으로 존재의 전면을 형상화한다. 우리가 응시하는 세계는 이렇게 상실된 뒷면이 비극적으로 재생된 형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면을 응시하지만, 시는 언제나 응시되지 않는 뒷면을 발견해낸다.
장서영 시인이 "목젖을 훑으면/폐부에서부터 그을음이 묻어나왔다"(「정전」)라고 한 건 비극적 재생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을음'은 한 생명이 격렬하게 살아 숨 쉬었다는 흔적에 해당하고, 존재는 그을음을 태우는 방식으로 삶이라는 존재를 입증해낸다. 장서영 시인은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목젖'을 더듬지만, 삶은 '그을음'의 형식으로 이미 소진된 상태다. 이렇게 삶이 소진되어버린 그을음에서 장서영 시인의 시가 태어난다.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오른쪽 뺨을 묻는다
저녁이 그리움을 몰아간다
기우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우거진 숲마다 그림자가 술렁거리고
여자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마른 물감 위에는 또 하루가 덧칠될 것이다
월경도 매달 덧칠되는 초경이었을까
덧칠될 일 없는 몸이 자주 울고
어제까지의 삶에 흰색을 또 바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다섯 시에서 여섯 시까지를 붓의 일대기라고 하자
우리의 호흡을 붓질이라고 하자
다섯 시에서 여섯 시까지
노을은 해 지는 풍경을 덧칠하고 어둠은 한낮의 변명처럼 무거워진다
- 「오른쪽 미술관」 전문
"새로운 인생"은 "어제까지의 삶에" "또 하루가 덧칠"되는 일이다. 이렇게 누적되는 걸 우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기억이나 추억이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덧칠되어 희미해진 그림이 문득 기억의 형식으로 등장할 때, 우리는 거기에도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수백 겹의 자기로 존재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만큼이나 수천 겹의 자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어제에는 어제의 내가 살고 있고, 오늘은 오늘의 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내일에는 내일의 내가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는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어제의 삶에 오늘의 '나'를 덧칠하면서 '새로운 인생'으로 갱신된다.
그러나 장서영 시인의 시는 덧칠된 전면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대신 그는 덧칠의 뒷면으로 감추어진, 그래서 존재의 그을음이 되어버린 것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갈 영감을 얻는다. 그럴 때 존재의 그을음이 되는 "낡은 서랍에 허물을 벗어낸 사진은 방부처리 없이도/페스츄리 같은 결을 간직"(「지문 연대기」)할 수 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허물을 벗어낸 사진'은 덧칠의 뒷면으로 사라졌던 '어제까지의 삶'이 기억이나 추억의 형식으로 오늘에 소환되는 자기에 가깝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그 순간을 살았던 존재의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기억을 잃은 뒤에도 달력에는 알 수 없는 빗금이 늘어"가듯 존재의 결은 "울어 줄 새끼를 위해 녹슬어 가는 문장들"(「골목 우화」)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장들'이 장서영 시인의 시에서 '몸'의 형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장 뒤편 세 번째 갈비뼈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고백"(「다락방 달팽이」), "숨이 없어서 혀가 말린 줄도 모르는 네 울음"(「그리운 모든 것은 바닥에 눕는다」), "저며진 속살이 생의 아가미를 따라/소금처럼 피어오르면"(「물살에 뼈를 묻다」) 같은 구절은 덧칠된 몸의 기억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하여 몸의 기억들은 삶이라는 치열한 생명력을 향해 존재의 의지를 피력한다. 그러한 의지 속에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
- 문신(시인·문학평론가)
'뒷면'이라는 삶의 기원
장서영 시인의 시는 존재의 뒷면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것, 전면이 될 수 없는 걸 시로 탄생시켜내는 것이다. 알다시피 뒷면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물의 뒷면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시선에 노출되는 순간 전면으로 탈바꿈해버린다. 뒷면은 언제나 응시를 회피하면서 전면을 부각해낸다. 특히 자기의 뒷면이 그렇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등을 바라볼 수 없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럴만한 신의 뜻이 있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자기 등을 볼 수 없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믿는다면, 거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존재의 수수께끼라고 부르고 싶다.
수수께끼는 존재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다. 그리고 존재 물음은 "반쯤 덜어낸 심장에 새살이 돋"(「1309호에는 코끼리가 산다」)는 것 같은 비극적 재생을 동반한다. 이때 비극적 재생은 존재의 뒷면에 주어진 운명 같은 이름이다. 존재의 뒷면은 언제나 자기를 소멸하거나 덜어내는 방식으로 존재의 전면을 형상화한다. 우리가 응시하는 세계는 이렇게 상실된 뒷면이 비극적으로 재생된 형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면을 응시하지만, 시는 언제나 응시되지 않는 뒷면을 발견해낸다.
장서영 시인이 "목젖을 훑으면/폐부에서부터 그을음이 묻어나왔다"(「정전」)라고 한 건 비극적 재생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을음'은 한 생명이 격렬하게 살아 숨 쉬었다는 흔적에 해당하고, 존재는 그을음을 태우는 방식으로 삶이라는 존재를 입증해낸다. 장서영 시인은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목젖'을 더듬지만, 삶은 '그을음'의 형식으로 이미 소진된 상태다. 이렇게 삶이 소진되어버린 그을음에서 장서영 시인의 시가 태어난다.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오른쪽 뺨을 묻는다
저녁이 그리움을 몰아간다
기우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우거진 숲마다 그림자가 술렁거리고
여자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마른 물감 위에는 또 하루가 덧칠될 것이다
월경도 매달 덧칠되는 초경이었을까
덧칠될 일 없는 몸이 자주 울고
어제까지의 삶에 흰색을 또 바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다섯 시에서 여섯 시까지를 붓의 일대기라고 하자
우리의 호흡을 붓질이라고 하자
다섯 시에서 여섯 시까지
노을은 해 지는 풍경을 덧칠하고 어둠은 한낮의 변명처럼 무거워진다
- 「오른쪽 미술관」 전문
"새로운 인생"은 "어제까지의 삶에" "또 하루가 덧칠"되는 일이다. 이렇게 누적되는 걸 우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기억이나 추억이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덧칠되어 희미해진 그림이 문득 기억의 형식으로 등장할 때, 우리는 거기에도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수백 겹의 자기로 존재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만큼이나 수천 겹의 자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어제에는 어제의 내가 살고 있고, 오늘은 오늘의 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내일에는 내일의 내가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는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어제의 삶에 오늘의 '나'를 덧칠하면서 '새로운 인생'으로 갱신된다.
그러나 장서영 시인의 시는 덧칠된 전면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대신 그는 덧칠의 뒷면으로 감추어진, 그래서 존재의 그을음이 되어버린 것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갈 영감을 얻는다. 그럴 때 존재의 그을음이 되는 "낡은 서랍에 허물을 벗어낸 사진은 방부처리 없이도/페스츄리 같은 결을 간직"(「지문 연대기」)할 수 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허물을 벗어낸 사진'은 덧칠의 뒷면으로 사라졌던 '어제까지의 삶'이 기억이나 추억의 형식으로 오늘에 소환되는 자기에 가깝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그 순간을 살았던 존재의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기억을 잃은 뒤에도 달력에는 알 수 없는 빗금이 늘어"가듯 존재의 결은 "울어 줄 새끼를 위해 녹슬어 가는 문장들"(「골목 우화」)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장들'이 장서영 시인의 시에서 '몸'의 형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장 뒤편 세 번째 갈비뼈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고백"(「다락방 달팽이」), "숨이 없어서 혀가 말린 줄도 모르는 네 울음"(「그리운 모든 것은 바닥에 눕는다」), "저며진 속살이 생의 아가미를 따라/소금처럼 피어오르면"(「물살에 뼈를 묻다」) 같은 구절은 덧칠된 몸의 기억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하여 몸의 기억들은 삶이라는 치열한 생명력을 향해 존재의 의지를 피력한다. 그러한 의지 속에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
- 문신(시인·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제1부
오른쪽 미술관 13/옥탑방 안타레스 14/벚꽃 크레바스 16/트리플A형의 연애학개론 18/청년 M은 1+1을 좋아해 20/다락방 달팽이 21/그리운 모든 것은 바닥에 눕는다 22/지문 연대기 24/하늘소와 B612 26/노란 분노 28/골목 우화(寓話) 29/1309호에는 코끼리가 산다 30/겨우살이 32/동거 34/골목 사용설명서 35/모사 36/물살에 뼈를 묻다 38/K 살롱 40
제2부
정전 43/새들이 사라진 봄 44/19금 詩의 세계 46/궤적 48/뜨거운 충고 49/스콜플링 50/데칼코마니 52/거울 54/기침을 뼈에 묻는다 55/아름다운 뻔뻔 56/적도에서 온 버스 58/그녀를 고발합니다 60/그 끝에서 운다 62/벽장 속에 사는 남자 63/손님 구함 64/록산느의 탱고 66/꼬리뼈의 기원 68/싶다 70
제3부
붉은 지네 73/꽃 도둑 74/그 속은 어땠을까 76/쿵 78/수상한 눈물 80/돼지감자 81/자장면 먹으러 가요 82/아버지 난닝구에는 배추벌레가 산다 84/어제는 문 밖에서 잎맥의 숨을 읽었다 86/깨 터는 여자 88/신혼 89/자전의 내력 90/워낭 소리 92/슬픔은 방지턱이 없다 94/미안한 사람 96/시작(詩作) 98/사람을 보내고 100
해설 문신(시인, 문학평론가)/101
오른쪽 미술관 13/옥탑방 안타레스 14/벚꽃 크레바스 16/트리플A형의 연애학개론 18/청년 M은 1+1을 좋아해 20/다락방 달팽이 21/그리운 모든 것은 바닥에 눕는다 22/지문 연대기 24/하늘소와 B612 26/노란 분노 28/골목 우화(寓話) 29/1309호에는 코끼리가 산다 30/겨우살이 32/동거 34/골목 사용설명서 35/모사 36/물살에 뼈를 묻다 38/K 살롱 40
제2부
정전 43/새들이 사라진 봄 44/19금 詩의 세계 46/궤적 48/뜨거운 충고 49/스콜플링 50/데칼코마니 52/거울 54/기침을 뼈에 묻는다 55/아름다운 뻔뻔 56/적도에서 온 버스 58/그녀를 고발합니다 60/그 끝에서 운다 62/벽장 속에 사는 남자 63/손님 구함 64/록산느의 탱고 66/꼬리뼈의 기원 68/싶다 70
제3부
붉은 지네 73/꽃 도둑 74/그 속은 어땠을까 76/쿵 78/수상한 눈물 80/돼지감자 81/자장면 먹으러 가요 82/아버지 난닝구에는 배추벌레가 산다 84/어제는 문 밖에서 잎맥의 숨을 읽었다 86/깨 터는 여자 88/신혼 89/자전의 내력 90/워낭 소리 92/슬픔은 방지턱이 없다 94/미안한 사람 96/시작(詩作) 98/사람을 보내고 100
해설 문신(시인, 문학평론가)/101
저자
저자
장서영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석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23년 충남문화재단 예술지원금을 수혜했다. 현재 김홍신문학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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