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편에 대한 탐구(시인동네 시인선 212)
안혜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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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시적 산책
1982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안혜경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왼편에 대한 탐구』가 시인동네 시인선 212로 출간되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평생을 가난과 절망 속에서 보낸 빈센트 반 고흐가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서 밝고 푸른 배경(빈센트 블루)에서 희망의 흰 꽃들을 보여주었듯이, 안혜경은 슬픔과 울음의 어두운 통로 끝에서 희뿌옇게 동터올 희망의 순간을 꿈꾼다고 평했다.
1982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안혜경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왼편에 대한 탐구』가 시인동네 시인선 212로 출간되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평생을 가난과 절망 속에서 보낸 빈센트 반 고흐가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서 밝고 푸른 배경(빈센트 블루)에서 희망의 흰 꽃들을 보여주었듯이, 안혜경은 슬픔과 울음의 어두운 통로 끝에서 희뿌옇게 동터올 희망의 순간을 꿈꾼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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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하이데거(M. Heidegger)의 후기 사상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숲길Holzwege』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풀(Holz)은 숲(Wald)를 지칭하던 옛 이름이다. 숲에는 대개 풀이 무성히 자라나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 있다. 그런 길들을 숲길(Holzwege)이라고 부른다." 『숲길』의 영문판 제목은 Off the Beaten Track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은 길'이란 뜻이다. 그 길은 누구나 알고 있고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 만들어진 길(beaten track)'이 아니다. 그 길은 일상의 비본래적인 속성을 깨닫고 본래적인 존재로 가는 길, 다른 말로 하면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외딴길이다. 그렇다면 '근원'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에게 근원이란 "그것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사태가 사태 자신의 본질(Was-sein, 무엇임)과 그 자신의 방식(Wie-sein, 어떠함)으로 존재하게 되는 그런 것"(『숲길』)을 말한다.
안혜경의 시집은 '산책 시편'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만큼 "산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산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는 '걷다', '길을 가다', '돌아다니다', '내달리다' 등처럼 산책을 의미하는 유사어들이 자주 반복된다. 그녀는 걷고, 길을 가고, 돌아다니며 존재의 '무엇임'과 '어떠함'에 대하여 사유한다. 그녀의 길은 편하고 흔한 길이 아니며, 하이데거의 숲길처럼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기도 하다. 그 길은 비본래적인 일상에서 시작되며, 본래적인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종종 사라짐으로써 주체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나무를 안았다 나무도 그날의 수고로움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찬바람 쌩쌩 골목을 휘도는데 꽁꽁 싸매고 산책을 나갔다 마른 풀들도 추위에 발을 모으고 도로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오리 떼조차 수초 사이에 숨었는지 풀들이 바스락거렸다 검정 비닐봉지만이 머리를 쳐든 뱀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풀숲에 뻣뻣하게 누운 고양이를 끝내 묻어주지 못했다 발걸음은 후들거렸다 왼쪽 길인지 오른쪽 길인지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지 돌아서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얼음기둥이 되었다 칼바람이 나를 북극으로 데려갔다
- 「한파」 전문
이 시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화자의 산책길은 한치의 생명성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한파에 꽁꽁 얼어붙어 있고, 풀들은 바짝 말랐으며, 오리 떼들도 사라지고 없다. "검정 비닐봉지만이 머리를 쳐든 뱀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에서 화자의 "발걸음은 후들거"린다. 화자는 이 삭막한 얼음의 공간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본래적인 존재로 돌아가고 있다. 비본래적인 존재는 죽음을 망각하고 결핍을 못 느낀다. 화자는 모든 것이 결핍인 세계를 이미 의식하고 있고, "풀숲에 뻣뻣하게 누운 고양이를 끝내 묻어주지 못했"지만, 죽음을 의식하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사유 안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 화자는 비본래적인 실존이 은폐하는 것들을 탈은폐하여 본래적인 존재를 목격하기 직전의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다. 안혜경의 시들은 이렇게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 존재-물음을 던지는 현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물을 때, 그것의 시간적인 배경은 대부분 저녁이거나 밤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녀의 산책이 시작되는 시점은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나무를" 안을 때이다. 저녁은 어두움으로 가는 시간이고 밤은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다. 어두운 시간은 무지의 시간이고, 길을 잃은 시간이며, 길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안혜경의 질문은 잘 보이지 않은 근원에 대한 암중모색의 처절한 과정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 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
안혜경의 시집은 '산책 시편'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만큼 "산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산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는 '걷다', '길을 가다', '돌아다니다', '내달리다' 등처럼 산책을 의미하는 유사어들이 자주 반복된다. 그녀는 걷고, 길을 가고, 돌아다니며 존재의 '무엇임'과 '어떠함'에 대하여 사유한다. 그녀의 길은 편하고 흔한 길이 아니며, 하이데거의 숲길처럼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기도 하다. 그 길은 비본래적인 일상에서 시작되며, 본래적인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종종 사라짐으로써 주체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나무를 안았다 나무도 그날의 수고로움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찬바람 쌩쌩 골목을 휘도는데 꽁꽁 싸매고 산책을 나갔다 마른 풀들도 추위에 발을 모으고 도로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오리 떼조차 수초 사이에 숨었는지 풀들이 바스락거렸다 검정 비닐봉지만이 머리를 쳐든 뱀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풀숲에 뻣뻣하게 누운 고양이를 끝내 묻어주지 못했다 발걸음은 후들거렸다 왼쪽 길인지 오른쪽 길인지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지 돌아서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얼음기둥이 되었다 칼바람이 나를 북극으로 데려갔다
- 「한파」 전문
이 시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화자의 산책길은 한치의 생명성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한파에 꽁꽁 얼어붙어 있고, 풀들은 바짝 말랐으며, 오리 떼들도 사라지고 없다. "검정 비닐봉지만이 머리를 쳐든 뱀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에서 화자의 "발걸음은 후들거"린다. 화자는 이 삭막한 얼음의 공간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본래적인 존재로 돌아가고 있다. 비본래적인 존재는 죽음을 망각하고 결핍을 못 느낀다. 화자는 모든 것이 결핍인 세계를 이미 의식하고 있고, "풀숲에 뻣뻣하게 누운 고양이를 끝내 묻어주지 못했"지만, 죽음을 의식하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사유 안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 화자는 비본래적인 실존이 은폐하는 것들을 탈은폐하여 본래적인 존재를 목격하기 직전의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다. 안혜경의 시들은 이렇게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 존재-물음을 던지는 현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물을 때, 그것의 시간적인 배경은 대부분 저녁이거나 밤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녀의 산책이 시작되는 시점은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나무를" 안을 때이다. 저녁은 어두움으로 가는 시간이고 밤은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다. 어두운 시간은 무지의 시간이고, 길을 잃은 시간이며, 길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안혜경의 질문은 잘 보이지 않은 근원에 대한 암중모색의 처절한 과정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 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제1부
왜가리ㆍ13/포인세티아ㆍ14/어제의 산책자ㆍ16/그러니까 튤립ㆍ17/저녁 한 조각ㆍ18/한낮인데도ㆍ20/편지ㆍ21/삼나무 사잇길ㆍ22/한파ㆍ24/한파 2ㆍ25/봄 혹은 빗방울ㆍ26/지하실ㆍ28/아무리 걸어도 저녁ㆍ29/내일이 오면ㆍ30/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ㆍ32/이유 있는 슬픔ㆍ34/그랬을까ㆍ35/어제ㆍ36
제2부
왼편에 대한 탐구ㆍ39/너만의 방식ㆍ40/저녁의 발자국ㆍ42/새벽 창문을 넘어ㆍ43/서쪽으로 흐르는 냇물은ㆍ44/내일은 다시ㆍ46/연두ㆍ47/저녁의 슬픔ㆍ48/매화ㆍ50/눈사람ㆍ51/옆집 사람ㆍ52/크로커스ㆍ54/11월ㆍ55/밤의 창문에 매달려ㆍ56/조춘(早春)ㆍ58/빨래ㆍ59/기억들, 엉겅퀴의ㆍ60/메기와 하수관 사이에서ㆍ62
제3부
한식ㆍ65/진정되지 않는ㆍ66/천둥을 찾아ㆍ68/슬픔이 온다ㆍ70/비 갠 뒤ㆍ72/달맞이꽃ㆍ73/누구의 마음인가ㆍ74/먼지가 흩날리는 집ㆍ76/끝내 못다 한 이야기ㆍ78/바오바브나무에 걸린 모자는 두고 왔네ㆍ80/파타고니아의 바람일까ㆍ82/비린내와 달콤함 사이ㆍ83/단풍나무의 숨바꼭질ㆍ84/전화를 끊고 난 후ㆍ86/목요일에서 조금 떨어져ㆍ88/하나의 망초ㆍ90/감자꽃은 떨어지고ㆍ92/세상 끝이 뭐 어디 가겠습니까ㆍ94/밤의 인사ㆍ96
해설 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97
왜가리ㆍ13/포인세티아ㆍ14/어제의 산책자ㆍ16/그러니까 튤립ㆍ17/저녁 한 조각ㆍ18/한낮인데도ㆍ20/편지ㆍ21/삼나무 사잇길ㆍ22/한파ㆍ24/한파 2ㆍ25/봄 혹은 빗방울ㆍ26/지하실ㆍ28/아무리 걸어도 저녁ㆍ29/내일이 오면ㆍ30/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ㆍ32/이유 있는 슬픔ㆍ34/그랬을까ㆍ35/어제ㆍ36
제2부
왼편에 대한 탐구ㆍ39/너만의 방식ㆍ40/저녁의 발자국ㆍ42/새벽 창문을 넘어ㆍ43/서쪽으로 흐르는 냇물은ㆍ44/내일은 다시ㆍ46/연두ㆍ47/저녁의 슬픔ㆍ48/매화ㆍ50/눈사람ㆍ51/옆집 사람ㆍ52/크로커스ㆍ54/11월ㆍ55/밤의 창문에 매달려ㆍ56/조춘(早春)ㆍ58/빨래ㆍ59/기억들, 엉겅퀴의ㆍ60/메기와 하수관 사이에서ㆍ62
제3부
한식ㆍ65/진정되지 않는ㆍ66/천둥을 찾아ㆍ68/슬픔이 온다ㆍ70/비 갠 뒤ㆍ72/달맞이꽃ㆍ73/누구의 마음인가ㆍ74/먼지가 흩날리는 집ㆍ76/끝내 못다 한 이야기ㆍ78/바오바브나무에 걸린 모자는 두고 왔네ㆍ80/파타고니아의 바람일까ㆍ82/비린내와 달콤함 사이ㆍ83/단풍나무의 숨바꼭질ㆍ84/전화를 끊고 난 후ㆍ86/목요일에서 조금 떨어져ㆍ88/하나의 망초ㆍ90/감자꽃은 떨어지고ㆍ92/세상 끝이 뭐 어디 가겠습니까ㆍ94/밤의 인사ㆍ96
해설 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97
저자
저자
안혜경
서울에서 태어나 상명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1982년 《시문학》 등단. 시집 『강물과 섞여 꿈꿀 수 있다면』 『춘천 가는 길』 『숲의 얼굴』 『밤의 푸르름』 『바다 위의 의자』 『여기 아닌 어딘가에』 『비는 살아있다』, 산문집 『새벽 다섯 시』 『아프리카 아프리카』 『꿈꾸는 배낭』 등을 펴냈다.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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