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통장(문학의전당 시인선 366)
한명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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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흔적, 혹은 의지의 기록
2007년 《문예운동》으로 등단한 한명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오래된 통장』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6으로 출간되었다. 한명숙의 이번 시집은 시간의 흔적을 조각조각 모아, 의지로 꿰어 펼친 생활 시학의 조각보이자 행복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명숙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연민의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것이다.
2007년 《문예운동》으로 등단한 한명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오래된 통장』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6으로 출간되었다. 한명숙의 이번 시집은 시간의 흔적을 조각조각 모아, 의지로 꿰어 펼친 생활 시학의 조각보이자 행복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명숙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연민의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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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해설 엿보기
우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다만, 시간을 의식하지 못할 때는 '어린 소녀'였는데 어느덧 '육십갑자'를 넘어서니 한밤중에 시계를 꺼도 새벽은 쏜살같이 달려와 있음을 보게 된다. 보통의 우리 인식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비가역적으로 흐른다. 화살보다 빠르게 아니 광속(光速)으로. 과거를 성찰하거나 미래를 기대하거나 우리는 근사치인 현재에 존재할 뿐, 기억과 예상이 없다면 결코 '시간 그 자체'를 살지 못한다.
인도의 세 번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강인한 영혼인 야크샤(Yaksa)가 팝다바(Papdava)의 최고령자이자 현자인 유디스티라(Yudhisthira)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었다. 이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고대 로마에는 '수정(愁精, Sorge)'의 신화가 있다. 수정은 지신(地神, Tellus)에게서 얻은 흙 한 덩이로 만든 형체에 주신(主神, Jupiter)의 영혼을 불어넣어 생물(Houmou→Homo, 인간)을 빚었다. 수정과 지신과 주신이 서로 이 생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간의 신에게 판정을 맡겼다. 시간의 신은 죽은 후에 육체는 지신이, 영혼은 주신이 도로 가져가라고 했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수정이 관장하라고 판결했다. 두 이야기는 우리는 영원히 살지도 못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근심과 염려(불안)에 휩싸인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이처럼 시간은 냉철하고 가혹하지만, 단지 우리를 그저 생겨났다 사멸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도록 변화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다른 얼굴도 보여준다. 인간은 기억과 기대라는 의식 작용을 통해 '불멸'이라는 환상을 제한된 시공간에서 자기의 역량만큼 실현한다. 창작 활동으로서 시작(詩作) 또한 자연스럽게 이런 의미를 띠게 된다. 따라서 흔적을 남기고 기록을 통해 이어지려는 모든 노력에는 그 규모와 깊이를 따지기 전에 어떤 비장함과 숭고함이 깃들기 마련이다.
한명숙 시인은 어둡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시간의 물결 위에 자신의 의지와 경험에서 발생한 삶의 온기를 펼쳐 덮는다. 이를 통해 알록달록한 수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영(陰影)이 곱고 부드러운 한 생의 수묵화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둘째 딸 최고라는 칭찬에 상처가 곪아 터져도,/시키는 사람 없어도 즐겁게"(「마음의 빚」) 살림 놀이했던 어린 시절부터 "육십갑자 넘겼더니/별것 아닌 일에도 눈치가 보"(「80분」)인다는 최근까지의 사태와 심회(心懷)를 결 고운 어휘로 담담히 펼쳐낸다.
부모님은 쉴 새 없이 논밭으로 일 나가시고
집안 청소와 빨래는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상처 난 손가락이 양잿물 빨랫비누에
퉁퉁 불어 벌겋게 곪아 통증으로 몸살을 앓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거리를 찾아
부모님을 돕고 싶었던, 일찍 어른이 된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되어야 했었습니다
꼭꼭 숨겨두었던,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탓이려니 하다가도
비빌 언덕도 하나 없는 형편에
칠 남매 뒷바라지에 온 동네 거친 일을
도맡아 하시던 일꾼, 아버지의 굽은 등과 찌든 일상
일에 지친 어머니의 거친 말투가 싫어
모르는 척 눈을 감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 「꼰대의 힘」 부분
시인은 어떤 희미한 자각과 여린 의지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되어야 했었"다. '집안 청소와 빨래'를 도맡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부모님을 돕고 싶었던. 일찍 어른이 된 나"라는 초상(肖像)이 생겼다. 이런 행위의 자발성은 "죽어라 달려 봐도 언제나 꼴등인걸/응원 온 엄마 앞에서/창피해서 울어버렸다"(「달리기는 싫어」)라는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 트라우마는 일반의 생각처럼 어둡고 끈질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달리기만 아니라면', 즉 "배구도 높이뛰기도 공부도 내가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십 리 먼 길 달려/학교 오는 친구 당할 수 없어"라는 친구를 긍정하는 태도마저 드러난다. 결국, 어린 날의 초상은 시인 자신의 심성(心性)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모르는 척 눈을 감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어떤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고 그에 걸맞은 감정으로 반응하면서 점차 '의미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우리는 발생이라는 먼 과거의 시점에서 어딘지는 알 수 없어도 반드시 도래(到來)하고 말 소멸까지를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없다. 다만 시간의 파문이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에서 수동적인 인자(因子)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변화를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행위야말로 의미 있는 존재의 기본 자질이다. 어느새 위치가 바뀌어 "내 맘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혼내는/엄마를 이해하려 해봐도 안 되더니/삼십 년 엄마인데도/몰라주는 아들이 서운"(「어른이 된다는 건」)한 상황을 마주한다. 지난날 "야속하다 원망하던 일들이/어쩔 수 없었다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성찰의 모습으로 소환된다.
- 백인덕(시인)
우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다만, 시간을 의식하지 못할 때는 '어린 소녀'였는데 어느덧 '육십갑자'를 넘어서니 한밤중에 시계를 꺼도 새벽은 쏜살같이 달려와 있음을 보게 된다. 보통의 우리 인식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비가역적으로 흐른다. 화살보다 빠르게 아니 광속(光速)으로. 과거를 성찰하거나 미래를 기대하거나 우리는 근사치인 현재에 존재할 뿐, 기억과 예상이 없다면 결코 '시간 그 자체'를 살지 못한다.
인도의 세 번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강인한 영혼인 야크샤(Yaksa)가 팝다바(Papdava)의 최고령자이자 현자인 유디스티라(Yudhisthira)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었다. 이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고대 로마에는 '수정(愁精, Sorge)'의 신화가 있다. 수정은 지신(地神, Tellus)에게서 얻은 흙 한 덩이로 만든 형체에 주신(主神, Jupiter)의 영혼을 불어넣어 생물(Houmou→Homo, 인간)을 빚었다. 수정과 지신과 주신이 서로 이 생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간의 신에게 판정을 맡겼다. 시간의 신은 죽은 후에 육체는 지신이, 영혼은 주신이 도로 가져가라고 했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수정이 관장하라고 판결했다. 두 이야기는 우리는 영원히 살지도 못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근심과 염려(불안)에 휩싸인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이처럼 시간은 냉철하고 가혹하지만, 단지 우리를 그저 생겨났다 사멸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도록 변화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다른 얼굴도 보여준다. 인간은 기억과 기대라는 의식 작용을 통해 '불멸'이라는 환상을 제한된 시공간에서 자기의 역량만큼 실현한다. 창작 활동으로서 시작(詩作) 또한 자연스럽게 이런 의미를 띠게 된다. 따라서 흔적을 남기고 기록을 통해 이어지려는 모든 노력에는 그 규모와 깊이를 따지기 전에 어떤 비장함과 숭고함이 깃들기 마련이다.
한명숙 시인은 어둡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시간의 물결 위에 자신의 의지와 경험에서 발생한 삶의 온기를 펼쳐 덮는다. 이를 통해 알록달록한 수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영(陰影)이 곱고 부드러운 한 생의 수묵화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둘째 딸 최고라는 칭찬에 상처가 곪아 터져도,/시키는 사람 없어도 즐겁게"(「마음의 빚」) 살림 놀이했던 어린 시절부터 "육십갑자 넘겼더니/별것 아닌 일에도 눈치가 보"(「80분」)인다는 최근까지의 사태와 심회(心懷)를 결 고운 어휘로 담담히 펼쳐낸다.
부모님은 쉴 새 없이 논밭으로 일 나가시고
집안 청소와 빨래는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상처 난 손가락이 양잿물 빨랫비누에
퉁퉁 불어 벌겋게 곪아 통증으로 몸살을 앓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거리를 찾아
부모님을 돕고 싶었던, 일찍 어른이 된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되어야 했었습니다
꼭꼭 숨겨두었던,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탓이려니 하다가도
비빌 언덕도 하나 없는 형편에
칠 남매 뒷바라지에 온 동네 거친 일을
도맡아 하시던 일꾼, 아버지의 굽은 등과 찌든 일상
일에 지친 어머니의 거친 말투가 싫어
모르는 척 눈을 감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 「꼰대의 힘」 부분
시인은 어떤 희미한 자각과 여린 의지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되어야 했었"다. '집안 청소와 빨래'를 도맡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부모님을 돕고 싶었던. 일찍 어른이 된 나"라는 초상(肖像)이 생겼다. 이런 행위의 자발성은 "죽어라 달려 봐도 언제나 꼴등인걸/응원 온 엄마 앞에서/창피해서 울어버렸다"(「달리기는 싫어」)라는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 트라우마는 일반의 생각처럼 어둡고 끈질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달리기만 아니라면', 즉 "배구도 높이뛰기도 공부도 내가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십 리 먼 길 달려/학교 오는 친구 당할 수 없어"라는 친구를 긍정하는 태도마저 드러난다. 결국, 어린 날의 초상은 시인 자신의 심성(心性)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모르는 척 눈을 감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어떤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고 그에 걸맞은 감정으로 반응하면서 점차 '의미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우리는 발생이라는 먼 과거의 시점에서 어딘지는 알 수 없어도 반드시 도래(到來)하고 말 소멸까지를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없다. 다만 시간의 파문이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에서 수동적인 인자(因子)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변화를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행위야말로 의미 있는 존재의 기본 자질이다. 어느새 위치가 바뀌어 "내 맘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혼내는/엄마를 이해하려 해봐도 안 되더니/삼십 년 엄마인데도/몰라주는 아들이 서운"(「어른이 된다는 건」)한 상황을 마주한다. 지난날 "야속하다 원망하던 일들이/어쩔 수 없었다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성찰의 모습으로 소환된다.
- 백인덕(시인)
목차
목차
제1부
도돌이표 13/행복미용실 14/손톱 16/말의 뼈를 찾다 18/달리기는 싫어 20/어른이 된다는 건 21/값을 한다는 건 22/마음의 빚 24/그늘이 된다는 건 26/소녀가장의 눈물 27/편안하신가요? 28/동행 30/이월 31/이력서를 쓰며 32/오래된 통장 34
제2부
잔소리 37/천사에게 38/방과후교실 40/용기 내기 41/소리가 전하는 이별 연습 42/소리도 찍힐까 44/지칭개 45/선재길 걸으며 46/편지 48/고발합니다 49/곰돌이 인형 50/듣는다는 것은 52/80분 53/방망이날개무희새 54/갯골생태공원 56
제3부
따듯한 저녁 59/평범한 다짐 60/팔불출이라도 좋아 62/짝퉁시대 64/진즉에 알았더라면 65/봄은 멀다 66/견딘다는 건 68/산빛 69/길 찾기 70/봄을 기다리며 72/사진 속으로 73/수선사에서 74/세월 가는 줄 모르고 75/소리가 사라졌다 76/일기장 77/행복 78
제4부
수수밭 뉴스 81/한 여자의 생일 82/추억의 입맛 84/요양원 가는 길 85/개발제한구역 86/사진 한 장 88/동강할미꽃 89/꼰대의 힘 90/봄 편지 92/아름답고 그리운 93/머위 쌈 94/달빛 96/변방에서 97/순천만에서 98
해설 백인덕(시인)/99
도돌이표 13/행복미용실 14/손톱 16/말의 뼈를 찾다 18/달리기는 싫어 20/어른이 된다는 건 21/값을 한다는 건 22/마음의 빚 24/그늘이 된다는 건 26/소녀가장의 눈물 27/편안하신가요? 28/동행 30/이월 31/이력서를 쓰며 32/오래된 통장 34
제2부
잔소리 37/천사에게 38/방과후교실 40/용기 내기 41/소리가 전하는 이별 연습 42/소리도 찍힐까 44/지칭개 45/선재길 걸으며 46/편지 48/고발합니다 49/곰돌이 인형 50/듣는다는 것은 52/80분 53/방망이날개무희새 54/갯골생태공원 56
제3부
따듯한 저녁 59/평범한 다짐 60/팔불출이라도 좋아 62/짝퉁시대 64/진즉에 알았더라면 65/봄은 멀다 66/견딘다는 건 68/산빛 69/길 찾기 70/봄을 기다리며 72/사진 속으로 73/수선사에서 74/세월 가는 줄 모르고 75/소리가 사라졌다 76/일기장 77/행복 78
제4부
수수밭 뉴스 81/한 여자의 생일 82/추억의 입맛 84/요양원 가는 길 85/개발제한구역 86/사진 한 장 88/동강할미꽃 89/꼰대의 힘 90/봄 편지 92/아름답고 그리운 93/머위 쌈 94/달빛 96/변방에서 97/순천만에서 98
해설 백인덕(시인)/99
저자
저자
한명숙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2003년 《수필과비평》으로 수필 등단, 2007년 《문예운동》으로 시 등단했다. 시집 『가시연꽃』 『담쟁이 손』 『붕어빵 아줌마』 『그랬으면 좋겠네』, 수필집 『남자의 눈물은 뜨거웠다』가 있다. 〈시흥문학상〉 금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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