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시인동네 시인선 214)
전영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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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모스의 모순을 기꺼이 껴안은 자의 고백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전영미 시인의 첫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가 시인동네 시인선 214로 출간되었다. 전영미의 이 시집은 이게 정말 첫 시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르익고 농익었으면서도 새롭고 신선하다. ‘시의 맛’을 아는 이 신진 시인의 등장으로 긴장해야 할 기성 시인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이 왜 2023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었는지 시집을 읽어본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전영미 시인의 첫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가 시인동네 시인선 214로 출간되었다. 전영미의 이 시집은 이게 정말 첫 시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르익고 농익었으면서도 새롭고 신선하다. ‘시의 맛’을 아는 이 신진 시인의 등장으로 긴장해야 할 기성 시인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이 왜 2023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었는지 시집을 읽어본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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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해설 엿보기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에서 글쓰기와 존재에 관한 사유는 같은 지평에서 이뤄진다. 현존에 관한 말하기가 존재의 결핍을 고민하는 중에 이뤄지면서 불안전·불완전·불안정한 존재의 조건이 글쓰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이 주체 형성과 관련되면서 전영미 시는 매우 내적이고 심리적으로 언표된다. 부단히 자기를 타자화하면서 세계-내에서 그 위치를 찾아나가고, '존재'가 본래 텅 빈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존재자로 명명되는 지점까지 사유를 이어간다. 자기의식이 박약하다면 타자와의 동일시가 매우 순탄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자기의식을 가진 자는 자기를 분리해 놓고 대자적으로 자기를 의식한다. 자기를 넘어 타자에게로 나아갈 때 자기중심 사고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 시집에서 핵심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존재(자)'를 들 수 있다. 존재(being)는 인간에게 본래 결여된 것이어서 '존재자'와의 혼란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 존재란 아직 그 무엇도 수행하지 않고 가만히 지속하는 상태, 즉 시인이 유령의 목소리를 빌려서 썼듯이 "발이 필요해"(「내막」)라고 말하는 상태 같은 것이다. 이 발화자는 지금 "뭔가를 딛고" 서 있고 싶지만 발이 없어서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유령은 자명한 존재자일 수가 없다. 발의 필요성을 발언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관점으로는 발이 결핍된 존재다. 이 같은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발로 무언가를 딛고 서 있다면 유령은 전혀 다른 존재자로 전환할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부단히 정체성을 찾아 나가면서 존재의 전환을 꿈꾼다. 새로운 세계를 얻으려면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변도 자신이 마련해야 한다. 성장하는 동안에 경험했으나 지금은 잊어버린 이야기들, 그래서 캄캄한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을 현재화하면서 오롯한 나 되기의 시 쓰기 수행을 이어간다. 이 시인에게 글쓰기는 주체를 부단히 되묻는 일과 분리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능력으로 그것은 지속된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거울 단계를 거쳐왔으나 그때의 기억이나 상황을 온전히 복구할 수는 없다. 거울 앞에서 어느 날 자아를 발견하게 된 아이가 그간의 무지와 숱한 의심을 거쳐 거울상과의 동일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는 심리학 이론을 근간으로 자아 형성의 계기를 추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출발 지점과 귀환 지점이 똑같이 자신이라 해도 좋을 전영미 시에서 주체는 세계 속으로 부단히 뛰어드는 자아 분열체로 언표된다. 그래서 이들은 늘 움직인다. 타자화한 자신을 직관할 때에야 주체성이 생기는 것이어서 움직이지 않는 자는 이것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세계 속에 자신을 세워 놓고 하나의 풍경이 된 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서시 격인 「배웅」에서 시인은 흔들리는 삶의 조건과 거기에 더해진 슬픔을 묘파하면서 주체의 배웅 행위가 결코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집을 나선다
빈 새장을 열어주고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화분에 물을 주고는
깊은 밤 속으로
길가 버드나무가 잠깐 흔들린다
뒷골목을 지나 공원을 돌아 호숫가까지 걸어간다
슬픔아,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지?
호수에 잠긴 수초를 오래 바라본다
물에는 앉을 데가 없다
나의 귀가는
어제보다 더 늦을 것이다
- 「배웅」 전문
이 같은 배웅 행위는 슬픔을 영영 떠나보내려는 것이 아니다. 여하한 이유가 있어서 슬픔을 슬픔에게 잠시 돌려보내거나 맡겨두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탁 행위가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면 슬픔의 연원을 모를 턱이 없다. 그런데 시 현실에서는 그 이유가 표면화되지 않는다. 화자는 새장에 가둬 두었던 새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주고, 텅 빈 것들뿐인 사물들에 듬뿍 물을 채워준 후 집을 나선다. 바깥 세계인 호수를 슬픔이 출렁거리는 장소로 지정한 것을 보면 집과 호수 사이에는 단절할 수 없는 연속성이 있다. 슬픔이 혼자 갈 수 있을 만큼의 장소에서 배웅하고 있으나 이러한 행위는 이후에 다시 슬픔을 마중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러면서 그는 "호수에 잠긴 수초"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자신을 타자화한다. 바깥 세계에는 호수만 한 슬픔이 고여 있어서 '쉴 만한 물가'라고 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슬픔에 겨운 자. 집을 나서기 전에 빈 욕조, 빈 화분에 물을 채워 넣어 마를 날 없는 슬픔이 삶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자. 그가 이 시의 화자다. 삶에 깊이 배여 있는 슬픔은 빈 용기에 물을 채워 넣는 행위로, 다시금 슬픔을 만나야 하는 일은 늦은 귀가 시간을 예정해 두는 것으로 표명된다.
우리네 삶에는 불가항력의 조건이 있고 그중 슬픔은 깊이를 알 수도 없고 마를 날도 없다는 점을 이 시는 시사한다. 자신에게 부과된 슬픔이 내내 삶을 관통하고 있어서 그는 그것을 고스란히 승인해야 한다. 이 세계에 던져지기 전으로 소급해 가는 능력의 소지자가 아닌 한 그는 슬픔이 삶의 조건이 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부조리한 것은, 삶은 슬프다는 인식에 어떤 근거를 댈 것인지조차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슬픔은 기쁨과 차이가 있는 감정이지만 이것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그 이유를 끝없이 알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되었다면서 안도하기도 한다. 화자가 집에서 데리고 나온 슬픔을 더 큰 슬픔에게로 배웅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이후 귀갓길에 마중할 슬픔의 얼굴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 슬픔을 삶의 조건으로 승인하는 것이 일상임을 천명하면서 시인은 「어떤 안내문」에서 주체가 처한 "지금 여기"(now-here)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질문하기에 이른다. 이 시는 영문도 모른 채 홀로 기투되어 이 세계의 고아로 살아가는 모든 실존재, 즉 "당신"들에 관한 말하기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에서 글쓰기와 존재에 관한 사유는 같은 지평에서 이뤄진다. 현존에 관한 말하기가 존재의 결핍을 고민하는 중에 이뤄지면서 불안전·불완전·불안정한 존재의 조건이 글쓰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이 주체 형성과 관련되면서 전영미 시는 매우 내적이고 심리적으로 언표된다. 부단히 자기를 타자화하면서 세계-내에서 그 위치를 찾아나가고, '존재'가 본래 텅 빈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존재자로 명명되는 지점까지 사유를 이어간다. 자기의식이 박약하다면 타자와의 동일시가 매우 순탄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자기의식을 가진 자는 자기를 분리해 놓고 대자적으로 자기를 의식한다. 자기를 넘어 타자에게로 나아갈 때 자기중심 사고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 시집에서 핵심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존재(자)'를 들 수 있다. 존재(being)는 인간에게 본래 결여된 것이어서 '존재자'와의 혼란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 존재란 아직 그 무엇도 수행하지 않고 가만히 지속하는 상태, 즉 시인이 유령의 목소리를 빌려서 썼듯이 "발이 필요해"(「내막」)라고 말하는 상태 같은 것이다. 이 발화자는 지금 "뭔가를 딛고" 서 있고 싶지만 발이 없어서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유령은 자명한 존재자일 수가 없다. 발의 필요성을 발언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관점으로는 발이 결핍된 존재다. 이 같은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발로 무언가를 딛고 서 있다면 유령은 전혀 다른 존재자로 전환할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부단히 정체성을 찾아 나가면서 존재의 전환을 꿈꾼다. 새로운 세계를 얻으려면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변도 자신이 마련해야 한다. 성장하는 동안에 경험했으나 지금은 잊어버린 이야기들, 그래서 캄캄한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을 현재화하면서 오롯한 나 되기의 시 쓰기 수행을 이어간다. 이 시인에게 글쓰기는 주체를 부단히 되묻는 일과 분리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능력으로 그것은 지속된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거울 단계를 거쳐왔으나 그때의 기억이나 상황을 온전히 복구할 수는 없다. 거울 앞에서 어느 날 자아를 발견하게 된 아이가 그간의 무지와 숱한 의심을 거쳐 거울상과의 동일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는 심리학 이론을 근간으로 자아 형성의 계기를 추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출발 지점과 귀환 지점이 똑같이 자신이라 해도 좋을 전영미 시에서 주체는 세계 속으로 부단히 뛰어드는 자아 분열체로 언표된다. 그래서 이들은 늘 움직인다. 타자화한 자신을 직관할 때에야 주체성이 생기는 것이어서 움직이지 않는 자는 이것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세계 속에 자신을 세워 놓고 하나의 풍경이 된 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서시 격인 「배웅」에서 시인은 흔들리는 삶의 조건과 거기에 더해진 슬픔을 묘파하면서 주체의 배웅 행위가 결코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집을 나선다
빈 새장을 열어주고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화분에 물을 주고는
깊은 밤 속으로
길가 버드나무가 잠깐 흔들린다
뒷골목을 지나 공원을 돌아 호숫가까지 걸어간다
슬픔아,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지?
호수에 잠긴 수초를 오래 바라본다
물에는 앉을 데가 없다
나의 귀가는
어제보다 더 늦을 것이다
- 「배웅」 전문
이 같은 배웅 행위는 슬픔을 영영 떠나보내려는 것이 아니다. 여하한 이유가 있어서 슬픔을 슬픔에게 잠시 돌려보내거나 맡겨두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탁 행위가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면 슬픔의 연원을 모를 턱이 없다. 그런데 시 현실에서는 그 이유가 표면화되지 않는다. 화자는 새장에 가둬 두었던 새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주고, 텅 빈 것들뿐인 사물들에 듬뿍 물을 채워준 후 집을 나선다. 바깥 세계인 호수를 슬픔이 출렁거리는 장소로 지정한 것을 보면 집과 호수 사이에는 단절할 수 없는 연속성이 있다. 슬픔이 혼자 갈 수 있을 만큼의 장소에서 배웅하고 있으나 이러한 행위는 이후에 다시 슬픔을 마중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러면서 그는 "호수에 잠긴 수초"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자신을 타자화한다. 바깥 세계에는 호수만 한 슬픔이 고여 있어서 '쉴 만한 물가'라고 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슬픔에 겨운 자. 집을 나서기 전에 빈 욕조, 빈 화분에 물을 채워 넣어 마를 날 없는 슬픔이 삶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자. 그가 이 시의 화자다. 삶에 깊이 배여 있는 슬픔은 빈 용기에 물을 채워 넣는 행위로, 다시금 슬픔을 만나야 하는 일은 늦은 귀가 시간을 예정해 두는 것으로 표명된다.
우리네 삶에는 불가항력의 조건이 있고 그중 슬픔은 깊이를 알 수도 없고 마를 날도 없다는 점을 이 시는 시사한다. 자신에게 부과된 슬픔이 내내 삶을 관통하고 있어서 그는 그것을 고스란히 승인해야 한다. 이 세계에 던져지기 전으로 소급해 가는 능력의 소지자가 아닌 한 그는 슬픔이 삶의 조건이 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부조리한 것은, 삶은 슬프다는 인식에 어떤 근거를 댈 것인지조차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슬픔은 기쁨과 차이가 있는 감정이지만 이것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그 이유를 끝없이 알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되었다면서 안도하기도 한다. 화자가 집에서 데리고 나온 슬픔을 더 큰 슬픔에게로 배웅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이후 귀갓길에 마중할 슬픔의 얼굴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 슬픔을 삶의 조건으로 승인하는 것이 일상임을 천명하면서 시인은 「어떤 안내문」에서 주체가 처한 "지금 여기"(now-here)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질문하기에 이른다. 이 시는 영문도 모른 채 홀로 기투되어 이 세계의 고아로 살아가는 모든 실존재, 즉 "당신"들에 관한 말하기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제1부
배웅ㆍ13/어떤 안내문ㆍ14/마임ㆍ16/논픽션ㆍ18/데칼코마니ㆍ20/나만의 필살기ㆍ21/내막ㆍ22/아직도 모르겠니ㆍ24/또 다른 내막ㆍ26/고독ㆍ27/어디에도 없는 그릇ㆍ28/예언ㆍ30/거기, 누구세요?ㆍ 32/미학ㆍ34/축제 그리고ㆍ36/머나먼ㆍ38/망각과 프렉탈ㆍ40/혼선ㆍ42
제2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ㆍ45/혼잣말ㆍ46/내밀한 일들ㆍ48/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ㆍ50/치부ㆍ52/꽃의 순간ㆍ53/마리아나 해구ㆍ54/카메라를 들고ㆍ56/전언ㆍ58/사라진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ㆍ60/누군가 나를 불렀다ㆍ62/사실ㆍ63/낙타에겐 미안하지만ㆍ64/혼선 2ㆍ66/출구ㆍ68/기억을 찾습니다ㆍ70/덧칠된ㆍ72
제3부
초식동물ㆍ75/그려지지 않는 풍경ㆍ76/시선ㆍ78/비법이라면 비법ㆍ80/자화상ㆍ82/군락지ㆍ83/그림자를 위한 자장가ㆍ84/아무것도 모르고ㆍ86/봄밤ㆍ88/고시원ㆍ89/건조ㆍ90/십 대ㆍ92/다큐ㆍ94/진작 그랬어야 했는데ㆍ95/조율ㆍ96/우리는 다른 손이 필요해ㆍ98/또 다른 다큐ㆍ100
해설 김효숙(문학평론가)ㆍ101
배웅ㆍ13/어떤 안내문ㆍ14/마임ㆍ16/논픽션ㆍ18/데칼코마니ㆍ20/나만의 필살기ㆍ21/내막ㆍ22/아직도 모르겠니ㆍ24/또 다른 내막ㆍ26/고독ㆍ27/어디에도 없는 그릇ㆍ28/예언ㆍ30/거기, 누구세요?ㆍ 32/미학ㆍ34/축제 그리고ㆍ36/머나먼ㆍ38/망각과 프렉탈ㆍ40/혼선ㆍ42
제2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ㆍ45/혼잣말ㆍ46/내밀한 일들ㆍ48/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ㆍ50/치부ㆍ52/꽃의 순간ㆍ53/마리아나 해구ㆍ54/카메라를 들고ㆍ56/전언ㆍ58/사라진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ㆍ60/누군가 나를 불렀다ㆍ62/사실ㆍ63/낙타에겐 미안하지만ㆍ64/혼선 2ㆍ66/출구ㆍ68/기억을 찾습니다ㆍ70/덧칠된ㆍ72
제3부
초식동물ㆍ75/그려지지 않는 풍경ㆍ76/시선ㆍ78/비법이라면 비법ㆍ80/자화상ㆍ82/군락지ㆍ83/그림자를 위한 자장가ㆍ84/아무것도 모르고ㆍ86/봄밤ㆍ88/고시원ㆍ89/건조ㆍ90/십 대ㆍ92/다큐ㆍ94/진작 그랬어야 했는데ㆍ95/조율ㆍ96/우리는 다른 손이 필요해ㆍ98/또 다른 다큐ㆍ100
해설 김효숙(문학평론가)ㆍ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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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미
대구에서 태어나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23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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