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는 말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말이다(시인동네 시인선 240)
최성규 시집
Regular price
$13.48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관계라는 폐허로부터 구원받는 기적으로서의 시 쓰기
2018년 《예술세계》로 등단한 최성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보고 싶다는 말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말이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240으로 출간되었다. 최성규의 시는 인간성에 크나큰 신뢰를 부여하면서 혈연적 유대의 긴밀성을 보여준다. 또한 일견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의미를 살펴 그 소중한 가치를 펼쳐 보여준다. 이는 삶의 가장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것이 혈육이자 이웃이고, 삶의 의미는 어떤 초월 상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그의 성정에서 비롯된다. 최성규의 시는 현대인이 주목해야 할 존재와 대상, 의미가 어디서 찾아지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2018년 《예술세계》로 등단한 최성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보고 싶다는 말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말이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240으로 출간되었다. 최성규의 시는 인간성에 크나큰 신뢰를 부여하면서 혈연적 유대의 긴밀성을 보여준다. 또한 일견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의미를 살펴 그 소중한 가치를 펼쳐 보여준다. 이는 삶의 가장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것이 혈육이자 이웃이고, 삶의 의미는 어떤 초월 상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그의 성정에서 비롯된다. 최성규의 시는 현대인이 주목해야 할 존재와 대상, 의미가 어디서 찾아지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해설 엿보기
생의 현장이라는 거친 금속은 연금술사와도 같은 최성규 시인의 사유와 몸(감각)을 관통해 비로소 가치를 발하는 시(황금)가 되어간다. 그는 세상을 채운 수많은 잡음 속에 들려오는 순수한 소리야말로 그 음향이 낮고 작더라도 두드러지기 마련임을 알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시와 시인이 자연과 인간의 자리에서 이탈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색한 후, 과학기술의 성과물 중 하나인 3D 프린팅을 통해 무엇이든 제작 가능하다는 믿음이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는다. 시인은 공들여 구상하고 제작한 뒤 장식하여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완성'도 아니며 '시'가 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발레리가 강조한 것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살아 있지 않은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살아 있는 자연은 우리가 형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배치되거나 제작될 수 없듯이, 살아 있는 인간 역시 매일 주어지는 유기적 생산물 속에서 그 삶의 나이테를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성규의 시는 "멸치 떼처럼, 더러는 한 마리의 대왕고래처럼, 설산(雪山)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처럼"(정윤천, 「'멸치 꽃'을 피워내려는 응시의 자세에서 태어나는 노래들」,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 詩와 에세이, 2020, 105쪽) 다가오는 일상의 유기적 생산물을 침전시켜 고통 끝에 진주를 탄생시키는 조개껍질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최성규는 점액이 함유된 일상의 유기적 생산물과 시의 힘을 믿는 순수한 열정과 사유를 시의 내벽에 번갈아 덧발라 시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시편은 노을과 무지개, 푸른 파도와 나무와 꽃의 소리마저 생생하게 품은 해변의 조개껍질처럼 여러 색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가 일상을 품는다는 것은, 믿어왔던 어떠한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기도 하고 일상에 붙어 있는 '오염된 말'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대의 '말'이 "밤새 내리는 폭설처럼 수북하다가도/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먼 곳에서 오는 말」)는 존재임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가 관념이나 주장, 인습으로부터 각보(却步)하여 일상과 소소함을 다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우리 시대의 육성 그 자체일 수도 있고 현실적 상황에 응전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것일 터이다. 이런 명제들을 참고한다면, 그는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시를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새로움을 위해 매일 "보고 들은 말들을 지워"(「배롱에 널어둔 말」)가며 시를 써가고, 그의 시는 "아슬아슬 생명의 詩"(「우크라이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이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말의 체온은/한겨울에도 빙하처럼 얼지 않는다"(「먼 곳에서 오는 말」)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최성규는 '있을 수 없는 일', '집 짓는 일'을 다루고 '웃는 일'이나 '잠자는 일', '걷는 일'같이 당연하고 소소한 일을 다루기도 한다. '의자가 하는 일'이나 '봄의 일'같이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의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것은 시란 이처럼 외떨어져 놓인 기념물(monuments)이 아니라 "둘이서 함께 살아갈 섬 하나를 갖는" 일이다. '섬'에 '나'와 나란히 누워 있는 '너'와 '시'에 대한 그의 소원은 매우 소박하여 "서로가 조금씩 아껴둔 말들을 모아/귓속말 같은 편지를 소곤소곤 쓰는 일이고/하루 종일 편지를 기다리는 우편함 같은/순진한 눈동자를 대문 밖에 걸어 두는 일"이 될 뿐이다. 언젠가 "발신인도 수취인도 언젠가 모두 시간 여행을 떠나겠지만/함께 살았던 집만큼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서/대문을 활짝 열어두고/서로를 약속처럼 기다리는 일"(「집 짓는 일」)이 시인에게는 시의 자리이자 삶이 된다. 따라서 그의 시는 일상의 '정면도(正面圖)'이면서 '단면도(斷面圖)'이고, 누군가의 삶과 닮아 있는 '복사도(複寫圖)'이면서 '상세도(詳細圖)'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곡선일 수도 있으며 "곡선이 존재하지 않는 직선의 공간"(「스파이더맨의 일기」)으로 다가와 "냉정한 도시의 치열한 습성을 배우게"(「특집 다큐」)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성규는 일상의 오염된 단어와 정련을 거치지 않은 사유가 쏟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보고 들은 말들을 지워야겠다
지난밤 비린내 나는 말들의 꼬리를 잘라야겠다
이빨 빠진 말들의 가벼운 속성
부질없이 내두른 아가미를 끄집어내어
단칼에 베어버려야겠다
속아 넘어간 두 귀를 모두 끊어버려야겠다
짐승의 말을 했다는 사람을 미워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짐승의 몸부림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으리라 짐작하므로
혓바늘처럼 돋아나는 성난 마음 대신
꼿꼿하게 견디며 사는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자
이 말 저 말 가지마다 흔들거리는 소문을 묶어
밤새도록 가슴 깊이 가라앉혔다가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
배롱(焙籠)에 널어둔 젖은 말들이 마를 때까지
수다스러운 말들을 향기로 바꿀 줄 아는 나무가 되자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임을 믿는다
길을 나서는 일은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토막 난 말들의 환청이 따라오지 않게
시속으로 달리고 초속으로 날려 버린다
사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꽃과 짐승들처럼
사람의 말은 괜히 쓸데없다는 묵언 하나만 빼고
다녀온 길 전부를 지워버린다
- 「배롱에 널어둔 말」 전문
시인은 "이빨 빠진 말들의 가벼운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지난밤 비린내 나는 말들의 꼬리를" 단칼에 베어버린다. "속아 넘어간 두 귀를 모두 끊어"내고 "혓바늘처럼 돋아나는 성난 마음 대신" 꼿꼿하게 견디며 사는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 한다. 시인은 "밤새도록 가슴 깊이 가라앉혔다가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처럼 "수다스러운 말들을 향기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임을" 굳건히 믿는 연금술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보고 들은 말들"과 "짐승의 말"도 시인의 정련을 거치면 '향기'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과 짐승은 사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러한 "토막 난 말들의 환청이 따라오지 않게" 인간의 말에서 "묵언 하나만 빼고/다녀온 길 전부를 지워"버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일 수 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꽃과 짐승"의 언어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시인과 시가 가야 할 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에게 시란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꽃이라 생각하고/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꽃밭을 어떻게 가꾸고 다듬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밤새도록 詩를 쓰는 임무"(「우크라이나」)를 이어나가려 하는 것이다.
- 염선옥(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갑자기 너의 맨얼굴이 보고 싶었다. 낯설게 하기로 예뻐 보이는 얼굴이 아닌 방금 세수를 마치고 나온 촉촉하고 뽀얀 순수함이 가득 묻어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슬픔이 나를 넘어뜨리려 할 때마다 작고 초라한 너의 몸짓조차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너.
결핍이 차고 넘치는 밤이 계속될수록 궁핍한 나의 언어들은 너의 단추를 풀어 숨겨진 알몸을 더듬고 싶었다. 너의 가장 깊숙한 곳, 뜨거운 샘물이 솟아나는 그곳에서 나의 언어들을 씻겨 깨끗한 알을 낳고 싶었다.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언어, 아주 먼 곳에서 오는 언어들만 키우며 네 속에서 살고 싶었다
생의 현장이라는 거친 금속은 연금술사와도 같은 최성규 시인의 사유와 몸(감각)을 관통해 비로소 가치를 발하는 시(황금)가 되어간다. 그는 세상을 채운 수많은 잡음 속에 들려오는 순수한 소리야말로 그 음향이 낮고 작더라도 두드러지기 마련임을 알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시와 시인이 자연과 인간의 자리에서 이탈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색한 후, 과학기술의 성과물 중 하나인 3D 프린팅을 통해 무엇이든 제작 가능하다는 믿음이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는다. 시인은 공들여 구상하고 제작한 뒤 장식하여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완성'도 아니며 '시'가 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발레리가 강조한 것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살아 있지 않은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살아 있는 자연은 우리가 형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배치되거나 제작될 수 없듯이, 살아 있는 인간 역시 매일 주어지는 유기적 생산물 속에서 그 삶의 나이테를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성규의 시는 "멸치 떼처럼, 더러는 한 마리의 대왕고래처럼, 설산(雪山)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처럼"(정윤천, 「'멸치 꽃'을 피워내려는 응시의 자세에서 태어나는 노래들」,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 詩와 에세이, 2020, 105쪽) 다가오는 일상의 유기적 생산물을 침전시켜 고통 끝에 진주를 탄생시키는 조개껍질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최성규는 점액이 함유된 일상의 유기적 생산물과 시의 힘을 믿는 순수한 열정과 사유를 시의 내벽에 번갈아 덧발라 시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시편은 노을과 무지개, 푸른 파도와 나무와 꽃의 소리마저 생생하게 품은 해변의 조개껍질처럼 여러 색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가 일상을 품는다는 것은, 믿어왔던 어떠한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기도 하고 일상에 붙어 있는 '오염된 말'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대의 '말'이 "밤새 내리는 폭설처럼 수북하다가도/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먼 곳에서 오는 말」)는 존재임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가 관념이나 주장, 인습으로부터 각보(却步)하여 일상과 소소함을 다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우리 시대의 육성 그 자체일 수도 있고 현실적 상황에 응전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것일 터이다. 이런 명제들을 참고한다면, 그는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시를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새로움을 위해 매일 "보고 들은 말들을 지워"(「배롱에 널어둔 말」)가며 시를 써가고, 그의 시는 "아슬아슬 생명의 詩"(「우크라이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이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말의 체온은/한겨울에도 빙하처럼 얼지 않는다"(「먼 곳에서 오는 말」)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최성규는 '있을 수 없는 일', '집 짓는 일'을 다루고 '웃는 일'이나 '잠자는 일', '걷는 일'같이 당연하고 소소한 일을 다루기도 한다. '의자가 하는 일'이나 '봄의 일'같이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의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것은 시란 이처럼 외떨어져 놓인 기념물(monuments)이 아니라 "둘이서 함께 살아갈 섬 하나를 갖는" 일이다. '섬'에 '나'와 나란히 누워 있는 '너'와 '시'에 대한 그의 소원은 매우 소박하여 "서로가 조금씩 아껴둔 말들을 모아/귓속말 같은 편지를 소곤소곤 쓰는 일이고/하루 종일 편지를 기다리는 우편함 같은/순진한 눈동자를 대문 밖에 걸어 두는 일"이 될 뿐이다. 언젠가 "발신인도 수취인도 언젠가 모두 시간 여행을 떠나겠지만/함께 살았던 집만큼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서/대문을 활짝 열어두고/서로를 약속처럼 기다리는 일"(「집 짓는 일」)이 시인에게는 시의 자리이자 삶이 된다. 따라서 그의 시는 일상의 '정면도(正面圖)'이면서 '단면도(斷面圖)'이고, 누군가의 삶과 닮아 있는 '복사도(複寫圖)'이면서 '상세도(詳細圖)'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곡선일 수도 있으며 "곡선이 존재하지 않는 직선의 공간"(「스파이더맨의 일기」)으로 다가와 "냉정한 도시의 치열한 습성을 배우게"(「특집 다큐」)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성규는 일상의 오염된 단어와 정련을 거치지 않은 사유가 쏟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보고 들은 말들을 지워야겠다
지난밤 비린내 나는 말들의 꼬리를 잘라야겠다
이빨 빠진 말들의 가벼운 속성
부질없이 내두른 아가미를 끄집어내어
단칼에 베어버려야겠다
속아 넘어간 두 귀를 모두 끊어버려야겠다
짐승의 말을 했다는 사람을 미워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짐승의 몸부림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으리라 짐작하므로
혓바늘처럼 돋아나는 성난 마음 대신
꼿꼿하게 견디며 사는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자
이 말 저 말 가지마다 흔들거리는 소문을 묶어
밤새도록 가슴 깊이 가라앉혔다가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
배롱(焙籠)에 널어둔 젖은 말들이 마를 때까지
수다스러운 말들을 향기로 바꿀 줄 아는 나무가 되자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임을 믿는다
길을 나서는 일은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토막 난 말들의 환청이 따라오지 않게
시속으로 달리고 초속으로 날려 버린다
사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꽃과 짐승들처럼
사람의 말은 괜히 쓸데없다는 묵언 하나만 빼고
다녀온 길 전부를 지워버린다
- 「배롱에 널어둔 말」 전문
시인은 "이빨 빠진 말들의 가벼운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지난밤 비린내 나는 말들의 꼬리를" 단칼에 베어버린다. "속아 넘어간 두 귀를 모두 끊어"내고 "혓바늘처럼 돋아나는 성난 마음 대신" 꼿꼿하게 견디며 사는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 한다. 시인은 "밤새도록 가슴 깊이 가라앉혔다가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처럼 "수다스러운 말들을 향기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임을" 굳건히 믿는 연금술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보고 들은 말들"과 "짐승의 말"도 시인의 정련을 거치면 '향기'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과 짐승은 사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러한 "토막 난 말들의 환청이 따라오지 않게" 인간의 말에서 "묵언 하나만 빼고/다녀온 길 전부를 지워"버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말이란 사람을 지키고 키워내는 것"일 수 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꽃과 짐승"의 언어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시인과 시가 가야 할 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에게 시란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꽃이라 생각하고/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꽃밭을 어떻게 가꾸고 다듬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밤새도록 詩를 쓰는 임무"(「우크라이나」)를 이어나가려 하는 것이다.
- 염선옥(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갑자기 너의 맨얼굴이 보고 싶었다. 낯설게 하기로 예뻐 보이는 얼굴이 아닌 방금 세수를 마치고 나온 촉촉하고 뽀얀 순수함이 가득 묻어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슬픔이 나를 넘어뜨리려 할 때마다 작고 초라한 너의 몸짓조차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너.
결핍이 차고 넘치는 밤이 계속될수록 궁핍한 나의 언어들은 너의 단추를 풀어 숨겨진 알몸을 더듬고 싶었다. 너의 가장 깊숙한 곳, 뜨거운 샘물이 솟아나는 그곳에서 나의 언어들을 씻겨 깨끗한 알을 낳고 싶었다.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언어, 아주 먼 곳에서 오는 언어들만 키우며 네 속에서 살고 싶었다
목차
목차
제1부
있을 수 없는 일ㆍ13/집 짓는 일ㆍ14/웃는 일ㆍ16/잠자는 일ㆍ17/의자가 하는 일ㆍ18/걷는 일ㆍ20/봄의 일ㆍ21/詩ㆍ22/결정적 배설ㆍ23/나의 사랑은ㆍ24/고양이ㆍ25/달랑ㆍ26/낮잠ㆍ28/그리움을 듣는 시간ㆍ29/먼 곳에서 오는 말ㆍ30/틈의 속성ㆍ32
제2부
충전ㆍ35/일러두기를 일러두지 못함ㆍ36/즐겨찾기ㆍ38/정면도(正面圖)ㆍ40/단면도(斷面圖)ㆍ41/그쪽ㆍ42/키보드 온 더 락ㆍ44/복사도(複寫圖)ㆍ46/상세도(詳細圖)ㆍ48/나를 데리고 간다ㆍ50/배롱에 널어둔 말ㆍ52/말도 안 되는 말ㆍ54/반생이 묶는 법ㆍ55/우크라이나ㆍ56/귀의 울타리ㆍ58/핵 버튼을 누르고 싶다ㆍ60
제3부
시집의 무게ㆍ63/망루ㆍ64/베고니아에게 묻다ㆍ66/잘못 뽑았다ㆍ68/반죽의 두 번째 의미ㆍ69/엑스맨 무상 교환 서비스ㆍ70/짝ㆍ72/뜸 들이기ㆍ74/스파이더맨의 일기ㆍ75/특집 다큐ㆍ76/마지막 세일ㆍ78/원더우먼 블루스ㆍ80/잠ㆍ82/이쯤에서ㆍ84/앤트맨ㆍ86
제4부
토란꽃이 피면ㆍ89/비가 오기로 한 날ㆍ90/별이 취하는 밤ㆍ92/물의 그물ㆍ93/자세한 편두통ㆍ94/진눈깨비ㆍ96/비어 있는 집ㆍ98/광명으로 가는 편지ㆍ99/귀뚜라미의 받아쓰기ㆍ100/시인과 모기ㆍ102/방습제ㆍ103/환절기ㆍ104/수술대에 오르다ㆍ106/노인과 개ㆍ108
해설 염선옥(문학평론가)ㆍ109
있을 수 없는 일ㆍ13/집 짓는 일ㆍ14/웃는 일ㆍ16/잠자는 일ㆍ17/의자가 하는 일ㆍ18/걷는 일ㆍ20/봄의 일ㆍ21/詩ㆍ22/결정적 배설ㆍ23/나의 사랑은ㆍ24/고양이ㆍ25/달랑ㆍ26/낮잠ㆍ28/그리움을 듣는 시간ㆍ29/먼 곳에서 오는 말ㆍ30/틈의 속성ㆍ32
제2부
충전ㆍ35/일러두기를 일러두지 못함ㆍ36/즐겨찾기ㆍ38/정면도(正面圖)ㆍ40/단면도(斷面圖)ㆍ41/그쪽ㆍ42/키보드 온 더 락ㆍ44/복사도(複寫圖)ㆍ46/상세도(詳細圖)ㆍ48/나를 데리고 간다ㆍ50/배롱에 널어둔 말ㆍ52/말도 안 되는 말ㆍ54/반생이 묶는 법ㆍ55/우크라이나ㆍ56/귀의 울타리ㆍ58/핵 버튼을 누르고 싶다ㆍ60
제3부
시집의 무게ㆍ63/망루ㆍ64/베고니아에게 묻다ㆍ66/잘못 뽑았다ㆍ68/반죽의 두 번째 의미ㆍ69/엑스맨 무상 교환 서비스ㆍ70/짝ㆍ72/뜸 들이기ㆍ74/스파이더맨의 일기ㆍ75/특집 다큐ㆍ76/마지막 세일ㆍ78/원더우먼 블루스ㆍ80/잠ㆍ82/이쯤에서ㆍ84/앤트맨ㆍ86
제4부
토란꽃이 피면ㆍ89/비가 오기로 한 날ㆍ90/별이 취하는 밤ㆍ92/물의 그물ㆍ93/자세한 편두통ㆍ94/진눈깨비ㆍ96/비어 있는 집ㆍ98/광명으로 가는 편지ㆍ99/귀뚜라미의 받아쓰기ㆍ100/시인과 모기ㆍ102/방습제ㆍ103/환절기ㆍ104/수술대에 오르다ㆍ106/노인과 개ㆍ108
해설 염선옥(문학평론가)ㆍ109
저자
저자
최성규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다. 2018년 《예술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가 있다. 경기노동문화제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언덕〉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