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발성법(시인동네 시인선 250)
박완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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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의 시를 읽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박완호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나무의 발성법』이 시인동네 시인선 250으로 출간되었다. 박완호는 시인이자 현존재로서 날카롭게 감각을 벼리면서 시대 인식에 대한 균형도 잃지 않는다. 굴곡진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반응해 온 안티 감각을 자연 표상, 정신 표상, 현실 표상 등을 통하여 매우 심리적으로 담아낸다. 이 시집에는 시대가 위독한데도 입을 닫은 채 일신의 아픔에 몰두하는 방관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던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언어는 한 알의 씨앗에서 발아한다. 그 후 온갖 부조리와 갈등에 직면하고, 혹독한 삶을 감내하면서도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서게 된 박완호 시인의 성체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박완호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나무의 발성법』이 시인동네 시인선 250으로 출간되었다. 박완호는 시인이자 현존재로서 날카롭게 감각을 벼리면서 시대 인식에 대한 균형도 잃지 않는다. 굴곡진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반응해 온 안티 감각을 자연 표상, 정신 표상, 현실 표상 등을 통하여 매우 심리적으로 담아낸다. 이 시집에는 시대가 위독한데도 입을 닫은 채 일신의 아픔에 몰두하는 방관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던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언어는 한 알의 씨앗에서 발아한다. 그 후 온갖 부조리와 갈등에 직면하고, 혹독한 삶을 감내하면서도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서게 된 박완호 시인의 성체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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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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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이전의 유습을 부수는 시인만이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다. 견고한 것을 녹여 새로운 조형을 구상하는 자가 빚어낼 언어는 이전 것을 녹이는 용광로를 거친다. 비유컨대 그 용광로가 박완호 시인에게는 '반골'이라는 안티 감각이 아닐까 한다. 그의 가슴에 무엇이 들끓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 볼 때 그것이 뜨거운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언제부터인지 나에게서 반골이 보이지 않는다 툭하면 욱, 터지기 직전에 머물고 마는 중년만 덩그러니 남고 더 멀고 깊은 곳을 바라보던 나의 반골이 떠나가고 말았다 반골이 비어가는 시인을 떠난 시가 서둘러 시야를 벗어나려 한다 달아나는 말을 붙잡으려면 주저앉은 반골의 척추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야 한다 공연히 두근대는 첫발을 어디로든 내딛어야만 한다 저 너머로 치달으려는 마음을 무어로도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 눈앞에 떠오르는 신기루의 벽을 무너뜨리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끝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 「반골」 전문
이 시는 골격과 뼈대가 선명하다. 그 뼈대가 사라졌거나 주저앉았다며 불끈 의지를 다지는 화자가 여기에 있다. 여하한 경우에도 그는 "두근대는 첫발"을 내디디려 한다. 생명이 약동하는 심장을 가진 자, 눈앞의 이익에 몰수되지 않는 의식의 소유자, 눈앞의 세계가 "신기루"에 갇힌 듯 모호할지라도 저 너머를 향한 모색을 멈추지 않는 자,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 중에 이 세계의 본질과 현상을 직관하는 자. 이를 두고 시인은 반골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점이 청년 시절에 지녔던 가치에 머물지 않고 이제 다시금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이 시에 담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심장이 뜨겁던 시절에는 그도 예외 없이 이상의 현실화가 가능한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다. 다음 시만 보더라도 이 세계는 가슴이 뜨거운 자가 그리는 풍경처럼 열정적인 꿈틀거림으로 가득 차 있다.
백색의 군대가 들이닥쳤다. 잇단음표를 달고 고꾸라지는 파도의 단말마. 어둠과 빛의 경계를 한순간에 허물어가며 흩날리는 눈발 속 비릿하게 주저앉는 철조망들. 느닷없는 공습에 치명상을 입은 수식어들이 방어선 너머로 쫓겨나고 있었다. 공중은 갈 데 없는 발길들이 머물 만한 곳이 못 되었다. 흐트러진 오열을 손보기 전에 서둘러 빈자리를 메워가는 점령군들. 금방 뒤집히고 말 이념에 매달린 혁명가들이 극단에 서서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디가 뭍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에서 모래알 같은 사상들이 거품을 물고 지워지고 있었다. 홀로 반짝이는 것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 꽃을 피워내고, 어느 쪽이든 끝자락에 버티고 선 것들만이 발화(發花)되지 않는 가지를 고집스럽게 흔들어댔다. 비틀거리는 공기 속, 떠나간 사람의 그림자가 앉아 있는 모래언덕을 쳐다보며 서 있는 사내가 젖은 정어리 등처럼 잠깐 반짝거린 것도 같았다.
- 「겨울 경포」 전문
우리의 상식선 바깥에 겨울 바다의 풍경을 걸어 놓았다. 푸르고 아름답고 깊은 그 바다에 마음을 맡겨놓은 채 망연히 감상하고 싶은 자라면 이 시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군대·공습·점령군·이념·혁명가·사상 같은 개념어가 작금의 현실을 하나씩 일깨우는 것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인의 군 복무 시기를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는 이 시가 우리를 잡아당기는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의 가슴이 뜨겁던 시절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유로 말해야 할 것과 직설의 틈 사이에 이성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가 혼재한다. 이성의 시대를 지나온 자가 다시금 그 이성에 포위된 상황에서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면 "모래알 같은 사상들이 거품을 물고 지워지"는 풍경이 그의 이상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이전의 유습을 부수는 시인만이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다. 견고한 것을 녹여 새로운 조형을 구상하는 자가 빚어낼 언어는 이전 것을 녹이는 용광로를 거친다. 비유컨대 그 용광로가 박완호 시인에게는 '반골'이라는 안티 감각이 아닐까 한다. 그의 가슴에 무엇이 들끓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 볼 때 그것이 뜨거운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언제부터인지 나에게서 반골이 보이지 않는다 툭하면 욱, 터지기 직전에 머물고 마는 중년만 덩그러니 남고 더 멀고 깊은 곳을 바라보던 나의 반골이 떠나가고 말았다 반골이 비어가는 시인을 떠난 시가 서둘러 시야를 벗어나려 한다 달아나는 말을 붙잡으려면 주저앉은 반골의 척추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야 한다 공연히 두근대는 첫발을 어디로든 내딛어야만 한다 저 너머로 치달으려는 마음을 무어로도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 눈앞에 떠오르는 신기루의 벽을 무너뜨리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끝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 「반골」 전문
이 시는 골격과 뼈대가 선명하다. 그 뼈대가 사라졌거나 주저앉았다며 불끈 의지를 다지는 화자가 여기에 있다. 여하한 경우에도 그는 "두근대는 첫발"을 내디디려 한다. 생명이 약동하는 심장을 가진 자, 눈앞의 이익에 몰수되지 않는 의식의 소유자, 눈앞의 세계가 "신기루"에 갇힌 듯 모호할지라도 저 너머를 향한 모색을 멈추지 않는 자,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 중에 이 세계의 본질과 현상을 직관하는 자. 이를 두고 시인은 반골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점이 청년 시절에 지녔던 가치에 머물지 않고 이제 다시금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이 시에 담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심장이 뜨겁던 시절에는 그도 예외 없이 이상의 현실화가 가능한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다. 다음 시만 보더라도 이 세계는 가슴이 뜨거운 자가 그리는 풍경처럼 열정적인 꿈틀거림으로 가득 차 있다.
백색의 군대가 들이닥쳤다. 잇단음표를 달고 고꾸라지는 파도의 단말마. 어둠과 빛의 경계를 한순간에 허물어가며 흩날리는 눈발 속 비릿하게 주저앉는 철조망들. 느닷없는 공습에 치명상을 입은 수식어들이 방어선 너머로 쫓겨나고 있었다. 공중은 갈 데 없는 발길들이 머물 만한 곳이 못 되었다. 흐트러진 오열을 손보기 전에 서둘러 빈자리를 메워가는 점령군들. 금방 뒤집히고 말 이념에 매달린 혁명가들이 극단에 서서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디가 뭍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에서 모래알 같은 사상들이 거품을 물고 지워지고 있었다. 홀로 반짝이는 것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 꽃을 피워내고, 어느 쪽이든 끝자락에 버티고 선 것들만이 발화(發花)되지 않는 가지를 고집스럽게 흔들어댔다. 비틀거리는 공기 속, 떠나간 사람의 그림자가 앉아 있는 모래언덕을 쳐다보며 서 있는 사내가 젖은 정어리 등처럼 잠깐 반짝거린 것도 같았다.
- 「겨울 경포」 전문
우리의 상식선 바깥에 겨울 바다의 풍경을 걸어 놓았다. 푸르고 아름답고 깊은 그 바다에 마음을 맡겨놓은 채 망연히 감상하고 싶은 자라면 이 시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군대·공습·점령군·이념·혁명가·사상 같은 개념어가 작금의 현실을 하나씩 일깨우는 것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인의 군 복무 시기를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는 이 시가 우리를 잡아당기는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의 가슴이 뜨겁던 시절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유로 말해야 할 것과 직설의 틈 사이에 이성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가 혼재한다. 이성의 시대를 지나온 자가 다시금 그 이성에 포위된 상황에서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면 "모래알 같은 사상들이 거품을 물고 지워지"는 풍경이 그의 이상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제1부
그림자의 그림자로라도ㆍ13/황홀, 가난한ㆍ14/도산검림(刀山劍林)ㆍ16/달동네 쪽방살이ㆍ18/봄의 무반주를 듣다ㆍ20/겨울 경포ㆍ21/시인ㆍ22/번지점프ㆍ24/달동네 집 찾기ㆍ26/게릴라ㆍ28/반골ㆍ29/나무의 발성법ㆍ30/고요에 관해 말하기까지는ㆍ32/달팽이관ㆍ34
제2부
설국에서 온 전언ㆍ37/공중의 완성ㆍ38/산문 닫힌 저녁ㆍ40/종이에 살을 베이다가ㆍ41/양팔 문신ㆍ42/초저녁 슬픔ㆍ44/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ㆍ45/나의 국어 선생은ㆍ46/꿈 마실ㆍ48/앉은뱅이책상ㆍ49/오후의 감정ㆍ50/울음의 관찰ㆍ52/꿈꾸는 유모차ㆍ53/왼편이 아프다ㆍ54/훗날의 꿈ㆍ56
제3부
고드름ㆍ59/기린ㆍ60/새를 하시겠어요?ㆍ62/그건 내가 아니었다, 고ㆍ64/그림자 말씨ㆍ66/백할미새ㆍ67/고양이의 변주ㆍ68/되게 헐거워져서ㆍ70/노숙ㆍ72/혓바늘ㆍ74/가문 겨울밤의 노래ㆍ76/천일취ㆍ77/끝말이 멋진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은ㆍ78/달리,ㆍ80
제4부
미괄식으로 꽃피고 싶다ㆍ83/비껴가는 나무들처럼ㆍ84/별빛ㆍ86/인공 슬픔ㆍ88/읽다 만 책ㆍ90/흰 달ㆍ91/죽은 염소를 생각하다ㆍ92/홀수ㆍ94/다른, 얼룩말 편들기ㆍ96/홍매화는 피려다 말고ㆍ98/쉰아홉ㆍ99/개소리에 대한 고찰ㆍ100/살구ㆍ102/너는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ㆍ103/맨 끄트머리ㆍ104
해설 김효숙(문학평론가)ㆍ105
그림자의 그림자로라도ㆍ13/황홀, 가난한ㆍ14/도산검림(刀山劍林)ㆍ16/달동네 쪽방살이ㆍ18/봄의 무반주를 듣다ㆍ20/겨울 경포ㆍ21/시인ㆍ22/번지점프ㆍ24/달동네 집 찾기ㆍ26/게릴라ㆍ28/반골ㆍ29/나무의 발성법ㆍ30/고요에 관해 말하기까지는ㆍ32/달팽이관ㆍ34
제2부
설국에서 온 전언ㆍ37/공중의 완성ㆍ38/산문 닫힌 저녁ㆍ40/종이에 살을 베이다가ㆍ41/양팔 문신ㆍ42/초저녁 슬픔ㆍ44/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ㆍ45/나의 국어 선생은ㆍ46/꿈 마실ㆍ48/앉은뱅이책상ㆍ49/오후의 감정ㆍ50/울음의 관찰ㆍ52/꿈꾸는 유모차ㆍ53/왼편이 아프다ㆍ54/훗날의 꿈ㆍ56
제3부
고드름ㆍ59/기린ㆍ60/새를 하시겠어요?ㆍ62/그건 내가 아니었다, 고ㆍ64/그림자 말씨ㆍ66/백할미새ㆍ67/고양이의 변주ㆍ68/되게 헐거워져서ㆍ70/노숙ㆍ72/혓바늘ㆍ74/가문 겨울밤의 노래ㆍ76/천일취ㆍ77/끝말이 멋진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은ㆍ78/달리,ㆍ80
제4부
미괄식으로 꽃피고 싶다ㆍ83/비껴가는 나무들처럼ㆍ84/별빛ㆍ86/인공 슬픔ㆍ88/읽다 만 책ㆍ90/흰 달ㆍ91/죽은 염소를 생각하다ㆍ92/홀수ㆍ94/다른, 얼룩말 편들기ㆍ96/홍매화는 피려다 말고ㆍ98/쉰아홉ㆍ99/개소리에 대한 고찰ㆍ100/살구ㆍ102/너는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ㆍ103/맨 끄트머리ㆍ104
해설 김효숙(문학평론가)ㆍ105
저자
저자
박완호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아내의 문신』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내 안의 흔들림』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한유성문학상, 경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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