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뼈(시인동네 시인선 256)
진동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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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년 만의 첫 시집을 펼치며
2005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진동영 시인의 첫 시집 『투명한 뼈』가 시인동네 시인선 256으로 출간되었다. 진동영의 시는 담백하고도 담담하게 사물들의 지속과 연쇄를 포착하며, 특유의 양식과 화법을 통해 탄탄한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셔터와 같이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하고, 병치시킴으로써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서사를 구성해 낸다. 그렇기에 진동영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의 연쇄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세계의 진리를 목격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시집에서 직접적인 감정의 언어적 표출이 없다 할지라도 그 공백을 통해 우리는 무궁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그와 같은 세계 내의 존재이기에, 빈자리는 공백의 부피를 초과하는 의미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진동영 시인의 첫 시집 『투명한 뼈』가 시인동네 시인선 256으로 출간되었다. 진동영의 시는 담백하고도 담담하게 사물들의 지속과 연쇄를 포착하며, 특유의 양식과 화법을 통해 탄탄한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셔터와 같이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하고, 병치시킴으로써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서사를 구성해 낸다. 그렇기에 진동영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의 연쇄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세계의 진리를 목격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시집에서 직접적인 감정의 언어적 표출이 없다 할지라도 그 공백을 통해 우리는 무궁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그와 같은 세계 내의 존재이기에, 빈자리는 공백의 부피를 초과하는 의미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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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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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시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묻는다면 여러 종류의 답변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질 것이다. 누군가는 시가 '문자'를 활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해 문장을 쓰는 능력이라 답할 것이고, 혹 누군가는 아무리 문장을 잘 쓴다 하여도 그 내면에 깃든 정서가 풍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답하며 정서의 풍요로움을 제시하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누군가는 시를 쓴다는 행위가 곧 타자와 소통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공감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답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은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언어화하여 내면의 정서를 풀어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분모를 가진다.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쓰는 이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란 결국 예술이기에, 개인의 천성과 기질, 지향에 따라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개별 시인들의 개성이라 논하며 그러한 개성들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문학사를 완성한다. 결국 문학이란 개별 시인들의 개성이 시간에 따라 누적되고 축적되어 온 역사이면서, 우리가 느낀 바를 온전히 언어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응전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이 답변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주관에 따른 순서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개별적인 시인들의 시적 세계를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어떤 기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로는 충분히 말해질 수 없었던 그 시적 진리의 파편을 일별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간의 단서를 덧붙여 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보는 일, 예컨대 '눈'이라고 답하고 싶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는 현상이나 사물을 목격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를 쓰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본다는 행위를 통해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에 있어 화자가 본 바를 진술한다는 것은 곧 그러한 대상과 나의 내면을 연결짓는 일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를 쓰는 일에서 자신이 목격한 세계를 진술하고 묘사하는 행위는 시인이 세계에 언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는 행위는 가장 근본적인 시적 계기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엉덩이가 간질간질한 봄날이었어
무덤 위에 앉아 흰나비를 잡으려고 했었지
언젠가 어느 생에선가 내 손가락과 닿았을 법한 긴 더듬이가 까딱했었지
내 엄지와 검지, 그리고 나비의 흰 날개, 딱 그만큼의 거리, 그만큼의 아지랑이가 날아올랐어
그때 절하듯 몸을 웅크리고 큰 똥을 누었어
똥은 이내 똬리를 풀고 뱀이 되어 풀숲으로 사라졌지
뱀이 지나쳐가 누웠다 일어난 풀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어
물결쳐 나가는 뱀과, 내 한 걸음의 보폭 딱 그만큼의 거리
가고 또 가고 가도 나는 계속 무덤을 휘휘 도는 제자리걸음이었어
오래된 무덤의 한쪽은 누가 베어 문 것같이 패여 있어 웃자란 엉겅퀴 마른 잔뿌리가 다 보였지
무덤의 단면에 손을 대자 오래 말라 있던 흙이 한숨처럼 주르르 흘러내렸지
- 「큰 똥을 누는 꿈」 전문
그러나 많은 시인들은 자신이 본 바를 솔직하게 말하기보다는, 그것을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현상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언술을 덧붙이곤 한다. 예컨대, 자신이 본 바의 특수함을 강조함으로써 보다 나은 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자신이 본 바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은 자신이 본 바를 부러 꾸미지 않더라도 너무나 상투적인 정서적 진술로 귀결되어 자신의 정서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라면 자신이 본 바에서 느낀 바를 정확하게 진술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이거나 혹은 그러한 불완전함을 차마 감내할 수 없기에 누군가의 언어를 반복함으로써 안정성을 추구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목격한 시적 계기의 순간을 비루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는 점에서 악수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본 바를 자신의 언어를 통해 비록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가감없이 서술하며, 그러한 서술로부터 자신의 내면에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감정적 편린을 풀어내는 일이 바로 서정의 본령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동영의 시는 서정시의 본령에 가깝고자 노력하면서도 다소간 이채로운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또한 여타의 서정시가 그러하듯 구체적이고 섬세한 관찰에서 출발해 시적 화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정서를 자기 외부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풀어내는 일련의 양식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채로운 것은 그가 좀처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서를 직접적인 언어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이는 그가 자신의 정서를 풀어내는 방식이 이미지들의 때로는 병렬적이고 때로는 직렬적인 연결을 통해 해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시에서, 특히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행간에서 그가 쓰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서술되지 않은 정서가 공백의 자리로 남음으로써, 우리는 그 공백으로부터 직접적인 언어 이상의 풍부한 시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이러한 방식은 마치 동양화에서 달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달을 그려내는, 혹은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사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양식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지훈(문학평론가)
시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묻는다면 여러 종류의 답변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질 것이다. 누군가는 시가 '문자'를 활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해 문장을 쓰는 능력이라 답할 것이고, 혹 누군가는 아무리 문장을 잘 쓴다 하여도 그 내면에 깃든 정서가 풍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답하며 정서의 풍요로움을 제시하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누군가는 시를 쓴다는 행위가 곧 타자와 소통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공감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답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은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언어화하여 내면의 정서를 풀어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분모를 가진다.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쓰는 이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란 결국 예술이기에, 개인의 천성과 기질, 지향에 따라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개별 시인들의 개성이라 논하며 그러한 개성들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문학사를 완성한다. 결국 문학이란 개별 시인들의 개성이 시간에 따라 누적되고 축적되어 온 역사이면서, 우리가 느낀 바를 온전히 언어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응전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이 답변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주관에 따른 순서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개별적인 시인들의 시적 세계를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어떤 기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로는 충분히 말해질 수 없었던 그 시적 진리의 파편을 일별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간의 단서를 덧붙여 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보는 일, 예컨대 '눈'이라고 답하고 싶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는 현상이나 사물을 목격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를 쓰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본다는 행위를 통해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에 있어 화자가 본 바를 진술한다는 것은 곧 그러한 대상과 나의 내면을 연결짓는 일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를 쓰는 일에서 자신이 목격한 세계를 진술하고 묘사하는 행위는 시인이 세계에 언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는 행위는 가장 근본적인 시적 계기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엉덩이가 간질간질한 봄날이었어
무덤 위에 앉아 흰나비를 잡으려고 했었지
언젠가 어느 생에선가 내 손가락과 닿았을 법한 긴 더듬이가 까딱했었지
내 엄지와 검지, 그리고 나비의 흰 날개, 딱 그만큼의 거리, 그만큼의 아지랑이가 날아올랐어
그때 절하듯 몸을 웅크리고 큰 똥을 누었어
똥은 이내 똬리를 풀고 뱀이 되어 풀숲으로 사라졌지
뱀이 지나쳐가 누웠다 일어난 풀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어
물결쳐 나가는 뱀과, 내 한 걸음의 보폭 딱 그만큼의 거리
가고 또 가고 가도 나는 계속 무덤을 휘휘 도는 제자리걸음이었어
오래된 무덤의 한쪽은 누가 베어 문 것같이 패여 있어 웃자란 엉겅퀴 마른 잔뿌리가 다 보였지
무덤의 단면에 손을 대자 오래 말라 있던 흙이 한숨처럼 주르르 흘러내렸지
- 「큰 똥을 누는 꿈」 전문
그러나 많은 시인들은 자신이 본 바를 솔직하게 말하기보다는, 그것을 특수하고도 예외적인 현상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언술을 덧붙이곤 한다. 예컨대, 자신이 본 바의 특수함을 강조함으로써 보다 나은 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자신이 본 바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은 자신이 본 바를 부러 꾸미지 않더라도 너무나 상투적인 정서적 진술로 귀결되어 자신의 정서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라면 자신이 본 바에서 느낀 바를 정확하게 진술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이거나 혹은 그러한 불완전함을 차마 감내할 수 없기에 누군가의 언어를 반복함으로써 안정성을 추구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목격한 시적 계기의 순간을 비루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는 점에서 악수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본 바를 자신의 언어를 통해 비록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가감없이 서술하며, 그러한 서술로부터 자신의 내면에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감정적 편린을 풀어내는 일이 바로 서정의 본령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동영의 시는 서정시의 본령에 가깝고자 노력하면서도 다소간 이채로운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또한 여타의 서정시가 그러하듯 구체적이고 섬세한 관찰에서 출발해 시적 화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정서를 자기 외부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풀어내는 일련의 양식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채로운 것은 그가 좀처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서를 직접적인 언어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이는 그가 자신의 정서를 풀어내는 방식이 이미지들의 때로는 병렬적이고 때로는 직렬적인 연결을 통해 해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시에서, 특히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행간에서 그가 쓰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서술되지 않은 정서가 공백의 자리로 남음으로써, 우리는 그 공백으로부터 직접적인 언어 이상의 풍부한 시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이러한 방식은 마치 동양화에서 달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달을 그려내는, 혹은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사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양식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지훈(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제1부
은행나무 아래ㆍ13/한가운데 생ㆍ14/새조개ㆍ15/질문들ㆍ16/매미ㆍ18/초파리ㆍ19/거미의 집ㆍ20/베타ㆍ22/지렁이ㆍ23/호박넝쿨의 젠탱글(Zentangle)ㆍ24/문어ㆍ26/개심사ㆍ27/화두ㆍ28/매미 2ㆍ30/새와 난간ㆍ31/수근관증후군(手筋管症候群)ㆍ32/산책ㆍ34/풀빵 이야기ㆍ35/개기월식ㆍ36/천장(天葬)ㆍ37/감자 파는 남자ㆍ38/리어카ㆍ40/폐업ㆍ41/오후의 농구장ㆍ42
제2부
귀가ㆍ45/한낮의 자판기ㆍ46/경계ㆍ47/춤ㆍ48/창(窓)ㆍ50/개나리ㆍ51/간판 없는 분식집ㆍ52/잘못 든 길ㆍ54/은행나무의 밤ㆍ55/만우절ㆍ56/달밤ㆍ58/동대문ㆍ59/사춘기ㆍ60/엇박자ㆍ62/고추잠자리ㆍ63/큰 똥을 누는 꿈ㆍ64/커피 타임ㆍ66/자전거 집ㆍ67/황하 공갈빵ㆍ68/달콤한 인생ㆍ70/한 생의 낮잠ㆍ71/아버지의 방에서ㆍ72/채소 파는 여자ㆍ74
제3부
파꽃ㆍ77/초파일ㆍ78/옥수동ㆍ79/모기ㆍ80/딸기ㆍ81/금ㆍ82/쥐며느리들ㆍ83/득음ㆍ84/석류ㆍ85/전어ㆍ86/달과 가로등ㆍ87/외통수ㆍ88/밥때ㆍ89/유월ㆍ90/전생ㆍ92/환장ㆍ93/양지빌라ㆍ94/야생동물보호구역ㆍ95/더덕 까는 노인ㆍ96/벚꽃과 비닐봉지ㆍ97/엉겅퀴와 개미ㆍ98
해설 임지훈(문학평론가)ㆍ99
은행나무 아래ㆍ13/한가운데 생ㆍ14/새조개ㆍ15/질문들ㆍ16/매미ㆍ18/초파리ㆍ19/거미의 집ㆍ20/베타ㆍ22/지렁이ㆍ23/호박넝쿨의 젠탱글(Zentangle)ㆍ24/문어ㆍ26/개심사ㆍ27/화두ㆍ28/매미 2ㆍ30/새와 난간ㆍ31/수근관증후군(手筋管症候群)ㆍ32/산책ㆍ34/풀빵 이야기ㆍ35/개기월식ㆍ36/천장(天葬)ㆍ37/감자 파는 남자ㆍ38/리어카ㆍ40/폐업ㆍ41/오후의 농구장ㆍ42
제2부
귀가ㆍ45/한낮의 자판기ㆍ46/경계ㆍ47/춤ㆍ48/창(窓)ㆍ50/개나리ㆍ51/간판 없는 분식집ㆍ52/잘못 든 길ㆍ54/은행나무의 밤ㆍ55/만우절ㆍ56/달밤ㆍ58/동대문ㆍ59/사춘기ㆍ60/엇박자ㆍ62/고추잠자리ㆍ63/큰 똥을 누는 꿈ㆍ64/커피 타임ㆍ66/자전거 집ㆍ67/황하 공갈빵ㆍ68/달콤한 인생ㆍ70/한 생의 낮잠ㆍ71/아버지의 방에서ㆍ72/채소 파는 여자ㆍ74
제3부
파꽃ㆍ77/초파일ㆍ78/옥수동ㆍ79/모기ㆍ80/딸기ㆍ81/금ㆍ82/쥐며느리들ㆍ83/득음ㆍ84/석류ㆍ85/전어ㆍ86/달과 가로등ㆍ87/외통수ㆍ88/밥때ㆍ89/유월ㆍ90/전생ㆍ92/환장ㆍ93/양지빌라ㆍ94/야생동물보호구역ㆍ95/더덕 까는 노인ㆍ96/벚꽃과 비닐봉지ㆍ97/엉겅퀴와 개미ㆍ98
해설 임지훈(문학평론가)ㆍ99
저자
저자
진동영
1978년 대구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 재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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