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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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풍경
2014년 《시현실》로 등단한 배종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도망치는 책상』이 시인동네 시인선 266으로 출간되었다. 배종영 시인에게 세계는 분리와 이탈이 아니라 연결과 접속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 인간과 세계와 언어는 그 어느 하나 서로 소외되거나 유리된 것이 없다. 그것들은 마치 혈족처럼 가깝고 연인처럼 서로를 쓰다듬는다. 배종영의 시를 읽다 보면 마치 잃어버린 낙원의 개체들처럼 서로를 그리워하고 탐하며 스미고 섞이려는 것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만나게 된다. 그는 세상의 현실과 무관하게 일찌감치 먼저 도래할 미래에 가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풍경을 어디 가서 만날까. 배종영의 시들은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져 헐벗은 세계에 겹겹의 따뜻한 옷을 입힌다. 그 옷들은 같은 궤도에서 서로 불화하지 않고 악착같이 밀착하며 온기를 나누는 겹겹의 문장들이다.
함부로 설렌 죄 죄송해서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그냥 묻고 가겠습니다. 다정이 묻은 목소리들은 다 낮고 둥글어서 숲속 어딘가에 떨어져 뒹굴어도 하염없겠습니다. 선명한 당신을 위해 기꺼이 어둠이 되겠습니다. 동쪽으로 해가 뜬다고 웃었고 서쪽으로 해가 진다고 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평선은 그냥 뒤섞인 아픔 같았습니다. 어느새 야윈 초록 잎새 사이로 초가을 얇은 햇살이 섞입니다. 거센 태풍에 꿋꿋한 돌담도 틈새 덕분, 민들레처럼 그 틈새에 의자를 놓고 하늘을 보겠습니다.
2014년 《시현실》로 등단한 배종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도망치는 책상』이 시인동네 시인선 266으로 출간되었다. 배종영 시인에게 세계는 분리와 이탈이 아니라 연결과 접속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 인간과 세계와 언어는 그 어느 하나 서로 소외되거나 유리된 것이 없다. 그것들은 마치 혈족처럼 가깝고 연인처럼 서로를 쓰다듬는다. 배종영의 시를 읽다 보면 마치 잃어버린 낙원의 개체들처럼 서로를 그리워하고 탐하며 스미고 섞이려는 것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만나게 된다. 그는 세상의 현실과 무관하게 일찌감치 먼저 도래할 미래에 가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풍경을 어디 가서 만날까. 배종영의 시들은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져 헐벗은 세계에 겹겹의 따뜻한 옷을 입힌다. 그 옷들은 같은 궤도에서 서로 불화하지 않고 악착같이 밀착하며 온기를 나누는 겹겹의 문장들이다.
함부로 설렌 죄 죄송해서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그냥 묻고 가겠습니다. 다정이 묻은 목소리들은 다 낮고 둥글어서 숲속 어딘가에 떨어져 뒹굴어도 하염없겠습니다. 선명한 당신을 위해 기꺼이 어둠이 되겠습니다. 동쪽으로 해가 뜬다고 웃었고 서쪽으로 해가 진다고 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평선은 그냥 뒤섞인 아픔 같았습니다. 어느새 야윈 초록 잎새 사이로 초가을 얇은 햇살이 섞입니다. 거센 태풍에 꿋꿋한 돌담도 틈새 덕분, 민들레처럼 그 틈새에 의자를 놓고 하늘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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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인간과 세계 그리고 언어가 서로 잘 친화된 세계가 있었다. 그 먼 신화의 시대에 인간과 세계는 서로 통합되어 있었으며 세계와 인간의 논리는 하나였다. 별빛은 인간의 운명을 읽는 텍스트였고, 모든 언어는 주술처럼 살아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주었다.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새들이 움직였고,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인간은 우주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 완벽한 통합의 시대, 이 아름다운 총체성의 세계는 근대 이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인간은 자신에게서 점차 소외되었고, 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으며, 인간의 언어와 사물의 언어는 서로 외계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나무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며, 달의 웃음을 인지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열된 세계만이 아니라 자기 안의 다른 자아들과도 다투었다. 세계는 점점 낯설어졌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떠들었다. 모더니즘 이후 세계문학의 여러 증세 중의 하나를 '신경증'이라 지칭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철저한 소외와 불화의 환경 때문이었다. 이런 증세는 문학만이 아니라 회화, 음악,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전 장르로 확산이 되었는데, '신경증'이라는 코드를 제외하고 오늘날의 예술을 관통하는 일관된 코드를 읽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낙타의 빈 등을 보면
어딘가에 짐 부려놓고 홀가분하게
돌아가는 길 같다.
그 빈 등에 힘겨웠던 발목 고이 태우고 헐렁헐렁 걷는다.
마침, 밤하늘엔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이
보름쯤에 있다는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
그러니 헐거워진 그 빈 등,
또 다른 짐을 위해 잠시 비워둔 자리일 뿐이다.
…(중략)…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면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그 길이
꼭 무거운 길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
빈 등에 얹힌 달빛,
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다.
만월을 실어 나르느라 고단한 달의 잔등에도
거뭇한 굳은살 박여 있다.
- 「빈 등」 부분
이 시의 매력은 메시지에 있지 않다. 이 시의 매혹은 낙타와 달과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된 코드의 발견에 있다. 낙타의 "빈 등"에서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로 미끄러지는 상상력은 얼마나 기발한가. 이 순간적인 시선의 이동으로 낙타와 달은 동일한 궤도를 함께 도는 친밀한 관계가 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내린 채 빈 등으로 "헐렁헐렁" 걷고 있고, 마침 그것을 내려다보던 초저녁달은 이제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는 낯설고 이질적인 두 존재를 끈끈한 친족 관계로 만든다. 마치 동종 업종의 형과 아우처럼 초저녁달의 빈 등이 만월을 지러 가면 금방이라도 낙타의 빈 등 역시 다시 무거운 짐을 지러 갈 것이다. 시인은 이 친밀한 궤도에 사람의 운명까지 합세시킨다.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가는 같은 운명의 존재들이므로 자신이나 세계,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제 몸처럼 매우 친숙하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느라 생긴 "굳은살"은 마치 오래된 농경 공동체의 구성원들처럼 달의 잔등에도, 낙타의 잔등에도, 그리고 사람의 잔등에도 똑같이 박여 있다.
근대 이후의 주체들은 세계가 원래 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내밀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시인은 이제는 거의 신화가 되어버린 풍경을 마치 그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불러냄으로써 사막 같은 불모의 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빈 등에 얹힌 달빛,/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라는 문법이 가동되는 풍경이야말로 분열, 소외, 갈등, 그리고 불화에 지친 존재들이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낙타의 빈 등을 보면
어딘가에 짐 부려놓고 홀가분하게
돌아가는 길 같다.
그 빈 등에 힘겨웠던 발목 고이 태우고 헐렁헐렁 걷는다.
마침, 밤하늘엔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이
보름쯤에 있다는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
그러니 헐거워진 그 빈 등,
또 다른 짐을 위해 잠시 비워둔 자리일 뿐이다.
…(중략)…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면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그 길이
꼭 무거운 길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
빈 등에 얹힌 달빛,
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다.
만월을 실어 나르느라 고단한 달의 잔등에도
거뭇한 굳은살 박여 있다.
- 「빈 등」 부분
이 시의 매력은 메시지에 있지 않다. 이 시의 매혹은 낙타와 달과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된 코드의 발견에 있다. 낙타의 "빈 등"에서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로 미끄러지는 상상력은 얼마나 기발한가. 이 순간적인 시선의 이동으로 낙타와 달은 동일한 궤도를 함께 도는 친밀한 관계가 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내린 채 빈 등으로 "헐렁헐렁" 걷고 있고, 마침 그것을 내려다보던 초저녁달은 이제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는 낯설고 이질적인 두 존재를 끈끈한 친족 관계로 만든다. 마치 동종 업종의 형과 아우처럼 초저녁달의 빈 등이 만월을 지러 가면 금방이라도 낙타의 빈 등 역시 다시 무거운 짐을 지러 갈 것이다. 시인은 이 친밀한 궤도에 사람의 운명까지 합세시킨다.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가는 같은 운명의 존재들이므로 자신이나 세계,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제 몸처럼 매우 친숙하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느라 생긴 "굳은살"은 마치 오래된 농경 공동체의 구성원들처럼 달의 잔등에도, 낙타의 잔등에도, 그리고 사람의 잔등에도 똑같이 박여 있다.
근대 이후의 주체들은 세계가 원래 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내밀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시인은 이제는 거의 신화가 되어버린 풍경을 마치 그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불러냄으로써 사막 같은 불모의 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빈 등에 얹힌 달빛,/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라는 문법이 가동되는 풍경이야말로 분열, 소외, 갈등, 그리고 불화에 지친 존재들이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목차
목차
제1부
협의ㆍ13/양문형(兩門型) 봄ㆍ14/모퉁이를 함께 돌았다ㆍ16/씨앗 자국ㆍ18/모란 혹은 작약ㆍ20/연기는 바람의 화살표ㆍ22/집 보러 다닐 때ㆍ24/불안한 귀ㆍ25/천렵ㆍ26/여우비ㆍ28/깃털ㆍ30/이불솜ㆍ32/짐작ㆍ34/양지쪽ㆍ36
제2부
혀는 귀보다 느리다ㆍ39/우려내는 일ㆍ40/도망치는 책상ㆍ42/꽃 핀 바닥ㆍ44/뭉쳐지는 것들ㆍ46/불의 보관 방법ㆍ48/북ㆍ50/사막의 나이ㆍ51/빈 등ㆍ52/흘수선ㆍ54/등대들ㆍ56/불빛 수선집ㆍ59/궤도ㆍ60/징후들ㆍ62
제3부
형편ㆍ65/윤슬ㆍ66/서성거리는 잠ㆍ68/여래불(如來佛)ㆍ70/나무는 몸속에 불을 숨겨 놓고 있다ㆍ72/부사(副詞)들ㆍ73/말의 겹겹ㆍ76/폐사지(廢寺址)ㆍ78/해수면ㆍ80/엎드린 소ㆍ83/상강 무렵ㆍ84/사람이 없는 시간ㆍ86/견인ㆍ88/쓸쓸한 직업ㆍ90
제4부
슬하ㆍ93/서설(瑞雪)ㆍ94/벽을 문이라고 불러보는ㆍ96/등한시(視), 혹은 시(詩)ㆍ98/그늘 패각(貝殼)ㆍ100/착한 발자국들ㆍ102/말의 그림자ㆍ104/올가미ㆍ106/감나무는 키가 크다ㆍ107/비눗갑ㆍ108/살얼음ㆍ110/세수ㆍ112/나무라는 직업ㆍ114/날개ㆍ116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ㆍ117
협의ㆍ13/양문형(兩門型) 봄ㆍ14/모퉁이를 함께 돌았다ㆍ16/씨앗 자국ㆍ18/모란 혹은 작약ㆍ20/연기는 바람의 화살표ㆍ22/집 보러 다닐 때ㆍ24/불안한 귀ㆍ25/천렵ㆍ26/여우비ㆍ28/깃털ㆍ30/이불솜ㆍ32/짐작ㆍ34/양지쪽ㆍ36
제2부
혀는 귀보다 느리다ㆍ39/우려내는 일ㆍ40/도망치는 책상ㆍ42/꽃 핀 바닥ㆍ44/뭉쳐지는 것들ㆍ46/불의 보관 방법ㆍ48/북ㆍ50/사막의 나이ㆍ51/빈 등ㆍ52/흘수선ㆍ54/등대들ㆍ56/불빛 수선집ㆍ59/궤도ㆍ60/징후들ㆍ62
제3부
형편ㆍ65/윤슬ㆍ66/서성거리는 잠ㆍ68/여래불(如來佛)ㆍ70/나무는 몸속에 불을 숨겨 놓고 있다ㆍ72/부사(副詞)들ㆍ73/말의 겹겹ㆍ76/폐사지(廢寺址)ㆍ78/해수면ㆍ80/엎드린 소ㆍ83/상강 무렵ㆍ84/사람이 없는 시간ㆍ86/견인ㆍ88/쓸쓸한 직업ㆍ90
제4부
슬하ㆍ93/서설(瑞雪)ㆍ94/벽을 문이라고 불러보는ㆍ96/등한시(視), 혹은 시(詩)ㆍ98/그늘 패각(貝殼)ㆍ100/착한 발자국들ㆍ102/말의 그림자ㆍ104/올가미ㆍ106/감나무는 키가 크다ㆍ107/비눗갑ㆍ108/살얼음ㆍ110/세수ㆍ112/나무라는 직업ㆍ114/날개ㆍ116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ㆍ117
저자
저자
배종영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시현실》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사유하는 팔꿈치』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가 있다. 경북일보 〈호미문학상〉 금상, 〈천강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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