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그렇게 일러주었으므로(문학의전당 시인선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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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쓸쓸한 것들의 힘
홍정연 시인의 첫 시집 『경험이 그렇게 일러주었으므로』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403으로 출간되었다. 홍정연은 ‘제도권’이라는 그 괴상망측한 괴물과 일정 부분 떨어져 있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그가 추구하던 시의 본질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홍정연의 시들은 이 세계의 생명 있는 구성원들이 하나 같이 작고 약하며 쓸쓸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운명을 향해 가는 작고 쓸쓸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홍정연 시인이 인간만이 아니라 지상의 다양한 생물에게도 한결같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집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부족하지만 죽음의 ‘절벽 묘지’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의 바람에 온몸을 내주며 혼신을 다해 살아간다. 회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생명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는 이 태도야말로 작고 쓸쓸한 것들의 부정할 수 없는 힘이다.
홍정연 시인의 첫 시집 『경험이 그렇게 일러주었으므로』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403으로 출간되었다. 홍정연은 ‘제도권’이라는 그 괴상망측한 괴물과 일정 부분 떨어져 있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그가 추구하던 시의 본질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홍정연의 시들은 이 세계의 생명 있는 구성원들이 하나 같이 작고 약하며 쓸쓸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운명을 향해 가는 작고 쓸쓸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홍정연 시인이 인간만이 아니라 지상의 다양한 생물에게도 한결같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집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부족하지만 죽음의 ‘절벽 묘지’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의 바람에 온몸을 내주며 혼신을 다해 살아간다. 회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생명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는 이 태도야말로 작고 쓸쓸한 것들의 부정할 수 없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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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해설 엿보기]
크고 힘센 것들이 따로 있어서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하늘 아래 피조물 중에 그런 것들은 없다. 설사 크고 힘세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쳐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세상은 온통 작고 약하고 쓸쓸한 것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을 알고자 한다면, 작고 약하고 쓸쓸한 것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이것을 제외하고, 이런 속성을 제외하고, 인간의 '의미론'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며 따라서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절반만 옳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가득 차 있되, 이것들은 절대로 인간이 아닌 상태(초인)에 이르도록 극복되지 않는다. 문학은 극복되지 않는 결핍들의 상세한 목록이며, 그것들보다 불과 조금 나은 미래를 가정할 수 있을 뿐이다. 문학은 이런 점에서 희극보다는 근본적으로 비극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비극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의 하나로 주인공이 반드시 '위대한 사람(great men)'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위대함'이란 물론 인품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나 권력의 크기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자면 비극에 걸맞은 주인공은 노예나 평민이 아니라 왕, 왕자, 장군, 귀족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주장 이후 셰익스피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학의 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귀족들이었다. 그래서 그 귀족들은, 주인공들은, 그렇게 크고 힘센 것들이었나? 전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비극의 효과란, 신분상 가장 우수한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을 비극적으로 몰락하게 함으로써, 무한 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그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결국 유한하고 (한심할 정도로) 덜떨어진 존재들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잘나 봐야, 잘난 체 해봐야, 인간은 결국 그 모양, 그 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서양 비극의 강력한 메시지이다.
바지락 한 사발 얻었다
찬 없는 부엌이 소란해진다
부르르 들썩이더니 살이 열린다
밥상 모서리에
당신과 마주 앉아 쌓아 올린 조개껍데기
쓸어모아 마당 한쪽에 던져놓고 들어온다
희끄무레 짚어지는
이 저녁이 그리워 지끌거리는 날 있을까
층층 파묻힌 끼니
띠를 이룬다
- 「패총」 전문
홍정연에게 세계는 작고 약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것들의 집합이므로, 스펙터클(spectacle)은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가리는 '빤짝이 옷'에 불과하므로,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것이므로, 홍정연은 굳이 스펙터클을 시적 소재로 삼지 않는다. 위 작품에서 홍정연은 기껏해야 마주 앉아 남에게 얻어온 바지락 한 사발이나 까먹는 커플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홍정연에겐 스펙터클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장면이 시가 된다. 이 사소한 일로 "찬 없는 부엌이 소란해"질 정도로 이들의 삶은 작고, 조용하고, 평범하다. 그럼에도 이들 삶의 이 순간이 전 우주에서 오로지 이들에게만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며, 그래서 매우 절실한 것임을, 시인은 "이 저녁이 그리워 지끌거리는 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대신한다. 이 작고 특별할 것도 없는 저녁이 너무 그리워 지끌거리는 시간을 앞질러 그림으로써, 시인은 이 사소하다면 사소할 장면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게다가 "패총"이라는 제목(이들의 이 평범한 삶이 유적이 될 수 있다니!)은, 조개나 까먹는(?), 이 작고 평범한 시간을 인류 문화의 유구한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제목 덕분에 커플의 사소해 보이는 일상은 보편적 인류의 다층적이고도 역사적인 자산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 조개를 까먹든 무엇을 하든, 인간이 하는 일 중에 하찮고 사소한 일이란 없다. 그것은 모두 역사, 문화, 사랑, 그리고 상처의 의미로 무거운 기호(sign)들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크고 힘센 것들이 따로 있어서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하늘 아래 피조물 중에 그런 것들은 없다. 설사 크고 힘세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쳐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세상은 온통 작고 약하고 쓸쓸한 것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을 알고자 한다면, 작고 약하고 쓸쓸한 것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이것을 제외하고, 이런 속성을 제외하고, 인간의 '의미론'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며 따라서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절반만 옳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가득 차 있되, 이것들은 절대로 인간이 아닌 상태(초인)에 이르도록 극복되지 않는다. 문학은 극복되지 않는 결핍들의 상세한 목록이며, 그것들보다 불과 조금 나은 미래를 가정할 수 있을 뿐이다. 문학은 이런 점에서 희극보다는 근본적으로 비극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비극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의 하나로 주인공이 반드시 '위대한 사람(great men)'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위대함'이란 물론 인품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나 권력의 크기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자면 비극에 걸맞은 주인공은 노예나 평민이 아니라 왕, 왕자, 장군, 귀족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주장 이후 셰익스피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학의 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귀족들이었다. 그래서 그 귀족들은, 주인공들은, 그렇게 크고 힘센 것들이었나? 전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비극의 효과란, 신분상 가장 우수한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을 비극적으로 몰락하게 함으로써, 무한 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그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결국 유한하고 (한심할 정도로) 덜떨어진 존재들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잘나 봐야, 잘난 체 해봐야, 인간은 결국 그 모양, 그 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서양 비극의 강력한 메시지이다.
바지락 한 사발 얻었다
찬 없는 부엌이 소란해진다
부르르 들썩이더니 살이 열린다
밥상 모서리에
당신과 마주 앉아 쌓아 올린 조개껍데기
쓸어모아 마당 한쪽에 던져놓고 들어온다
희끄무레 짚어지는
이 저녁이 그리워 지끌거리는 날 있을까
층층 파묻힌 끼니
띠를 이룬다
- 「패총」 전문
홍정연에게 세계는 작고 약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것들의 집합이므로, 스펙터클(spectacle)은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가리는 '빤짝이 옷'에 불과하므로,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것이므로, 홍정연은 굳이 스펙터클을 시적 소재로 삼지 않는다. 위 작품에서 홍정연은 기껏해야 마주 앉아 남에게 얻어온 바지락 한 사발이나 까먹는 커플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홍정연에겐 스펙터클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장면이 시가 된다. 이 사소한 일로 "찬 없는 부엌이 소란해"질 정도로 이들의 삶은 작고, 조용하고, 평범하다. 그럼에도 이들 삶의 이 순간이 전 우주에서 오로지 이들에게만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며, 그래서 매우 절실한 것임을, 시인은 "이 저녁이 그리워 지끌거리는 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대신한다. 이 작고 특별할 것도 없는 저녁이 너무 그리워 지끌거리는 시간을 앞질러 그림으로써, 시인은 이 사소하다면 사소할 장면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게다가 "패총"이라는 제목(이들의 이 평범한 삶이 유적이 될 수 있다니!)은, 조개나 까먹는(?), 이 작고 평범한 시간을 인류 문화의 유구한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제목 덕분에 커플의 사소해 보이는 일상은 보편적 인류의 다층적이고도 역사적인 자산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 조개를 까먹든 무엇을 하든, 인간이 하는 일 중에 하찮고 사소한 일이란 없다. 그것은 모두 역사, 문화, 사랑, 그리고 상처의 의미로 무거운 기호(sign)들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목차
목차
제1부
패총 13/이석 14/거미 16/묵을 쑤다 17/눈물의 전염 18/생리증후군 20/둔덕 22/절벽 묘지 23/게으른 씨앗 24/연어 26/추락 주의 구간 28/이주 29/정적 30/반딧불이 32/소망의 집 33/오르골 34/난시 36
제2부
낙과 39/핸드 드립 40/문어 42/육필 44/다육 45/미모사 46/안개주의보 48/깨진 그릇 49/규화목 50/택배 52/풍매 54/수첩 55/폐어 56/해풍 58/MRI 59/간월도 60/해물칼국수 62
제3부
코끼리들의 장례식 65/짓다 66/고장 난 시계 68/석류 70/압화 71/낙타 72/눈티 74/유리 닦는 사람 76/매향(埋香) 77/뇌우 78/동충하초 80/소동 82/부전나비 83/탐구생활 84/인터뷰 86/내 위치는 88/몸과 마음 90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91
패총 13/이석 14/거미 16/묵을 쑤다 17/눈물의 전염 18/생리증후군 20/둔덕 22/절벽 묘지 23/게으른 씨앗 24/연어 26/추락 주의 구간 28/이주 29/정적 30/반딧불이 32/소망의 집 33/오르골 34/난시 36
제2부
낙과 39/핸드 드립 40/문어 42/육필 44/다육 45/미모사 46/안개주의보 48/깨진 그릇 49/규화목 50/택배 52/풍매 54/수첩 55/폐어 56/해풍 58/MRI 59/간월도 60/해물칼국수 62
제3부
코끼리들의 장례식 65/짓다 66/고장 난 시계 68/석류 70/압화 71/낙타 72/눈티 74/유리 닦는 사람 76/매향(埋香) 77/뇌우 78/동충하초 80/소동 82/부전나비 83/탐구생활 84/인터뷰 86/내 위치는 88/몸과 마음 90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91
저자
저자
홍정연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경험이 그렇게 일러주었으므로』가 있다. 2025년 충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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