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기억하기 위하여(시인동네 시인선 271)
김현옥 시집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모노드라마
199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현옥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그녀를 기억하기 위하여』가 시인동네 시인선 271로 출간되었다. 김현옥의 시는 지루함과 피로, 공허함과 허무라는 인간 실존의 조건과 마주한다. 이때 내면의 ‘그녀’가 경험하는 세계의 진동이야말로 불협이자 화음이 된다. 그것이 거친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해도 시인은 교정하거나 감추지 않고, 그 불협화음이 넘쳐나는 세계를 끝까지 응시함으로써 고통받는 ‘그녀’를 조용히 위무한다. 이 시집은 의식과 무의식의 후면에 방치되어 있던 수많은 ‘나’들이 겪는 상처를 정면으로 대면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김현옥의 시는, ‘그녀’라는 페르소나와 연극적 장치를 통해 허무와 불협화음을 끝까지 견디는 한 존재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청취하고자 하는 독자적인 서정과 윤리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저녁 6시, 쇼는 끝나고
그들은 의자에서 자동인형처럼 일어선다
시답잖은 농담 같은 쇼가 지루했는지
그들의 얼굴은 밀랍처럼 딱딱하다
쇼가 어땠어요? 그들은 묻지 않는다
간단한 인사 정도면 충분한 예의
그들은 낙엽처럼 흩어진다,
쇼에 찌든 그들의 위장을 위로해 줄 밥을 향해
잠들기 전까지 그들이 연출해야 할 단막극들은
해피엔딩일까?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
그녀는 그들의 단막극을 감상한 적 없다
저녁 6시, 그녀는 화면 속의 그녀를 끈다
Comedy's over! 그녀의 독백은 언제나 똑같다
잠들기 전까지 그녀의 모노드라마는 우울한 세레나데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들어본 적 없다
- 「저녁 6시」 전문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행은 위에 인용한 2연의 첫 행인 "그녀는 화면 속의 그녀를 끈다"이다. 이 한 행에는 시인과 내포 화자, 현상 화자라는 세 개의 '그녀'가 중첩되어 삼층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첫째, 화면 속의 '그녀'가 있다. 이것은 사회적 역할극을 수행하는 페르소나로서의 자아이다. 융이 말하는 페르소나에 해당하며 직장이나 사회적 장에서 '그들'과 같은 "쇼"에 참여하는 외면적 자아를 가리킨다. 둘째, 화면을 끄는 '그녀'가 있다. 이 '그녀'가 바로 시의 현상 화자에 해당한다. "Comedy's over!"라는 독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역할극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존재이다. 셋째, 이 모든 것을 서술하는 시적 주체가 있다. '그녀'를 3인칭으로 관찰하면서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들어본 적 없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이 존재가 바로 내포 화자이다. 내포 화자는 현상 화자의 행위와 독백을 관찰하면서, "아무도 그것을 들어본 적 없다"는 존재론적 고독의 진단을 수행한다. 현상 화자는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 고독을 들어본 적 없다는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은 내포 화자의 몫이다. 이러한 삼층 구조에서 실제 시인은 텍스트 밖에 존재하며, 내포 시인은 허무와 고독을 직시하되 체념하지 않는 태도라는 텍스트 전체의 톤과 세계관을 통해 재구성된다. 내포 시인이 '그녀'라는 퍼소나를 선택한 것 자체가 시인과 화자 사이의 거리 설정의 전략일 것이다. 시인이 자신을 '나'가 아닌 '그녀'로 설정함으로써, 고백의 직접성을 회피하면서도 고백보다 더 깊은 자기 고찰이 가능해진 것이다.
- 염선옥(문학평론가)
목차
목차
깊고 푸른ㆍ13/삶의 문법ㆍ14/어떤 하루ㆍ16/그해 여름ㆍ18/무언극ㆍ20/낙엽, 그리고 섬ㆍ22/다시 낙엽ㆍ26/낯익은 쓸쓸함ㆍ27/또다시 낙엽ㆍ28/팔월의 끝ㆍ30/꿈꾸는 섬ㆍ32/아직도,ㆍ34/아직도?ㆍ35/의자·계단·창문ㆍ36/그림자ㆍ38
제2부
저녁 6시ㆍ41/렌토보다 느리게ㆍ42/모데라토 마 논 트로포ㆍ44/그래서 꿈은 늘ㆍ46/신기루ㆍ47/솔로ㆍ48/몽상가ㆍ50/그,라는ㆍ52/타오르는 얼음ㆍ53/폭풍, 그리고 사막ㆍ54/그럴 수밖에?ㆍ56/스케르초ㆍ58/길 없는 길ㆍ59/그녀의 발ㆍ60/외줄 타기ㆍ62
제3부
벼랑의 노래ㆍ65/상실의 시대ㆍ66/추억의 고고함ㆍ68/퇴원ㆍ69/덧없는 얼굴ㆍ70/상처ㆍ72/애초에ㆍ74/새드 무비ㆍ75/그녀의 방ㆍ76/바로 저거?ㆍ78/관 속의 세월ㆍ80/구토ㆍ81/대화ㆍ82/생의 식탁ㆍ84/기적 같다ㆍ86
제4부
사물들ㆍ89/팽이처럼ㆍ90/처형된 말들ㆍ91/어떤 개인 날ㆍ92/겨울동굴ㆍ94/작정한다ㆍ95/사양하리라ㆍ96/처형ㆍ98/빈손ㆍ99/그녀는 물이므로ㆍ100/이게 전부라는 것!ㆍ102/마침내ㆍ103/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ㆍ104/잠시 쉼표ㆍ106/기도ㆍ108
해설 염선옥(문학평론가)ㆍ109
저자
저자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