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자의 칼 아래서 1
식민지 검열 관련 신문기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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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서 1945년 해방 전까지, 식민지 시기 검열 관련 신문기사들만을 엮은 자료집
이 책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간행된 조선어 신문의 검열 관련 기사 2,117개를 선별하고 교열과 주석을 붙여 2권 1,500면 분량으로 정리하였다. 개별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무수한 사례뿐 아니라 예술창작과 지식문화 전반에 대한 차별적 통제, 반일운동과 관련된 불법문서들, 일본 출판 산업의 조선 지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검열정책, 국경과 해안을 통해 밀반입되는 각종 불온서적 등 검열의 맥락은 식민지 사회 전체 속에 신경망처럼 연결되어있었다. 이 책을 통해 '블랙리스트', '불온서적', '불온문서' 등 최근까지 한국의 국가권력이 사용한 지배방법과 지배용어들이 대부분 식민지시기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식민지는 벗어났지만 그 지배의 체계와 원리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된다.
이 책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간행된 조선어 신문의 검열 관련 기사 2,117개를 선별하고 교열과 주석을 붙여 2권 1,500면 분량으로 정리하였다. 개별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무수한 사례뿐 아니라 예술창작과 지식문화 전반에 대한 차별적 통제, 반일운동과 관련된 불법문서들, 일본 출판 산업의 조선 지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검열정책, 국경과 해안을 통해 밀반입되는 각종 불온서적 등 검열의 맥락은 식민지 사회 전체 속에 신경망처럼 연결되어있었다. 이 책을 통해 '블랙리스트', '불온서적', '불온문서' 등 최근까지 한국의 국가권력이 사용한 지배방법과 지배용어들이 대부분 식민지시기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식민지는 벗어났지만 그 지배의 체계와 원리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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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무미건조한 세계 속 '강요된 절제'
식민지 검열과의 조우는 근대문학 연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32년 심훈은 그가 써온 시들을 모아 '심훈시가집'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붙이고 식민당국에 출판의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원고는 온통 붉은 줄로 그어진 처참한 검열의 잔해뿐이었다. 결국 그 시집은 간행되지 못했다. 검열로 사산된 심훈시의 유해는 그의 가족들에 의해어렵사리 보관되다가 2000년 영인 출판되어 '식민지란무엇이었는가'를 물질의 형태로 우리에게 증언했다. 이와 비슷한 숱한 사례가 있었을 것이나 대부분 인멸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극히 희소하다. 나는 식민지의 물질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민지가 역사기록 속에 유폐되거나 그 공과를 둘러싼 이념논쟁으로 휘발되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의 경험이 반복되는 현재의 문제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열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식민지의 문학은, 나아가 피식민자의 모든 표현은 가혹한 차별을 본질로 하는 제국정치의 산물이었다. '내지'와 '외지'는 모두 제국의 판도였지만 그 두 공간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질서가 구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지'와 '외지'는 적용되는 법률이 서로 달랐다. '내지인'들은 '사후검열'을 받았다. 그것은 표현의 욕망이 가시화될 수 있는 권리를 뜻했다. 설사 법적처벌을 받을지라도 일본인들의 사유와 의도는 '인쇄'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 속에 남겨졌다. 인쇄된 것은 그 자체로 비가역적인 것이다. 종이를 통해 유포된 생각들을 완전히 멸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지인'들은 파시즘체제 속에서도 정신의 공유를 위한최소한도의 시스템을 보장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인은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상상과 사유를 '인쇄'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 안에서 합법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문자화하려는 이들은 먼저 검열관의 허락을 받아야했다. 허가받지 못한 말들은 세상 속에 나갈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식민지는 표면적으로 외설적인 문화도, 정치적인 과격함도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세계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것을 '강요된 절제'라고 부르고 싶다. 따라서 식민지의 문학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혼재로 구성된다. 그러한 텍스트의 이중성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근대문학 연구자들이 견지해야할 특별한 태도가 아닐까. 사라져버린, 어쩌면 태어나지 못한 문학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강박관념이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02년 전후부터 '식민지 검열'에 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동료 박헌호 교수와 긴 토론을 하면서 검열연구의 중요성을 확신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식민지검열'이라는 회로로 한국문학의 역사성을 새롭게 해명하려는 시도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자료와 선행연구 모두 부족했다. 그 때문에 자료를 만들면서 연구를 추진하는, 두 개의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의 산물이다. 식민지 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긴 우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진 뜻밖의 수확인 셈이다. (…중략…)
정교한 검색이 이루어지지 못해 다소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나, 이 책에 수록한 식민지검열 관련 신문기사 자료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개별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무수한 사례뿐 아니라 예술창작과 지식문화 전반에 대한 차별적 통제, 반일운동과 관련된 불법문서들, 일본 출판 산업의 조선 지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검열정책, 국경과 해안을 통해 밀반입되는 각종 불온서적 등 검열의 맥락은 식민지 사회 전체 속에 신경망처럼 연결되어있었다. 3ㆍ1운동 참여자들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가 출판법 위반이었다는 것은 탈식민의 과제가 일차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 또한 식민지기에 개발된 검열기법의 하나였다. 식민지 경찰은 각도별로 '불온작가'의 명부를 작성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였다. 조선인은 출판산업이란 근대지식의 생산, 유통의 장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는데, 그것은 식민지 대중을 일본 지식문화의 하부로 예속하려는 거시정책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식민지검열은 전방위적이며 다차원적으로 시행되었다. 아울러 그 자료 성격의 복잡성은 '검열'이 식민지통치의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지배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한다.
기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검열상황이 식민정책의 변화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난다. 문화정치 초기 대규모 필화사건은 식민지 공론장의 허용을 둘러싸고 조선총독부가 겪었던 긴장과 혼란의 산물이었다. 대중매체의 확산과 강력한 검열의 동시 추진이란 모순된 정책이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중일전쟁이후 총력전기에 접어들면서 선전이 검열을 대신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전쟁동원을 위한 선전의 일상화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역할은 극히 협소해졌고 그 정점에서 조선어 신문이 폐간되었는데, 그것은 위태롭게 유지되던 식민지 공론장의 붕괴를 의미했다. '대일본제국'의 환상이 초래한 극단적 비이성이식민지 지배의 효율성을 지탱하던 '검열'이라는 기우뚱한 균형조차 깨트린 것이다. 1920년대를 거치며 정교화 된 검열정책은 한때 식민지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결 국 일본의 자멸과 함께 파탄의 종결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검열의 종언이 '검열'이라는 지배방식의 역사적 소멸로 이어지지 못한 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식민지 검열의 영향력은 최근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불온'과 같은 초법적 국가권력의 용어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우리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었다.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하며 사법적 판결 전에 어떤 죄의 확정을 암시하는 국가권력의 두려운 선동 또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것이 식민지 검열에 관한 연구를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지속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인 압력이다. 수년에 걸쳐 우리가 고통스럽게 대면했던 그 거대한 비정상은 이 나라가 구축한 현대의 사회제도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증명했다.
블랙리스트--[탄압적 선도]의 의미
?各 道 高等警察課에서 '不穩作家' 名簿 作成? 『동아일보』, 1933.05.12, 석2면
과격한 사상의 선전이 출판물에 큰 관계가 있다고 총독부에서는 연전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경찰부장회의 때마다 출판물 단속에 대한 각도 경찰부장의 의견을 들어 참고로 삼아 왔는데 그 의견의 대개가 검열을 엄중히 하자는 데 있고 도서과도 이 의향을 가지고 있으나 검열을 엄중히 함으로써만은 목적을 관철할 수가 없으므로 이와 동시에 한편으론 과격한글을 많이 쓰는 작가의 사상을 전환케 하도록 탄압적 선도를 하기로 방침이 섰다. 이 방법은 '불온작가' 명부, 즉 '블랙리스트'를 꾸미어 두고 그 도 고등경찰과장으로 하여금 작가를 탄압 또 훈유하여 그 사상을 선도하도록 힘써 자연히 그런 방면에 붓을 대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온작가'를 처벌하자면 경찰범 취체규칙으로써나 형사소송법으로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법령을 적용함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적당한 제재방법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이상과 같이 선도의 길을 택한 것인데 벌써 경북에선 시험을 보았으며 함북에서도 시험할터이다. 시험한 곳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불온작가'는 일반 작가 총수의一 할도 못 되나 그들의 저작물은 다량 생산을 하여 五 할에 미친 때도 있다고 한다.
'대한독립만만세!'의 게시는 불온문서
?不穩文書를 揭示한 김판경은 징역 팔 개월?동아일보, 1921.08.31, 3면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하동 김판경(慶尙北道 達成郡 玄風面 下洞 金判慶)(一九)은작년십일월 십일일에 '대한독립만만세(大韓獨立萬萬歲)'라 제목한 불온문서를 써서 현풍면 사무소 게시판(玄風面 事務所 揭示板)과 또 다른 한곳에 붙인 일이 발각 체포되어 경찰서와 검사국의 심리를 마치고 대구지방법원의 공판에 부치었었는데 지난 이십구일오전에 그 법원 제이호 법정에서 중야(中野) 판사의 담임으로 내량정(奈良井) 검사가 입회한 후 단독 공판을개정하여 주소, 씨명, 연령, 직업을 먼저 묻고 사실 심문을 마친 후 검사가 일어서서 징역팔개월을 구형하매 판사는 직결로 검사의 구형한 대로 징역 팔개월을 언도하였다더라.
『국권회복론』이라는 책자 반포-징역 8년
?國權恢復論을 配布한 류영규 등의 공소공판?동아일보, 1922.01.26, 3면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운봉리(平北 寧邊郡 龍山面 雲峯里) 류영규(劉泳奎)(三五), 덕천군 일하면 회둔리(德川郡 日下面 檜屯里) 오태국(吳泰國)(二七) 두명은 황영화(黃榮華), 김문선(金文善) 등을 연락하여 가지고 국권회복론(國權恢復論)이란 책자를 인쇄하여 여러 방면에배포하여 조선독립사상을 널리 선전하는 동시에 덕천(德川),영변(寧邊), 맹산(孟山) 지방에서다수한 군자금을 모집하기에 활동을 마지 아니하다가 덕천경찰서(德川警察署)의 손에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일년 이상 팔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을 불복하고 공소하여 지난 이십사일 동 복심법원에서 공판이 개정되었는데 각 피고들은 추위를 못 이겨 자로 법정안에 피운 난로 곁을 향하면서 덜덜떨려나오는 목소리로 범죄사실과는 징역 팔년, 칠년이 너무 중하다고 공술하였으나 검사로부터 공소를 기각하여 달라는 요구가 있은 후 재판장으로 오는 삼십일일에 판결하여 준다고 말하고 폐정하였는데 방청석에는 육십여명의 날카로운시선이 가득하여 자못 헤어질 줄을 알지 못하였다더라.【평양】
검열을 소재로 한 시
血灘, ?詩의 削除를 보고?동아일보, 1930.01.02, 11면
그 누가 불렀는고
빈터 될 피노래를
노래야 없어지리
活字가 서럽구나
이저곳 깎기운 자취
내 맘 더욱 울리네
격랑의 시대를 지나오며
이 자료집을 통해 일제가 추진한 식민지검열의 실상, 당대 한국인의 검열에 대한 반응,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차원의 노력과 운동 등 관련 역사 상황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블랙리스트', '불온서적', '불온문서' 등 최근까지 한국의 국가권력이 사용한 지배방법과 지배용어들이 대부분 식민지시기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식민지는 벗어났지만 그 지배의 체계와 원리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된다.
식민지 검열과의 조우는 근대문학 연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32년 심훈은 그가 써온 시들을 모아 '심훈시가집'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붙이고 식민당국에 출판의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원고는 온통 붉은 줄로 그어진 처참한 검열의 잔해뿐이었다. 결국 그 시집은 간행되지 못했다. 검열로 사산된 심훈시의 유해는 그의 가족들에 의해어렵사리 보관되다가 2000년 영인 출판되어 '식민지란무엇이었는가'를 물질의 형태로 우리에게 증언했다. 이와 비슷한 숱한 사례가 있었을 것이나 대부분 인멸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극히 희소하다. 나는 식민지의 물질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민지가 역사기록 속에 유폐되거나 그 공과를 둘러싼 이념논쟁으로 휘발되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의 경험이 반복되는 현재의 문제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열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식민지의 문학은, 나아가 피식민자의 모든 표현은 가혹한 차별을 본질로 하는 제국정치의 산물이었다. '내지'와 '외지'는 모두 제국의 판도였지만 그 두 공간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질서가 구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내지'와 '외지'는 적용되는 법률이 서로 달랐다. '내지인'들은 '사후검열'을 받았다. 그것은 표현의 욕망이 가시화될 수 있는 권리를 뜻했다. 설사 법적처벌을 받을지라도 일본인들의 사유와 의도는 '인쇄'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 속에 남겨졌다. 인쇄된 것은 그 자체로 비가역적인 것이다. 종이를 통해 유포된 생각들을 완전히 멸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지인'들은 파시즘체제 속에서도 정신의 공유를 위한최소한도의 시스템을 보장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인은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상상과 사유를 '인쇄'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 안에서 합법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문자화하려는 이들은 먼저 검열관의 허락을 받아야했다. 허가받지 못한 말들은 세상 속에 나갈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식민지는 표면적으로 외설적인 문화도, 정치적인 과격함도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세계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것을 '강요된 절제'라고 부르고 싶다. 따라서 식민지의 문학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혼재로 구성된다. 그러한 텍스트의 이중성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근대문학 연구자들이 견지해야할 특별한 태도가 아닐까. 사라져버린, 어쩌면 태어나지 못한 문학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강박관념이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02년 전후부터 '식민지 검열'에 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동료 박헌호 교수와 긴 토론을 하면서 검열연구의 중요성을 확신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식민지검열'이라는 회로로 한국문학의 역사성을 새롭게 해명하려는 시도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자료와 선행연구 모두 부족했다. 그 때문에 자료를 만들면서 연구를 추진하는, 두 개의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의 산물이다. 식민지 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긴 우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진 뜻밖의 수확인 셈이다. (…중략…)
정교한 검색이 이루어지지 못해 다소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나, 이 책에 수록한 식민지검열 관련 신문기사 자료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개별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무수한 사례뿐 아니라 예술창작과 지식문화 전반에 대한 차별적 통제, 반일운동과 관련된 불법문서들, 일본 출판 산업의 조선 지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검열정책, 국경과 해안을 통해 밀반입되는 각종 불온서적 등 검열의 맥락은 식민지 사회 전체 속에 신경망처럼 연결되어있었다. 3ㆍ1운동 참여자들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가 출판법 위반이었다는 것은 탈식민의 과제가 일차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 또한 식민지기에 개발된 검열기법의 하나였다. 식민지 경찰은 각도별로 '불온작가'의 명부를 작성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였다. 조선인은 출판산업이란 근대지식의 생산, 유통의 장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는데, 그것은 식민지 대중을 일본 지식문화의 하부로 예속하려는 거시정책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식민지검열은 전방위적이며 다차원적으로 시행되었다. 아울러 그 자료 성격의 복잡성은 '검열'이 식민지통치의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지배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한다.
기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검열상황이 식민정책의 변화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난다. 문화정치 초기 대규모 필화사건은 식민지 공론장의 허용을 둘러싸고 조선총독부가 겪었던 긴장과 혼란의 산물이었다. 대중매체의 확산과 강력한 검열의 동시 추진이란 모순된 정책이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중일전쟁이후 총력전기에 접어들면서 선전이 검열을 대신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전쟁동원을 위한 선전의 일상화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역할은 극히 협소해졌고 그 정점에서 조선어 신문이 폐간되었는데, 그것은 위태롭게 유지되던 식민지 공론장의 붕괴를 의미했다. '대일본제국'의 환상이 초래한 극단적 비이성이식민지 지배의 효율성을 지탱하던 '검열'이라는 기우뚱한 균형조차 깨트린 것이다. 1920년대를 거치며 정교화 된 검열정책은 한때 식민지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결 국 일본의 자멸과 함께 파탄의 종결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검열의 종언이 '검열'이라는 지배방식의 역사적 소멸로 이어지지 못한 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식민지 검열의 영향력은 최근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불온'과 같은 초법적 국가권력의 용어들이 아주 최근까지도 우리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었다.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하며 사법적 판결 전에 어떤 죄의 확정을 암시하는 국가권력의 두려운 선동 또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것이 식민지 검열에 관한 연구를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지속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인 압력이다. 수년에 걸쳐 우리가 고통스럽게 대면했던 그 거대한 비정상은 이 나라가 구축한 현대의 사회제도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증명했다.
블랙리스트--[탄압적 선도]의 의미
?各 道 高等警察課에서 '不穩作家' 名簿 作成? 『동아일보』, 1933.05.12, 석2면
과격한 사상의 선전이 출판물에 큰 관계가 있다고 총독부에서는 연전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경찰부장회의 때마다 출판물 단속에 대한 각도 경찰부장의 의견을 들어 참고로 삼아 왔는데 그 의견의 대개가 검열을 엄중히 하자는 데 있고 도서과도 이 의향을 가지고 있으나 검열을 엄중히 함으로써만은 목적을 관철할 수가 없으므로 이와 동시에 한편으론 과격한글을 많이 쓰는 작가의 사상을 전환케 하도록 탄압적 선도를 하기로 방침이 섰다. 이 방법은 '불온작가' 명부, 즉 '블랙리스트'를 꾸미어 두고 그 도 고등경찰과장으로 하여금 작가를 탄압 또 훈유하여 그 사상을 선도하도록 힘써 자연히 그런 방면에 붓을 대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온작가'를 처벌하자면 경찰범 취체규칙으로써나 형사소송법으로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법령을 적용함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적당한 제재방법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이상과 같이 선도의 길을 택한 것인데 벌써 경북에선 시험을 보았으며 함북에서도 시험할터이다. 시험한 곳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불온작가'는 일반 작가 총수의一 할도 못 되나 그들의 저작물은 다량 생산을 하여 五 할에 미친 때도 있다고 한다.
'대한독립만만세!'의 게시는 불온문서
?不穩文書를 揭示한 김판경은 징역 팔 개월?동아일보, 1921.08.31, 3면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하동 김판경(慶尙北道 達成郡 玄風面 下洞 金判慶)(一九)은작년십일월 십일일에 '대한독립만만세(大韓獨立萬萬歲)'라 제목한 불온문서를 써서 현풍면 사무소 게시판(玄風面 事務所 揭示板)과 또 다른 한곳에 붙인 일이 발각 체포되어 경찰서와 검사국의 심리를 마치고 대구지방법원의 공판에 부치었었는데 지난 이십구일오전에 그 법원 제이호 법정에서 중야(中野) 판사의 담임으로 내량정(奈良井) 검사가 입회한 후 단독 공판을개정하여 주소, 씨명, 연령, 직업을 먼저 묻고 사실 심문을 마친 후 검사가 일어서서 징역팔개월을 구형하매 판사는 직결로 검사의 구형한 대로 징역 팔개월을 언도하였다더라.
『국권회복론』이라는 책자 반포-징역 8년
?國權恢復論을 配布한 류영규 등의 공소공판?동아일보, 1922.01.26, 3면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운봉리(平北 寧邊郡 龍山面 雲峯里) 류영규(劉泳奎)(三五), 덕천군 일하면 회둔리(德川郡 日下面 檜屯里) 오태국(吳泰國)(二七) 두명은 황영화(黃榮華), 김문선(金文善) 등을 연락하여 가지고 국권회복론(國權恢復論)이란 책자를 인쇄하여 여러 방면에배포하여 조선독립사상을 널리 선전하는 동시에 덕천(德川),영변(寧邊), 맹산(孟山) 지방에서다수한 군자금을 모집하기에 활동을 마지 아니하다가 덕천경찰서(德川警察署)의 손에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일년 이상 팔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을 불복하고 공소하여 지난 이십사일 동 복심법원에서 공판이 개정되었는데 각 피고들은 추위를 못 이겨 자로 법정안에 피운 난로 곁을 향하면서 덜덜떨려나오는 목소리로 범죄사실과는 징역 팔년, 칠년이 너무 중하다고 공술하였으나 검사로부터 공소를 기각하여 달라는 요구가 있은 후 재판장으로 오는 삼십일일에 판결하여 준다고 말하고 폐정하였는데 방청석에는 육십여명의 날카로운시선이 가득하여 자못 헤어질 줄을 알지 못하였다더라.【평양】
검열을 소재로 한 시
血灘, ?詩의 削除를 보고?동아일보, 1930.01.02, 11면
그 누가 불렀는고
빈터 될 피노래를
노래야 없어지리
活字가 서럽구나
이저곳 깎기운 자취
내 맘 더욱 울리네
격랑의 시대를 지나오며
이 자료집을 통해 일제가 추진한 식민지검열의 실상, 당대 한국인의 검열에 대한 반응,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차원의 노력과 운동 등 관련 역사 상황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블랙리스트', '불온서적', '불온문서' 등 최근까지 한국의 국가권력이 사용한 지배방법과 지배용어들이 대부분 식민지시기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식민지는 벗어났지만 그 지배의 체계와 원리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된다.
목차
목차
1919~1927
0001 秘密出版에서 등사판을 압수
0002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①
0003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②
0004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③
0005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④
0006 不穩文書 印刷者 二 名 檢擧
0007 不穩文書 全部 押收
0008 申泰均의 『半島木鐸』 押收
0009 不穩檄文 配布
0010 活動映畵의 檢閱
0011 大韓國民會員의 不穩文書 撒布
0012 五 種의 不穩文書를 撒布한國民會決死團
0013 米豆取引所에 不穩貼紙
0014 聖書 以上의 反響
0015 筆禍 新聞 一束
0016 檄文을 配布하고
0017 兩 新聞 押收
0018 原稿檢閱을 廢止하라
0019 咸興 『獨立新聞』 백이어서 돌린 자
0020 言論自由
0021 益山 又晦生, 「我郡의 實例」
0022 傷風敗俗의 書籍 (上)
0023 傷風敗俗의 書籍 (中)
0024 傷風敗俗의 書籍 (下)
0025 『珠玉尺牘』은 押收되고 발행자는 처벌
0026 出版法 違反으로 檢事局에 押送된 鄭敬?
0027 過激機關紙 差押
0028 『開闢』 創刊號 押收
0029 『開闢』 雜誌 押收
0030 所謂 警察署의 '智識뿐으로는'
0031 晋州 學生大會
0032 言論은 元來 自由
0033 十二 新聞 押收
0034 『新女子』 四號 筆禍
0035 一般 出版物의 原稿檢閱 廢止乎
0036 三 演士 呼出
0037 不敬事件의 犯人과 憲兵隊
0038 電信柱에 不穩文書 貼付
0039 當局者의 認定에 依하여 言論 集會를 壓迫
0040 金 氏의 舌禍
0041 秘密文書 配布
0042 '苦는 樂의 種' 이런 말도 쓰면잡히어 가는 것
0043 大本敎 宣傳書 또 농성에서 압수
0044 京城府內에 不穩文書
0045 平壤에도 警告文
0046 仁川에도 宣傳書
0047 『朝鮮日報』 筆禍
0048 謄寫板 買入者 경찰서에서 엄중 취조
0049 愛讀 諸位에게 一週間 그리던인사를 드리오
0050 愚劣한 總督府 當局者는 何故로 우리 『日報』를 停刊시켰나뇨
0051 新聞 取締 方針
0052 同業 『朝鮮日報』는 無期 發行停止
0053 排日을 激勵한 文書를 配付
0054 過激文書 배포한 두 명
0055 伏見宮邸에 不穩文書를 郵送한 자가 있어서
0056 『東亞日報』는 無期 發行停止
0057 不穩文書를 配付
0058 獨立宣言 事件과 花井 博士의 辯論 開始 (一)
0059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二)
0060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三)
0061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四)
0062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五)
0063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六)
0064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七)
0065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八)
0066 復活團決死隊라고 署名한 數百 張의 不穩文書 郵送
0067 西園寺公과 原 首相에게 不穩文書 郵送
0068 本報 讀者 諸賢에게 告함
0069 滿天下의 『朝鮮日報』 愛讀者 諸君에게
0070 死刑宣告文과 不穩文書를 配布
0071 秘密出版物 押收
0072 排日 朝鮮人 所有 活字 萬 個 發見 押收
0073 各地 陸軍……聯隊에 不穩文書
0074 龍山 聯隊에도 不穩文書
0075 鹿兒島 軍隊에도 不穩文書
0076 不穩文書 犯人
0077 淸津府廳에 不穩文書
0078 駐屯 軍營에 不穩文書
0079 京都 各署에 不穩文書
0080 光州署의 大活動으로 不穩文書 發覺
0081 新聞紙法 改正案
0082 雜誌 『開闢』 裁判 延期
0083 綿襪에 隱匿한 不穩文書
0084 不穩文書 配布
0085 雜誌 『開闢』 裁判 期日 確定
0086 『平南每日』 差押
0087 十錢 紙幣에 不穩文字
0088 不穩文書 五十 通
0089 雜誌 『開闢』 公判
0090 근년에 처음 있는 언론 옹호의 변론, 雜誌 『開闢』 辯論
0091 車中에 不穩文書
0092 『共濟』 雜誌 原稿 연속 네 번 압수
0093 不穩文書를 印刷
0094 『曙光』 原稿 押收
0095 『開闢』 言渡
0096 呂炳燮 氏 白放
0097 『서울』 原稿 押收
0098 '떠'市의 家宅搜索
0099 紅旗報를 郵送
0100 官廳에 不穩文書
0101 不穩文書 押收說
0102 大問題인 出版法
0103 大問題인 出版法
0104 紙幣에 不穩文句
0105 不穩文書를 携帶한 者
0106 郡廳에 不穩文書
0107 洪原 邑內에 不穩廣告
0108 至極히 危險한 大陰謀의 發覺
0109 出版法 違反者
0110 傳道講演의 舌禍
0111 不穩文書를 傳送
0112 載寧에도 搜索
0113 不穩文書와 彈藥 多數를 押收
0114 不穩文書 發行
0115 不穩文書 犯人
0116 『國民新聞』 筆禍
0117 『獨立新聞』 販賣員 逮捕
0118 藏書가 問題되어
0119 電柱에 不穩文書
0120 電柱에 不穩文書를 붙인 혐의로 다섯 명 검거
0121 女學生의 不穩唱歌
0122 申 氏 舌禍
0123 『女子時論』 筆禍
0124 不穩文書를 郵送
0125 赤露 宣傳 書類
0126 學生 多數 拘引
0127 『大衆時報』 押收
0128 市內에 又復 大事件
0129 興行 取締 方針
0130 朴 氏 畢竟 拘留
0131 不穩文書 押收
0132 『獨立新聞』을 配布한 이무영 등 두 명은 검사국에
0133 『北鮮日報』 筆禍
0134 新脚本인 「金英一의 死」
0135 水壺 中에 不穩文書
0136 過激文書 配付
0137 不穩文書로 脅迫하고
0138 鐵道 廣告板에 不穩文句
0139 統營 邑內에 不穩文書
0140 『開闢』 雜誌 筆禍
0141 間島領事?에 檢擧된 『愛國申報』 發行人
0142 不穩의 印刷物을 각 처에 배포했다
0143 警告文 等 配布
0144 女學校에 赤紙 宣傳
0145 宛然한 女子社會主義 大會
0146 通信物 取締乎
0147 不穩文을 郵送한 두 청년의 체포
0148 不穩한 '通文膽錄'
0149 鄭然圭 作 『魂』 押收
0150 巡講 舌禍 頻頻
0151 梁在演 君 檢擧
0152 十五 日 拘留
0153 『大衆時報』 筆禍
0154 梁在演 君 放免
0155 『大衆時報』 又復 押收
0156 忠南支團의 庶務員
0157 秋月左都夫, 「言論 出版의 自由」
0158 不穩文書 配付
0159 緊張한 警察活動
0160 月經帶 中에 不穩文書
0161 不穩文書를 揭示한 김판경은징역 팔 개월
0162 學生의 秘密結社
0163 『新韓靑年』 雜誌로 세 명이 잡혀 취조
0164 諸新聞 差押
0165 梨花 學生의 舌禍
0166 觀客에게 不穩文書 配布
0167 不穩 印刷物 配布
0168 滋賀에 不穩文書
0169 原 首相에게 不穩文書
0170 不穩文書 犯人 逮捕
0171 平民政府의 不穩文書
0172 前橋에도 大事件
0173 『李完用 賣國秘史』
0174 秘密出版 增加
0175 御歸朝奉祝日에 불온문서를 돌린 권익수는 검사국
0176 客室에 不穩 宣告文
0177 雜誌 『開闢』 筆禍
0178 慈城郡에 獨立團
0179 順川에도 二 名 逮捕
0180 自動車로 過激文書
0181 電柱에 不穩文書
0182 朝鮮歷史를 敎授한 先生은 마침내 구류
0183 門司 在留 朝鮮人에게 다수한 불온문서를 배포
0184 義州에 不穩文書
0185 古稀庵에 不穩文書
0186 만주桶에 不穩文書
0187 文化主義運動으로 선전문서가불온하다 하여
0188 步兵聯隊에 不穩文書
0189 『獨立新聞』 押收
0190 萬年筆 行商團이 불온문서 배포
0191 『檀鐸』 第二號 押收
0192 秘密計劃 又 發覺
0193 安東縣에 某 文書
0194 檢擧는 一段落
0195 臺灣靑年의 大憤慨, 언론 압박을 당국자에게 항거
0196 軍隊에 不穩文書
0197 잔소리
0198 『獨立戰報』를 配布하고 일 년만에 발각, 검거된 부산사건
0199 新年劈頭에 過激宣傳의 文書
0200 兵營에 共産黨
0201 出獄 祝賀 騷動
0202 娼妓에 不穩文書
0203 金善 孃의 舌禍
0204 興行物과 電車의 取締規則
0205 興行物 檢閱
0206 『國權恢復論』을 配布한 류영규 등의 공소공판
0207 朴琪永 等 國民會事件
0208 檢閱과 許可制 撤廢를 결의한 무명회 임시총회
0209 反逆團長 鄭在達
0210 宣言事件의 留學生
0211 兩 宮家에 不穩文書
0212 不穩文書 配布者 二 名 判決
0213 東京地方의 頻頻한 不穩文書
0214 危險 書冊을 秘密히 出版
0215 不穩文 配布한 學生
0216 東京留學生 講演禁止
0217 不穩文 配布한 글방 선생 체포
0218 『新生活』 創刊號 押收
0219 過激文書의 大行具
0220 興業物 取締規則
0221 興業場 興業 規則
0222 檢擧된 勇進團員
0223 東京에서 京城에
0224 過激思想宣傳紙
0225 興行 取締規則
0226 中國 新聞 取締
0227 昌城郡에 獨立團
0228 三十八 條의 興行 取締規則
0229 電柱에 秘密文書
0230 『新生活』 筆禍
0231 郵, 電 檢閱 開始
0232 上海에서 秘密文書
0233 下關에 不穩文書
0234 靑年討論 停止 命令
0235 韓族 共産黨의 宣傳書 發見
0236 貞洞 培材校에 不穩文書
0237 遊技場의 取締
0238 雜誌 『新生活』 筆禍
0239 警務當局者에게, 言論 壓迫이 심하다
0240 映畵 檢査 準備
0241 二萬 張의 不穩文書
0242 不穩文書로 脅迫하고
0243 臥龍洞에 不穩文書
0244 獨立生活이 問題乎
0245 不穩文書
0246 映畵檢閱 開始
0247 映畵 初檢閱
0248 『開闢』 雜誌 筆禍
0249 兵士에게 宣傳
0250 各 軍隊에 大宣傳
0251 新聞紙法 改正은 如何
0252 軍隊赤化宣傳團
0253 主謀者는 公判에, 출판법 위반으로
0254 二重으로 言論 壓迫
0255 警務局長의 警告에 對하여
0256 張 氏 假出獄
0257 『開闢』의 頻頻한 筆禍
0258 原稿檢閱과 旅行證明의 廢止
0259 注目할 言論界 前途
0260 言論取締에 對하여
0261 宣言書 携帶한 學生
0262 出版法 改正 內容
0263 不穩文書
0264 『革新公報』 押收
0265 廣告文이 不穩타고 학교 선생을 검거
0266 面所에 『革新公報』
0267 雜誌 『新天地』 押收
0268 兩 雜誌 發賣禁止
0269 雜誌業者를 訊問
0270 『新生活』 筆禍事件
0271 言論界가 遂 蹶起
0272 元山 方面에도 出張, 연일 계속되는 검사국 활동
0273 言論의 擁護를 決議
0274 本町署에 逮捕된 김사민도 검사국에
0275 『新生活』 又 筆禍
0276 『新生活』 十三號 押收
0277 言論政策의 失正
0278 朴 氏 夫人도 召喚
0279 兩 雜誌 事件의 內容
0280 揭載禁止 省令 廢止
0281 『新生活』 又復 押收
0282 言論과 生活의 關係를 論하여 齋藤 總督에게 告하노라
0283 雜誌 筆禍事件과 法曹界의 奮起
0284 『新天地』 筆禍事件
0285 一 個年 懲役을 求刑, 『신천지』 사건 제이회 공판
0286 『勞動』 雜誌 不許可
0287 朝鮮 初有의 社會主義 裁判
0288 流暢한 辛 氏의 答辯
0289 新生活社에 又復 搜索
0290 被告와 檢事가 동시에 공소, 『신천지』 필화사건
0291 『新韓公論』을 押收?
0292 裴東洙 氏 放免, 신 씨는 계속 취조
0293 『新生活』의 繼續 公判
0294 新聞紙法 改正案 如何
0295 『新生活』 繼續 公判
0296 苦學生 갈돕會 書類 押收
0297 週報 『新生活』 遂히 發行禁止
0298 『新生活』의 發行禁止
0299 活動寫眞 團束
0300 言渡는 今日, 『新生活』 事件
0301 잔소리
0302 印刷機 一臺도 沒收
0303 民聲
0304 『新天地』 控訴 公判
0305 白 氏 言渡 期日
0306 犯人의 死體에서 不穩文書
0307 『新天地』 判決期
0308 思想 取締案 提出 反對
0309 新聞記事로 嫌疑
0310 『新生活』 事件
0311 『歷代韓史』 押收
0312 結局 六 個月
0313 『獨立新聞』 押收
0314 金, 朴 兩氏 服役
0315 崔洽事件 擴大?
0316 秘密文書를 押收
0317 新聞紙法 內容
0318 東京과 京城 間에 往來하는 過激文書
0319 不穩唱歌로 학생을 가르쳐 준 교사모를 체포
0320 電柱에 '獨立萬歲'
0321 國境, 市內의 重大 事件 發覺
0322 不穩文書 配布한 홍두익은 체포
0323 六道溝에 又 檢擧
0324 檢閱 中에 押收
0325 出版法의 改正을 期하여
0326 獨立文書 發覺
0327 搜索, 檢閱, 押收
0328 長文의 意見書
0329 建議 提出을 決議, 新聞紙法, 出版法 改正期成會에서
0330 新聞紙法과 出版法 改正期成會
0331 無理한 濟州 警察, 本報 號外를 無端히 押收
0332 建議書 提出, 新聞紙法 及 出版法 改正에 對하여
0333 少年演說 中止
0334 言動의 不穩과 過激
0335 『斥候隊』는 押收
0336 濟州警察署의 謝過, 本報 號外 押收事件에 對하여
0337 水兵 銃殺, 過激書籍 所持의 理由로
0338 脚本檢閱도 實施
0339 興行場 及 興行 取締規則 改正
0340 市內에서 又復 爆彈 檢擧
0341 朝鮮文의 共産書
0342 勸農洞에 文書 押收
0343 無理한 淸州警察, 上部의 命令없이 本報 號外를 押收
0344 잔소리
0345 民聲
0346 『新社會』 原稿 전부 압수되었다
0347 『新社會』 原稿의 連次 押收
0348 斷行할 心算
0349 金明植은 病監에
0350 不穩文書 配付者
0351 苛酷한 勞役에 金明植 發病
0352 金明植의 重病에 전옥도 깊이 동정
0353 日本 있는 朝鮮人 主義者가勞動同盟大會
0354 宣傳文書 押收
0355 言論을 無視하는 風潮
0356 『延禧』 雜誌 押收
0357 兄弟 不相識하도록 쇠약한 김명식
0358 間島에 있는 過激 共産黨 二十四 名 引致됨
0359 間島陰謀 別報
0360 平壤署 突然 活動
0361 押收된 雜誌 二 件
0362 言論의 取締
0363 盟休 顚末書가 탈이 나서 聯盟會員 檢束됨
0364 『新天地』 押收
0365 棧橋 待合室에 不穩文書를 뿌린 자가 있어
0366 金明植 執行停止
0367 白大鎭 氏 出獄
0368 『學生界』를 不許可
0369 『進』 發賣禁止
0370 間島 警察이 本報를 押收
0371 禁輸 書籍 一切 押收
0372 輸入禁止 書籍
0373 『開闢』 九月號 押收
0374 『新天地』 九月號 押收
0375 全南 東部 記者 臨時會
0376 今回 東京震災에 對한 當局의 言論取締
0377 北靑警察 本報 號外 無理 押收
0378 『新天地』 社員 四 名
0379 『大東新報』 押收
0380 押收 新聞이 山積
0381 警告文을 押收
0382 『天道敎月報』 押收
0383 學生 二 名 拘留
0384 普天敎 幹部 檢擧
0385 南川署의 盲目的 押收
0386 勞?素人劇을 禁止
0387 『新天地』 事件은 制令 違反
0388 『開闢』 十月號 押收
0389 '靑年日' 關係로 검거되었던 사 씨 작일에 모두 방면
0390 羅南 警吏의 盲目 行動, 新聞 號外를 往往 無理히 押收
0391 路上에 不穩書信
0392 不穩文書를 印刷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려다가 발각
0393 共進會 附近에서 不穩文書 發見
0394 問題되던 不穩文書는 어떤 자의 장난으로 판명되어
0395 獨 外電 檢閱 撤廢
0396 各 言論機關의 慘禍
0397 民聲
0398 新聞 差押은 尙今 繼續
0399 新聞通信의 押收가 二日間에 十四 件
0400 『新天地』 筆禍事件
0401 間島 消息 一束
0402 赤色紙 事件
0403 脚本과 寫眞
0404 良心의 法廷에 訴하노라
0405 元山 電柱에 獨立宣言書
0406 『新天地』 事件 公判
0407 『新天地』 事件
0408 『新天地』 事件 控訴
0409 『新生命』 押收
0410 出版法은 現代를 侮視
0411 無責任한 羅南署의 行動, 新聞 號外를 無理하게 押收
0412 잔소리
0413 『神壇民史』를 多數 押收
0414 『平南每日』 筆禍
0415 端川 講演 中止
0416 電報檢閱 開始
0417 維新靑年會 巡廻劇團
0418 流言取締令 廢棄
0419 宋寧燮 氏 無罪
0420 『愛』 創刊號 押收
0421 『廢墟以後』 筆禍
0422 市內에 不穩文書
0423 出版法을 고치라
0424 言論의 權威는 何?
0425 不穩文書와 兇器 넣은 행구를 버리고 달아난 조선인
0426 『崇中 同窓學界』 押收
0427 『朝日』 筆禍事件
0428 學務 當局의 愚를 笑하노라
0429 『新天地』의 記者 服役 決定
0430 一時 言行으로 鄭 敎師 拘引
0431 『朝日』 筆禍 公判
0432 『勞?』 創刊號 押收
0433 『開闢』 二月號 筆禍
0434 攝政宮 行次 前에 不穩文書 配布
0435 京都 御所 墻壁上에 不穩文書 揭付者
0436 『東亞細亞』 主筆 金 氏 家宅搜索
0437 新聞記者가 不穩文書 貼付
0438 縣立 中學校 生徒가 不穩文字 壁書
0439 活動필름의 檢査
0440 『新天地』 又 押收
0441 宇治에 不穩文書
0442 宇治에 怪漢 潛伏
0443 『焰群』에도 壓迫
0444 『開闢』 三月號 押收
0445 民衆과 壓迫
0446 愛國紀念文 전신주에 붙여
0447 長野縣에서도 言論界 筆禍
0448 軍隊에 不穩文書
0449 行李 속에 秘密文書
0450 活動寫眞 取締를 각지에서 통일할 예정
0451 『새家庭』 押收
0452 元山의 獨立紀念文犯
0453 治安警察令 警務局에서 考案
0454 兪鎭熙 氏 出獄
0455 辛 氏는 二十九日 역시 출옥한다고
0456 辛日鎔 氏 出獄
0457 講演 禁止
0458 『開闢』 又復 筆禍
0459 『進』 메데號 押收
0460 잔소리
0461 『朝鮮之光』 押收
0462 三時間 前에 突然 講演禁止
0463 『朝鮮之光』 繼刊號 발행 즉일로 압수
0464 잔소리
0465 東京에 不穩文書
0466 理由없는 實錄의 謄寫 禁止
0467 震災時의 慘劇을 北京 同胞가 調査 發表
0468 『朝鮮之光』 續刊
0469 天道敎 新派의 約章 押收
0470 色眼鏡과 押收病
0471 勞農同盟 會錄 會則 規約을종로서에서 압수
0472 勞農總同盟의 印刷會錄은 押收
0473 天道敎 宣傳文 七千 枚을 押收
0474 『朝鮮之光』 또 押收
0475 押收에 對하여
0476 서울靑年의 講演會 禁止
0477 質問할 터, 印刷物 押收 問題로
0478 押收 解除
0479 天道 約章 還受
0480 壓迫과 抗拒
0481 言論集會壓迫彈劾會
0482 抗拒와 效果
0483 言論 壓迫에 對하여
0484 郵便局에 秘密結社?
0485 警察의 神經 過敏
0486 言論 壓迫으로 市民大會 開催
0487 壓迫의 實地事實
0488 惡醫師 聲討 檄文 警官에게 押收
0489 結社事件의 眞相
0490 EXORBITANT SUPPRESSION
0491 二十八日에 團?會, 언론 압박 탄핵회 선후책으로
0492 朴濟鎬 氏 身病
0493 『六一之南岡』 押收
0494 演說과 示威
0495 今後 活動寫眞은 京城 檢閱로 統一
0496 言論集會 壓迫의 彈劾方法의 具體的 決議
0497 金一東 君 逮捕
0498 STRUGGLE FOR LIBERTY OF THE PRESS
0499 押收하는 當局을 向하여
0500 『朝鮮之光』 또 押收
0501 押收하는 當局에게
0502 朴濟鎬 君 長逝, 언론계의 희생자
0503 巡廻診療 講演 中止
0504 警務局 干涉과 巡廻班 中止 顚末
0505 岩泰事件 同情 講演 禁止
0506 『基督申報』 押收
0507 言論 壓迫 彈劾 演說 中止
0508 道民大會 趣旨書를 光州警察署가 押收
0509 다시 言論 壓迫에 對하여
0510 壓制的의 禁止命令
0511 『갈돕』誌 發刊 禁止
0512 聽衆 三千의 言論壓迫彈劾會
0513 『相助』 原稿 押收
0514 『苦聲』 創刊號 押收
0515 講演을 못한다
0516 平壤勞?總同盟에서 不穩文書 押收
0517 第二次 大檢擧?
0518 延日 留學生 巡廻講演 中止
0519 勞? 關係 論文을 不穩文書라고 경찰서에서 압수
0520 RESULTS OF SUPPRESSION
0521 九月一日 記念文
0522 李廷鎬 外 十四 名은 昨日 檢事局에 送致하였다
0523 紀念文 붙인 犯人 아직도 알 수 없다고
0524 活動寫眞 八月 中에만 二百八十餘 里
0525 地震 紀念文은 아이들 장난이라고
0526 天聯 宣傳文 경무국이 반포금지
0527 言論機關 取締
0528 集會 取締
0529 元山 舌禍事件
0530 電報檢閱 通報
0531 記者 傍聽 禁止
0532 『斥候隊』 押收
0533 安東局 郵書檢閱
0534 人夫로 變裝하고 不穩文書를 傳達
0535 映畵檢閱 統一
0536 言論, 集會 取締에 對하여
0537 新聞 發送 禁止
0538 大韓獨立團 事件
0539 『新知識』 原稿 押收
0540 饑饉 演說을 警察이 禁止
0541 「宣戰公告文」, 이 같은 불온문서 시내 각처에
0542 衣欌 속에 不穩文書
0543 勞?問題 講演 辯士 拘引
0544 東京서 開催한 饑饉 講演 解散
0545 仁川警察의 過敏症
0546 元山 靑年 舌禍 無罪 判決
0547 『貧富一覽』 押收
0548 CENSORSHIP
0549 學藝消息
0550 '長白' 事件 第一回 公判
0551 日本 全國 軍隊에 不穩文書 密送
0552 『朝鮮之光』 押收
0553 孫文 排斥의 不穩文書 撒布
0554 日本 雜誌 中에 不穩한 朝鮮 文書
0555 『新興靑年』 創刊號 일본서 발행 조선서 압수
0556 『解放運動』도 押收
0557 學術講演을 憑藉하고 不穩思想을 宣傳
0558 社會思想 硏究 禁止로 文部省을 總攻擊
0559 本紙 號外 發行
0560 增師는 不可能, 新聞法 近近 制定
0561 『형평(衡平)』 初號 押收
0562 『崇實』 臨時號 發行
0563 『新生活』 事件의 朴熙道 氏 出獄
0564 無産靑年 宣言書 동경에서 배부하려다가 압수
0565 不穩文書 押收
0566 朴熙道 氏 入京
0567 獄中에서 母喪! 出監한 朴熙道 氏
0568 救饑 素人劇을 价川署가 絶對 禁止
0569 言論自由를 尊重하라
0570 裡里署 大活動
0571 民衆運動者 事件
0572 鏡城 舌禍事件
0573 仁川 無産靑年 集會를 禁止
0574 서울少年도 集會 禁止
0575 『新興靑年』 發賣禁止
0576 地方短評
0577 會合을 一切 不許
0578 全羅北道 民衆幹部 續續 檢擧
0579 針小棒大的 內面
0580 米國서 日本 軍隊에 過激한 不穩文書
0581 '天皇의 尊嚴, 革命의 新眼目'
0582 民衆運動會員 大部分 放免
0583 宋寧? 氏 放免
0584 所謂 警務局 檢閱
0585 民衆運動社員 九 氏 被訴
0586 警察의 干涉으로 饑饉救濟劇 中止
0587 다섯 가지 重要 問題
0588 『開闢』 三月號 押收
0589 秘密文書를 해외서 보내어 우편을 엄밀 조사
0590 『延禧』誌 押收
0591 民衆運動 事件에 同情
0592 民衆運動社 事件 公判
0593 民衆運動社 事件 公判
0594 ○○殿! 조선서 하관우편국에 不穩한 電報
0595 全部 保釋, 지난 십삼일에 民衆運動社 事件
0596 朴純秉 氏 檢束
0597 『基督申報』 押收
0598 『思想』 押收
0599 勞總懇談會 警察 禁止
0600 『思想運動』 押收
0601 五月 一日 示威에 '植民地 解放'은 削除
0602 押收 雜誌 携帶
0603 號外 押收
0604 壓迫과 反動
0605 言論의 建設性 (上)
0606 言論界를 愚弄하는 當局者의 暴言!
0607 '會'마다 禁止!
0608 鄭 氏 講演 禁止
0609 '메데' 關한 集會 絶對 禁止
0610 『學之光』 押收
0611 勞總 主催의 講演도 禁止
0612 秘密書類 押收
0613 『思想運動』 押收
0614 店員 講演 禁止
0615 不穩 標語 配布로 勞總 常務委員 又 召喚
0616 獨立熱을 ?吹하는 長文의 警告文 押收
0617 高麗共産黨 機關紙에 排日記事를 禁止
0618 李 孃 無事 放免
0619 追悼文도 不穩!
0620 活動寫眞 필름 檢閱稅 徵收 計劃
0621 關東大會 禁止
0622 『學之光』 押收
0623 『開闢』 六月號 押收
0624 平南 大同署에서 靑年 十三 名 檢擧
0625 連累 二 名 또 檢擧
0626 新聞紙法 改正에 際하여
0627 孫 氏 追悼會 禁止
0628 東宮 御所에 不警文
0629 思想運動社員 검사국으로 압송
0630 敎育講演도 禁止
0631 千餘 枚 不穩文書를 携帶한 排外運動 特派員
0632 中國行 電報檢閱
0633 新聞을 自意 押收
0634 全北 記者團, 警察의 言論界 威脅 道廳에 抗議를 論議
0635 地方短評
0636 『新民』 臨時號
0637 『開闢』 八月號 押收
0638 言論取締는 如此! 『開闢』誌에 發行停止!
0639 『開闢』의 停止와 當局의 言明
0640 社會의 動靜과 言論機關
0641 『벼락』 創刊號 押收
0642 端川警察署 警官 押收한 新聞을 放賣
0643 朴思稷, 朴達成 兩氏 舌禍?
0644 西曆 썼다고 削除시킨 元山警察
0645 廣告 揭示로 拘引
0646 歡迎 講演도 禁止
0647 烽火會 總會를 警察이 禁止!
0648 思想運動社員 檢事局에 送致
0649 『朝鮮日報』 發行停止
0650 警察의 無理한 壓迫
0651 謄寫 敎科書도 出版物 違反
0652 名目은 治安妨害, 『朝鮮日報』에 發行停止
0653 『開闢』 禁止 交涉 顚末
0654 『朝鮮日報』 發行停止에 對하여
0655 運命은 남의 손에
0656 露國에 在한 言論의 統制
0657 階級意識은 不穩
0658 露國에 在한 言論의 統制 (下)
0659 支局員 二 名을 돌연히 구금
0660 發行停止된 『朝鮮日報』 社員들을 續續 召喚
0661 『朝日』 讀者大會 順天에서 開催
0662 輪轉機까지 差押
0663 辛日鎔 氏 釋放
0664 海州 店員親睦會 宣傳紙를 押收
0665 宮城 警戒를 突然 嚴重히
0666 『朝鮮日報』 起訴
0667 『朝鮮之光』 押收
0668 解停된 『開闢』誌 호외를 발행
0669 謹告
0670 朴熙道 氏 집을 突然 家宅搜索
0671 解停되자 淘汰된 『조선일보』 사원
0672 主義 書籍 본다고
0673 五 氏는 無關係
0674 徐 氏는 事實 否認
0675 聖 彼得堡에서 軍事 結社 發覺
0676 筆者는 治維法 違反
0677 警告文 萬餘 張
0678 不穩文, 간도에서 보낸 것
0679 『農村』 創刊 不許
0680 解禁된 『開闢』誌 續刊 劈頭에 又 押收
0681 本報 筆禍事件
0682 發起會 禁止를 當한 慶北靑年聯盟
0683 咸南 勞農總聯盟, 警察은 突然 禁止
0684 愈出愈酷한 言論取締
0685 言論 壓迫에 關하여
0686 『朝鮮의 赤裸裸』 경찰이 주목한다고
0687 本報 筆禍事件 公判 又復 延期
0688 『朝鮮之光』 押收
0689 『新民』 押收
0690 主義書籍의 發賣禁止
0691 兩氏 講演 禁止
0692 學生雄辯會 禁止
0693 陶山書院 聲討講演 警察은 突然 禁止
0694 陶山書院 聲討 禁止
0695 魚魯不辨한 秀崎公普校長
0696 『開闢』 又復 押收
0697 上海로 간 辛日鎔 氏
0698 京都帝大生 四十 名을 拘引
0699 押收 書籍과 謄寫物은 모두 過激한 것
0700 京大 不穩文書
0701 民運事件 求刑
0702 延期되어 오던 本報 筆禍 公判
0703 京大 不穩事件은 出版法 違反
0704 『開闢』 號外 發行
0705 本報 筆禍事件
0706 映畵檢閱
0707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08 『新社會』 創刊號
0709 本報 筆禍 判決
0710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11 不穩하다고 年賀狀까지 押收
0712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13 鎭南浦 勞組幹部 六 名을 突然 檢擧
0714 『朝鮮商業』 押收
0715 年賀狀 再次 押收
0716 思想講演 禁止
0717 年賀狀 又復 천여 장을 압수
0718 靑總 年賀狀도 不穩타고 押收
0719 風紀紊亂이라고 男女 討論 禁止
0720 新聞配達組合 宣言文 又 押收
0721 三重縣 事件 調査會 禁止
0722 ?話
0723 新聞紙法 及 出版法 改正 要旨
0724 秘密出版物 沒收
0725 集會의 禁止와 保障
0726 不遠에 改正될 朝鮮新聞紙法
0727 少年 少女의 集會 禁止는 警察部 命令이라고
0728 '키스', 裸體 大禁物
0729 『新民』 二月號 押收
0730 虛無黨 事件
0731 『無産新聞』 押收
0732 『思想運動』 押收
0733 原州 우리俱樂部 委員 三 名 檢擧
0734 壁新聞 押收
0735 公判을 앞에 두고 虛無黨事件 全部 解禁
0736 三 氏 釋放
0737 懸案 中인 朝鮮新聞紙法
0738 『開闢』 三月號 押收
0739 中止, 檢束, 解散
0740 出版物令 制定
0741 社會問題 講演會 解散
0742 赤旗와 宣傳紙 警察이 押收
0743 素人劇은 禁止
0744 客月 中 檢閱 映畵
0745 新女性들에게 鐵槌, '댄스'禁止 法律案 近히 議會에 提出
0746 映畵檢閱 統一
0747 同業 『東亞日報』 突然 發行停止
0748 『東亞日報』의 發行停止
0749 出版法에 關하여
0750 三一紀念文으로 數十 名 取調
0751 『開闢』 號外 發行
0752 京城印工同盟 綱領 規約 押收
0753 活動寫眞 說明 中 辯士 突然 檢束
0754 朝鮮出版物令 成案
0755 早大行 露國 書籍 百五十 卷은 押收
0756 『東亞報』 事件 起訴
0757 『東亞報』 筆禍事件
0758 出版法案 審議는 五十二議會로 延拖
0759 講師가 '不穩'타고 勞?夜學을 禁止, 『勞動讀本』까지 押收
0760 不穩電報 差押 嚴命
0761 虛無黨事件 又 延期
0762 『自我聲』 創刊 押收
0763 壁新聞은 押收, 責任者는 處罰
0764 全朝鮮靑年雄辯大會를 禁止
0765 팸플릿 押收
0766 委員會도 또 禁止
0767 續刊에 臨하여
0768 停刊 中의 社會相 (一)
0769 停刊으로 解刊까지 隱忍自重 四十四日
0770 體刑까지 當한 一審 公判 經過
0771 不穩文書를 配布
0772 機械 沒收를 求刑
0773 本報 筆禍事件
0774 警務局 課 廢合, 警務課 分散, 圖書課 新設
0775 全北記者團 集會 制限
0776 少年團 創立 又復 禁止
0777 어린이날 集會 禁止
0778 『自我聲』 押收
0779 本報 號外 發行, 발행 후 금지 당해
0780 全北 記者大會
0781 自由會員 釋放
0782 左系 新聞 停刊
0783 『大衆運動』 創刊號 押收
0784 어린이날 紀念 禁止
0785 一日에 十 新聞 押收
0786 메이데이 紀念, 禁止
0787 서울靑年會 綱領을 押收
0788 『無産者新聞』 號外 押收
0789 本報 筆禍 控訴 判決
0790 『新人間』 五月號 削除
0791 唱歌冊 押收 後 학생 한 명 취조
0792 『朝鮮日報』 事件, 檢事가 다시 上告
0793 阿峴靑年會 幹部 不穩 標語로 檢擧
0794 審議室에 廻附된 新聞紙法 改正案
0795 『朝鮮農民』 臨時號
0796 不穩 傳道紙 押收 책임 목사는 소환 설유
0797 壁新聞 押收
0798 『天鷄』 雜誌 發行禁止
0799 思想取締의 痛棒은 各 大學敎授, 講師에도
0800 赤露 書籍 又 押收
0801 크로포도킨 著書 百七十 卷을 押收
0802 筆禍事件 公判
0803 咸 氏는 執行猶豫
0804 同業 『東亞報』 筆禍 控訴 公判 延期
0805 『自我聲』 新進會 幹部를 大檢擧
0806 『時代報』 筆禍 上告 公判
0807 『思想運動』 臨時號
0808 『朝鮮之光』 押收
0809 六 新聞 發賣禁止
0810 『開闢』의 赤色 포스터 押收
0811 映畵檢閱證 僞造 取締 嚴重
0812 『開闢』 押收
0813 安邊 靑聯의 不平 蒐集 禁止
0814 九 新聞 差押
0815 『開闢』 臨時號 發行
0816 ○○宣言 計劃書 發覺
0817 八日 午後부터 左傾團體 數十 處 搜索
0818 京城驛 下車客 수상만 하면 引致
0819 휘파람
0820 檄文과 印刷機 梨花洞서도 押收
0821 佛敎 代表의 「啓明星」 新事件 新檄文 續出
0822 暴風 맞은 內外新聞
0823 原稿 押收한 郵便所長에 警告
0824 事前 發覺으로 學生 間 同志 糾合
0825 開闢社務는 繼續, 『개벽』 호외와 『어린이』 발행
0826 白紙도 不穩文書?
0827 不穩文書 件
0828 再刊한 號外 押收, '事實이면 不法'
0829 『開闢』 責任者 起訴?
0830 『開闢』 幹部 呼出
0831 中國紙幣僞造團 檢擧가 計劃 發覺의 端緖
0832 檄文 發覺은 少女 發說로, 資金은 上海에서 持來
0833 京城驛頭에서 海外 檄文, 感古堂에서 國內 檄文
0834 日郵船 船底에 赤化敎科書
0835 海外 檄文의 內容은 純全한 赤化宣傳
0836 民族主義 各 團體와 連絡 計劃 中에 發覺
0837 六月 十日 朝鮮○○萬歲事件
0838 素人劇 禁止
0839 『東光』 七月號 原稿 押收
0840 本報 筆禍事件 兩氏 上告 公判
0841 淸津에 不穩文書
0842 映畵 六十萬 尺
0843 『眞生』 押收
0844 押收 一束
0845 三 미터 五 錢式에 本府에서 映畵檢閱
0846 『小作運動』 押收
0847 六月事件의 十七 人 明日에는 起訴될 듯
0848 六十萬歲事件 卄八日 公判
0849 『赤衛』 押收
0850 活動寫眞檢閱規則
0851 活動寫眞檢閱規則
0852 『新社會』 押收
0853 『朝鮮商業』 押收
0854 起訴 十二 名, 放免 五 名, 適用 法律은 治維法과 出版法
0855 新聞記事까지 干涉 始作한 고성경찰서장
0856 映畵當局者 協議
0857 廣東의 諸 新聞 停刊
0858 本報 筆禍事件 上告 判決
0859 雜誌 配付事件 留學生 被捉
0860 咸興 七四 聯隊에 不穩文書가 飛入
0861 聯合, 탓스 兩社 發信權 停止
0862 新 出版法은 許可制
0863 出版許可 手續 簡便히 改正
0864 改正 中의 出版法
0865 言論界 一大 慘劇, 『開闢』에 發行禁止
0866 警察署 依託이라고 郵便所에서 新聞 檢閱
0867 活寫 營業에 관한 各 館 協定 破棄
0868 吊 『開闢』誌
0869 朝鮮出版物令 九月頃 施行
0870 勞農政府 新聞報告 禁止
0871 『朝鮮農民』 押收
0872 本報 筆禍事件 金炯元 氏 육일 오전에 입감되었다
0873 軍閥의 暴壓으로 北京 言論界 恐慌
0874 北京서 發行하는 過激雜誌 『血潮』
0875 關西記者團에서 政府에 抗議
0876 出版物令은 尙未提出
0877 長興 講演 禁止
0878 本報 筆禍事件
0879 건방진 警官
0880 一日 中 同一한 法廷에서 兩 新聞 筆禍 公判
0881 素人劇도 禁止, '道令'이라고
0882 素人劇도 禁止, 保寧郡 警察
0883 本報 控訴 言渡
0884 新 新聞紙法
0885 本報 又復 筆禍
0886 서리같은 표정
0887 『眞生』誌 押收
0888 赤化映畵 押收
0889 金炯元 氏 出獄, 삼 개월 형기를 마치고
0890 『曉鐘』 押收
0891 畢竟은 鐵窓으로, 讀者와 一時 離別
0892 慶靑 『活路』 續刊
0893 勞農 機關誌 發行停止 被命
0894 『東亞報』 主筆 宋 氏 入監
0895 八 新聞 差押
0896 號外의 號外 또 號外 發行
0897 『少年會報』 發行禁止
0898 無理한 沃川警察 素人劇 興行도 禁止
0899 『崇實』 雜誌 押收
0900 出版物 法案 문제되는 몇몇
0901 시집 『熱光』 不許可
0902 朝鮮 檢閱係는 書籍 閻羅國
0903 梨花, 延禧 兩 專門校 英語 講演은 中止
0904 『新民』 押收
0905 幼稚園 演劇會를 警察이 突然 禁止
0906 赤露서 온 宣傳紙 萬 數千 枚 押收
0907 『仁旺會報』 押收
0908 日本 新聞 二十餘 種 朝鮮에서 發賣禁止
0909 土星會 映畵 『不忘曲』 上映禁止
0910 義烈團의 警告文
0911 洞制文 押收
0912 『新社會』 一月號 押收
0913 日本 新聞 差押
0914 映畵 檢閱料 問題 再燃과 營業稅 賦課率 減下 運動
0915 東拓事件 本報 號外를 黃州暑 無端이 押收
0916 『培材』 압수
0917 警務局에도 라디오 備置
0918 文明의 利器도 廢止 外 束手無策
0919 『農民』 原稿 押收
0920 『現代評論』 創刊號
0921 郵送되는 勞農圖書
0922 까닭모를 警察
0923 『勞友』 創刊號 押收
0924 柳完熙 氏 出獄
0925 出獄과 ?刑 消息 全朝鮮 卄六 處 刑務所
0926 問題 中의 重要 事件
0927 側面 攻擊으로 檢閱料 減下運動
0928 出版法案 下院에 提出
0929 五 미터 五 錢으로
0930 一月 中 檢閱映畵 十六萬六千米
0931 檢閱料의 負擔 拒絶
0932 嶺美警察의 沒常識, 『新朝鮮』을 無理 押收
0933 『炬火』 압수
0934 『炬火』誌 筆禍 책임자 검속
0935 『松友』 發行禁止
0936 『東湖文壇』 不許可
0937 『新社會』 押收
0938 出版法案, 日本 操?界 反對
0939 『野烽』 不許可
0940 統營 雜誌 發行禁止
0941 出版物法案
0942 稿料問題로 문예가협회 분기
0943 個人 出版 原稿를 警察이 紛失
0944 突然 傍聽禁止
0945 警察 代身의 郵便所 新聞을 無理 押收
0946 『朝鮮之光』 押收
0947 『부녀세계』 창간호 해금
0948 『新朝鮮』 第二號
0949 『炬火』 被告 體刑에
0950 事件의 發覺 端緖와 檢擧되던 前後의 顚末
0951 『基督申報』 押收
0952 雜誌를 配達 안 해
0953 普校 訓導 집에 多數 不穩文書
0954 上映禁止된 「野鼠」, 完成된 「黑과 白」
0955 檢閱을 當한 本報를 醴泉警察이 押收
0956 言語道斷의 星州警察 記者 手帖을 押收
0957 『正義』 發行 不許
0958 共産黨을 中心한 中國 赤化計劃
0959 『基督新報』 押收
0960 原稿 押收
0961 臺灣 報道機關 檢閱開始
0962 秘密結社라고 統營 正火會 禁止
0963 『少年界』 不許可
0964 『北野聲』 筆禍
0965 記者 通行 絶對禁止 警察에서 原稿檢閱
0966 出版 勞?法 等 調査會 設置
0967 尤益 峻烈한 郵便物 檢閱
0968 『新人間』 原稿 押收
0969 朝鮮勞?黨 宣言 押收
0970 메이데이 삐라 元山署 押收
0971 不敬行爲로 禁演된 京劇의 「血染의 軍刀」
0972 『京日』 筆禍事件 原審대로 求刑
0973 地方警察의 無理
0974 本報 號外 押收
0975 『炬火』 事件 無罪
0976 東民劇團 興行 警察 突然 禁止
0977 科學硏究會 書類 再次 押收
0978 押收文書 發表
0979 一般 圖書의 漸增 傾向
0980 新聞檢閱 嚴重
0981 『大衆運動』 事件 覆審 無罪 判決
0982 『神學世界』 押收
0983 秦始皇 時代 再現
0984 『盛京時報』 發賣禁止
0985 新幹 支會의 宣傳文 押收
0986 新幹會 益山支會 設立大會를 禁止
0987 學校通信 十號를 넘은 『培材』 雜誌
0988 半紙 三千 張까지 警察이 押收
0989 『新人間』 押收
0990 『解放運動』 發行 準備
0991 管外 出版을 取締코자 各地 警察과 交涉
0992 總督과 圖書課長을 不敬罪로 告訴 提起
0993 『朝鮮農民』 押收
0994 『새벗』 八月號 原稿 押收
0995 勞動者의 놀이도 禁止
0996 中國 警察 新聞配達 禁止
0997 兒童 懸賞 雄辯과 討論會도 禁止
0998 淸州靑年會 壁新聞
0999 開城 螢雲社 雜誌 不許可
1000 壁新聞 發行禁止
1001 神人共怒할 九沙坪 中國 官憲
1002 禁止된 出版物을 削除 還付
1003 『朝鮮農人』 原稿 押收
1004 『現代評論』 八月號 押收
1005 『大衆新聞』 支持 宣傳文을 종로서에서 금지
1006 開城 螢雪社 『思潮』 創刊 出來
1007 不穩한 宣言書 多數를 押收
1008 童話會까지 禁止
1009 記者團 聲討文 보고 本報 支局을 搜索
1010 天安 地方에서 『大衆新聞』 押收
1011 靑年會 講演을 警察이 禁止 解散
1012 『勞運』 支社長
1013 國際新聞會議 檢閱方法 改善案 可決
1014 新幹 '삐라' 靈岩서 押收
1015 蔚山 『農報』 發行
1016 洪原 記者 臨時大會
1017 記者團 討議를 洪原警察이 禁止
1018 拳銃과 不穩文書로 軍資募集튼 犯人
1019 對 各國 政府 檢閱廢止 要求, 國際新聞會議에서
1020 『大衆新聞』 押收
1021 京城에 不穩文書 동경서 온 듯
1022 『自光』 原稿 押收
1023 木靑同盟 常務書記 檢束
1024 言論集會 暴壓 彈劾 演說도 禁止
1025 大昭館 家宅搜索 『無産者新聞』 押收
1026 『無産者新聞』 押收
1027 『東光』 十一月 不許可
1028 新聞紙 及 出版法 改正
1029 『無産者新聞』 押收
1030 露 革命 紀念 集會는 一切로 禁止
1031 大邱서도 禁止, 기념에 대한 토의도 금지
1032 『無産』, 『大衆』 新聞
1033 新興, 서울 兩 靑年會 革命 紀念 講演 禁止
1034 南滿 長春에서 郵便局이 記事 押收
1035 『農聯趣旨』 押收
1036 保安組合長 記者團員에게 無故 路上 暴行
1037 印刷物 押收하고 十一 名을 檢束
1038 不穩文書 警戒
1039 『益世報』 押收
1040 踵起하는 學海 不祥事
1041 『運動會報』 筆者 孟君에게 科料 處分
1042 出版物 取締에 朝鮮은 事情이 全然히 相違된다고
1043 號外 新聞 押收
1044 不穩文書 密輸 慶南 警察 活動
1045 日本 發行 新聞 ?四 種을 押收
1046 『少年朝鮮』 押收
1047 今 議會에 提出할 出版物法 改正案
1048 內務省 提案의 出版法 改正 項目
1049 『益世報』 押收
1050 科料를 不服 正式 裁判 請求
1051 殊常한 朝鮮人 夫妻 門司署에서 取調
1052 惡法 問題
1053 主人도 모르고 文櫃를 破壞 檢閱
1054 解體 宣言文 押收
1055 頻頻히 國境넘는 不穩文書를 取締
1056 上映 禁止된 『血魔』
1057 宣傳紙 押收
1058 少年 二 名 檢束
1059 階級思想 鼓吹 文藝品 嚴重 取締
1060 『現代評論』 押收
1061 地方警察의 自意로 新聞 號外를 또 押收
1062 勞組會館 搜索
1063 兩日 間 『益世報』 押收
1064 感想談까지 禁止된 社會運動者 忘年會
1065 『自活』 新年號 押收
미친 자의 칼 아래서 2 목차
1928~1945
1066 京城서 通過된 것을 地方警察이 押收
1067 言論 權威의 伸張을 目標로 諸多 重大事項 決議
1068 黃州 月刊 『生의 聲』 雜誌 創刊號 押收
1069 '칼', '로사'의 殉節 紀念 禁止
1070 檢閱制度 反對 週間
1071 十三日에 突然 鄭東允 氏 檢束 가택까지 수색
1072 無産靑年의 不穩한 標語
1073 月曆 박다가 檢束
1074 『節制生活』 押收
1075 文書 押收 問題 惡化
1076 팸플릿 押收 問題로 民政黨 大憤慨
1077 『朝鮮日報』 筆禍 起訴 신문지법 위반
1078 出版法 違反? 四名만은 送局
1079 『無窮花』 押收
1080 蔡그리고리는 出版法 違反
1081 萬人 注視 中 開會되려던 新幹 定期大會 突然 禁止
1082 本報 筆禍事件 來 卄四日에 開廷
1083 新幹 統營支會 創立大會 突然 禁止
1084 海美勞組의 마크를 押收
1085 無産黨의 言論 壓迫에 各 團體가 奮起
1086 延白記者團 緊急 總會
1087 朝鮮 各 社會團體의 集會禁止를 解除하라
1088 中止와 禁止 中에 紀念만은 擧行
1089 『勞?運動』 押收
1090 淳昌警察의 靑年同盟 高壓! 검열을 자원한 인쇄물을 出版法 違反으로 檢擧 取調
1091 本報 安, 白 兩氏 筆禍事件 公判
1092 本報 筆禍事件 調書 不備로 廷期
1093 『中外日報』 筆禍
1094 不穩文 携帶者 各地에 徘徊
1095 警察의 無理 干涉으로 平壤 雄辯會 中止
1096 『現代婦人』 原稿 押收
1097 『中外報』 筆禍
1098 不穩하다고 劇團까지 解散
1099 軍 司令官 視察 時 不穩文書를 發見
1100 朝鮮文 新聞 押收 一年 間 百四十 件
1101 講演 原稿 提出
1102 三一運動 紀念 檄文 多數 押收
110
0001 秘密出版에서 등사판을 압수
0002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①
0003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②
0004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③
0005 出版 保安法 違反犯의豫審終結 決定書 ④
0006 不穩文書 印刷者 二 名 檢擧
0007 不穩文書 全部 押收
0008 申泰均의 『半島木鐸』 押收
0009 不穩檄文 配布
0010 活動映畵의 檢閱
0011 大韓國民會員의 不穩文書 撒布
0012 五 種의 不穩文書를 撒布한國民會決死團
0013 米豆取引所에 不穩貼紙
0014 聖書 以上의 反響
0015 筆禍 新聞 一束
0016 檄文을 配布하고
0017 兩 新聞 押收
0018 原稿檢閱을 廢止하라
0019 咸興 『獨立新聞』 백이어서 돌린 자
0020 言論自由
0021 益山 又晦生, 「我郡의 實例」
0022 傷風敗俗의 書籍 (上)
0023 傷風敗俗의 書籍 (中)
0024 傷風敗俗의 書籍 (下)
0025 『珠玉尺牘』은 押收되고 발행자는 처벌
0026 出版法 違反으로 檢事局에 押送된 鄭敬?
0027 過激機關紙 差押
0028 『開闢』 創刊號 押收
0029 『開闢』 雜誌 押收
0030 所謂 警察署의 '智識뿐으로는'
0031 晋州 學生大會
0032 言論은 元來 自由
0033 十二 新聞 押收
0034 『新女子』 四號 筆禍
0035 一般 出版物의 原稿檢閱 廢止乎
0036 三 演士 呼出
0037 不敬事件의 犯人과 憲兵隊
0038 電信柱에 不穩文書 貼付
0039 當局者의 認定에 依하여 言論 集會를 壓迫
0040 金 氏의 舌禍
0041 秘密文書 配布
0042 '苦는 樂의 種' 이런 말도 쓰면잡히어 가는 것
0043 大本敎 宣傳書 또 농성에서 압수
0044 京城府內에 不穩文書
0045 平壤에도 警告文
0046 仁川에도 宣傳書
0047 『朝鮮日報』 筆禍
0048 謄寫板 買入者 경찰서에서 엄중 취조
0049 愛讀 諸位에게 一週間 그리던인사를 드리오
0050 愚劣한 總督府 當局者는 何故로 우리 『日報』를 停刊시켰나뇨
0051 新聞 取締 方針
0052 同業 『朝鮮日報』는 無期 發行停止
0053 排日을 激勵한 文書를 配付
0054 過激文書 배포한 두 명
0055 伏見宮邸에 不穩文書를 郵送한 자가 있어서
0056 『東亞日報』는 無期 發行停止
0057 不穩文書를 配付
0058 獨立宣言 事件과 花井 博士의 辯論 開始 (一)
0059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二)
0060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三)
0061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四)
0062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五)
0063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六)
0064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七)
0065 獨立宣言 事件에 關한 控訴公判 (八)
0066 復活團決死隊라고 署名한 數百 張의 不穩文書 郵送
0067 西園寺公과 原 首相에게 不穩文書 郵送
0068 本報 讀者 諸賢에게 告함
0069 滿天下의 『朝鮮日報』 愛讀者 諸君에게
0070 死刑宣告文과 不穩文書를 配布
0071 秘密出版物 押收
0072 排日 朝鮮人 所有 活字 萬 個 發見 押收
0073 各地 陸軍……聯隊에 不穩文書
0074 龍山 聯隊에도 不穩文書
0075 鹿兒島 軍隊에도 不穩文書
0076 不穩文書 犯人
0077 淸津府廳에 不穩文書
0078 駐屯 軍營에 不穩文書
0079 京都 各署에 不穩文書
0080 光州署의 大活動으로 不穩文書 發覺
0081 新聞紙法 改正案
0082 雜誌 『開闢』 裁判 延期
0083 綿襪에 隱匿한 不穩文書
0084 不穩文書 配布
0085 雜誌 『開闢』 裁判 期日 確定
0086 『平南每日』 差押
0087 十錢 紙幣에 不穩文字
0088 不穩文書 五十 通
0089 雜誌 『開闢』 公判
0090 근년에 처음 있는 언론 옹호의 변론, 雜誌 『開闢』 辯論
0091 車中에 不穩文書
0092 『共濟』 雜誌 原稿 연속 네 번 압수
0093 不穩文書를 印刷
0094 『曙光』 原稿 押收
0095 『開闢』 言渡
0096 呂炳燮 氏 白放
0097 『서울』 原稿 押收
0098 '떠'市의 家宅搜索
0099 紅旗報를 郵送
0100 官廳에 不穩文書
0101 不穩文書 押收說
0102 大問題인 出版法
0103 大問題인 出版法
0104 紙幣에 不穩文句
0105 不穩文書를 携帶한 者
0106 郡廳에 不穩文書
0107 洪原 邑內에 不穩廣告
0108 至極히 危險한 大陰謀의 發覺
0109 出版法 違反者
0110 傳道講演의 舌禍
0111 不穩文書를 傳送
0112 載寧에도 搜索
0113 不穩文書와 彈藥 多數를 押收
0114 不穩文書 發行
0115 不穩文書 犯人
0116 『國民新聞』 筆禍
0117 『獨立新聞』 販賣員 逮捕
0118 藏書가 問題되어
0119 電柱에 不穩文書
0120 電柱에 不穩文書를 붙인 혐의로 다섯 명 검거
0121 女學生의 不穩唱歌
0122 申 氏 舌禍
0123 『女子時論』 筆禍
0124 不穩文書를 郵送
0125 赤露 宣傳 書類
0126 學生 多數 拘引
0127 『大衆時報』 押收
0128 市內에 又復 大事件
0129 興行 取締 方針
0130 朴 氏 畢竟 拘留
0131 不穩文書 押收
0132 『獨立新聞』을 配布한 이무영 등 두 명은 검사국에
0133 『北鮮日報』 筆禍
0134 新脚本인 「金英一의 死」
0135 水壺 中에 不穩文書
0136 過激文書 配付
0137 不穩文書로 脅迫하고
0138 鐵道 廣告板에 不穩文句
0139 統營 邑內에 不穩文書
0140 『開闢』 雜誌 筆禍
0141 間島領事?에 檢擧된 『愛國申報』 發行人
0142 不穩의 印刷物을 각 처에 배포했다
0143 警告文 等 配布
0144 女學校에 赤紙 宣傳
0145 宛然한 女子社會主義 大會
0146 通信物 取締乎
0147 不穩文을 郵送한 두 청년의 체포
0148 不穩한 '通文膽錄'
0149 鄭然圭 作 『魂』 押收
0150 巡講 舌禍 頻頻
0151 梁在演 君 檢擧
0152 十五 日 拘留
0153 『大衆時報』 筆禍
0154 梁在演 君 放免
0155 『大衆時報』 又復 押收
0156 忠南支團의 庶務員
0157 秋月左都夫, 「言論 出版의 自由」
0158 不穩文書 配付
0159 緊張한 警察活動
0160 月經帶 中에 不穩文書
0161 不穩文書를 揭示한 김판경은징역 팔 개월
0162 學生의 秘密結社
0163 『新韓靑年』 雜誌로 세 명이 잡혀 취조
0164 諸新聞 差押
0165 梨花 學生의 舌禍
0166 觀客에게 不穩文書 配布
0167 不穩 印刷物 配布
0168 滋賀에 不穩文書
0169 原 首相에게 不穩文書
0170 不穩文書 犯人 逮捕
0171 平民政府의 不穩文書
0172 前橋에도 大事件
0173 『李完用 賣國秘史』
0174 秘密出版 增加
0175 御歸朝奉祝日에 불온문서를 돌린 권익수는 검사국
0176 客室에 不穩 宣告文
0177 雜誌 『開闢』 筆禍
0178 慈城郡에 獨立團
0179 順川에도 二 名 逮捕
0180 自動車로 過激文書
0181 電柱에 不穩文書
0182 朝鮮歷史를 敎授한 先生은 마침내 구류
0183 門司 在留 朝鮮人에게 다수한 불온문서를 배포
0184 義州에 不穩文書
0185 古稀庵에 不穩文書
0186 만주桶에 不穩文書
0187 文化主義運動으로 선전문서가불온하다 하여
0188 步兵聯隊에 不穩文書
0189 『獨立新聞』 押收
0190 萬年筆 行商團이 불온문서 배포
0191 『檀鐸』 第二號 押收
0192 秘密計劃 又 發覺
0193 安東縣에 某 文書
0194 檢擧는 一段落
0195 臺灣靑年의 大憤慨, 언론 압박을 당국자에게 항거
0196 軍隊에 不穩文書
0197 잔소리
0198 『獨立戰報』를 配布하고 일 년만에 발각, 검거된 부산사건
0199 新年劈頭에 過激宣傳의 文書
0200 兵營에 共産黨
0201 出獄 祝賀 騷動
0202 娼妓에 不穩文書
0203 金善 孃의 舌禍
0204 興行物과 電車의 取締規則
0205 興行物 檢閱
0206 『國權恢復論』을 配布한 류영규 등의 공소공판
0207 朴琪永 等 國民會事件
0208 檢閱과 許可制 撤廢를 결의한 무명회 임시총회
0209 反逆團長 鄭在達
0210 宣言事件의 留學生
0211 兩 宮家에 不穩文書
0212 不穩文書 配布者 二 名 判決
0213 東京地方의 頻頻한 不穩文書
0214 危險 書冊을 秘密히 出版
0215 不穩文 配布한 學生
0216 東京留學生 講演禁止
0217 不穩文 配布한 글방 선생 체포
0218 『新生活』 創刊號 押收
0219 過激文書의 大行具
0220 興業物 取締規則
0221 興業場 興業 規則
0222 檢擧된 勇進團員
0223 東京에서 京城에
0224 過激思想宣傳紙
0225 興行 取締規則
0226 中國 新聞 取締
0227 昌城郡에 獨立團
0228 三十八 條의 興行 取締規則
0229 電柱에 秘密文書
0230 『新生活』 筆禍
0231 郵, 電 檢閱 開始
0232 上海에서 秘密文書
0233 下關에 不穩文書
0234 靑年討論 停止 命令
0235 韓族 共産黨의 宣傳書 發見
0236 貞洞 培材校에 不穩文書
0237 遊技場의 取締
0238 雜誌 『新生活』 筆禍
0239 警務當局者에게, 言論 壓迫이 심하다
0240 映畵 檢査 準備
0241 二萬 張의 不穩文書
0242 不穩文書로 脅迫하고
0243 臥龍洞에 不穩文書
0244 獨立生活이 問題乎
0245 不穩文書
0246 映畵檢閱 開始
0247 映畵 初檢閱
0248 『開闢』 雜誌 筆禍
0249 兵士에게 宣傳
0250 各 軍隊에 大宣傳
0251 新聞紙法 改正은 如何
0252 軍隊赤化宣傳團
0253 主謀者는 公判에, 출판법 위반으로
0254 二重으로 言論 壓迫
0255 警務局長의 警告에 對하여
0256 張 氏 假出獄
0257 『開闢』의 頻頻한 筆禍
0258 原稿檢閱과 旅行證明의 廢止
0259 注目할 言論界 前途
0260 言論取締에 對하여
0261 宣言書 携帶한 學生
0262 出版法 改正 內容
0263 不穩文書
0264 『革新公報』 押收
0265 廣告文이 不穩타고 학교 선생을 검거
0266 面所에 『革新公報』
0267 雜誌 『新天地』 押收
0268 兩 雜誌 發賣禁止
0269 雜誌業者를 訊問
0270 『新生活』 筆禍事件
0271 言論界가 遂 蹶起
0272 元山 方面에도 出張, 연일 계속되는 검사국 활동
0273 言論의 擁護를 決議
0274 本町署에 逮捕된 김사민도 검사국에
0275 『新生活』 又 筆禍
0276 『新生活』 十三號 押收
0277 言論政策의 失正
0278 朴 氏 夫人도 召喚
0279 兩 雜誌 事件의 內容
0280 揭載禁止 省令 廢止
0281 『新生活』 又復 押收
0282 言論과 生活의 關係를 論하여 齋藤 總督에게 告하노라
0283 雜誌 筆禍事件과 法曹界의 奮起
0284 『新天地』 筆禍事件
0285 一 個年 懲役을 求刑, 『신천지』 사건 제이회 공판
0286 『勞動』 雜誌 不許可
0287 朝鮮 初有의 社會主義 裁判
0288 流暢한 辛 氏의 答辯
0289 新生活社에 又復 搜索
0290 被告와 檢事가 동시에 공소, 『신천지』 필화사건
0291 『新韓公論』을 押收?
0292 裴東洙 氏 放免, 신 씨는 계속 취조
0293 『新生活』의 繼續 公判
0294 新聞紙法 改正案 如何
0295 『新生活』 繼續 公判
0296 苦學生 갈돕會 書類 押收
0297 週報 『新生活』 遂히 發行禁止
0298 『新生活』의 發行禁止
0299 活動寫眞 團束
0300 言渡는 今日, 『新生活』 事件
0301 잔소리
0302 印刷機 一臺도 沒收
0303 民聲
0304 『新天地』 控訴 公判
0305 白 氏 言渡 期日
0306 犯人의 死體에서 不穩文書
0307 『新天地』 判決期
0308 思想 取締案 提出 反對
0309 新聞記事로 嫌疑
0310 『新生活』 事件
0311 『歷代韓史』 押收
0312 結局 六 個月
0313 『獨立新聞』 押收
0314 金, 朴 兩氏 服役
0315 崔洽事件 擴大?
0316 秘密文書를 押收
0317 新聞紙法 內容
0318 東京과 京城 間에 往來하는 過激文書
0319 不穩唱歌로 학생을 가르쳐 준 교사모를 체포
0320 電柱에 '獨立萬歲'
0321 國境, 市內의 重大 事件 發覺
0322 不穩文書 配布한 홍두익은 체포
0323 六道溝에 又 檢擧
0324 檢閱 中에 押收
0325 出版法의 改正을 期하여
0326 獨立文書 發覺
0327 搜索, 檢閱, 押收
0328 長文의 意見書
0329 建議 提出을 決議, 新聞紙法, 出版法 改正期成會에서
0330 新聞紙法과 出版法 改正期成會
0331 無理한 濟州 警察, 本報 號外를 無端히 押收
0332 建議書 提出, 新聞紙法 及 出版法 改正에 對하여
0333 少年演說 中止
0334 言動의 不穩과 過激
0335 『斥候隊』는 押收
0336 濟州警察署의 謝過, 本報 號外 押收事件에 對하여
0337 水兵 銃殺, 過激書籍 所持의 理由로
0338 脚本檢閱도 實施
0339 興行場 及 興行 取締規則 改正
0340 市內에서 又復 爆彈 檢擧
0341 朝鮮文의 共産書
0342 勸農洞에 文書 押收
0343 無理한 淸州警察, 上部의 命令없이 本報 號外를 押收
0344 잔소리
0345 民聲
0346 『新社會』 原稿 전부 압수되었다
0347 『新社會』 原稿의 連次 押收
0348 斷行할 心算
0349 金明植은 病監에
0350 不穩文書 配付者
0351 苛酷한 勞役에 金明植 發病
0352 金明植의 重病에 전옥도 깊이 동정
0353 日本 있는 朝鮮人 主義者가勞動同盟大會
0354 宣傳文書 押收
0355 言論을 無視하는 風潮
0356 『延禧』 雜誌 押收
0357 兄弟 不相識하도록 쇠약한 김명식
0358 間島에 있는 過激 共産黨 二十四 名 引致됨
0359 間島陰謀 別報
0360 平壤署 突然 活動
0361 押收된 雜誌 二 件
0362 言論의 取締
0363 盟休 顚末書가 탈이 나서 聯盟會員 檢束됨
0364 『新天地』 押收
0365 棧橋 待合室에 不穩文書를 뿌린 자가 있어
0366 金明植 執行停止
0367 白大鎭 氏 出獄
0368 『學生界』를 不許可
0369 『進』 發賣禁止
0370 間島 警察이 本報를 押收
0371 禁輸 書籍 一切 押收
0372 輸入禁止 書籍
0373 『開闢』 九月號 押收
0374 『新天地』 九月號 押收
0375 全南 東部 記者 臨時會
0376 今回 東京震災에 對한 當局의 言論取締
0377 北靑警察 本報 號外 無理 押收
0378 『新天地』 社員 四 名
0379 『大東新報』 押收
0380 押收 新聞이 山積
0381 警告文을 押收
0382 『天道敎月報』 押收
0383 學生 二 名 拘留
0384 普天敎 幹部 檢擧
0385 南川署의 盲目的 押收
0386 勞?素人劇을 禁止
0387 『新天地』 事件은 制令 違反
0388 『開闢』 十月號 押收
0389 '靑年日' 關係로 검거되었던 사 씨 작일에 모두 방면
0390 羅南 警吏의 盲目 行動, 新聞 號外를 往往 無理히 押收
0391 路上에 不穩書信
0392 不穩文書를 印刷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려다가 발각
0393 共進會 附近에서 不穩文書 發見
0394 問題되던 不穩文書는 어떤 자의 장난으로 판명되어
0395 獨 外電 檢閱 撤廢
0396 各 言論機關의 慘禍
0397 民聲
0398 新聞 差押은 尙今 繼續
0399 新聞通信의 押收가 二日間에 十四 件
0400 『新天地』 筆禍事件
0401 間島 消息 一束
0402 赤色紙 事件
0403 脚本과 寫眞
0404 良心의 法廷에 訴하노라
0405 元山 電柱에 獨立宣言書
0406 『新天地』 事件 公判
0407 『新天地』 事件
0408 『新天地』 事件 控訴
0409 『新生命』 押收
0410 出版法은 現代를 侮視
0411 無責任한 羅南署의 行動, 新聞 號外를 無理하게 押收
0412 잔소리
0413 『神壇民史』를 多數 押收
0414 『平南每日』 筆禍
0415 端川 講演 中止
0416 電報檢閱 開始
0417 維新靑年會 巡廻劇團
0418 流言取締令 廢棄
0419 宋寧燮 氏 無罪
0420 『愛』 創刊號 押收
0421 『廢墟以後』 筆禍
0422 市內에 不穩文書
0423 出版法을 고치라
0424 言論의 權威는 何?
0425 不穩文書와 兇器 넣은 행구를 버리고 달아난 조선인
0426 『崇中 同窓學界』 押收
0427 『朝日』 筆禍事件
0428 學務 當局의 愚를 笑하노라
0429 『新天地』의 記者 服役 決定
0430 一時 言行으로 鄭 敎師 拘引
0431 『朝日』 筆禍 公判
0432 『勞?』 創刊號 押收
0433 『開闢』 二月號 筆禍
0434 攝政宮 行次 前에 不穩文書 配布
0435 京都 御所 墻壁上에 不穩文書 揭付者
0436 『東亞細亞』 主筆 金 氏 家宅搜索
0437 新聞記者가 不穩文書 貼付
0438 縣立 中學校 生徒가 不穩文字 壁書
0439 活動필름의 檢査
0440 『新天地』 又 押收
0441 宇治에 不穩文書
0442 宇治에 怪漢 潛伏
0443 『焰群』에도 壓迫
0444 『開闢』 三月號 押收
0445 民衆과 壓迫
0446 愛國紀念文 전신주에 붙여
0447 長野縣에서도 言論界 筆禍
0448 軍隊에 不穩文書
0449 行李 속에 秘密文書
0450 活動寫眞 取締를 각지에서 통일할 예정
0451 『새家庭』 押收
0452 元山의 獨立紀念文犯
0453 治安警察令 警務局에서 考案
0454 兪鎭熙 氏 出獄
0455 辛 氏는 二十九日 역시 출옥한다고
0456 辛日鎔 氏 出獄
0457 講演 禁止
0458 『開闢』 又復 筆禍
0459 『進』 메데號 押收
0460 잔소리
0461 『朝鮮之光』 押收
0462 三時間 前에 突然 講演禁止
0463 『朝鮮之光』 繼刊號 발행 즉일로 압수
0464 잔소리
0465 東京에 不穩文書
0466 理由없는 實錄의 謄寫 禁止
0467 震災時의 慘劇을 北京 同胞가 調査 發表
0468 『朝鮮之光』 續刊
0469 天道敎 新派의 約章 押收
0470 色眼鏡과 押收病
0471 勞農同盟 會錄 會則 規約을종로서에서 압수
0472 勞農總同盟의 印刷會錄은 押收
0473 天道敎 宣傳文 七千 枚을 押收
0474 『朝鮮之光』 또 押收
0475 押收에 對하여
0476 서울靑年의 講演會 禁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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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8 押收 解除
0479 天道 約章 還受
0480 壓迫과 抗拒
0481 言論集會壓迫彈劾會
0482 抗拒와 效果
0483 言論 壓迫에 對하여
0484 郵便局에 秘密結社?
0485 警察의 神經 過敏
0486 言論 壓迫으로 市民大會 開催
0487 壓迫의 實地事實
0488 惡醫師 聲討 檄文 警官에게 押收
0489 結社事件의 眞相
0490 EXORBITANT SUPPRESSION
0491 二十八日에 團?會, 언론 압박 탄핵회 선후책으로
0492 朴濟鎬 氏 身病
0493 『六一之南岡』 押收
0494 演說과 示威
0495 今後 活動寫眞은 京城 檢閱로 統一
0496 言論集會 壓迫의 彈劾方法의 具體的 決議
0497 金一東 君 逮捕
0498 STRUGGLE FOR LIBERTY OF THE PRESS
0499 押收하는 當局을 向하여
0500 『朝鮮之光』 또 押收
0501 押收하는 當局에게
0502 朴濟鎬 君 長逝, 언론계의 희생자
0503 巡廻診療 講演 中止
0504 警務局 干涉과 巡廻班 中止 顚末
0505 岩泰事件 同情 講演 禁止
0506 『基督申報』 押收
0507 言論 壓迫 彈劾 演說 中止
0508 道民大會 趣旨書를 光州警察署가 押收
0509 다시 言論 壓迫에 對하여
0510 壓制的의 禁止命令
0511 『갈돕』誌 發刊 禁止
0512 聽衆 三千의 言論壓迫彈劾會
0513 『相助』 原稿 押收
0514 『苦聲』 創刊號 押收
0515 講演을 못한다
0516 平壤勞?總同盟에서 不穩文書 押收
0517 第二次 大檢擧?
0518 延日 留學生 巡廻講演 中止
0519 勞? 關係 論文을 不穩文書라고 경찰서에서 압수
0520 RESULTS OF SUPPRESSION
0521 九月一日 記念文
0522 李廷鎬 外 十四 名은 昨日 檢事局에 送致하였다
0523 紀念文 붙인 犯人 아직도 알 수 없다고
0524 活動寫眞 八月 中에만 二百八十餘 里
0525 地震 紀念文은 아이들 장난이라고
0526 天聯 宣傳文 경무국이 반포금지
0527 言論機關 取締
0528 集會 取締
0529 元山 舌禍事件
0530 電報檢閱 通報
0531 記者 傍聽 禁止
0532 『斥候隊』 押收
0533 安東局 郵書檢閱
0534 人夫로 變裝하고 不穩文書를 傳達
0535 映畵檢閱 統一
0536 言論, 集會 取締에 對하여
0537 新聞 發送 禁止
0538 大韓獨立團 事件
0539 『新知識』 原稿 押收
0540 饑饉 演說을 警察이 禁止
0541 「宣戰公告文」, 이 같은 불온문서 시내 각처에
0542 衣欌 속에 不穩文書
0543 勞?問題 講演 辯士 拘引
0544 東京서 開催한 饑饉 講演 解散
0545 仁川警察의 過敏症
0546 元山 靑年 舌禍 無罪 判決
0547 『貧富一覽』 押收
0548 CENSORSHIP
0549 學藝消息
0550 '長白' 事件 第一回 公判
0551 日本 全國 軍隊에 不穩文書 密送
0552 『朝鮮之光』 押收
0553 孫文 排斥의 不穩文書 撒布
0554 日本 雜誌 中에 不穩한 朝鮮 文書
0555 『新興靑年』 創刊號 일본서 발행 조선서 압수
0556 『解放運動』도 押收
0557 學術講演을 憑藉하고 不穩思想을 宣傳
0558 社會思想 硏究 禁止로 文部省을 總攻擊
0559 本紙 號外 發行
0560 增師는 不可能, 新聞法 近近 制定
0561 『형평(衡平)』 初號 押收
0562 『崇實』 臨時號 發行
0563 『新生活』 事件의 朴熙道 氏 出獄
0564 無産靑年 宣言書 동경에서 배부하려다가 압수
0565 不穩文書 押收
0566 朴熙道 氏 入京
0567 獄中에서 母喪! 出監한 朴熙道 氏
0568 救饑 素人劇을 价川署가 絶對 禁止
0569 言論自由를 尊重하라
0570 裡里署 大活動
0571 民衆運動者 事件
0572 鏡城 舌禍事件
0573 仁川 無産靑年 集會를 禁止
0574 서울少年도 集會 禁止
0575 『新興靑年』 發賣禁止
0576 地方短評
0577 會合을 一切 不許
0578 全羅北道 民衆幹部 續續 檢擧
0579 針小棒大的 內面
0580 米國서 日本 軍隊에 過激한 不穩文書
0581 '天皇의 尊嚴, 革命의 新眼目'
0582 民衆運動會員 大部分 放免
0583 宋寧? 氏 放免
0584 所謂 警務局 檢閱
0585 民衆運動社員 九 氏 被訴
0586 警察의 干涉으로 饑饉救濟劇 中止
0587 다섯 가지 重要 問題
0588 『開闢』 三月號 押收
0589 秘密文書를 해외서 보내어 우편을 엄밀 조사
0590 『延禧』誌 押收
0591 民衆運動 事件에 同情
0592 民衆運動社 事件 公判
0593 民衆運動社 事件 公判
0594 ○○殿! 조선서 하관우편국에 不穩한 電報
0595 全部 保釋, 지난 십삼일에 民衆運動社 事件
0596 朴純秉 氏 檢束
0597 『基督申報』 押收
0598 『思想』 押收
0599 勞總懇談會 警察 禁止
0600 『思想運動』 押收
0601 五月 一日 示威에 '植民地 解放'은 削除
0602 押收 雜誌 携帶
0603 號外 押收
0604 壓迫과 反動
0605 言論의 建設性 (上)
0606 言論界를 愚弄하는 當局者의 暴言!
0607 '會'마다 禁止!
0608 鄭 氏 講演 禁止
0609 '메데' 關한 集會 絶對 禁止
0610 『學之光』 押收
0611 勞總 主催의 講演도 禁止
0612 秘密書類 押收
0613 『思想運動』 押收
0614 店員 講演 禁止
0615 不穩 標語 配布로 勞總 常務委員 又 召喚
0616 獨立熱을 ?吹하는 長文의 警告文 押收
0617 高麗共産黨 機關紙에 排日記事를 禁止
0618 李 孃 無事 放免
0619 追悼文도 不穩!
0620 活動寫眞 필름 檢閱稅 徵收 計劃
0621 關東大會 禁止
0622 『學之光』 押收
0623 『開闢』 六月號 押收
0624 平南 大同署에서 靑年 十三 名 檢擧
0625 連累 二 名 또 檢擧
0626 新聞紙法 改正에 際하여
0627 孫 氏 追悼會 禁止
0628 東宮 御所에 不警文
0629 思想運動社員 검사국으로 압송
0630 敎育講演도 禁止
0631 千餘 枚 不穩文書를 携帶한 排外運動 特派員
0632 中國行 電報檢閱
0633 新聞을 自意 押收
0634 全北 記者團, 警察의 言論界 威脅 道廳에 抗議를 論議
0635 地方短評
0636 『新民』 臨時號
0637 『開闢』 八月號 押收
0638 言論取締는 如此! 『開闢』誌에 發行停止!
0639 『開闢』의 停止와 當局의 言明
0640 社會의 動靜과 言論機關
0641 『벼락』 創刊號 押收
0642 端川警察署 警官 押收한 新聞을 放賣
0643 朴思稷, 朴達成 兩氏 舌禍?
0644 西曆 썼다고 削除시킨 元山警察
0645 廣告 揭示로 拘引
0646 歡迎 講演도 禁止
0647 烽火會 總會를 警察이 禁止!
0648 思想運動社員 檢事局에 送致
0649 『朝鮮日報』 發行停止
0650 警察의 無理한 壓迫
0651 謄寫 敎科書도 出版物 違反
0652 名目은 治安妨害, 『朝鮮日報』에 發行停止
0653 『開闢』 禁止 交涉 顚末
0654 『朝鮮日報』 發行停止에 對하여
0655 運命은 남의 손에
0656 露國에 在한 言論의 統制
0657 階級意識은 不穩
0658 露國에 在한 言論의 統制 (下)
0659 支局員 二 名을 돌연히 구금
0660 發行停止된 『朝鮮日報』 社員들을 續續 召喚
0661 『朝日』 讀者大會 順天에서 開催
0662 輪轉機까지 差押
0663 辛日鎔 氏 釋放
0664 海州 店員親睦會 宣傳紙를 押收
0665 宮城 警戒를 突然 嚴重히
0666 『朝鮮日報』 起訴
0667 『朝鮮之光』 押收
0668 解停된 『開闢』誌 호외를 발행
0669 謹告
0670 朴熙道 氏 집을 突然 家宅搜索
0671 解停되자 淘汰된 『조선일보』 사원
0672 主義 書籍 본다고
0673 五 氏는 無關係
0674 徐 氏는 事實 否認
0675 聖 彼得堡에서 軍事 結社 發覺
0676 筆者는 治維法 違反
0677 警告文 萬餘 張
0678 不穩文, 간도에서 보낸 것
0679 『農村』 創刊 不許
0680 解禁된 『開闢』誌 續刊 劈頭에 又 押收
0681 本報 筆禍事件
0682 發起會 禁止를 當한 慶北靑年聯盟
0683 咸南 勞農總聯盟, 警察은 突然 禁止
0684 愈出愈酷한 言論取締
0685 言論 壓迫에 關하여
0686 『朝鮮의 赤裸裸』 경찰이 주목한다고
0687 本報 筆禍事件 公判 又復 延期
0688 『朝鮮之光』 押收
0689 『新民』 押收
0690 主義書籍의 發賣禁止
0691 兩氏 講演 禁止
0692 學生雄辯會 禁止
0693 陶山書院 聲討講演 警察은 突然 禁止
0694 陶山書院 聲討 禁止
0695 魚魯不辨한 秀崎公普校長
0696 『開闢』 又復 押收
0697 上海로 간 辛日鎔 氏
0698 京都帝大生 四十 名을 拘引
0699 押收 書籍과 謄寫物은 모두 過激한 것
0700 京大 不穩文書
0701 民運事件 求刑
0702 延期되어 오던 本報 筆禍 公判
0703 京大 不穩事件은 出版法 違反
0704 『開闢』 號外 發行
0705 本報 筆禍事件
0706 映畵檢閱
0707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08 『新社會』 創刊號
0709 本報 筆禍 判決
0710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11 不穩하다고 年賀狀까지 押收
0712 國民性 流露 映畵檢閱
0713 鎭南浦 勞組幹部 六 名을 突然 檢擧
0714 『朝鮮商業』 押收
0715 年賀狀 再次 押收
0716 思想講演 禁止
0717 年賀狀 又復 천여 장을 압수
0718 靑總 年賀狀도 不穩타고 押收
0719 風紀紊亂이라고 男女 討論 禁止
0720 新聞配達組合 宣言文 又 押收
0721 三重縣 事件 調査會 禁止
0722 ?話
0723 新聞紙法 及 出版法 改正 要旨
0724 秘密出版物 沒收
0725 集會의 禁止와 保障
0726 不遠에 改正될 朝鮮新聞紙法
0727 少年 少女의 集會 禁止는 警察部 命令이라고
0728 '키스', 裸體 大禁物
0729 『新民』 二月號 押收
0730 虛無黨 事件
0731 『無産新聞』 押收
0732 『思想運動』 押收
0733 原州 우리俱樂部 委員 三 名 檢擧
0734 壁新聞 押收
0735 公判을 앞에 두고 虛無黨事件 全部 解禁
0736 三 氏 釋放
0737 懸案 中인 朝鮮新聞紙法
0738 『開闢』 三月號 押收
0739 中止, 檢束, 解散
0740 出版物令 制定
0741 社會問題 講演會 解散
0742 赤旗와 宣傳紙 警察이 押收
0743 素人劇은 禁止
0744 客月 中 檢閱 映畵
0745 新女性들에게 鐵槌, '댄스'禁止 法律案 近히 議會에 提出
0746 映畵檢閱 統一
0747 同業 『東亞日報』 突然 發行停止
0748 『東亞日報』의 發行停止
0749 出版法에 關하여
0750 三一紀念文으로 數十 名 取調
0751 『開闢』 號外 發行
0752 京城印工同盟 綱領 規約 押收
0753 活動寫眞 說明 中 辯士 突然 檢束
0754 朝鮮出版物令 成案
0755 早大行 露國 書籍 百五十 卷은 押收
0756 『東亞報』 事件 起訴
0757 『東亞報』 筆禍事件
0758 出版法案 審議는 五十二議會로 延拖
0759 講師가 '不穩'타고 勞?夜學을 禁止, 『勞動讀本』까지 押收
0760 不穩電報 差押 嚴命
0761 虛無黨事件 又 延期
0762 『自我聲』 創刊 押收
0763 壁新聞은 押收, 責任者는 處罰
0764 全朝鮮靑年雄辯大會를 禁止
0765 팸플릿 押收
0766 委員會도 또 禁止
0767 續刊에 臨하여
0768 停刊 中의 社會相 (一)
0769 停刊으로 解刊까지 隱忍自重 四十四日
0770 體刑까지 當한 一審 公判 經過
0771 不穩文書를 配布
0772 機械 沒收를 求刑
0773 本報 筆禍事件
0774 警務局 課 廢合, 警務課 分散, 圖書課 新設
0775 全北記者團 集會 制限
0776 少年團 創立 又復 禁止
0777 어린이날 集會 禁止
0778 『自我聲』 押收
0779 本報 號外 發行, 발행 후 금지 당해
0780 全北 記者大會
0781 自由會員 釋放
0782 左系 新聞 停刊
0783 『大衆運動』 創刊號 押收
0784 어린이날 紀念 禁止
0785 一日에 十 新聞 押收
0786 메이데이 紀念, 禁止
0787 서울靑年會 綱領을 押收
0788 『無産者新聞』 號外 押收
0789 本報 筆禍 控訴 判決
0790 『新人間』 五月號 削除
0791 唱歌冊 押收 後 학생 한 명 취조
0792 『朝鮮日報』 事件, 檢事가 다시 上告
0793 阿峴靑年會 幹部 不穩 標語로 檢擧
0794 審議室에 廻附된 新聞紙法 改正案
0795 『朝鮮農民』 臨時號
0796 不穩 傳道紙 押收 책임 목사는 소환 설유
0797 壁新聞 押收
0798 『天鷄』 雜誌 發行禁止
0799 思想取締의 痛棒은 各 大學敎授, 講師에도
0800 赤露 書籍 又 押收
0801 크로포도킨 著書 百七十 卷을 押收
0802 筆禍事件 公判
0803 咸 氏는 執行猶豫
0804 同業 『東亞報』 筆禍 控訴 公判 延期
0805 『自我聲』 新進會 幹部를 大檢擧
0806 『時代報』 筆禍 上告 公判
0807 『思想運動』 臨時號
0808 『朝鮮之光』 押收
0809 六 新聞 發賣禁止
0810 『開闢』의 赤色 포스터 押收
0811 映畵檢閱證 僞造 取締 嚴重
0812 『開闢』 押收
0813 安邊 靑聯의 不平 蒐集 禁止
0814 九 新聞 差押
0815 『開闢』 臨時號 發行
0816 ○○宣言 計劃書 發覺
0817 八日 午後부터 左傾團體 數十 處 搜索
0818 京城驛 下車客 수상만 하면 引致
0819 휘파람
0820 檄文과 印刷機 梨花洞서도 押收
0821 佛敎 代表의 「啓明星」 新事件 新檄文 續出
0822 暴風 맞은 內外新聞
0823 原稿 押收한 郵便所長에 警告
0824 事前 發覺으로 學生 間 同志 糾合
0825 開闢社務는 繼續, 『개벽』 호외와 『어린이』 발행
0826 白紙도 不穩文書?
0827 不穩文書 件
0828 再刊한 號外 押收, '事實이면 不法'
0829 『開闢』 責任者 起訴?
0830 『開闢』 幹部 呼出
0831 中國紙幣僞造團 檢擧가 計劃 發覺의 端緖
0832 檄文 發覺은 少女 發說로, 資金은 上海에서 持來
0833 京城驛頭에서 海外 檄文, 感古堂에서 國內 檄文
0834 日郵船 船底에 赤化敎科書
0835 海外 檄文의 內容은 純全한 赤化宣傳
0836 民族主義 各 團體와 連絡 計劃 中에 發覺
0837 六月 十日 朝鮮○○萬歲事件
0838 素人劇 禁止
0839 『東光』 七月號 原稿 押收
0840 本報 筆禍事件 兩氏 上告 公判
0841 淸津에 不穩文書
0842 映畵 六十萬 尺
0843 『眞生』 押收
0844 押收 一束
0845 三 미터 五 錢式에 本府에서 映畵檢閱
0846 『小作運動』 押收
0847 六月事件의 十七 人 明日에는 起訴될 듯
0848 六十萬歲事件 卄八日 公判
0849 『赤衛』 押收
0850 活動寫眞檢閱規則
0851 活動寫眞檢閱規則
0852 『新社會』 押收
0853 『朝鮮商業』 押收
0854 起訴 十二 名, 放免 五 名, 適用 法律은 治維法과 出版法
0855 新聞記事까지 干涉 始作한 고성경찰서장
0856 映畵當局者 協議
0857 廣東의 諸 新聞 停刊
0858 本報 筆禍事件 上告 判決
0859 雜誌 配付事件 留學生 被捉
0860 咸興 七四 聯隊에 不穩文書가 飛入
0861 聯合, 탓스 兩社 發信權 停止
0862 新 出版法은 許可制
0863 出版許可 手續 簡便히 改正
0864 改正 中의 出版法
0865 言論界 一大 慘劇, 『開闢』에 發行禁止
0866 警察署 依託이라고 郵便所에서 新聞 檢閱
0867 活寫 營業에 관한 各 館 協定 破棄
0868 吊 『開闢』誌
0869 朝鮮出版物令 九月頃 施行
0870 勞農政府 新聞報告 禁止
0871 『朝鮮農民』 押收
0872 本報 筆禍事件 金炯元 氏 육일 오전에 입감되었다
0873 軍閥의 暴壓으로 北京 言論界 恐慌
0874 北京서 發行하는 過激雜誌 『血潮』
0875 關西記者團에서 政府에 抗議
0876 出版物令은 尙未提出
0877 長興 講演 禁止
0878 本報 筆禍事件
0879 건방진 警官
0880 一日 中 同一한 法廷에서 兩 新聞 筆禍 公判
0881 素人劇도 禁止, '道令'이라고
0882 素人劇도 禁止, 保寧郡 警察
0883 本報 控訴 言渡
0884 新 新聞紙法
0885 本報 又復 筆禍
0886 서리같은 표정
0887 『眞生』誌 押收
0888 赤化映畵 押收
0889 金炯元 氏 出獄, 삼 개월 형기를 마치고
0890 『曉鐘』 押收
0891 畢竟은 鐵窓으로, 讀者와 一時 離別
0892 慶靑 『活路』 續刊
0893 勞農 機關誌 發行停止 被命
0894 『東亞報』 主筆 宋 氏 入監
0895 八 新聞 差押
0896 號外의 號外 또 號外 發行
0897 『少年會報』 發行禁止
0898 無理한 沃川警察 素人劇 興行도 禁止
0899 『崇實』 雜誌 押收
0900 出版物 法案 문제되는 몇몇
0901 시집 『熱光』 不許可
0902 朝鮮 檢閱係는 書籍 閻羅國
0903 梨花, 延禧 兩 專門校 英語 講演은 中止
0904 『新民』 押收
0905 幼稚園 演劇會를 警察이 突然 禁止
0906 赤露서 온 宣傳紙 萬 數千 枚 押收
0907 『仁旺會報』 押收
0908 日本 新聞 二十餘 種 朝鮮에서 發賣禁止
0909 土星會 映畵 『不忘曲』 上映禁止
0910 義烈團의 警告文
0911 洞制文 押收
0912 『新社會』 一月號 押收
0913 日本 新聞 差押
0914 映畵 檢閱料 問題 再燃과 營業稅 賦課率 減下 運動
0915 東拓事件 本報 號外를 黃州暑 無端이 押收
0916 『培材』 압수
0917 警務局에도 라디오 備置
0918 文明의 利器도 廢止 外 束手無策
0919 『農民』 原稿 押收
0920 『現代評論』 創刊號
0921 郵送되는 勞農圖書
0922 까닭모를 警察
0923 『勞友』 創刊號 押收
0924 柳完熙 氏 出獄
0925 出獄과 ?刑 消息 全朝鮮 卄六 處 刑務所
0926 問題 中의 重要 事件
0927 側面 攻擊으로 檢閱料 減下運動
0928 出版法案 下院에 提出
0929 五 미터 五 錢으로
0930 一月 中 檢閱映畵 十六萬六千米
0931 檢閱料의 負擔 拒絶
0932 嶺美警察의 沒常識, 『新朝鮮』을 無理 押收
0933 『炬火』 압수
0934 『炬火』誌 筆禍 책임자 검속
0935 『松友』 發行禁止
0936 『東湖文壇』 不許可
0937 『新社會』 押收
0938 出版法案, 日本 操?界 反對
0939 『野烽』 不許可
0940 統營 雜誌 發行禁止
0941 出版物法案
0942 稿料問題로 문예가협회 분기
0943 個人 出版 原稿를 警察이 紛失
0944 突然 傍聽禁止
0945 警察 代身의 郵便所 新聞을 無理 押收
0946 『朝鮮之光』 押收
0947 『부녀세계』 창간호 해금
0948 『新朝鮮』 第二號
0949 『炬火』 被告 體刑에
0950 事件의 發覺 端緖와 檢擧되던 前後의 顚末
0951 『基督申報』 押收
0952 雜誌를 配達 안 해
0953 普校 訓導 집에 多數 不穩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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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7 『正義』 發行 不許
0958 共産黨을 中心한 中國 赤化計劃
0959 『基督新報』 押收
0960 原稿 押收
0961 臺灣 報道機關 檢閱開始
0962 秘密結社라고 統營 正火會 禁止
0963 『少年界』 不許可
0964 『北野聲』 筆禍
0965 記者 通行 絶對禁止 警察에서 原稿檢閱
0966 出版 勞?法 等 調査會 設置
0967 尤益 峻烈한 郵便物 檢閱
0968 『新人間』 原稿 押收
0969 朝鮮勞?黨 宣言 押收
0970 메이데이 삐라 元山署 押收
0971 不敬行爲로 禁演된 京劇의 「血染의 軍刀」
0972 『京日』 筆禍事件 原審대로 求刑
0973 地方警察의 無理
0974 本報 號外 押收
0975 『炬火』 事件 無罪
0976 東民劇團 興行 警察 突然 禁止
0977 科學硏究會 書類 再次 押收
0978 押收文書 發表
0979 一般 圖書의 漸增 傾向
0980 新聞檢閱 嚴重
0981 『大衆運動』 事件 覆審 無罪 判決
0982 『神學世界』 押收
0983 秦始皇 時代 再現
0984 『盛京時報』 發賣禁止
0985 新幹 支會의 宣傳文 押收
0986 新幹會 益山支會 設立大會를 禁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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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9 『新人間』 押收
0990 『解放運動』 發行 準備
0991 管外 出版을 取締코자 各地 警察과 交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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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朝鮮農民』 押收
0994 『새벗』 八月號 原稿 押收
0995 勞動者의 놀이도 禁止
0996 中國 警察 新聞配達 禁止
0997 兒童 懸賞 雄辯과 討論會도 禁止
0998 淸州靑年會 壁新聞
0999 開城 螢雲社 雜誌 不許可
1000 壁新聞 發行禁止
1001 神人共怒할 九沙坪 中國 官憲
1002 禁止된 出版物을 削除 還付
1003 『朝鮮農人』 原稿 押收
1004 『現代評論』 八月號 押收
1005 『大衆新聞』 支持 宣傳文을 종로서에서 금지
1006 開城 螢雪社 『思潮』 創刊 出來
1007 不穩한 宣言書 多數를 押收
1008 童話會까지 禁止
1009 記者團 聲討文 보고 本報 支局을 搜索
1010 天安 地方에서 『大衆新聞』 押收
1011 靑年會 講演을 警察이 禁止 解散
1012 『勞運』 支社長
1013 國際新聞會議 檢閱方法 改善案 可決
1014 新幹 '삐라' 靈岩서 押收
1015 蔚山 『農報』 發行
1016 洪原 記者 臨時大會
1017 記者團 討議를 洪原警察이 禁止
1018 拳銃과 不穩文書로 軍資募集튼 犯人
1019 對 各國 政府 檢閱廢止 要求, 國際新聞會議에서
1020 『大衆新聞』 押收
1021 京城에 不穩文書 동경서 온 듯
1022 『自光』 原稿 押收
1023 木靑同盟 常務書記 檢束
1024 言論集會 暴壓 彈劾 演說도 禁止
1025 大昭館 家宅搜索 『無産者新聞』 押收
1026 『無産者新聞』 押收
1027 『東光』 十一月 不許可
1028 新聞紙 及 出版法 改正
1029 『無産者新聞』 押收
1030 露 革命 紀念 集會는 一切로 禁止
1031 大邱서도 禁止, 기념에 대한 토의도 금지
1032 『無産』, 『大衆』 新聞
1033 新興, 서울 兩 靑年會 革命 紀念 講演 禁止
1034 南滿 長春에서 郵便局이 記事 押收
1035 『農聯趣旨』 押收
1036 保安組合長 記者團員에게 無故 路上 暴行
1037 印刷物 押收하고 十一 名을 檢束
1038 不穩文書 警戒
1039 『益世報』 押收
1040 踵起하는 學海 不祥事
1041 『運動會報』 筆者 孟君에게 科料 處分
1042 出版物 取締에 朝鮮은 事情이 全然히 相違된다고
1043 號外 新聞 押收
1044 不穩文書 密輸 慶南 警察 活動
1045 日本 發行 新聞 ?四 種을 押收
1046 『少年朝鮮』 押收
1047 今 議會에 提出할 出版物法 改正案
1048 內務省 提案의 出版法 改正 項目
1049 『益世報』 押收
1050 科料를 不服 正式 裁判 請求
1051 殊常한 朝鮮人 夫妻 門司署에서 取調
1052 惡法 問題
1053 主人도 모르고 文櫃를 破壞 檢閱
1054 解體 宣言文 押收
1055 頻頻히 國境넘는 不穩文書를 取締
1056 上映 禁止된 『血魔』
1057 宣傳紙 押收
1058 少年 二 名 檢束
1059 階級思想 鼓吹 文藝品 嚴重 取締
1060 『現代評論』 押收
1061 地方警察의 自意로 新聞 號外를 또 押收
1062 勞組會館 搜索
1063 兩日 間 『益世報』 押收
1064 感想談까지 禁止된 社會運動者 忘年會
1065 『自活』 新年號 押收
미친 자의 칼 아래서 2 목차
1928~1945
1066 京城서 通過된 것을 地方警察이 押收
1067 言論 權威의 伸張을 目標로 諸多 重大事項 決議
1068 黃州 月刊 『生의 聲』 雜誌 創刊號 押收
1069 '칼', '로사'의 殉節 紀念 禁止
1070 檢閱制度 反對 週間
1071 十三日에 突然 鄭東允 氏 檢束 가택까지 수색
1072 無産靑年의 不穩한 標語
1073 月曆 박다가 檢束
1074 『節制生活』 押收
1075 文書 押收 問題 惡化
1076 팸플릿 押收 問題로 民政黨 大憤慨
1077 『朝鮮日報』 筆禍 起訴 신문지법 위반
1078 出版法 違反? 四名만은 送局
1079 『無窮花』 押收
1080 蔡그리고리는 出版法 違反
1081 萬人 注視 中 開會되려던 新幹 定期大會 突然 禁止
1082 本報 筆禍事件 來 卄四日에 開廷
1083 新幹 統營支會 創立大會 突然 禁止
1084 海美勞組의 마크를 押收
1085 無産黨의 言論 壓迫에 各 團體가 奮起
1086 延白記者團 緊急 總會
1087 朝鮮 各 社會團體의 集會禁止를 解除하라
1088 中止와 禁止 中에 紀念만은 擧行
1089 『勞?運動』 押收
1090 淳昌警察의 靑年同盟 高壓! 검열을 자원한 인쇄물을 出版法 違反으로 檢擧 取調
1091 本報 安, 白 兩氏 筆禍事件 公判
1092 本報 筆禍事件 調書 不備로 廷期
1093 『中外日報』 筆禍
1094 不穩文 携帶者 各地에 徘徊
1095 警察의 無理 干涉으로 平壤 雄辯會 中止
1096 『現代婦人』 原稿 押收
1097 『中外報』 筆禍
1098 不穩하다고 劇團까지 解散
1099 軍 司令官 視察 時 不穩文書를 發見
1100 朝鮮文 新聞 押收 一年 間 百四十 件
1101 講演 原稿 提出
1102 三一運動 紀念 檄文 多數 押收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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