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과 한국문학(반양장)
오영식 선생 정년퇴임 기념 | 작고문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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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학교 출신의 문인이야기
보성학교는 110년의 역사를 가진 세칭 5대 사립이다. 1906년 개교 이래 조선의 역사와 말을 배울 수 있는 '민족 사학'이라는 배경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우수한 인재들이 보성을 꼽아서 오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저명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주시경,김두봉,황의돈,김용준,박종화,윤오영 등 당시 재직했던 쟁쟁한 교사진도 한몫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40여 꼭지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당 문인의 학적부도 첨부하고 있다.
보성학교는 110년의 역사를 가진 세칭 5대 사립이다. 1906년 개교 이래 조선의 역사와 말을 배울 수 있는 '민족 사학'이라는 배경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우수한 인재들이 보성을 꼽아서 오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저명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주시경,김두봉,황의돈,김용준,박종화,윤오영 등 당시 재직했던 쟁쟁한 교사진도 한몫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40여 꼭지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당 문인의 학적부도 첨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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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국문학사의 '모교母校' 보성학교
소설 '날개'를 쓴 이상, '삼대'의 염상섭, '빈처'의 현진건 등은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점 외에 모두 보성중ㆍ고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최승구ㆍ진학문ㆍ현상윤ㆍ변영태ㆍ김기림ㆍ김환태ㆍ이종명ㆍ김상용ㆍ조영출ㆍ김학철ㆍ임화ㆍ고유섭ㆍ윤곤강ㆍ마해송 등 저명한 문인들도 식민지 시절 보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보성학교 출신 가운데에 뛰어난 문인이 많은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보성과 한국문학』 편저자이자 보성학교에서 33년을 지내며 '보성과 한국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오영식 선생은 책의 머리말에서 역사적 맥락에 더하여 근원적인 답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학교는 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인데 100년 전의 학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과 '정신'의 만남까지 이루어진 곳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교육의 성패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흔히 '인연'이라 치부되기도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그것은 치명적일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100년 전 이 땅의 학교는 '사람'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마주할 수 있는 마당이었다. '왜놈에게 왜놈의 역사를 배우게 할 수 없다'는 조부의 고집 때문에 나이가 지나도록 신식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보성학교에서는 조선역사를 조선말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늦게서야 보성학교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비단 김인손(시인 김기림의 본명)의 경우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용익-천도교-불교-간송'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보성의 위대한 정신이 존재했기에 결과적으로 훌륭한 문인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위대한 역사의 초석이 된다. 1회 졸업생 차상찬의 작문노트에서 보듯, 개교 초에는 여규형, 원영의 선생 등에 의해 주로 한문 수업이 진행된 것 같다. 그러나 국권 상실 무렵 '우리 것'에 대한 각성으로 주시경 선생의 한글강습이 보성학교에서 실시되었고, 이후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 김두봉이 보성학교의 교사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후 1920, 30년대에는 황의돈, 이승규, 이규방, 김지태, 이한복, 김용준 선생 등이 조선어와 역사 및 미술을 가르쳤다. 금강산으로, 만주로,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녔던 당시, 견학현장에서 황의돈 선생이 역사유물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김용준 화백이 회화적 가치를 일러주었다 하니 학생들의 배움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해방 직후 월탄 박종화 선생과 이마동 화백 그리고 22회 졸업생인 윤곤강 시인이 보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윤오영 선생이 10년이 넘도록 문예반을 이끌며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훌륭한 '정신'과 진실한 '사람'들이 있는 보성학교였기에 그곳을 거친 졸업생들 또한 진실하고 훌륭한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
'보성학교'는 한국문학사의 '母校'이며 하나의 큰 산맥이다. 11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만이 아니라 고종황제와 이용익, 천도교와 삼일운동, 임화와 이상의 만남, 간송 전형필과 보성의 만남 등등은 역사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보편적 모습은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이용익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그로부터 학교를 물려받은 손주 이종호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 망명의 길에 올랐다. 무주공산이 된 학교는 교사들의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천도교로 주인을 달리한다. 그전부터 보성학교를 후원했던 손병희 선생을 구심점으로 삼고, 최린 선생을 교장으로 모신 보성의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삼일운동에 적극 가담할 수밖에 없었고, 1920년대 문화를 꽃피운 잡지 『개벽』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의 일꾼들 가운데에는 보성학교 출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나 1919년 삼일운동으로 곤경에 처하게 된 천도교는 학교경영이 어려워지자, 개인에게는 양도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학교를 내놓는다. 결국 동광학교의 분규로 내홍을 겪고 있던 불교재단이 1924년 보성학교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바로 이 때 간단한 편입시험을 거쳐 보성에 흡수ㆍ통합된 동광학교에 천재문학가 이상李箱(김해경)이 다니고 있었다. 이상, 임화, 이헌구, 김기림, 김환태, 김유영, 이종명, 조중곤 등의 문학인들이 수송동의 교정을 함께 다녔다. 또한, 유진산, 고유섭, 이강국, 이민우, 김상기, 장철수, 원용석 등 정치와 문화계의 거두들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한 마디로 1920년대의 보성학교는 1930년대의 한국문화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화동 1번지로 학교의 터전을 옮긴 불교재단 역시 혜화불전을 함께 경영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다시 보성학교는 고계학원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는데 『보성 80년사』에서는 이 시기를 '악몽기'라 표현하고 있다. 1935년에 학교를 맡은 고계학원의 경영 능력 상실로 인해 보성은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자 1940년, 민족문화의 지킴이 간송 전형필 선생이 풍전등화의 보성학교를 맡게 되면서 보성은 비로소 모든 면에서 안정된 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간송 선생은 일본인 교장을 강요하는 관官의 지시를 거부하고 휘문 동창인 이헌구李軒求(문학평론가 이헌구와 동명이인)를 교장에 앉히고 꺼져가는 민족정신을 지키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예를 들어 명찰패용을 금지하고, 두발을 자유화하는 등 지금 보아도 혁신적인 학교운영을 해왔다. 간송이 설립한 학교법인 동성학원은 1940년 이후 2017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성학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국가와 민족의 동량을 연면히 길러내고 있다.
『보성과 한국문학』 편저자 오영식 선생은 보성 개교 111주년을 앞두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보성학교를 거쳐간 숱한 인재들, 특히 문인들에 대해 후학들은 잘 모르고 있고, 국어 교과서에서, 심지어는 수능시험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글의 지은이가 보성의 선배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엮게 되었다 소회를 밝히고 있다.
『보성과 한국문학』에는 새롭게 발굴해낸 보성 출신 문인들도 적지 않고, 해당 문인의 학적부를 찾아내 꼭지마다 첨부하여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또한 전문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관련 이미지를 제시하여 독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설 '날개'를 쓴 이상, '삼대'의 염상섭, '빈처'의 현진건 등은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점 외에 모두 보성중ㆍ고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최승구ㆍ진학문ㆍ현상윤ㆍ변영태ㆍ김기림ㆍ김환태ㆍ이종명ㆍ김상용ㆍ조영출ㆍ김학철ㆍ임화ㆍ고유섭ㆍ윤곤강ㆍ마해송 등 저명한 문인들도 식민지 시절 보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보성학교 출신 가운데에 뛰어난 문인이 많은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보성과 한국문학』 편저자이자 보성학교에서 33년을 지내며 '보성과 한국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오영식 선생은 책의 머리말에서 역사적 맥락에 더하여 근원적인 답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학교는 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인데 100년 전의 학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과 '정신'의 만남까지 이루어진 곳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교육의 성패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흔히 '인연'이라 치부되기도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그것은 치명적일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100년 전 이 땅의 학교는 '사람'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마주할 수 있는 마당이었다. '왜놈에게 왜놈의 역사를 배우게 할 수 없다'는 조부의 고집 때문에 나이가 지나도록 신식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보성학교에서는 조선역사를 조선말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늦게서야 보성학교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비단 김인손(시인 김기림의 본명)의 경우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용익-천도교-불교-간송'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보성의 위대한 정신이 존재했기에 결과적으로 훌륭한 문인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위대한 역사의 초석이 된다. 1회 졸업생 차상찬의 작문노트에서 보듯, 개교 초에는 여규형, 원영의 선생 등에 의해 주로 한문 수업이 진행된 것 같다. 그러나 국권 상실 무렵 '우리 것'에 대한 각성으로 주시경 선생의 한글강습이 보성학교에서 실시되었고, 이후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 김두봉이 보성학교의 교사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후 1920, 30년대에는 황의돈, 이승규, 이규방, 김지태, 이한복, 김용준 선생 등이 조선어와 역사 및 미술을 가르쳤다. 금강산으로, 만주로,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녔던 당시, 견학현장에서 황의돈 선생이 역사유물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김용준 화백이 회화적 가치를 일러주었다 하니 학생들의 배움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해방 직후 월탄 박종화 선생과 이마동 화백 그리고 22회 졸업생인 윤곤강 시인이 보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윤오영 선생이 10년이 넘도록 문예반을 이끌며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훌륭한 '정신'과 진실한 '사람'들이 있는 보성학교였기에 그곳을 거친 졸업생들 또한 진실하고 훌륭한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
'보성학교'는 한국문학사의 '母校'이며 하나의 큰 산맥이다. 11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만이 아니라 고종황제와 이용익, 천도교와 삼일운동, 임화와 이상의 만남, 간송 전형필과 보성의 만남 등등은 역사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보편적 모습은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이용익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그로부터 학교를 물려받은 손주 이종호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 망명의 길에 올랐다. 무주공산이 된 학교는 교사들의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천도교로 주인을 달리한다. 그전부터 보성학교를 후원했던 손병희 선생을 구심점으로 삼고, 최린 선생을 교장으로 모신 보성의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삼일운동에 적극 가담할 수밖에 없었고, 1920년대 문화를 꽃피운 잡지 『개벽』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의 일꾼들 가운데에는 보성학교 출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나 1919년 삼일운동으로 곤경에 처하게 된 천도교는 학교경영이 어려워지자, 개인에게는 양도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학교를 내놓는다. 결국 동광학교의 분규로 내홍을 겪고 있던 불교재단이 1924년 보성학교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바로 이 때 간단한 편입시험을 거쳐 보성에 흡수ㆍ통합된 동광학교에 천재문학가 이상李箱(김해경)이 다니고 있었다. 이상, 임화, 이헌구, 김기림, 김환태, 김유영, 이종명, 조중곤 등의 문학인들이 수송동의 교정을 함께 다녔다. 또한, 유진산, 고유섭, 이강국, 이민우, 김상기, 장철수, 원용석 등 정치와 문화계의 거두들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한 마디로 1920년대의 보성학교는 1930년대의 한국문화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화동 1번지로 학교의 터전을 옮긴 불교재단 역시 혜화불전을 함께 경영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다시 보성학교는 고계학원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는데 『보성 80년사』에서는 이 시기를 '악몽기'라 표현하고 있다. 1935년에 학교를 맡은 고계학원의 경영 능력 상실로 인해 보성은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자 1940년, 민족문화의 지킴이 간송 전형필 선생이 풍전등화의 보성학교를 맡게 되면서 보성은 비로소 모든 면에서 안정된 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간송 선생은 일본인 교장을 강요하는 관官의 지시를 거부하고 휘문 동창인 이헌구李軒求(문학평론가 이헌구와 동명이인)를 교장에 앉히고 꺼져가는 민족정신을 지키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예를 들어 명찰패용을 금지하고, 두발을 자유화하는 등 지금 보아도 혁신적인 학교운영을 해왔다. 간송이 설립한 학교법인 동성학원은 1940년 이후 2017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성학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국가와 민족의 동량을 연면히 길러내고 있다.
『보성과 한국문학』 편저자 오영식 선생은 보성 개교 111주년을 앞두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보성학교를 거쳐간 숱한 인재들, 특히 문인들에 대해 후학들은 잘 모르고 있고, 국어 교과서에서, 심지어는 수능시험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글의 지은이가 보성의 선배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엮게 되었다 소회를 밝히고 있다.
『보성과 한국문학』에는 새롭게 발굴해낸 보성 출신 문인들도 적지 않고, 해당 문인의 학적부를 찾아내 꼭지마다 첨부하여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또한 전문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관련 이미지를 제시하여 독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목차
목차
간행 축사 _ 전성우(보성중고등학교 학교법인 동성학원 이사장)
간행 축사 _ 배영대(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73회)
머리말 _ 오영식(보성고등학교 국어교사)
신문편집과 연재소설의 선구자 이상협 - 박진영
한국 신문학장의 리더, 최승구 - 정우택
조선 제일의 잡지인, 청오 차상찬 - 엄동섭
신극운동의 선구자 현철 - 한상언
타고르와 만난 동아시아 문학청년 진학문 - 박진영
기당 현상윤 - 송민호
잊혀진 신경향파 작가 이익상 - 오창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염상섭을 향한 하나의 길 - 한기형
종로 조계사 자리에 깃든 보성의 젊은 기운들-염상섭(6회)과 보성학교 - 오창은
염상섭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기 - 한기형ㆍ이혜령
보성학교 출신 문학인 최승만 - 이미나
항상 '거기'에서 말하다-石松 김형원이 보성 후배들에게 건넨 말 - 조영복
연극인 서항석의 보성학교 재학 경험* - 전지니
현진건 - 박헌호
연극인 김춘광의 학창시절과 연극사적 업적* - 전지니
아동문학가 고한승-생애를 중심으로 - 박금숙
보성고와 진장섭과의 만남-생애를 중심으로 - 김경희
월파 김상용-자연 친화와 고향 회귀, 그리고 정신적 무위의 세계 - 유성호
김해강의 생애와 문학 - 이동순
보성과 마해송의 동화문학 - 장정희
『선풍시대』의 작가 한인택 - 김영애
소천 이헌구-경계를 횡단한 넓힘과 열림의 문학적 실천 - 표정훈
프롤레타리아 영화의 기수, 김유영 - 한상언
『유랑』의 작가 이종명 - 김영애
임화를 통과하는 빛과 그림자, 그 주변 - 박성모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 - 염철
나비는 종생토록 바다 위를 날았다-김기림 - 손종업
눌인 김환태 - 김동식
역사 앞에 서서, 역사의 저편으로-저항시인 이흡의 편린들 - 엄동섭
윤곤강의 삶과 문학 - 김현정
아동문학가 승응순의 보성고보 시기 - 박종진
시대의 현실을 그린 작가 최인준 - 김영애
보성이 낳은 대중가요 작사가, 금릉인과 조명암을 그리다 - 장유정
김학철, 20세기 동아시아의 대자유인 - 한기형
북한문학의 대표작가 황건 - 오창은
농촌의 현실을 그린 작가 강형구 - 김영애
한국의 디오게네스, 민병산 선생 - 구중서
인간과 우주를 꿰뚫은 대자유인의 노래-시인 박희진 - 조환수
언어의 밀도와 미래의 시-시인 성찬경과 보성중학 - 이경수
조운제 문학에서 한국시의 정체성 탐구 - 홍승진
언론계를 주름잡은 보성출신 언론인들 - 정진석
1930년대 한국문학의 한 성좌星座-보성고보 출신 문인들의 집단지성과 한국문학 - 조영복
보성중학과 이광수-보성중학 관련 세 편의 자료를 중심으로 - 최주한
보성학교 연혁
편집 후기
간행 축사 _ 배영대(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73회)
머리말 _ 오영식(보성고등학교 국어교사)
신문편집과 연재소설의 선구자 이상협 - 박진영
한국 신문학장의 리더, 최승구 - 정우택
조선 제일의 잡지인, 청오 차상찬 - 엄동섭
신극운동의 선구자 현철 - 한상언
타고르와 만난 동아시아 문학청년 진학문 - 박진영
기당 현상윤 - 송민호
잊혀진 신경향파 작가 이익상 - 오창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염상섭을 향한 하나의 길 - 한기형
종로 조계사 자리에 깃든 보성의 젊은 기운들-염상섭(6회)과 보성학교 - 오창은
염상섭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기 - 한기형ㆍ이혜령
보성학교 출신 문학인 최승만 - 이미나
항상 '거기'에서 말하다-石松 김형원이 보성 후배들에게 건넨 말 - 조영복
연극인 서항석의 보성학교 재학 경험* - 전지니
현진건 - 박헌호
연극인 김춘광의 학창시절과 연극사적 업적* - 전지니
아동문학가 고한승-생애를 중심으로 - 박금숙
보성고와 진장섭과의 만남-생애를 중심으로 - 김경희
월파 김상용-자연 친화와 고향 회귀, 그리고 정신적 무위의 세계 - 유성호
김해강의 생애와 문학 - 이동순
보성과 마해송의 동화문학 - 장정희
『선풍시대』의 작가 한인택 - 김영애
소천 이헌구-경계를 횡단한 넓힘과 열림의 문학적 실천 - 표정훈
프롤레타리아 영화의 기수, 김유영 - 한상언
『유랑』의 작가 이종명 - 김영애
임화를 통과하는 빛과 그림자, 그 주변 - 박성모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 - 염철
나비는 종생토록 바다 위를 날았다-김기림 - 손종업
눌인 김환태 - 김동식
역사 앞에 서서, 역사의 저편으로-저항시인 이흡의 편린들 - 엄동섭
윤곤강의 삶과 문학 - 김현정
아동문학가 승응순의 보성고보 시기 - 박종진
시대의 현실을 그린 작가 최인준 - 김영애
보성이 낳은 대중가요 작사가, 금릉인과 조명암을 그리다 - 장유정
김학철, 20세기 동아시아의 대자유인 - 한기형
북한문학의 대표작가 황건 - 오창은
농촌의 현실을 그린 작가 강형구 - 김영애
한국의 디오게네스, 민병산 선생 - 구중서
인간과 우주를 꿰뚫은 대자유인의 노래-시인 박희진 - 조환수
언어의 밀도와 미래의 시-시인 성찬경과 보성중학 - 이경수
조운제 문학에서 한국시의 정체성 탐구 - 홍승진
언론계를 주름잡은 보성출신 언론인들 - 정진석
1930년대 한국문학의 한 성좌星座-보성고보 출신 문인들의 집단지성과 한국문학 - 조영복
보성중학과 이광수-보성중학 관련 세 편의 자료를 중심으로 - 최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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