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총보 논설 자료집(연세 근대한국학 자료총서 3)(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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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99년 1월 22일(제1호)부터 1899년 8월 17일(제100호)까지 시사총보時事叢報에 게재된 「논설論說」(총 99편) 전문(全文)을 교열ㆍ편찬한 것으로서, 입력 작업은 고려대 소장본(1, 58∼63, 65∼100호)과 영남대 소장본(1∼98호)의 사진촬영 자료를 대본으로 하였다. 시사총보 논설은 1973년 12월 영남대 도서관에서 희귀도서총서로 영인본을 발간하였지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출판한 것은 아니다. 또한 전문입력이나 각주, 내용에 대한 소개가 전무할 뿐 아니라, 영인의 상태도 좋지 않아 학계에서조차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곤 하였다.
따라서 본 자료집에서는 전체 논설의 전문입력과 함께 각 논설마다 요약을 병기하여 내용 이해에 대한 편의를 도왔으며, 본문의 양 옆에 색인어(인명/지명/국명/책 매체명/기관 단체명)를 표기하여 전체적인 자료집의 성격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래 신문(원문)에서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으나, 가독성을 고려하여 자료집의 본문은 현대 표준어 규정에 맞춰 띄어쓰기를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해제」에서는 사진 자료와 함께 시사총보 논설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여, 전공자 외에도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동안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려대 소장본을 포함하여 시사총보 논설 전문과 요약, 색인 정보 등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본 자료집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시사총보 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다방면의 연구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 시사총보 : 1월 22일 황국협회(皇國協會)가 서울 중서(中署) 정선방(貞善坊) 하한동(下漢洞)에서 창간하였다. 사주 겸 발행인에 홍중섭(洪中燮), 편집인은 장지연(張志淵)이었다. 격일간제 국한문혼용으로 B4판 4면 4단제(1단 34행, 1행 16자)였으며, 지대는 1매당 엽전 5푼, 한 달에 엽전 6돈[錢]이었다. 논조는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이었으며, 지면구성은 당시의 일반신문과 같이 관보·논설·잡보·광고 등의 각 부문으로 나누고 시사(詩詞)와 국조고사(國朝故事) 등도 게재하였다. 1899년 5월 23일자에 ‘구행개화호접래(狗杏開花虎蝶來)’라는 글귀에 대구(對句)를 현상모집하였는데, 이것은 신문이 문예작품을 현상모집한 첫 기록이 된다. 이 신문이 황국협회 계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설도 있으나, 『상무총보(商務總報)』를 발행한 황국협회의 간부였던 길영수(吉永洙)와는 또 다른 계열의 사람들이 주도하였다. 1899년 8월 17일까지 제100호를 발행하였으나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다음, 고서출판사업의 전문회사인 광문사(廣文社)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본 자료집에서는 전체 논설의 전문입력과 함께 각 논설마다 요약을 병기하여 내용 이해에 대한 편의를 도왔으며, 본문의 양 옆에 색인어(인명/지명/국명/책 매체명/기관 단체명)를 표기하여 전체적인 자료집의 성격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래 신문(원문)에서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으나, 가독성을 고려하여 자료집의 본문은 현대 표준어 규정에 맞춰 띄어쓰기를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해제」에서는 사진 자료와 함께 시사총보 논설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여, 전공자 외에도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동안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려대 소장본을 포함하여 시사총보 논설 전문과 요약, 색인 정보 등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본 자료집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시사총보 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다방면의 연구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 시사총보 : 1월 22일 황국협회(皇國協會)가 서울 중서(中署) 정선방(貞善坊) 하한동(下漢洞)에서 창간하였다. 사주 겸 발행인에 홍중섭(洪中燮), 편집인은 장지연(張志淵)이었다. 격일간제 국한문혼용으로 B4판 4면 4단제(1단 34행, 1행 16자)였으며, 지대는 1매당 엽전 5푼, 한 달에 엽전 6돈[錢]이었다. 논조는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이었으며, 지면구성은 당시의 일반신문과 같이 관보·논설·잡보·광고 등의 각 부문으로 나누고 시사(詩詞)와 국조고사(國朝故事) 등도 게재하였다. 1899년 5월 23일자에 ‘구행개화호접래(狗杏開花虎蝶來)’라는 글귀에 대구(對句)를 현상모집하였는데, 이것은 신문이 문예작품을 현상모집한 첫 기록이 된다. 이 신문이 황국협회 계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른 여러 설도 있으나, 『상무총보(商務總報)』를 발행한 황국협회의 간부였던 길영수(吉永洙)와는 또 다른 계열의 사람들이 주도하였다. 1899년 8월 17일까지 제100호를 발행하였으나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다음, 고서출판사업의 전문회사인 광문사(廣文社)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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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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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해제 5
논설 본문 45
「시사총보」 논설 제목 목록 299
색인 303
간행사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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