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진론 치안책(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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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한 시대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한 가의의 '과진론'과 '치안책'을 번역했으며, 원문은 실려있지 않다. 중화서국에 발행한 〈사기〉의 '진시황본기'와 '진섭세기', 〈한서〉의 '가의열전'에 실린 텍스트를 번역대본으로 삼았다. 가의의 생애와 두 글의 의의를 다룬 해제를 함께 실었다.
'과진론'은 〈고문진보〉에 실려 널리 알려진 글로, 제목을 풀이하면 '진나라의 잘못을 논함'이라고 옮길 수 있다. 가의는 '과진론'을 통해 진나라의 허물을 들추어내 통치의 거울을 삼도록 했다. '치안책'은 가의의 핵심 사상이 녹아 있는 글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과진론'은 〈고문진보〉에 실려 널리 알려진 글로, 제목을 풀이하면 '진나라의 잘못을 논함'이라고 옮길 수 있다. 가의는 '과진론'을 통해 진나라의 허물을 들추어내 통치의 거울을 삼도록 했다. '치안책'은 가의의 핵심 사상이 녹아 있는 글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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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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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 들어가는 말
제1장 - 과진론
1. 상(上)
2. 중(中)
3. 하(下)
제2장 - 치안책
해제 - 한 제국의 신질서 구상
1. 가의와 그의 시대
(1) 전한 초기의 정치와 '제후왕'
(2) �은 조정 생활과 큰 활약
(3) 장사국, 양국의 태부 시절과 죽음
2. 〈과진론〉과 〈치안책〉에 나타난 가의의 사상
(1) 〈과진론〉 - 진의 혹정을 통치자의 거울로 제공
(2) 〈치안책〉 - 한나라의 새로운 틀 만들기
3. 진나라 역사 이야기
(1) 발생에서 천하 통일까지
(2) 진 시황제의 통일 정책
(3) 진의 이세황제 호해의 통치
(4) 진승, 오광의 반란
4. 가의 관련 연표
5. 가의 관련 지도
- 주
- 더 읽어야 할 자료들
- 옮긴이에 대하여
제1장 - 과진론
1. 상(上)
2. 중(中)
3. 하(下)
제2장 - 치안책
해제 - 한 제국의 신질서 구상
1. 가의와 그의 시대
(1) 전한 초기의 정치와 '제후왕'
(2) �은 조정 생활과 큰 활약
(3) 장사국, 양국의 태부 시절과 죽음
2. 〈과진론〉과 〈치안책〉에 나타난 가의의 사상
(1) 〈과진론〉 - 진의 혹정을 통치자의 거울로 제공
(2) 〈치안책〉 - 한나라의 새로운 틀 만들기
3. 진나라 역사 이야기
(1) 발생에서 천하 통일까지
(2) 진 시황제의 통일 정책
(3) 진의 이세황제 호해의 통치
(4) 진승, 오광의 반란
4. 가의 관련 연표
5. 가의 관련 지도
- 주
- 더 읽어야 할 자료들
- 옮긴이에 대하여
저자
저자
가의
(기원전 200~168)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낙양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시서와 작문에 능했다. 18세가 되던 해 하남군의 태수 오공(吳公)이 그를 발탁해 문하에 두고 총애했다. 문제 즉위 초에 오공이 정위의 자리에 오르면서 오공의 추천으로 가의는 장안으로 가 22살에 역대 최연소 박사(博士)가 되었다.
박사가 된 가의는 전한 조정에서 천재성을 발취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의 신임을 받은 가의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직에 올랐다. 이 해에 가의는 황제에게 〈논정제도흥예악소(論定制度興禮樂疏)〉와 〈논적저소(論積貯疏)〉를 올려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문제 2년에는 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선정과 덕치를 베풀어야 한다는 〈과진론〉을 썼다. 진나라의 제도를 답습하고 있던 현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 그는 역법, 복색, 관직 제도와 법을 개정하고 예악을 부흥시킬 것을 제안했고 문제는 가의의 제안 중 일부를 채택하고 그를 공경(公卿)직에 임명하려 한다.
그러나 가의의 재능을 시기하던 공신들의 반대로 그는 장사왕의 태부로 좌천된다. 1년이 지난 후 문제는 좌천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가의를 다시 불러 시정을 논하고, 양회왕 태부로 발령한다. 이 해 그는 황제에게 〈논시정소(論時政疏)〉를 올렸다. 〈논시정소〉는 〈진정사소(陳政事疏)〉 혹은 〈치안책〉이라고도 불리는데, 후대에는 주로 〈치안책〉으로 불렸다. 그러나 양회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낙마(落馬)로 사망하자 가의는 태부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통감하고 1년여 동안 곡읍(哭泣)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애도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박사가 된 가의는 전한 조정에서 천재성을 발취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의 신임을 받은 가의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직에 올랐다. 이 해에 가의는 황제에게 〈논정제도흥예악소(論定制度興禮樂疏)〉와 〈논적저소(論積貯疏)〉를 올려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문제 2년에는 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선정과 덕치를 베풀어야 한다는 〈과진론〉을 썼다. 진나라의 제도를 답습하고 있던 현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 그는 역법, 복색, 관직 제도와 법을 개정하고 예악을 부흥시킬 것을 제안했고 문제는 가의의 제안 중 일부를 채택하고 그를 공경(公卿)직에 임명하려 한다.
그러나 가의의 재능을 시기하던 공신들의 반대로 그는 장사왕의 태부로 좌천된다. 1년이 지난 후 문제는 좌천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가의를 다시 불러 시정을 논하고, 양회왕 태부로 발령한다. 이 해 그는 황제에게 〈논시정소(論時政疏)〉를 올렸다. 〈논시정소〉는 〈진정사소(陳政事疏)〉 혹은 〈치안책〉이라고도 불리는데, 후대에는 주로 〈치안책〉으로 불렸다. 그러나 양회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낙마(落馬)로 사망하자 가의는 태부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통감하고 1년여 동안 곡읍(哭泣)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애도 끝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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